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20
285화 대련의 시작
“그래도 말타기는 이겼으니 동점 아닙니까?”
주변의 대신들이 환히 웃으며 묻자 티부르 황제가 난감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런데 이건 좀 우리가 유리한 부분도 있구먼. 말도 우리 쪽 말이고.”
“원래 전사는 말을 가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때 입을 다물고 있던 론바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들의 기마술을 보니 우리와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그렇지?”
론바르의 말에 티부르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예. 실전적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저런 갑주를 입고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론바르의 말에 대신들이 약간 어버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갑주를 생각한다면 그들이 보인 마상 기예가 결코 쉽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설마. 그랬다면 갑주를 입고 했겠지요.”
대신 하나가 론바르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제의 호위전사장이지만 론바르가 투먼 제국에서 가지는 입지는 적지 않았다. 재상급으로 봐야 한다.
지금이라도 일군을 이끌 수 있는 대장군급이니 말이다.
“우리 측 말이 버티지 못할 것을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말은 그래도 강건하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우리 전사들이 저런 갑주를 입지는 않지요. 따지자면 마상기술도 우리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투먼 제국의 전사들의 무장은 가벼운 편이었다.
집단전술보다는 기동전술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궁술이 참 뛰어나지 않습니까?”
그때 누군가가 감탄어린 말을 뱉었다.
“확실히 우리 아래라 볼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 저들이 마지막에 쏜 그것 말입니다.”
편전을 말하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가 쓰는 솔리온과 비슷합니다.
아직 소수만이 다루는 무기가 있었다.
“화살을 보니 솔리온보다도 더 짧은 듯 한데.”
“사실 짧게 쓸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숙련도가 좀…….”
“활 자체도 우리 것보다 멀리 날아가는 듯 한데.”
“우리처럼 여러 가지 재료로 탄성을 높인 것 같습니다. 봐야 알겠지만, 확실히 성능이 좋아 보입니다.”
“참, 탐나는 것이 많구나.”
활을 잘 활용하는 국가이니만큼 탐날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우리 대전사들은 준비되었지?”
“예.”
티부르 황제의 질문에 론바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 앞의 승부는 여흥에 불과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두 시합 압승을 생각했던 그들로서는 아쉽기는 했다.
“자 그럼 본 시합을 볼까?”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대련에 나올 가우리의 전사들에게 향했다.
“뭐가 저리 많아?”
무장을 벗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자꾸만 뭔가가 떨어져 내린다.
“저게 다 무기이구먼.”
칼만 해도 작은 것까지 세 자루였다. 거기에 손도끼가 한 댓 자루는 더 뽑혀나왔다.
“저 도끼는 투척용인 듯 합니다.”
“그런데 원래 중장기병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묵갑귀마대의 소속이 중장기병으로 들은 바 있었다.
“창도 쓴다던데.”
“못 보는 게 아쉽군.”
어차피 말도 안 태우고 오는데 창을 가져올 이유가 없었기에 그들의 무장에서는 창이 빠져 있었다. 그렇게 무장을 벗은 이의 몸을 본 이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허어.”
“무슨 몸이…….”
하나같이 몸이 잘 단련되어 있었다.
물론 이쪽의 대전사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의 몸에는 이리저리 그어진 자잘한 상처가 그득이었다.
실천의 흔적들임에 분명했다.
“꽤나 백전노장인 듯 합니다. 나이들이 있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그렇구나.”
물론 이쪽 역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태 저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초원의 부족들이 모이는 행사에서 내노라 하는 전사들과의 대련을 봐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시에라 제국과 간혹 있는 대련에서도 저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시에라 제국이 보내는 이들은 곱게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러 전력 노출을 하지 않으려 함이거나, 혹은 이쪽의 방심을 부르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정복사업에 걸림돌이 되면 안 되니까.
“이거 재미있겠구나.”
티부르 황제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론바르 역시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하나같이 잘 빠진 친구들인데.”
“그러게 말이우.”
상대편 대전사들을 바라보는 묵갑귀마대 대원들은 딱히 긴장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대련을 앞두고 설레임에 살짝 흥분한 정도였다.
첫 번째 주자가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환호가 울리는 것이 꽤 알려진 이 같았다. 이쪽도 순서대로 첫 번째 대련자가 나섰다. 평소 입던 무장과 달리 한 손에는 환두대도만이 들려 있었다.
“곡도군.”
반대편으로 나오는 대전사의 무기는 면이 넓은 곡도였다. 말을 달리며 베기 좋은 균형을 가진 무기였다.
길이는 조금 짧지만 승부에 큰 영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둥둥둥!
한쪽에서 북소리가 울리며 두 대련자가 서로를 향해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묵갑귀마대원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소울아머는 안 입네?”
“아쉽구먼.”
“입으면 이길 수나 있고?”
“허? 날 뭘로 보고!”
묵갑귀마대 대원들이 그렇게 투닥거릴 때 그리팔이 나섰다.
“투먼 제국은 전장 외의 대련에는 소울아머를 입지 않는다네. 본신 실력을 겨루는 자리에 소울아머는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습니까?”
그리팔의 설명에 묵감귀마대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패배자들 주제에 뭔 궁금한 게 많아.”
“이씨!”
기마술에 패한 이들을 싸잡아 패배자라 놀린 이는 궁술을 뽐낸 이였다.
다들 부르르 떠는 수간 대련이 시작되었다.
카가각!
중앙에서 첫 번째 합이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초원의 전사가 마치 몸을 웅크리듯 하다가 순식간에 몸을 앞으로 날리며 베어 온 것을 이쪽의 묵갑귀마대원이 그대로 막아낸 것이다.
물론 꽤나 강한 일격이었는지 뒤로 살짝 물러나며 힘을 해소하기는 했다.
“제법!”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거이거 쉽게 볼 게 아니네?”
구경꾼들 사이에서 놀란 음성이 흘러나왔다. 일부는 물러선 가우리의 대련상대를 보며 이기기라도 한 듯 환호성을 질렀지만, 몇몇 칼에 조예가 있는 이들은 달리 본 것이다.
“맞부딪히는 순간 제대로 흘려냈어.”
“그러게.”
“그런데다가 따라 들어가지도 못했다는 건 역습을 당할 여지도 있었다는 것 같군.”
그들이 나누는 말 그대로 대전사는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일합을 나누고 둘은 슬슬 한 방향으로 돌았다. 마치 틈을 노리듯. 하지만 이번에 들어간 것은 묵갑귀마대원이었다.
강하게 땅을 밟으며 환두대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상대 대전사가 한 끗 차이로 몸을 빼며 곡도를 휘둘러왔다. 그때 묵갑귀마대원은 무게 중심을 대전사 쪽으로 옮기며 어깨로 들이받았다.
터엉!
묵갑귀마대원의 내딛는 발이 땅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강렬한 진각이 울렸다. 그와 동반한 어깨치기는 대전사를 멀찍이 튕겨내기에 충분했다.
물론 스스로 몸을 뒤로 빼낸 것이기는 했다.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조금 전 묵갑귀마대원이 뒤로 물러선 것과는 달랐다.
약간 인상이 찌푸려졌던 것이다.
“젠장.”
대전사 울라한의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충격을 받지 않으려 몸을 띄웠는데도 가슴팍이 뻐근했던 것이다.
마치 내장이 흔들리는 느낌마저 받았다.
당연했다. 단순한 밀치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잘못하면 가슴뼈가 다 부러지겠군.”
상대가 자신보다 낮은 실력자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물론 처음부터 신중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단순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한방 한방에 힘이 실려 있었다. 이어 둘은 다시 격돌했다. 화려한 베기를 주를 이루는 그의 공격에 상대방은 들고 있는 무기를 마치 방패바냥 이리저리 돌리며 막아내었다.
그때였다.
툭!
“잉?”
순간 자신의 발끝을 걸어오는 발 하나가 있었다.
살짝이었지만 균형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거리는 짧았고 충분히 어떤 공격이든 막을 수 있다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공격이 들어왔다.
차앙!
“응?”
그러나 손이 묵직하지 않았다. 마치 견제를 하듯 가볍게 쳐온 한방.
그때 그의 멱살을 잡아오는 손이 있었다.
멱살이 잡히는 순간 무기를 빼려 했지만 상대방의 무기가 기묘하게 움직이며 동작이 묶였다.
카가가각!
동시에 멱살을 잡은 손이 대전사를 밀어붙였다. 대전사 역시 그 손을 다른 한 손으로 잡아챘다.
그때였다.
덜컥!
멱살을 잡고 밀어붙이던 손이 뒤로 당겨지는 듯 하다가 턱을 후려친 것이다.
순간 대전사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턱을 제대로 맞은 것이다.
“허, 저리 허무하게?”
티부르 황제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론바르는 달리 봤다.
“실력차이가 큰 듯 합니다. 최대한 이쪽 피해를 주지 않으며 꺾었습니다. 체술도 꽤 잘하는 모양입니다.”
엉덩방아를 찧은 채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전사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묵갑귀마대원을 보며 티부르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듯 하군. 저들이 다 저런 식이라면 확실히 조심을 좀 해야겠어.”
“마상술도 그렇고 싸우는 방식 그리고 무장을 보니 온몸을 다 활용하는 식으로 싸우는 모양입니다.”
“흐음.”
갑주의 활용은 방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론바르는 그 점을 들어 설명을 한 것이다.
두 번째 대전사가 걸어 나왔다.
첫 번째 대전사의 치욕을 씻겠다는 듯 환호를 이끌어내기 위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나섰다. 그렇게 두 번째 대련이 시작되었다.
“이거 슬슬 했어야 했나.”
“에이. 그럼 더 욕 멕이는 거지.”
“그건 그렇긴 한데.”
묵갑귀마대 대원들은 주변을 슬슬 보며 말을 주고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 공기가 너무 싸늘해졌던 것이다.
처음 두 번째까지 승자에게 보내던 환호도 더는 없었다.
세 번째 승자가 셜정되었을 때부터 환호는 거의 사라지다 시피 한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침묵에 가까웠다.
당연했다.
안방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내노라하는 전사들이 줄줄이 깨어지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는 가운데 다섯 번째 승자가 결정되었다.
안면에 박치기를 당한 대전사가 길게 대자로 뻗은 것이다.
“와 이겼다…….”
좋아하던 묵갑귀마대 대원이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들어올렸던 팔을 내렸다.
“이거 동맹 안한다고 하는 거 아닌가?”
누군가가 솔직한 심정을 비쳤다. 그걸 보며 그리팔이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런 걱정을 할 거였으면 적당히 했어야지!’
적당히라는 것을 모르는 묵갑귀마대원들이었다.
그때 정적을 뚫고 박수소리가 울려왔다.
짝! 짝! 짝!
바로 티부르 황제였다.
“강자들에게 환호를!”
티부르 황제가 쩌렁한 목소리로 외치자 그제야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왠지 맥 빠진 환호성이었다. 그때 론바르가 나섰다.
“나 초원의 아들 론바르! 가우리의 재상이자 대장군인 대무덕에게 한 수 가르침을 청하옵니다!”
그제야 환호성이 커졌다.
귓가를 쩌렁쩌렁 울리는 환호성은 질 수 없는 싸움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환호성을 들으며 무덕이 활짝 웃었다.
“으하하하!”
기다리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