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36
301화 배팅하는 남자 카사 백작
“병력을 나눈단 말씀이십니까?”
놀란 눈으로 묻자 프라임 공작이 서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 십만이면 되겠군. 잘 뛰어다니는 놈들로 말이야. 어차피 북부 쪽에 대치 중인 병력이 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할 거다.”
십만이라면 적지는 않지만, 부담없는 숫자였다.
“오히려 간도 볼 수 있고 말이지.”
“간이라면 어떤 의미이신지.”
“십만을 더 밀어 넣었을 때 투먼 놈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이놈들이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는지 알 수 있지 않겠나?”
프라임 공작의 말에 참모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어난 병력에 눈치만 보면 딱 그 정도의 사이인 것이고, 그게 아니고 적극적으로 상대해 온다면 투먼 제국과 가우리 동맹과는 확실한 동맹 사이가 되었다고 봐야 했다.
아직은 그게 불분명한 상황이었고 말이다.
“물론 큰 의미는 없겠지.”
프라임 공작이 웃었다.
어차피 남부만 제대로 무너지면 투먼 제국은 딱히 뭘 할 수 없으리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북부 정벌까지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백만이라는 대군을 유지하는 것도 일이지만 그걸 해산하는 것도 일이다. 이참에 미완으로 남은 대륙 평정을 마무리할 것이다.
***
치솟는 물가에 함박웃음을 머금었던 상인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역풍의 조짐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타이라 영지의 라노 밭을 싹 다 갈아엎었다며?”
“그 뿐만이 아니야, 지금 사방에서 향신료나 음료 밭들이 싹 다 갈아엎어지고 있다고.”
“후우. 어차피 지금 값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아.”
한 상인이 한숨을 쉬며 내뱉은 말에 다른 상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 좀 들은 거 있어?”
“왜? 나만 들었나? 다들 모른 체 할 거야?”
한숨을 쉬었던 이가 은근히 찔러보았던 상인에게 다시 톡 쏘듯 말을 던졌다. 그러자 이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아니 들은 게 없진 않은데 당최 뭐가 뭔지 확실해야지. 나야 끈 떨어진 신세 아닌가.”
“그건 그렇지.”
“이봐들, 가진 정보 좀 모아 보자고.”
상황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 상인들이 각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보를 무기로 살아가던 이들이었지만,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지금까지 그런 것을 숨기고 있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인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가져다 바치면 될까?”
“돈을 쳐줄 것 같아?”
“지금 당장 사방에 굶어 죽는 놈들이 다 우리 탓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분위긴데 그러겠어?”
“하지만, 우리가 뭘 딱히 잘못한 것도 아니고, 소문에 의하면 알아서 다 수매해 준다던데.”
각자 가진 소문을 풀어 보니 하나는 맞았다.
제국 황도에서 상인들을 수배 중이라는 것. 그리고 각기 다른 내용은 이것이었다. 그들이 보유한 곡식들을 합리적으로 수매할 예정이라는 것과, 징발할 것이라는 내용.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일부는 징발을 떠나 매점매석을 매국행위로 간주하여 벌까지 내릴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이쯤 되자 상인들이 몸을 사리는 것은 당연했다.
해서 일부는 그냥 가져다 받쳐서 목숨 줄이라도 연명 하는 게 나은 것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일부는 재빨리 팔아 치우고 입 닦자는 말도 있었다.
이들의 특성상 잡아서 털지 않는 한 실제 보유량을 황도에서 피악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는 오랫동안 익숙해진 처리 방법이었다.
정복전쟁이 길게 이어지면서 상단들 간에도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누가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를 숨기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값을 받기 어려운 건 알지 않은가.”
소문이 돈 탓인지 금값처럼 치솟았던 곡물가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귀족들이 이 상황을 이용한 것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이득을 볼 수 있겠지만, 얼마 전까지를 생각하면 미칠 상황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 한 상인이 뒤늦게 나타나며 밝은 얼굴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 여기들 모여 있었네? 내가 좀 늦었지?”
“정신 나간 놈. 이 와중에 웃음이 나와?”
“응? 무슨 말이야?”
“이봐, 헤이든! 몰라서 물어?”
여전히 미소를 띄우고 있는 헤이든이라는 상인은 화를 내는 상인에게 다시 반문했다.
“몰라서 묻지. 사실 안 그래도 자네들이 많이 답답할 거 같아서 술이나 사러 왔건만.”
“뭐?”
순간 상인들의 이목이 그에게로 쏠렸다.
“흐흐흐.”
뭔가 있다는 촉이 왔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헤이든은 꽤 많은 양의 곡물과 철괴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뭔가 있다는 말이다.
“에이. 우리가 남인가? 어려울 때는 서로 도와야지. 자네에게 술을 얻어먹다니. 그건 아니지.”
눈치 빠른 상인 하나가 얼른 말을 받았다.
“그럼,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함께 아닌가? 어찌 자네에게 술값을 내라 하겠나.”
그렇게 빠르게 말을 이어나가는 상인도 있었다.
“허, 이 친구들. 이럴 때도 있지. 나 당분간 좀 쉬려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술이나 사러 온 거니 걱정들 말라고.”
그 말에 다들 똑같은 생각을 뇌리에 떠올렸다.
‘이놈! 다 처분했구나!’
‘얼마나 받았지?’
‘대체 누가?’
상인들이 각자 머리를 굴리는 사이 한 사내가 먼저 치고 나갔다.
“너, 털었구나?”
“털긴. 내가 도적인가? 뭘 털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가격만 좋으면 내 이익의 이십분지 일을 주지.”
한 상인이 먼저 딜을 했다. 그러자 다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외쳤다.
“허… 이 사람들, 난 술이나 사러 왔는데.”
“술은 우리가 산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이제 당분간 일 쉬려는데…….”
“영원히 쉬게 해 줘?”
다들 눈이 벌게졌다. 그쯤 되자 놀리는 것을 그만둔 헤이든이 입을 열었다.
“십분지 일.”
“뭐?”
“이런 날도둑 같은 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상이었던 이들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헤이든은 그들의 반발을 한방에 억눌렀다.
“지금 시세의 팔 할로 팔아 주지.”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밀 한 포대 가격이 스무 배가 되었다.
그걸 귀족들은 입을 맞춘 듯 전쟁 전의 가격으로 사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걸 스무 배 올랐던 가격은 아니지만, 그 팔 할로 맞춰 준다는 것이다.
“빨리 잡지 않으면 칠 할도 힘들 거야. 꽤 많은 수량을 수매하고 있는 양반인가 보더라고. 소문 나면 칠 할이 아니라 육 할, 오 할이라도 팔아 치우려는 상인들이 몰려들 거야.”
헤이든의 말에 다들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최근 창고털이가 성행한다는 것쯤은 알지?”
이들이 가진 보유량을 속이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창고를 털리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물론 용병을 고용해서 지키고는 있지만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용병의 유지비용은 천정부지로 솟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보니 넉넉한 숫자를 고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전에야 적어도 스물 다섯에서 서른 배까지 올려 팔아먹을 심산으로 버텼지만 상황이 빨리 바뀌었다.
그 뒷배들이 모조리 숙청당한 상황.
“주지.”
한 상인이 말을 뱉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더는 고민을 이어가지 않았다.
“나도 줌세!”
“나도!”
그때 처음으로 제의를 받았던 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거래 선에 나도 참여하겠네. 자네가 팔 할에 파는지 확인은 해야지 않나?”
“뭐? 이런 바닥에서 날 못 믿어? 이런 거 속이면 매장 당하는 건 불문율인데!”
상대방의 거래에 다리를 놔주고 수수료를 먹는 대신 그것을 속이면 매장당한다.
그게 이 바닥의 룰이다. 그렇기에 헤이먼이 열을 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상인들이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물주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걸 잡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이봐, 우리가 가진 물량이라면 자네가 챙길 몫이 적지 않아. 적당히 욕심 부리자고. 당분간 쉰다며?”
“허?”
“십분지 일에 조금 더 쳐주지. 정확히 백을 벌면 열하나를 내어주지.”
“큼.”
그 말에 헤이든은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상인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심전심으로 합의가 된 것이다.
“사실 말이야. 이걸 긁어서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는 나리가 있단 말이지. 다른 놈들이야 이때다 싶어 우릴 털어 잘 보이려 하겠지만, 그 양반은 오히려 적당히 쳐줘서 압도적인 양으로 가져다 바칠 모양이야.”
“영지 하나는 따 논 당상이군.”
“그렇지.”
“얼마나 부자이기에?”
다들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상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물건은 어떻게 나르지?”
“창고 위치와 매각서류만 주면 확인 후 알아서 가져 간다더만. 대량으로 움직이면 우리가 털릴 가능성도 있고.”
“그건 그렇지.”
몇 가지 이야기가 오간 뒤 그들의 계약은 성사 되었다.
헤이먼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젠장, 더 크게 먹을 수도 있었는데.”
“웃기지마. 어차피 인맥은 점점이 이어져 있는 거 몰라?”
처음 딜을 쳤던 상인의 말에 헤이든이 베시시 웃었다.
“그럼 우리 오늘은 달리자고!”
“그래!”
상인들은 고민을 털어 낸 듯 신이나 소리쳤다.
헤이든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냐면 이 역시 예상에 있었던 것이다.
‘다른 상인들이 거래에 오겠다면 말리지 말게. 그들이 끌어와서 파는 수만큼 자네에게 조금 더 쳐주겠네. 물론 그들에게도 이런 제의를 할 거야. 어차피 시간 싸움이야. 황도의 움직임이 벌써 시작되었어. 알겠나?’
헤이든은 이 정도로 만족했다. 짧은 시간만 있다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그리고 모임은 이게 하나가 아니었다. 빨리 움직여야 했다.
술이 술술 넘어갔다.
***
“정보 전파가 경악할 정도군요.”
카사 백작을 따라 시에라 제국에 침투한 참모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다녀간 상인들이 백에 달했다. 처음에 하나를 만난 뒤 정확히 보름만에 벌어진 일이다.
“상황도 그렇고, 또 나름 창고털이범들이 워낙에 깔끔하게 악명을 날리는 중이라 그렇지.”
카사 백작이 고급 객실에 앉아 차를 머금으며 펀히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 덕인지 몰라도 엄청나더군요. 다만 돈이 천문학적으로 드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참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카사 백작이 피식 웃었다.
“이보게. 이 돈으로 제국을 살 수 있다면 싼 거야.”
카사 백작의 말에 참모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눈앞의 카사 백작이 그저 그런 행운아는 아니라는 건 알겠다.
도박판에서 제대로 지를 줄 아는 이가 카사 백작이었다. 이런 배포가 여태 유흥 쪽으로 가 있었기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만하면 되었으니 우리도 빨리 움직이자고. 멈춰 있으면 냄새 맡는 이들이 있을 터이니.”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하겠소.”
카사 백작이 한쪽을 향해 말하자 답변이 들어왔다.
“걱정 마십시오.”
이들의 이동을 은밀히 만들어줄 이들이었다. 바로 동맹군의 마법사들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