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34
299화 카사 백작의 위기
“미치겠군.”
여러 가지 자료를 펼쳐 놓은 프라임 공작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를 살피던 쏜튼 후작이 복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가 파악이 되십니까?”
“아니. 이렇게 늘어놓으니까 완전 모르겠어. 역시 책상물림은 내 체질이 아니지.”
“…….”
프라임 공작의 말에 쏜튼 후작이 쓴 웃음을 머금었다. 그때 프라임 공작이 자료를 한쪽에 밀쳐놓고 쏜튼 후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충 기억은 하지?”
“예?”
“여기 널린 것들.”
“예…….”
프라임 공작과 달리 그는 책상물림이 체질이었다.
“내가 묻지. 판단을 하게.”
“예.”
프라임 공작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국의 풍성함은 황도에 있지.”
“예.”
“그런데 다들 아우성이야. 왜 글러까?”
“음.”
시에라가 왕국이 아닌 제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풍성한 경제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군사력은 돈이 기반이 되어야 강력해진다.
물론 돈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돈을 빼고서는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런 면에서 시에라 제국은 일단 돈을 바탕으로 무력을 탄탄하게 갖출 수 있었다. 확장초기에 주변 일부 국가는 칼도 안 들고 말 그대로 말려 죽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적들이 밟고 있는 부분은 이 풍요로운 시에라 왕국 시절의 땅도 아니다. 그런데 다들 아우성이다.
“일종의 흐름이 잠시 멈춘 것 아니겠습니까? 갑자기 많은 수가 수도에 몰렸으니 말입니다.”
“그건 그런데.”
“거기에 시에라 제국의 중심에 사는 백성들은 이전의 백성들과 달리 풍요에 익숙해졌고 말입니다.”
“그것도 그런데…….”
여기까지는 분석이 쉽다. 하지만 올라오면서 느낀 것은 좀 심각할 정도였다.
“각 지역 생산 물자에 대해 정리된 게 있나?”
“여기 있사옵니다.”
역시나 숫자상으로는 알 수 없었다. 다른 곳을 배제하더라도 충분히 중심지역의 수확량이나 생산물자면 전쟁을 충분히 치를 수 있어야 했다.
“이거 숫자는 못 믿겠군.”
“예?”
“이거 진짜가 아니면?”
순간 쏜튼 후작이 철렁하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느낀 것이다.
“이런 빌어 처먹을!”
“흥분하지 말고.”
순간 욕설을 내뱉으며 일어선 쏜튼 후작은 프라임 공작이 곁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느끼고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쏜튼 후작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맞지? 이거 장난질 친 거지?”
프라임 공작의 말에 쏜튼 후작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듯 합니다.”
“쯧. 그렇지 않고선 오면서 본 꼬라지가 정상일 리가 없어.”
“후우.”
나라의 총 생산량은 그다지 바뀐 것이 없었다.
다만 지역별로 차이가 생겨 버린 것이다. 호화로움에 물든 중심 영지의 영주들이 돈 되는 것들을 찾아 다녔다.
물론 식량도 돈이 되지만 대륙 일통을 눈앞에 둔 시에라 제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은 단지 먹는 것이 큰돈이 되는 시기는 지날 수밖에 없었다.
더 가치 있는 향신료 등이 있다.
그러나 제국을 이끌어 가는 입장에서 든든한 보급은 언제나 최고의 화두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각 영지 특히 중앙에 위치한 곳일수록 할당량을 둔다. 그러나 식량보다 돈이 더 되는 것들을 포기하기에는 욕심이 너무 크다.
거기에 주변에 더 이상 제국을 위협할 상대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영주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어차피 할당량은 채우면 된다. 자신의 영지에서는 돈 되는 향신료나 다른 것들을 생산하고 그로 벌어들인 돈으로 외곽지역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서 채우면 된다.
아마도 상당수의 영지들이 그렇게 해 왔을 것이다.
문제도 없었다.
외곽지역이야 어차피 조금 더 쥐어짠다 해도 나쁠 게 없었고, 어차피 그냥 뜯기는 것도 아니고 돈을 받고 파는 것이니 나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문제가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외곽지역이 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정도라면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바보들도 아니고 기본 생산량까지 포기하지는 않았으니.
그런데 다른 전쟁 때와 달리 초기 정벌에 실패하며 보관하던 물자들이 빠르게 동이 났다. 그런 상황에서 황도 인근에 백만에 가까운 병력이 다시 집결을 했다.
외부에서 보충을 급하게 해도 될까 말까한데 외곽지역은 털려 있는 상황.
실제 물자의 이동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황도에선 숫자상의 물자 생산량을 믿고 그에 따른 할당을 내려 주고 있으니 당연히 그것을 맞추기 위해서 영지민들을 쥐어짜야 했다.
“이런 일이…….”
얼굴을 붉힌 채 부르르 떠는 쏜튼 후작을 보며 프라임 공작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상황을 보니 놈들은 전략물자를 털고 이쪽의 장기인 장기 전에 금이 가게 만들려던 모양이었는데 제대로 걸린 거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어. 단순히 물자 이동이 막힌 게 아니야. 원래 생각했던 물자의 양이 단순한 숫자라는 게 밝혀진 셈이야.”
프라임 공작의 말이 쏜튼 후작의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뭔가 수급이 잘 안 되는 느낌은 둘째 치고 주변의 분위기가 너무 안 좋다 했더니 이렇게 곪아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사실 다른 때라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제국이 침입을 당한 상황이었다. 전쟁 예산도 이미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도 몇 배가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이런 부분이 터져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하아아.”
길고 긴 한숨만 쏟아 질 뿐이었다.
“제대로 털어 봐야 할 거야. 그리고 아껴둔 놈들도 있을 거야. 이 와중에도 한 몫 챙기려는 놈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특히 전쟁상인에 끼어들지 못했던 놈들 있잖나.”
프라임 공작의 말에 쏜튼 후작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철저히 털겠습니다. 제국의 반역자라는 낙인을 찍기 싫으면 제대로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서슬 퍼런 기운이 쏜튼 후작의 낯빛에 흘렀다.
프라임 공작의 말대로 이런 상황에서 사재기를 해 놓은 작자들은 꼭 있을 것이다.
전쟁상인에 끼어들지 못한 이들이라 해서 이런 기회를 놓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웃돈 받고 팔기 더 바쁠 것이다.
그런 놈들이라도 있으니 대충 느리지만 제대로 수급이 되고 있구나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황도로의 물자 수급은 되도 일반 백성들에게는 이미 치명타를 입힌 상황일 수 있었다.
쏜튼 후작은 말없이 일어서서 다시 한 번 숙인 채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프라임 공작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이거 꼭 전장에 나가는 표정일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참모 중 일부가 쓴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후작에겐 이 숫자들이 전장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렇겠지. 쯧. 모아 놓고 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겠어. 아니 나중에 튀어나왔겠지.”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지만 참 모양새가 이상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게. 아마 그동안 해 먹은 놈들이 줄줄이 엮여 나올 게 뻔하겠어.”
“현 황제께서 곤란하실 겁니다. 얼마 전의 숙청도 있었는데.”
“그럴지도.”
내전.
황위를 두고 제국이 들석였던 내전을 통해 아마도 이런 허위기재가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각자 다음의 황제에게 뒷돈을 대느라 심해졌을 것이고, 내전이 끝난 뒤에는 빈 창고를 채우기 위해 한동안 힘썼을 것이니 더 심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었다.
“뭐, 일다 봐야겠지.”
프라임 공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
“첩자들의 정보를 확인한 결과 확실히 제국 황도 주변의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카말 왕국의 귀족이 보고를 올리자 고진천은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물량이 딸리나?”
“예. 확실합니다. 대신 밀과 같은 곡물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은 반면 향신료와 고급 차와 같은 물건들은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쟁할 때 차 마시고 향신료로 배불릴 수는 없으니까.”
진천의 답변에 카말 왕국의 귀족은 감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과연! 이것까지 염두하신 것이었사옵니까?”
“물론!”
강하게 입을 연 진천이 주변을 슬쩍 보았다.
연휘가람이나 을지우루등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아니지…….”
솔직히 말했다. 얻어걸린 거다.
백만이 가까운 이들이 있었고 또 주변을 털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많은 식량과 물자가 확보되었다.
당연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정도 물량이라면 좀 과하게 많다고 느끼던 차였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던 것이고 철저하게 털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던 싶었던 것이 적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찌르게 된 것이었다.
“역사를 보면 이들의 행동거지는 비슷하기 마련이지요.”
휘가람이 웃으며 말하자 진천이 얼굴을 굳혔다.
“안 망하려면 이 꼴이 되지 말아야지.”
“너무 강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휘가람의 말에 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쟁자가 없다는 것은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항상 대비할 필요가 없던 시에라 제국이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주 장기전은 좋지 못하고, 적당한 시기를 맞추는 게 좋습니다만…….”
“놈들도 모를 리는 없지. 그렇지?”
휘가람의 말에 진천이 되묻자, 휘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시점이 문제기는 하지만 파악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다만 그 시점이 최대한 늦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북부는?”
진천이 묻자 카말 왕국의 귀족이 답했다.
“교두보를 완성하고 진군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쪽에서 언급한대로 땅따먹기보다는 물자의 흐름에 방해를 두라 했습니다. 그쪽도 나름 현지 보급을 하는 게 좋다 느꼈는지 열심히 다니는 중입니다. 아마 영향이 클 겁니다.”
북부쪽 곡창지대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투먼 제국의 침공은 시에라 제국입장에서 이중고가 될 것이 뻔했다.
“다만 프라임 공작이 황도에 입성했다고 합니다.”
“쯧, 종적을 놓쳤다 싶더니 결국 들어갔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복귀하던 프라임 공작을 저격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쪽 역시 안전을 기했기에 실패로 돌아갔다. 거기에 이쪽이 외곽지역을 돌고 있다지만, 땅을 먹은 게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이기도 했다.
물자와 사람만 빼간 상황이니 말이다.
“그럼 그쪽의 움직임을 보면 답이 나오겠군.”
“예.”
이제 슬슬 결판을 낼 필요가 있었다. 가장 좋은 것은 적들이 배가 곪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지만, 그 정도로 바보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시간을 끌 수도 없는 것이 시간만 주어진다면 식량이나 물자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곳이 시에라 제국이었다.
“시간이라…….”
미간을 찌푸리던 진천이 휘가람에게 물었다.
“만약 지금 상황을 놈들이 알았다면 어떻게 할까?”
“뭐, 일단 숙청도 했던 프라임 공작이니 탈탈 털어서 부족한 부분을 먼저 채우겠지요. 그리고 상인르 털 겁니다.”
“상인을?”
“땅덩이가 큰 만큼 상인의 숫자가 많은 곳이더군요. 아마 꽤 쟁여 놓은 놈들이 있기는 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지? 털긴 어렵고.”
마음 같아서는 털고 싶지만 더 이상 진출은 어렵다.
그때 진천의 시선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카사노바 백작에게로 닿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카사노바 백작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네 생각은?”
카사 백작의 얼굴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