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33
298화 독이냐 약이냐
대련이 끝난 뒤 각국의 검호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일부는 속은 느낌을 받은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차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단지 이들을 속이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은 최근의 일 때문이네.”
바이칼 공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긴장한 얼굴로 그를 주목하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동부의 무신이라 불리는 바이칼 공작이었다. 그가 이들을 모아서 허튼 소리를 할 리는 없었다.
“최근에 여기저기에서 초인들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들어 알 것이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문에 사실 많은 이들이 조바심을 내기도 했었다. 물론 수련에 있어 그런 조바심은 하등의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초인이 나타났을 수는 있네.”
그 한마디에 다수의 검호들은 이 일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었다.
소울아머.
“아마도 절대 다수는 저 소울아머 탓일 게지.”
솔직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일부의 눈에 욕심이 서렸다. 저것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초인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커다란 한계가 있네. 아마 지금은 모를 테지만 한 세대만 지나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지.”
몇몇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눈이었지만 일부는 탄식을 흘릴 수 있었다. 그 일부는 잠시나마 탐욕의 시선을 보냈던 이들이었다.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바이칼 공작이 소울아머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들은 은퇴한 소울아머 유저들이었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퇴한 덕에 소울아머를 오래 운용할 수 없는 은퇴한 소울아머 유저들이었다.
물론 원래라면 이들이 은퇴 운운할 수는 없었다.
시에라 제국의 공세에 이들 역시 전장에 뛰어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가우리 덕에 숨통이 트여 이렇게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그들의 왕국에서는 존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확실히 체감했다. 그 때문인지 바이칼 공작이 말하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대표로 뷜락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마주 고개를 끄덕여준 바이칼 공작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들이 바로 그 증거일세.”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어색했던 것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모르기는 몰라도 어느 정도 수준의 능력을 갖추게 되면 저것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초인의 반열에 오른다. 그런 초인의 능력은 국가에서 귀히 여길 것이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
“벽을 넘어서게 해 주는 동시에 벽과 멀어지게 되는 기물이지. 물론 일부 초인에게는 이것이 별 무소용인 경우도 있고. 즉 벽 너머에서 또 다른 성장 또한 저해한다는 거라네.”
그때 한 검호가 입을 열었다.
“그리하면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자리의 의미를 말함이었다.
“없지는 않을 것이네.”
그렇게 말한 바이칼 공작이 그들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힌 뒤 입을 열었다.
“이미 이 대륙에 저런 것이 들어왔네. 지금은 그게 숨겨지고 있는 듯하구먼. 허나 언제까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저게 많다는 말입니까?”
한 검호가 바이칼 공작의 말에 놀란 눈으로 질문을 던지자 뷜락이 답변을 했다.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못 만들 것은 아닙니다.”
뷜락의 말에 다들 놀란 눈을 했다. 그때 한 명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개판이 되겠구먼.”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자들은 한평생 무를 위해 갈고 닦은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 중에서도 혹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이들보다 낮은 경지의 이들은 어떠하겠는가.
아마 조바심이 날 것이다.
누군가는 강해졌는데 나는 제자리다?
아마 참기 힘들 것이다. 물론 기물의 도움을 받았다고 처음에는 욕을 할지 몰라도 상대방 국가에서 이것을 사용하면 어쩔 수 없이 이쪽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러게 되다보면 아마 지금 눈앞의 소울아머 유저들처럼 바뀌어 갈 것이 뻔했다.
검호들의 표정이 암담해졌다.
“그래서 이 자릴 마련했네.”
다시 검호들의 눈빛이 집중되었다.
신중해진 시선들. 그들을 돌아보며 바이칼 공작이 누군가에게 받아든 소울아머를 들어 올리며 말문을 이었다.
“이제 그대들은 유혹에 놓였네. 이것을 가지고 수련을 하게 될 것이니까.”
약간은 당혹한 표정들이었다.
일부는 불쾌한 시선이었다. 마치 이것을 이용하여 다른 곳에 벌어지고 있는 초인경쟁에 떠미는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도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대들이 이것을 입으면 아마 실제 초인에 더 근접한 모습을 보일 것이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사옵니까!”
약간은 울분에 찬 음성이 터져나왔다. 가장 앞자리에 있던 아르시온이었다.
“초인은 아니지만 초인과 유사한 상대와 대련을 계속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말에 아르시온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실제 초인이 되었을 때의 감각 역시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두 번째로 던져진 질문에 아르시온은 물론이고 검호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들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이걸 목표로 잡으라는 말이 아니네. 수단으로 삼으라는 이야기네. 적어도 여기 있는 이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 생각해서 모았으니 말이야.”
바이칼 공작의 말에 검호들은 그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왜 저걸 먼저 보여 줬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실력자들이 널렸는데, 이걸 걸치고 하는 대련이 아니어도 그대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네. 아니 그런가?”
바이칼 공작이 던진 말에 검호들은 뒤늦게 주변을 돌아보며 살짝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초인은 아니어도 비슷한 반열에 오른 다른 강자와의 대결을 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전무후무한 상황이다.
“물론 이곳의 모두가 원하던 경지에 오를 수는 없겠지. 허나 최소한 몇몇의 운명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네. 그리고 결국 오르지 못하는 때가 와도 이것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입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클 것일세.”
바이칼 공작이 약간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검호들의 표정을 보니 이미 어느 정도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그대들에게 독이 될 수도 있는 약을 주겠네. 해 보겠는가?”
동시에 답변이 들려왔다.
“예!”
마치 갓 병영에 들어온 신병과 같은 음성이었다.
그때 아르시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서 나온 물건이옵니까? 마법 아이템이옵니까? 아니면…….”
질문을 던지던 아르시온이 뷜락을 바라보았다.
의문이 서린 표정의 아르시온이었다. 하지만 다른 검호들 역시 이것에 대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수 정예부대와 가우리 상부만이 알고 있는 사실 하나가 있네.”
바이칼 공작이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나가고 있었다. 주변을 다시 바라본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이미 이곳에 들어올 때 서약을 했지만,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게야.”
“이미 마음을 다잡았나이다!”
검호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에 모일 때 이미 뒤로 가는 길을 포기한 이들이었다.
“그럼 말 하겠네. 우리는 지금…….”
주변을 둘러보다가 정면으로 시선을 향한 바이칼 공작이 묵직한 한 마디를 던졌다.
“전쟁 중이네.”
순간 다들 청천벽력이라도 맞은 표정을 지었다.
어디에도 전쟁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물론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짐작은 있었다. 대량의 물자 이동들은 많은 소문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부는 가우리의 레간쟈 산맥 개간 때문일 거라고 믿기도 했고 말이다.
바이칼 공작의 입을 통해 그들이 몰랐던 사실이 하나, 둘씩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
황실에 도착한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은 리베란 루 비에라 황제를 알현했다.
복잡한 표정의 비에라 황제였다.
그의 자리를 조금이나마 없애기 위해 측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던 그였다. 그러나 결국 허무하게 되어버린 상황에 다시 프라임 공작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연히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고생 많았소.”
“더 빠른 결과를 만들지 못하여 그저 죄스럽사옵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프라임 공작에게 질책을 보낼 배짱은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가 나서서 지지부진했던 남부 정벌의 한 조각을 완성시키기도 했으니 질책할 것도 없었다.
“미안하오. 내가 모자랐소.”
“아닙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
프라임 공작은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그러자 비에라 황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프라임 공작을 전적으로 믿고 따랐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인데 하는 후회가 있었다.
아니, 처음 측근들이 시도했던 정벌이 실패했을 때 그들을 멀리했었어야 했다.
후회는 이미 없었다.
“이제 그대가 왔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오. 어서 제국을 시끄럽게 하는 무리들을 처단하고 북쪽의 야만인들에게 제국의 힘을 보여 주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그렇게 황제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프라임 공작이 자리를 나섰다.
황성을 나오자마자 그를 맞이한 것은 쏜튼 후작이었다.
“이런 후작나리 아니신가?”
“그런 말씀을 하시니 고개를 들지 못하겠사옵니다. 그저 주군의 밑에 있다 보니 얻은 허울일 뿐이옵니다.”
쏜튼 후작이 씁쓰레한 표정으로 답했다.
틀린 것은 아니었다. 프라임 공작이 피를 묻히자 다급해진 황제가 항복의 의미로 그의 작위를 올려 준 것이니 말이다.
“어쨌든 축하는 받아야지 않겠나.”
“허나 축하받을 일은 아직 하나도 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바다 건넌 것만 해도 축하받아 마땅할 일일세, 적어도 적의 실체는 알 수 있었으니 말이야.”
“아…….”
카버 왕국과의 접촉을 말한 것이다.
“그나저나 지금 상황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알겠는가?”
“죄송하옵니다. 제가 너무 늦은 탓에.”
“그게 아니야. 놈들이 생각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걸 말하고 있네.”
프라임 공작의 말에 쏜튼 후작이 살짝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큰 그림이라 하시면.”
“북쪽의 촌놈들이 그냥 밀고 내려왔을까?”
“그건 아닐 겁니다.”
“동맹이 확실할 거야.”
순간 쏜튼 후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도 내심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직은 반신반의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전 전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겪고 있어.”
“예, 그렇긴 하옵니다. 제국의 땅이 더럽혀지다니.”
어이없이 적들에게 제국의 땅을 밟게 만든 것을 떠올린 쏜튼 후작이 한숨 섞인 답변을 내뱉었다. 하지만 프라임 공작은 다른 것을 말했다.
“아니. 단지 더럽힌 것이 문제가 아니야.”
“예?”
“이 싸움 제국은 처음 겪는 일이란 말이지. 배부른 제국민에게는 말이야.”
순간 쏜튼 후작의 얼굴은 일그러져버렸다.
그 한 마디를 듣고 뭔가를 짐작해낸 것이다. 안 그래도 주변에 들어오는 원성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 쏜튼 후작에게 바이칼 공작이 입맛을 다시며 다시 말을 이었다.
“고약해졌어. 제국은 이전과 같은 상황에서 전쟁을 벌일 여유가 사라졌다는 게지. 어서 가서 여러 가지를 확인해야 할 거야. 내 생각이 좀 빗나갔으면 하건만.”
먼저 앞서며 발걸음을 옮기는 프라임 공작의 뒤를 따르는 쏜튼 후작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진 채 좀처럼 펴지지를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