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32
297화 어색함의 이유
찬란하게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를 부며 주위는 침묵으로 변해 버렸다.
충격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놀란 것은 단지 오러 블레이드 하나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한 자리에 나타난 십여 명의 초인. 한두 명이 나와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도 놀라울 수밖에 없는데 한 자리에 열 명이 나타났다.
모두가 입을 떡 벌린 채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고 있는 사이 바이칼 공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먼저 대련을 해보고 싶은 이는 누구인가.”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침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장내는 도떼기시장처럼 변해 버렸다.
바이칼 공작의 질문이 떨어짐과 동시에 누가 검술의 극에 도달한 검호들이 아니랄까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던 것이다.
엄청난 반사 신경을 자랑하는 순간들이었지만, 바이칼 공작은 마치 실소를 숨길 수 없었다.
“푸허헛!”
심지어 일부는 제자리에서 껑충거리면서까지 자신을 어필하고 있었다.
중년인들이 순수한 아이마냥 눈을 반짝이며 그러고 있으니 당연히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물론 순수한 것은 아이에 버금가는 이들이었다.
오로지 강함만을 위해 한평생 살아온 이들이었다.
다연히 이런 자리에서 순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평판 등을 고시하며 고르고 고른 이들이었다.
지금이야 다들 각자 검을 갈고 닦고 있지만 저들 중에 국난의 위기에서 전장을 나서지 않았던 이들은 없었다. 게다가 이들은 전부 제국전쟁까지 겪은 이들이었다.
그 후 승전을 거두며 좋은 자리를 얻을 수도 있음에도 각자 초인이 되기 위해 자리를 고사한 이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들을 믿지 못하면 누굴 믿겠는가.
물론 이들 외에 일부는 새로이 구성된 묵갑귀마대에 들어선 이들도 있기는 했다.
일부 용병검객 같은 경우다.
“그럼 먼저 한번 지목하겠네.”
바이칼 공작이 빠르게 열 명을 짚어 내었다. 그 빠른 이들 중에서도 가장 빠른 열 명을 이미 골라 놨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선택받지 못한 이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그러나 반발은 없었다.
안타까워하는 이들을 향해 바이칼 공작이 입을 열었다.
“여기 모인 모두에게 기회는 공평이 돌아갈 것이니 실망하지 말게.”
바이칼 공작의 말에 아쉬워하던 이들이 입을 닫았다. 그리고 딱히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각자 뒤로 물러나 자리들을 잡기 시작했다.
딱 봐도 빨리 대련을 지켜보려는 심산이었다.
“이거 참 부담스럽군.”
대련을 직접 받아 주는 이가 바이칼 공작이 아니었음에도 저 반짝거리는 눈빛들은 여간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중년 남성들의 반짝이는 눈은 당연히 부담이 된다.
바이칼 공작 역시 뒤로 앉았다.
그러자 첫 번째 대련자와 초인이 나섰다.
첫 번째 대련자로 뽑힌 이는 바로 아르시온이었다.
“로셀린 알리오스 지방의 아르시온이라 합니다. 한 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아르시온이 예를 갖추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반대편에 나온 소울아머 유저가 입을 열었다.
“카말의 뷜락 데므뤨이라 합니다.”
노인의 음성이었다.
단지 이름을 말했음에도 다들 감탄사를 쏟아 낸다. 마치 숨소리만 들어도 감탄사를 뱉어 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내 술러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카말이라는 지역이 어디지?”
“로셀린인가?”
“그런가?”
“말린 거 아니야?”
다들 카말이라는 생소한 지명에 조곤조곤 의견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소리를 감추었다.
차가운 쇳소리와 함께 아르시온의 소드가 뽑혀 나왔기 때문이었다.
롱소드 보다는 좀 길고 투핸드 소드보다는 짧은 느낌.
칼날 끝으로 좁아지는 검폭을 가지고 있으며 찌르고 베기에 적합한 모습을 가진 검의 이름은 바스타드 소드였다.
특성상 한손 검에도 양손 검에도 속하지 않는 형태였다.
이런 형태 덕분에 아직은 극히 드물게 퍼져 있는 무기이기도 했다.
반대로 소울아머 유저는 약간 휜 곡도를 쥐었다. 가우리의 검수들이 쓰는 장도보다는 짧지만 두꺼운 것이 베기에 충실한 형태였다. 그리고 한 손에는 적당히 가벼워 보이는 라운드 쉴드를 들고 있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초인에 대한 도전의지를 불태우는 아르시온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의 검에서 아지랑이 같은 오러가 흐르며 검을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오러 블레이드는 아니지만 이렇게 선명한 오러가 쏟아지는 것만으로도 그가 벽의 끝에 다다랐음을 알게 하는 증거였다.
그와 반대로 소울아머 유저의 오러블레이드는 선명하기 그지업었다. 오히려 소울아머 유저가 놀란 기색을 보였다. 물론 찰나였기에 스쳐 지나갔지만 말이다.
콰앙!
첫 충돌이 이루어지자마자 뒤로 빠진 아르시온이 부르르 환희에 떨었다.
“과연!”
완벽한 오러 블레이드를 겪어본 감격의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투지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이어 맹렬하게 나아가는 아르시온의 검격을 소울아머 유저인 뷜락이 맞받아치며 대련이 이어졌다.
콰앙! 쾅!
대련이 이어지는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왔다.
오러와 오러블레이드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온몸을 찌릿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대련을 끝마치고 나온 아르시온의 얼굴은 뭔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초인과의 대련이었는데 뭔가 의구심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로 대련에 임했던 이들이 함께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대동소이한 표정들이었다.
그때 바이칼 공작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엇!”
놀란 검호들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보다 빨리 바이칼 공작이 주저앉으며 손을 내저었다.
“일어서지 말게. 진이 빠졌을 것인데.”
“영광입니다.”
아르시온과 검호들이 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실제 온 힘을 끌어다 쓴 덕에 그들은 진이 빠지기는 했다. 이렇게 상대방을 봐주지 않고 온 힘을 쏟아 본 적이 얼마나 있나 싶을 정도였다.
“표정들이 어째 그런가?”
바이칼 공작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검호들이 머뭇거렸다.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왠지 묻는 순간 이런 귀한 시간이 날아갈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머뭇거림은 길지 않았다.
아르시온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귀한 시간을 만들어 주셔어 그저 감사드릴 뿐이옵니다. 허나…….”
“이상한가?”
“예…….”
바이칼 공작이 정곡을 찌르고 나오자 아르시온이 어설피 웃으며 대답했다. 왠지 바이칼 공작은 그런 의문을 풀어 주기 위해 온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면이 이상한가?”
“분명 오러블레이드는 맞는 듯 했사옵니다. 물론 이건 말린의 켄 공작과 우연히 손을 섞어 본 적이 있어 말씀을 드린 것이옵니다.”
“오호?”
그의 말에 다들 부러운 시선을 보내었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사옵니다. 이전 제국전쟁 때 진영에서 운이 좋아 얻었던 호의였사옵니다.”
“그랬군.”
바이칼 공작이 흐뭇한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오러블레이드는 완벽하나 왠지…….”
“왠지?”
마치 뒷말은 잇기가 미안한 표정이었다.
아니 미안하기도 하지만 정말 자신이 느낀 것이 맞는가 확신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르시온은 이내 말을 이었다.
“검술이 투박한 느낌이었사옵니다. 마치 힘은 초인이지만 기교는 초인이 아닌 듯 하였사옵니다. 죄송합니다.”
“껄껄껄!”
순간 바이칼 공작이 웃음을 터트리자, 아르시온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하옵니다!”
마치 망발을 뱉었다는 자책감도 있었다. 하지만 웃음을 한차례 떨친 바이칼 공작이 고개를 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죄송할 게 무언가. 자네 말이 틀린 것이 아닌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이해를 할 수가 없사옵니다.”
대답을 했던 아르시온은 멍한 얼굴로 바이칼 공작을 보고 있었고, 그의 뒤에 앉아서 둘의 대화를 경청하던 이들은 약간 혼란스러운 표정을 한 채 참지 못하고 연이어 질문을 던져 대었다.
그때 아르시온과 대련을 했던 소울아머 유저인 뷜락이 연이은 대련을 마치고 살짝 지친 모습으로 다가와 바이칼 공작에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사옵니다. 검술의 묘리가 다들 뛰어나 창피할 지경이옵니다.”
“고생했네.”
그 말을 뱉은 이가 소울아머를 해체했다.
“엇!”
“허?”
순간 갑주가 해체되며 흉갑형태로 돌아가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주가 약간 특이하다 느꼈지만 이런 식으로 변화를 가져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소울아머를 해제한 뒤 나타난 이는 노 검객이었다.
그때 아르시온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대련해 주시어 감사드리옵니다.”
“저야말로 새로이 눈을 떴습니다. 그저 착잡할 따름입니다.”
갑자기 공손하게 대하는 뷜락을 보며 아르시온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주고받는 대화의 방향이 이상하다 느꼈던 것이었다.
“옛날 스승님의 말씀을 따를 것을 그랬습니다.”
씁쓸하기까지 한 뷜락의 말에 다들 혼란에 빠졌다. 그때 뷜락이 아르시온을 향해 말을 이었다.
“다시 소개 하겠습니다. 카말 왕국의 소울아머 유저인 뷜락입니다. 그대의 검술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 아예. 카말 왕국?”
얼떨떨하게 인사를 받다가 아르시온이 멍한 얼굴로 반문하는 실례를 범했다.
듣도 보도 못한 왕국명이었다.
거기에 소울아머 유저라는 말도 뭔가 이상했다.
처음 듣는 말인데 지금 이 상황과 연관이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울아머 유저란 이쪽 말로 초인…….”
말을 이으려던 뷜락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잠시 흐렸던 말을 이었다.
“……아니 반쪽짜리 초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반쪽짜리 초인이라는 말에 다들 얼굴을 굳혔다.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바로 소울아머이며 잠시나마 초인의 경지에 오르게 하는 기물이지요. 물론 오늘에야 확실히 느꼈습니다. 오직 힘만 초인의 반열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말입니다.”
뷜락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가우리인들은 뭔가 이질적이고 비교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고진천이나 다른 이들은 더더욱 비교가 어렵고 말이다. 바이칼 역시 비교 대상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원정대의 기사들의 수준은 높다지만 자신들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왜냐면 소울아머 유저 역시 선택받은 검수들이 오를 수 있는 명예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를 보니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진정한 검의 길을 걷는 이들은 이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초인의 반열?”
“이럴 수가!”
다들 당황감을 지우지 못했다.
기물 하나로 초인의 반열에 올랐단 말에 다들 충격을 잊었던 것이다. 믿을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믿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멍한 얼굴로 아직도 이어지는 대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바뀌고 있었다. 뭔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실타래가 하나씩 풀리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