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18
283화 포로인 듯 포로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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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든 사람들의 표정 위에 드리워진 감겅 중 공통적인 것은 바로 하나였다.
얼떨떨함.
시에라 제국이 외침이 있다는 것도 얼떨떨한 이들이었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경험은 아니다.
이미 시에라 제국으로부터 점령을 당했던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에라 제국에 소속된 이후 다른 국가로부터 점령을 당할 것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이들이었다.
반감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반감을 가지기도 전에 모두 달라진 주변 환경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어느 곳에 줄줄이 몰리더니 갑자기 빛이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지고 난 뒤에 본 것은 바로 전혀 다른 풍광이었다.
“분위기가…….”
잔뜩 긴장한 이들과는 달리 주변의 분위기는 별로 고압적이지 않았다.
“빨리 나오셔야 합니다!”
각 가족별로 움직이세요!”
“인원수를 확인하겠습니다!”
뭔가 사무적으로 움직이는 이들 주변으로 병사들이 늘어서 있지만 병장기를 들이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해도 그 분위기마저 가벼운 것은 아니기에 마법진 위에 있던 사람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조금 전만 해도 죽고 죽이는 전장을 보던 이들이었기에 당연한 모습일지도 몰랐다.
“뭘까.”
“글쎄.”
이동하는 사람들은 불안감이 조금은 가셨는지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뭔가 포로를 대하는 행동이 달랐다. 두려움은 있지만 왠지 말만 잘 들으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한쪽으로 줄을 선 가족의 차례가 되었다.
“총 인원은?”
“저와 아내. 그리고 아버님과 아이들 셋입니다.”
“어른 셋과 아이 셋 맞습니까?”
사무적인 질문에 가장인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이번 전투에 죽은 친지나 이웃 있습니까?”
“없습니다.”
“피해를 입은 부분은 어떻게 됩니까?”
다시 이어진 질문에 사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작은 대장간을 하고 있었는데…….”
“어이쿠! 그러셨군요!”
갑자기 질문을 하던 이가 환한 얼굴로 변하자 대답을 하던 가장은 당황하여 빨리 말을 이었다.
“그냥 농기구나 좀 만들어 팔고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일단 저쪽으로 가시지요.”
환한 얼굴로 답한 사내는 뭔가를 적은 종이를 옆에 건넸다. 그러자 병사가 그들을 이끌고 따로 이어진 줄에 그들을 데리고 갔다.
“대장장입니다!”
“오, 그래?”
다른 줄에는 비교적 분위기가 밝았다. 그쪽 줄을 보니 아는 얼굴이 많았다. 당연한 것이 상점가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 이곳에 와 있었던 것이다.
얼결에 와서 몇 가지 답변을 더한 사내에게 상담을 맡은 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은 단체 수용을 할 겁니다. 가족 수에 맞는 막사가 제공될 것이고, 식사는 하루 두 번 제공됩니다.”
“아, 예.”
“그리고 피해 보신 부분을 전부 보전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으로 보상계획을 짜고 있으니 그 점 잘 알아주시고, 또 일을 하시면 그에 대한 보수는 지급됨을 알려드립니다.”
“예.”
멍했다.
뭔가 이야기가 희한하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드리는 말씀이지만 통제에 잘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별 문제 없을 것입니다.”
통제에 대한 말을 할 때에는 사내의 입가에서 미소가 살짝 사라졌다. 그러자 편하게 풀어졌던 마음이 다시금 조여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질답이 끝난 그들이 간 곳은 거대한 천막촌이 있었다. 심지어 한쪽에는 시장처럼 되어 있는 곳이 있어 거래까지 이루어지는 모습이었다.
“이게 무슨…….”
“여기 또 끌려온 양반들이네?”
“잘 좀 봐주세요. 이분들도 꽤 충격받았을 겁니다.”
천막촌 주변에서 이들을 보고 말을 뱉었던 이에게 병사가 말을 했다. 그러자 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우리야 뭐 할 게 있습니까. 이제 열흘인데.”
“그래도요.”
병사와의 대화는 꽤 격의 없이 느껴졌다. 그때 그들에게 말을 걸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 와랜영지 출신이우.”
“아…… 전 우드마인 영지 출신입니다.”
“결국 거기도 털렸구려.”
“예? 아 예.”
말을 걸어온 사내가 조심스럽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뭔가 특기가 있는가보오?”
“아, 대장간을 좀…….”
“이야! 고급인력이네?”
여전히 얼떨떨했다. 그 사내는 다시 말을 걸어왔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는 것 투성인데. 솔직히 맘은 편하오. 전쟁 물자 만드느라 허리 휠 일도 없고. 먹을 거 꼬박꼬박 나오고.”
먹을 거 꼬박꼬박 나온다는 말에 약간의 안도를 했다.
“기술자들은 또 대우도 좋수다. 공동 공방 같은 게 있어서 거기서 만들어내는 물자에서 재료비를 빼고는 수당도 쳐주는데. 많지는 않아도 이전처럼 착취를 당하는 게 아니라서 또 제법 쏠쏠하다오.”
“그렇습니까?”
“솔직히 전쟁만 아니면 뭐든 좋지 않겠소? 포로나 다름없는 신세지만 말만 잘 들으면 딱히 제지하는 것도 없고.”
그렇게 새로 들어온 가족들은 이전에 도착한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풀어갔다.
“꽤 성공적입니다. 하도 밀려오는 인원이 많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말 왕국의 귀족 하나가 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가우리 소속의 관리가 웃으며 대꾸했다.
“이런 건 익숙한 나라랍니다. 사실 토박이가 없다시피한 나라라서요.”
가우리 관리의 말에 카말 왕국 귀족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알고는 있었지만 참…….”
“해줄 건 해주되 절대 안 되는 것만 계속 주지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이들을 잘 홍보해서 자신도 저리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거지요.”
“그게 말처럼 쉽나.”
“쉽진 않은데 또 의외로 어렵지도 않습니다.”
“무슨 말이 그렇게 되오?”
“백성들이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서요. 희망만 있어도 삶이 확 달라지거든요.”
백성들이라는 말에 카말 왕국 귀족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카말 왕국 백성들 역시 사는 게 나은 편이기는 하지만 언제 짐을 쌀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게 없었다.
한 열흘 지난 이들을 보면 이게 포론지 아닌지도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표정이 핀다.
시에라 제국도 초반에는 희망을 좀 심어주면서 회유를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뭐 모자라는 게 많기는 한데, 열심히 털어주시는 분이 계시니 딱히 나쁠 것도 없고.”
열심히 털어주는 분이라는 말에 카말 왕국 귀족이 기겁을 했다.
“이보게 그런 말을…….”
“에이. 여기선 그런 말이 흉보는 것도 아닙니다. 장군들 말이 밖에선 도적놈 개새끼 소리 들어도 내 식구 안 굶기는 게 백 번 낫다고 하시니까요.”
“그, 그래도.”
“어차피 전쟁도 도적질 아니냐는 말을 공공연히들 하십니다. 목숨도둑, 재물도둑, 땅도둑. 큰 도둑이 다 가지는 그런 도둑질.”
“쿨럭.”
나라간의 운명을 건 전쟁을 이렇게 비유하는 모습에 카말 왕국 귀족이 사레 걸린 듯 기침을 해댔다.
“뭐 전쟁이 그런 것만 가지고 나는 건 아닌 건 압니다만. 최소한 자존심 때문에 전쟁하는 놈들이 가장 상병신들이라고 가르치는 곳이 여기니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요.”
“허허…….”
자존심 때문에 벌어지는 전쟁이 꽤 많기는 하다.
때론 사소한 것 때문에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 가장 조심한다고 하니 조금은 부럽다.
“그래서 용맹한 건지도.”
“아니, 의심이 없으니 가우리군이 용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예. 그런 거 같습니다. 어차피 지옥은 대빵이 가는 법이라 항상 하시니.”
“대, 대빵?”
“우리 폐하 말입니다.”
들을수록 이해가 어려운 말이었다.
그들이 보았을 때 고진천은 위대한 지도자다. 그런데 스스로 지옥을 간다 말한다니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어차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도 전쟁이라는 걸 할 때면 죽으러 가라고 명령 내리는 게 우리 폐하시라는 겁니다. 그러니 지옥을 가는 건 폐하가 가시는 게 맞다고 하시는 게죠. 재미있지 않습니까?”
가우리 관리의 말에 카말 귀족은 헛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재미있다고도 답할 만하네만. 참…….”
“말 하나라도 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군.”
“전사자들 위무하는 것 역시 그래서랍니다. 원망 좀 덜하라고. 살려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응?”
“그래서 원 없이 싸울 수 있습니다. 물론 두렵긴 하지만……. 최소한 죽을 때 가족 걱정 안 하고 죽을 수 있는 겁니다. 그게 이 나랍니다.”
관리의 말에 카말 귀족은 입을 다물었다.
부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가끔 흉보는 바사 론 카말 왕 역시 잘못된 길을 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약간은 뿌듯했다.
“여하간 좀 더 힘내시지요.”
“허허허.”
시에라 제국에서 넘어오는 이들이기에 가우리는 카말과 필리어리 양측의 귀족들의 도움을 얻어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었다.
화전민을 모으고 전쟁 난민을 모아 만든 나라가 가우리다. 물론 북부용병이라는 전쟁 용병들 역시 한 축이다. 그런 다양한 이들이 잘도 굴러간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게 오히려 단순한 것이 중요한 부분을 관통한다.
오히려 많은 것들을 배우고 간다는 생각이 드는 카말의 귀족이었다.
***
대무덕과 그리팔 파샤는 투먼 제국의 제의에 미소를 지었다.
“이거 참. 예상대로구먼.”
친선 대련.
그리팔의 예상대로 투먼 제국이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대련을 제의해왔다.
“아마도 일반 전사들 간의 대련을 제의할 것입니다.”
“나쁘지 않구려.”
“그 론바르라는 이는 초원에서 제일가는 전사이옵니다. 시에라에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이 있다면 투먼에는 대전사 론바르가 있다고 하지요.”
“세간의 평은 어떤가?”
“물론 프라임 공작에 무게가 쏠리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론바르 역시 무시 못할 강자이옵니다.”
“흐흐흐.”
무덕이 즐거운 듯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그리팔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점잖아 보이는 무덕마저 이런 말이 나오면 피가 끓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니 전쟁광들이라는 소릴 듣지.’
가우리에 도착한 뒤 알았다.
그들의 세간 평을 말이다. 하지만 그게 또 매력이다. 강한 나라라는 것만큼 든든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직접 나서실 것이옵니까?”
“초원에서 가장 강하다는 이 한 번 겪어볼 기회가 왔는데 어찌 피하겠소?”
무덕의 말에 그리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나였다. 굳이 할 필요없는 질문이었다.
“그럼 다들 알려볼까나.”
무덕은 밖으로 나갔다. 호위로 따라온 이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대소가 터져 나왔다.
투먼 제국의 시종에게 이들은 곧바로 화답했다.
우의를 위해서라면 대련이 무슨 문제냐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투먼 제국은 그들대로 손님맞이를 위해 오랜만에 술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