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21
286화 격렬하게!
론바르는 곡도를 손에 쥐고 서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무덕이 환두대도를 쥐고 마주하고 있었다.
단지 마주하고 서 있을 뿐인데 장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환호성도 없었다.
시작을 알리던 북소리도 없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둘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시작은 론바르였다.
그가 한 발을 내딛기 시작하자 안 그래도 조용하던 주변의 공기는 답답하게까지 느껴졌다.
저벅 저벅.
무덕을 향해 나아가는 론바르의 발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왔다. 그렇게 세 발자국 쯤 걸어나왔을 대 무덕 역시 마중을 나가듯 발을 떼었다.
저벅 저벅.
두 사람이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었고, 반복적으로 울려오는 발걸음소리가 주거니 받거니 하듯 연달아 들려왔다.
마치 산책을 하듯 서로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이었다. 그들의 손에 무기가 들려 있지 않았다면 딱히 둘이 싸우려 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지켜보는 이들의 얼굴이 벌겋게 변해갔다. 갑갑함과 긴박감이 미칠 듯이 고조되고 있었다.
존재만으로도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멈춘 것은 서너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였다. 여기서부터 한걸음만 내딛는다면 상대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이거 오랜만에 즐겁게 싸워 볼 수 있겠구먼.”
“나 역시. 그간 적수를 만나지 못한 탓에 지금 이 순간이 매우 즐겁소.”
무덕의 말에 론바르가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사냥을 맹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론바르를 보며 무덕이 웃으며 답했다.
“이런. 그럼 그대가 불리할 건데.”
“…….”
무덕의 도발에 론바르는 침묵했다.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난 항상 미치도록 싸울 상대들이 있어서 말이네.”
무덕의 말에 론바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눈앞의 상대와 직접 손을 섞어 보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발걸음만 보아도 상대가 강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상대는 지금까지 보아온 누구보다도 강해 보였다.
그렇기에 더욱 피가 끓었다. 그런데 그런 상대가 미치도록 싸울 상대가 있다는 말에 의구심이 일었던 것이다.
이런 상대가 가우리에는 하나가 아니라는 말과 같았으니 말이다.
“오게.”
무덕이 환두대도를 슬쩍 들어올리며 말했다.
마치 하수에게 말하듯. 론바르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할 말이었지만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연배를 보아도 그가 더 젊었으니 딱히 창피할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정도의 강자라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질 생각도 없었다. 싸움은 이겨야 제 맛이니까.
“후회할 거요.”
“그건 내 몫이네.”
론바르의 말에 무덕이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답했다.
론바르가 몰아쳐 갔다.
콰콰쾅!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론바르의 공격이 매섭게 그를 몰아쳤다. 무덕은 제자리에 서서 그의 공격을 마주 쳐내고 있었다.
강대 강.
두 강자가 제자리에 서서 미친 듯이 상대를 향해 무기를 휘둘러나가는 모습이었다. 그 동작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잔상과 쇠로 만든 병장기들이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불똥만이 그들이 지금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서서 공방을 주고받던 중 제일 먼저 발을 뗀 것은 바로 론바르였다.
옆으로 미끄러지듯 빠지면서 곡도를 휘둘러 왔다. 마치 무덕의 사각을 노리듯 말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무덕도 한 발을 뒤로 빼면서 아래에서 위를 향해 대각선으로 그어 올려지는 곡도를 쳐냈다.
이어 무덕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곡도를 쳐냄과 동시에 한발 내딛으며 파고들었다. 마치 처음의 대결에서 보여 준 것처럼 몸통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론바르가 몸을 한쪽으로 틀며 무덕의 어깨치기를 빗겨 내었다. 동시에 론바르가 무덕의 뒷머리를 잡아갔다. 아니 잡았다.
무덕의 뒷머리를 움켜쥐고 당겼다. 뒷머리를 잡혀서 당겨지게 되면 사람은 균형을 잃고 끌려가게 된다. 하지만 정작 잡아당긴 당사자인 론바르는 이를 악물었다.
너무 쉽게 끌려왔다.
당연했다.
무덕이 오히려 뒤로 몸을 누이며 발을 차올렸던 것이다.
마치 묘기라도 그리듯 발을 좌우로 쫙 펼친 것이다. 그리고 펼쳐진 발 한쪽은 론바르의 머리통을 부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쏘아져 갔다.
결국 론바르는 무덕의 머리채를 잡았던 손을 놓고 그 역시 몸을 뒤틀어 빼내야만 했다.
부우욱!
무덕의 발길질이 론바르의 귓가를 스치는 순간 피가 튀었다. 맞지는 않았지만 스치는 것만으로도 피가 터진 것이다. 순간 론바르는 등줄기가 서늘해진 것을 느꼈다.
처음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무기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보통 이런 대결에서 들고 있는 무기를 누가 더 잘 다루느냐에서 결말이 나는 편이다.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 들고 있는 무기는 온몸이라는 무기 중 하나일 뿐이었다.
쿠앙!
그렇게 한바퀴를 돌은 무덕의 헛발질이 바닥에 닿았을 때 땅거죽이 퍽 하고 패이며 굉음을 울려 냈다.
그 순간 론바르는 뒤틀었던 몸을 바로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쾌액!
마치 한줄기 뇌전처럼 쏘아져 오는 환두대도의 끝이 그를 관통할 것처럼 찔러져 왔기 때문이었다. 한 발을 딛고 한 발을 띄운 채로 팔을 뻗어 쭈욱 내밀은 자세.
그 덕인지 꽤 떨어져 있는 론바르에게까지 그의 찌르기가 닿았다.
“흡!”
론바르의 곡도가 서둘러 그 찌르기를 쳐냈다. 쇳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구치는 무덕의 환두대도 하지만 무덕은 그대로 남은 한 발을 쭈욱 밀어넣으며 다시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어깨를 피하려 다시 체중을 이동시켰던 론바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번에는 어깨가 아닌 등이었다.
투웅!
순간 곡도와 다른 한 팔을 이용해 그의 등을 막았다. 하지만 어깨치기가 그 자체로 박살을 낼 수준의 파괴력을 가졌다면 그의 등은 모든 것을 밀어낼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허공에 떠서 뒤로 날아가는 론바르는 서둘러 자세를 다잡으며 바닥에 내려섰다.
“후욱.”
론바르의 입에서 긴 한숨과 같은 숨이 뿜어져 나왔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 앞에는 무덕이 천천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거참 잘도 피하는구먼.”
마치 칭찬하듯 던지는 무덕의 말에 론바르는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나이에 비해 제법 빠르구려.”
“뭐 이 정도야.”
무덕은 별것 아니라는 듯 환두대도를 턱 하니 자신의 어깨에 둘러매었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먼저 가볼까?”
무덕의 말에 론바르가 이를 악물었다.
어깨에 둘러매었던 환두대도를 양손으로 잡아 머리 옆으로 올린 무덕의 자세에 온몸이 바짝 긴장한 것이다.
순간 들어 올린 손과 다른 쪽 다리가 들어 올려졌다.
그 다리가 앞으로 내려찍히는 순간 들어 올렸던 칼이 수직으로 내리그어졌다.
그 모습에 론바르의 눈에 부릅 떠졌다.
그와 동시에 론바르가 몸을 뒤로 물리는 대신 옆으로 빼내었다.
카가가각!
그의 선택은 현명했다.
무덕의 칼이 닿지도 않았음에도 땅거죽이 일자로 패여 나갔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소, 소울아머?”
“아닌데? 분명 맨 몸이야!”
“오오! 맨 몸으로 저런 경지를 보이다니.”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울아머를 입지도 않았음에도 입은 것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에 대한 놀라움인 것이다.
론바르 역시 얼굴이 딱딱해졌다.
그를 보니 그의 스승이 생각이 난 것이다.
소울아머는 결국 검사들의 경지를 깎아먹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편하게 강해지는 길을 걷게 되면 그 순간 정체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옛날 소울아머를 입지도 않고 괴력을 보이던 이들은 이미 자리를 감추었다. 그 경지를 소울아머를 입는 것만으로도 밟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론바르는 스승의 말에 충실했다.
그 덕에 무덕이 보인 모습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었다.
“후우우.”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 론바르의 곡도가 울림을 만들어내었다. 지이잉하고 사방으로 곡도가 울림을 펼쳐내더니 흐릿한 빛이 검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내 그 빛은 진해졌다.
“우와아아아!”
“소울포스다!”
“오오오!”
사방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걸 본 무덕은 놀라기보다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이전에 보았던 대륙의 십대 강자들이 뽑아내던 검의 기운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면, 지금 론바르가 내보이는 기운은 그 불꽃을 잔뜩 응축시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우리의 무장들이 모든 기운을 무기 속에 갈무리 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응축.
지금 제라르가 도달했던 그 경지다.
론바르는 무덕을 보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무덕의 환두대도에 흐르고 있는 기운 역시 자신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경계하고 있었다.
자신은 검 밖으로 뽑혀진 기운을 응축시킨 것이라면 무덕은 아예 무기 안에 그 힘을 응축시켰고 지금 일렁이는 기우는 응축된 힘 때문에 퍼져 나온 것이라는 걸 알았다.
왜냐면 지금 이것이 그의 스승이 말년에 보여줬던 경지와 같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렇다 해서 진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이 경지를 보여 준 스승이 했던 말 때문이었다. 경지가 오른다고 강자는 아니라던 말.
오르지 못한 경지라 해서 싸움에서 진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말.
승자가 강한 것이지 강자가 승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
론바르는 함성을 토해 내며 달려들었다.
퍼엉! 펑!
이전과는 다른 굉음이 사방을 울리기 시작했다.
“어우!”
“잘하네?”
구경을 하던 묵갑귀마대원들은 모두 놀란 눈을 했다. 어안이 벙벙한 그리팔과는 다른 표정들이었던 것이다.
“지, 지금 저거!”
그리팔이 비록 검술에 능하지는 않지만 오래된 검사들의 경지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많았다.
그런데 그 경지를 론바르가 보여 주고 있었다.
사실 그리팔은 론바르의 실력에 대해 약간 부풀림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초원의 자존심이라 해서 그를 추켜세우기 위함이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지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프라임 공작의 진정한 수준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그간 알려졌던 것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반면에 무덕은 잘 싸우고는 있었지만 뭔가 없어 보이기는 했다.
뭔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묵갑귀마대원들의 태평한 모습을 보니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격돌을 하는 순간 그 이유를 알았다.
밀리지 않는다.
일반 병장기라면 당장에 잘려 나가도 모자랄 공격이었는데 오히려 밀리지 않고 받아치고 있었다.
오히려 조금씩 밀리는 것은 론바르였다.
론바르가 더욱 거세게 밀어 쳤고 무덕이 그 공격을 받아 쳐내고 있었다.
격렬한 일전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