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26
291화 우지를 품은 맹수의 고민들은 길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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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란 루 비에라 황제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의 복귀 이후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 나온 대전은 시장바닥마냥 소란스러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걸 탓하기에는 정신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들어온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러 들어온 전령들이 한쪽에 죄인마냥 서 있었다.
“쏜튼 후작. 그래서 상황은 어찌되었단 말인가.”
“먼저 치고 들어온 약 삼만여 병력은 일종의 교두보를 만들기 위한 숫자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제야 알려진 이유는 놈들이 기습을 통해 망루를 먼저 장악하는 식으로 침투를 해 왔던 것 같습니다.”
“대체 경계를 어찌 했기에!”
리베란 황제가 부르르 떨었다. 채 풀어내지 못한 분노로 온 몸이 떨려온 것이다.
“아무래도 북방의 병력 누수가 원인인 듯하옵니다.”
쏜튼 폴리어 후작이 그나마 침착함을 되찾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북방의 병력은 황도 인근으로 와 있었다. 상당수가 기병 병력이기에 기동전을 펼치는 적을 상대하기에는 그들이 최적이라는 생각으로 빼 왔었다.
그리고 투먼 제국 국경 쪽은 다수 신병으로 채워 넣었고 말이다.
아무리 그들이 야만인들이라 해도 엄연히 제국이었다. 그래서 틈만 보이지 않으면 된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온 것이다.
해석하기 나름의 합의문이었기에 이렇게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뒤통수를 쳐 온 것이다.
“그래서 본진의 수는 얼마란 말인가.”
“약 삼십만으로 추정된다 하옵니다.”
“삼십만…….”
연이어 들려온 보고로 인해 추정치는 어느 정도 좁혀졌다. 그게 삼십만이었고 실제로도 거의 맞는 숫자였다.
“보급기지를 털렸다니 놈들이 자리 잡고 분탕지를 치겠구려.”
리베란 황제의 말에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이미 황제의 입에서 답은 나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보급기지에 보충된 보급량은 적지 않았다.
평시에 피해 거의 한 배 반 가까이 축적이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전쟁이 길어지면 보급부대를 운용하는 것도 무리가 될 수 있어, 북방 전선의 보급은 사전에 차곡차곡 미리 보내 놨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털려 버렸다.
북방의 방어병력이 원래 십만 정도였고, 그것들을 보급하기 위한 보급기지들이 털렸으니 황제의 말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북방 놈들이 얼마나 우릴 우습게 봤으면…….”
리베란 황제가 이를 갈았다.
“대체 이번에는 얼마나 받아 처먹으려고 내려온 건지.”
분에 찬 음성이 연이었다. 그때 쏜튼 후작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뭘 바라고 온 거라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리베란 황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쏜튼 후작이 심각함에 굳어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 남부동맹과 밀약을 맺었다면 이야기가 심각해질 겁니다.”
순간 대전이 서늘해졌다.
“그게 가능한 일이오? 북부 야만인 놈들도 현실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투먼 제국이 여태 군세를 크게 키우지 않은 이유는 유지할 힘이 없어서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이번에 시간이 끌리면 스스로 흔들리게 되는 것은 투먼 제국입니다.”
귀족들이 각자 한마디씩 던지며 쏜튼 후작의 말에 반박을 가했다. 다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쏜튼 후작은 그들의 말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말을 받아 나갔다.
“말 그대로 투먼 제국은 바보가 아니오. 남부 동맹 다음이 그들이 분명한데 여태 왜 가만히 있었겠소? 뛰어든다 해도 승산이 없기에 안 뛰어든 것이오.”
“그럼 지금은 그놈들에게 승산이 있다는 것입니까! 대 시에라 제국이 흔들리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지금 우리 제국이 멀쩡한 걸로 보이는 것이오?”
쏜튼 후작이 서늘한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직도 그가 백작일 때로 착각해서 말을 뱉던 이들은 그의 서늘한 눈빛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제국 역사상 유례없는 침입을 당한 상황이 그대들의 눈에는 멀쩡한 것으로 보이는구려. 내부에서는 부흥군이니 뭐니 해서 돌아다니는 것들도 있고 몇 군데에서는 이와 유사한 소요가 있었소. 물론 다 잡았다 하지만 그게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치욕이요.”
“큼.”
“으음.”
귀족들이 불편한 음성을 뱉었다. 몇몇은 심각해진 얼굴로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물론 죄다 점령지역들이라지만 언제부터 우리 시에라 제국이 점령지 비점령지를 나누었소? 스스로 창피함을 덜고자 내뱉는 말이나 다름없단 거요. 알겠소?”
귀족들은 점점 할 말을 잃어갔다.
“지금 죽어 나간 지휘관은 또 몇이오? 소울아머 유저는 지난 정복의 역사에서 죽어 나간 숫자를 훨씬 상회하고 있소. 그런 게 보이지 않고 있소?”
질타가 이어지자 귀족들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거니와 이제야 쏜튼 후작이 황도에서 실세에 올랐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그간은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의 말을 대신 전하는 앵무새 취급을 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북방이 무너졌다는 것이오. 물론 방어군이 모이고는 있지만 그 방어군의 숫자는 십만에 불과하오. 거기에 그들 대부분은 신병이고. 꼴랑 수천에서 많아야 만 정도 분탕질 치다가 돌아가는 야만족을 상대로 사방에 뿌려 놓은 군세란 말이오!”
귀족들은 저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답답해짐을 느꼈다. 쏜튼 후작이 한숨을 내쉰 뒤 리베란 황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옵니다, 폐하. 소신이 예의에 어긋난 짓을 하고야 말았사옵니다. 죄를 달게 받겠나이다.”
황제의 앞에서 여타 귀족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황제에게 결례가 맞았다. 하지만 리베란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계속 해 보게.”
부글부글 끓는 것은 황제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쏜튼 후작을 제지할 때가 아니었다.
“교두보를 마련한 것 자체가 그들이 장기전을 준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옵니다. 물론 장기 농성하며 버티던 전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지금 우리 상황을 비추어 볼 때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하옵니다.”
“북부군단으로 방어가 되겠소?”
“솔직히 어렵사옵니다.”
사방에서 한숨들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쏜튼 후작이 굳은 얼굴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까 발언한 대로 적게는 수천에서 일이만 정도의 병력을 방어하기 위해 사방에 뿌려놓은 군세이옵니다. 평시라면 후방의 타격 부대가 출동해야 하오나 그 부대들마저 지금은 황도 인근까지 이동해 와 있사옵니다.”
“각개격파나 안 당하면 다행이구먼.”
“차라리 병력을 물려 수성전에 힘을 쓰는 것이 낫습니다. 지금은 북방에 집중을 할 수 없사옵니다. 투먼 제국이 남부동맹과 합의를 했든 안 했든 이 사태가 해결되려면 남쪽을 정리하는 게 맞사옵니다.”
“차라리 북쪽을 먼저 정리하는 건 어떤가.”
리베란 황제의 말에 쏜튼 후작이 미간을 좁혔다. 고민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쏜튼 후작이 슬슬 고개를 저었다.
“교두보를 만들었다 해도 이쪽이 대병력을 올려 보내면 빼 버리면 그만입니다. 아무래도 제국군이 초원을 지나기에는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옵니다.”
“그렇겠지. 거기에 일단 한번 넘어온 놈들이 완전히 물러갔다 믿을 수도 없고.”
“예.”
“합의는 되겠는가?”
“일단은 서신을 보내 봐야 알겠사오나…….”
“뭔가 크게 요구하겠지. 아니면 시간을 끌며 야금야금 밀고 내려올 수도 있고.”
“그러하옵니다. 아직은 판단하기 어려우나 저들의 진군방향을 보게 되면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단지 엄포용이라면 각지의 길목을 잡으려 할 것이고, 그가 아니라면…….”
“점령을 목적으로 움직이겠군.”
리베란 황제의 말에 쏜튼 후작은 말을 아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질 수 있게 된다.
“서신을 보내고 사신을 준비시키게.”
“예.”
“그리고 카버 왕국에 마법사 전력을 좀 보태 달라게. 최소한 상황은 바로 바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예.”
카버 왕국 이야기가 나오자 쏜튼 후작은 고개 숙여 대답을 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뭐 처음부터 연신 손을 벌려 대니 뭔가 밀고 당기고 하는 협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리베란 황제의 말대로 빠르게 상황을 알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프라임 공작은 언제 입성하는가.”
“열흘 이내에 도착하옵니다.”
“그런가.”
물론 이것도 꽤 빠른 복귀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 복귀시간마저 더디게 느껴지게 하고 있었다.
“남부 상황은 어떤가. 여전히 도적질인가?”
“그게…….”
남부 상황에 대한 말이 나오자 쏜튼 후작은 대답을 잇지 못했다. 한숨부터 나온다.
“영지 두 곳이 연락이 두절되었사옵니다.”
“미친놈들. 북쪽 놈들보다 더한 놈들.”
리베란 황제가 치를 떨었다. 분탕질 치는 것은 비슷했지만 이젠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다는 듯 영지 자체를 털어 가고 있었다. 이러다간 옛 점령지 지역은 땅만 남고 백성은 하나도 안 남을 지경이었다.
물론 그게 그렇지는 않는다.
점령지 백성 중 상당수는 다른 지역으로 빼내거나 했기에 딱 영지가 돌아갈 정도의 백성 수만 있는 게 점령지들이었다. 생산기지라 하면 딱 맞을 정도였다.
“가든 후작은?”
“병력을 조련하는 중이옵니다. 이미 십오만의 병력을 조련 중이옵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군.”
십오만이라는 숫자가 딱히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조련이 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최소한 하나 정도는 견제가 가능한 숫자니 말이다.
그 숫자로 일루이먼 부흥군을 밀고 프라임 공작이 이끄는 주공을 도와 조공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최종적으로 프라임 공작이 약 오십만 정도를 이끌 예정이고 가든 후작이 삼십만을 이끌 예정이다. 그리고 예비로 이십만을 두어 탄력적으로 운용할 계획이 다 서 있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북부 상황이 뒤틀어졌으니 또 머리를 짜야겠지만 말이다.
“더는 다른 문제가 없으면 좋겠군.”
리베란 황제가 몇 년은 더 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맥이 풀린 느낌이었다.
***
“황도로 보고는 올리지 않아도 되옵니까?”
총관이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에 가르히 데얀 백작이 지도에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
“먼저 수습하고 나서 서신을 보내도 늦지 않다.”
“예.”
“흐음.”
다행히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마침 수확한 곡물을 돌려 영지의 식량부족을 먼저 해결했다. 그 와중에 가르히 백작이 치를 떨었다.
이미 창고 몇 동이 털렸음에도 곳곳에 비축된 식량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식량들은 전쟁물자로 보내질 예정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굶고 있는 데얀 백작령의 백성들에게 못 보낼 만큼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열이 치솟는 것은 따로 있었다.
황실에서 받은 듯한 서신 몇 개였다. 데얀 백작령에서 식량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렸던 것 같았는데, 그에 대한 답변은 데얀 백작령은 최대한 시간을 끌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입이 무거우면 입을 줄이게끔 한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최근 데얀 백작령에 용병이 불어났다. 백성들이 스스로 용병일에 뛰어든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전쟁에 직접 참가하려 함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데얀 백작령의 인구는 줄게 마련이었다.
이후의 일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점령지에 정착지를 나눠 주는 식으로 가족까지 빼 가도록 만든다. 치졸하지만 이보다 더 효과 있는 일은 없었다.
“일단 천천히 보자고.”
가르히 백작은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