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2
강철의 열제 122화
뜨거운 태양이 지배하던 대지를 위로하듯이 떠있는 달들이 은은한 빛을 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하늘의 어루만짐에도 모자람을 느끼는 듯이 인간이 만들어낸 불빛이 또 하나의 궤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어서 가서 교대 하자고.”
“이걸로 내일 전투가 일어난다면 빠질 수 있겠어.”
“모르지 또.”
삼십여 명의 북 로셀린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두런두런 말을 나누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이 밤을 지세우면 다음날의 전투에서 쉴 자격이 주어진다. 물론 전투가 일어날 때에 말이다.
칼을 들고 사람의 생명을 끊는 그 순간에는 피에 취하여 죽음의 향기에 휘둘리지만, 막상 전투 후의 식사를 하면서 그들은 생존에 대한 꿈을 꾼다.
다른 병사들이 편히 쉴 시간에 멀리 떨어진 곳으로 경계를 위해 움직이는 이들은 내일 전투가 벌어지길 빌면서 동료들의 생명을 담보로, 보다 안전한 며칠을 기원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전쟁은 이기적이기도 하다.
“거의 다 왔다.”
“제길, 우리가 여기서 지킬 동안 전쟁이 끝나 버렸으면 좋겠다.”
“아, 시끄러. 어서들 들어가!”
후방에 대한 안전함을 철저하게 믿는 것인가?
고요한 밤공기를 타고 자신들의 음성이 멀리 흘러갈 것임을 알면서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끊임없는 대화를 종결시키며 무리를 이끄는 고참병이 작은 언덕 위에 지어진 소규모 요새의 입구로 걸어갔다.
“교대 왔다.”
횃불로 신호를 그리면서 도착을 알리자, 요새의 문이 열렸다.
“늦었네?”
요새 안에서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흘러 나왔다.
“제길, 아무리 그래도 형식적으로라도 신호는 맞춰 줘야지. 우리가 첩자라도 되면 어쩌려고 그래!”
고참병사가 병사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자신의 횃불신호에 답변신호를 보내지 않고 대뜸 문을 연 것에 대해 투덜거렸다.
“킁, 얼어 죽을 첩자는 무슨.”
투덜거림에 돌아온 것 역시 콧소리와 함께 들려온 투덜거림이었다. 교대 병사들이 문 안으로 들어서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인수인계 하고 빨리 복귀해야지.”
고참병사의 질문에 문을 열어주었던 병사가 도로 닫아걸면서 투덜거렸다.
“킁! 인수인계고 복귀고 나발이고, 지금 인원이 다지?”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병사에게 교대 병력을 인솔해온 고참병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무슨 헛소리야, 그러는 너희는 왜 인원이 이게 다야?”
상주인원을 제외 하고 교대해야할 병력이 삼십 여는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나와 있는 병력은 달랑 열 명이었다.
이들의 늦장행동에 인상을 쓰며 고참병사가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병사에게 다가갔다.
“캬우우웅!”
“뭐야!”
고참병사의 눈으로 병사의 품에 있는 샤벨타이거 새끼가 울부짖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이 생애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퍼어어억!
“헉!”
고참병사의 머리가 수박 터지듯이 터져나가자 여기저기 앉아서 쉬던 삼십여 명의 병사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털썩.
“적이…….”
슈카칵!
고참병사의 머리 잃은 몸뚱이가 땅바닥에 처박히고 나서야 놀람에서 벗어난 누군가의 외침은 끝을 맺지 못하고 달빛을 머금은 차가운 검 날 아래 피를 뿌렸다.
퍼어억!
“흐으으!”
강철봉이 한 병사의 가슴팍을 박살내자 그는 비명마저 재대로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이미 삼두표 일행들은 먼저 침투를 해서 이들을 전부 죽여 없앤 뒤 교대를 기다려 왔던 것이었다. 철저한 준비 덕인지 삼십여 명의 병사들이 비명조차 질러 보지도 못하고 쓰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확인 사살한다.”
두표의 명령에 그들은 죽었음이 분명한 시체의 목에 일일이 다시 한 번 칼을 집어넣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상 없습니다, 장군.”
“킁. 베르스 남작, 빨리 이동 합시다. 이 망할 놈들이 늦장을 부리며 천천히 오는 바람에…….”
그들은 모두 최대한 길게 늘어선 상태에서 양손에 횃불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수를 맞추기 위해 미리 생포해 두었던 경계병력 스물 정도를 사이에 두고 이동했다.
생각 외로 촘촘한 경계망이었지만, 약간은 대담함이 보이는 작전 덕에 그들은 본진가까이 편히 이동을 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이탈을 해야 하는데…….”
“이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더 이상 효용이 없어진 포로를 가리키며 묻자 두표가 잠시 바라보다 웃음을 지었다.
“뭐, 운이 좋으니 살려줘야지.”
잠시 후 그들이 자리를 떴을 때, 20여 개의 인간 누에고치가 북 로셀린의 본진을 향해 맹렬히 기어가고 있었다.
* * *
빛이 보이지 않는 전쟁만큼이나 고단한 전쟁은 없다.
수도가 무너지고, 신성 제국의 노골적인 지원을 보았을 때 이미 남 로셀린의 저항은 무의미해 보였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남 로셀린의 살아남은 왕가와 병사들은 하나로 뭉쳐 저항을 계속했다.
그럴 수 있는 결과의 중심에는 동부의 무신 헬리오스 바이칼 후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동부군의 정예는 누구나 끝난 전쟁이라 외치는 이 전쟁 속에서도 자신들의 승리를 부르짖었다.
그것이 추락하는 남 로셀린에게 하나의 빛이 된 것이었다.
“무슨 일일까.”
바이칼 후작의 입술에서 한 가지 의문이 비집고 나왔다.
북 로셀린의 동요. 처음 전선에 몰아쳐 오던 북 로셀린의 진영에서 묘한 기류가 감지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철저한 전선 통제로 인하여 바이칼 후작으로서는 답답한 마음을 속으로만 삭이고 있었다.
탕!
“음?”
“후작 각하!”
집무실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휘하참모의 행동에 바이칼 후작은 눈살을 찌푸리기 전에 궁금을 먼저 표했다.
“적의 급습인가!”
“아닙니다! 실렌 베르스 남작이 생환 하였습니다!”
“뭣!”
바이칼 후작의 얼굴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했고, 그 의미로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흥분된 목소리였다.
“지금 어디인가!”
베르스 남작이 있는 곳을 묻는 말일 것이다.
“전초기지에서 본진으로 이동 중일 것입니…….”
탈카당!
“후작 각하!”
탕!
바이칼 후작은 더 이상의 보고를 뒤로하고 의자를 내팽개친 채 달려 나갔다. 그를 부르는 참모의 목소리는 큰소리를 내며 닫힌 문에 의해 막혀 버렸다.
십여 기의 기마를 중심으로 좌우로 사십 여기의 기마가 호위를 하듯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리고 있었다. 그 선두 쪽에서 말을 달리고 있는 실렌 베르스 남작의 얼굴은 까칠했지만 두발로 죽어라 달리던 상황과는 달리 생기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하넨 요새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험했는가?
게다가 지금 그가 가지고 가는 정보는 암울한 전장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가우리 라는 나라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가?’ 라는 복잡함이 그의 뇌리 한쪽을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바이칼 후작님!’
그러나 이제는 혼자 짐을 감당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자리는 참모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랴하!”
두두두 두두두!
베르스 남작의 말이 속도를 높이며 달려 나가자 그 뒤를 달리던 삼두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킁, 저 양반 아까만 해도 죽을 것 같이 헐떡이드만 아주 날아가네, 날아가. 하야!”
남 로셀린의 본진으로 달리는 기마들의 속도는 점점 더 높아갔다. 마치 희망을 향해 달리는 듯.
“응!”
가장 최선두에서 말을 달리는 베르스 남작의 눈에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백여 기의 기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선두에 달린 깃발을 본 베르스 남작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후작 각하!”
바이칼 후작의 사령관 기를 본 베르스 남작의 눈에 눈물이 서렸다. 주군이 직접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것이었다.
“쩝.”
베르스 남작의 환호하는 뒷모습을 본 두표가 입맛을 다셨다.
그의 심정을 모를 두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이칼 후작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서렸다. 자신의 휘하를 직접 맞이하러 달려오는 주군은 드문 것이었고, 또한 그만큼 베르스 남작은 가치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긴…….’
가우리 진형에서는 항상 이리저리 치였지만, 비하넨 요새 공방전에서 그의 능력을 직접 겪었던 두표로서는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두 무리가 만나자, 베르스 남작은 재빠른 동작으로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그러자 반대쪽에서 회색머리를 한 바이칼 후작이 말에서 내려 마주 걸어왔다.
스르릉.
“실렌 베르스 남작이 헬리오스 바이칼 후작님께 복귀했음을 보고 드립니다.”
베르스 남작이 자신의 검을 뽑아 가슴께에 올리며 기사의 예를 올렸다.
터억.
“고생 했구나.”
“아닙니다. 그저 빨리 달려오지 못한 점, 죄송할 따름입니다.”
베르스 남작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려 두드려 주는 바이칼 후작의 얼굴에는 아끼던 부하의 생환에 대한 반가움이 서려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뒤쪽에 도열해 있는 자신의 부대 이외의 십여 기의 기마에 있는 가우리 군을 본 바이칼 후작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푸르릉.
바이칼 후작의 시선이 가우리 군의 선두에 있는 두표에게로 향했다. 두표가 타고 있는 말도 그의 눈빛을 느꼈는지 투레질을 하였지만 정작 두표는 본 듯 못 본 듯 말위에 허리를 세운 채 있을 뿐이었다.
“후작님, 이번 전쟁의 가장 큰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바이칼 후작의 관심을 느낀 베르스 남작이 조용히 귓가에 알렸다.
“어서 복귀하지. 돌아와서 고맙네.”
바이칼 후작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베르스 남작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본진으로 복귀한 일행들은 극진한 대우를 받고 그간의 피로를 풀며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실렌 베르스 남작은 휴식도 마다하고 헬리오스 바이칼 후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바이칼 후작과 베르스 남작 단 둘만이 집무실에 들어왔다.
잠시 후 두 잔의 차가 김을 올리며 탁자 위에 놓이자 베르스 남작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따듯한 차 한 잔이 그리웠습니다, 후작님.”
“난 참모진에 비어있는 자네의 자리가 그리웠다네.”
차분한 미소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었다.
베르스 남작이 차향을 음미하며 입가를 적실 때쯤 바이칼 후작의 질문이 흘러 나왔다.
“북부 용병 중에 그런 인물들이 있었는가?”
바이칼 후작의 질문에 베르스 남작은 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북부 용병은 아닙니다.”
“북부 용병이 아니다?”
베르스 남작의 대답에 바이칼 후작의 눈 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그의 반응에 베르스 남작은 이해를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디서부터 이야길 해야 할지…….”
“음.”
“결과부터 말하자면, 전쟁 초기에 국경선에서 적군 사령관으로 붙어있던 페런 공작 말입니다.”
페런 공작의 이름이 거론되자 바이칼 후작의 눈가에 주름이 생겼다. 남 로셀린 왕가이면서도 남 로셀린 침공의 선두에 선 역적의 이름이 달갑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의 표정변화에 베르스 남작이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죽었습니다.”
“죽어? 어떻게 된 일인가?”
바이칼 후작의 놀람에 베르스 남작이 그의 반응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무언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바이칼 후작이 침묵을 지키며 다음에 나올 베르스 남작의 설명을 기다렸다.
“페런 공작뿐만 아니라 우리와 국경에서 전투를 벌였던 병력이 모두 괴멸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예. 모두 비하넨 요새에서 페런 공작을 포함한 전 지휘부가 전멸을 하고 막대한 포로가 잡혔습니다.”
“…….”
베르스 남작의 발언에 바이칼 후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후방에서 그 많은 병력과 상대할 세력은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금 남 로셀린 지역의 남서부를 장악하다시피 한 것은 북 로셀린이 아닙니다.”
“아까 자네와 함께 온 그들과 관계가 있는 일인가?”
바이칼 후작의 질문에 베르스 남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가우리 라는 나라를 아십니까?”
“가우리?”
바이칼 후작은 또 다른 의문 속에 빠져들었다.
“전혀 듣지 못했네.”
“그들입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베르스 남작이 직접 보고 들은 사실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이어지던 설명이 하이안 왕국의 고윈 남작과 원정군의 장악에까지 이어지자 바이칼 후작의 표정에 동요가 그려졌다.
“매의 군단이…….”
만약 그들이 북 로셀린 진영으로 갔다면 그나마 유지되던 전선이 무너지는 것은 눈에 불 보듯 훤한 일이었다. 다행인 반면에 그들의 등장은 바이칼 후작으로서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들이 있어 자네가 이리 생환 하고 또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다행이야. 그럼 비하넨 요새에서 살아남은 병력은 지금 누가 지휘 하고 있는가?”
“그것이…….”
바이칼 후작의 질문에 베르스 남작의 얼굴에 어두움이 드리워졌다. 그러나 바이칼 후작은 그를 추궁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순간 그가 베르스 남작의 표정에서 읽어낸 것은 두려움이었다.
베르스 남작의 뇌리로 고진천과 연휘가람에게 받은 그 두려운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윽고 한숨과 함께 두려웠던 기억과 그가 꾸몄었던 계획을 풀어 놓았다.
“후우.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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