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38
303화 욕먹으라고 올려놓은 자리
제국의 땅은 넓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물건들은 넘쳐난다. 그게 바로 제국의 힘이었다. 그러나 지금 문제되는 것은 그 둘 중 하나인 물건들이다.
먹고 쓰는 것들. 특히 전쟁에 필수적인 것들.
물론 제국 땅이 넓으니까 모은다면 전쟁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없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필요했다. 거기에 지금 제국은 이전과 달리 전쟁 중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쉽게 뭔가를 이동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거기에 치명적인 것은 백만이라는 입이 황도 인근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 많은 입을 먹여 살리려면 하루만 해도 막대한 양이 들어간다. 당장이야 어떻게 버틴다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쏜튼 후작이 절망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상인들을 털려했겠는가.
“할 수 없지.”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이 고개를 내저었다.
당장 시간은 제국의 편이 될 수 없다는 점에 쏜튼 후작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뭐, 괜찮다고 어깨라도 두드려 주고 싶지만 그럴 여유는 못 되는 군.”
웃으며 하는 말이었지만, 쏜튼 후작은 웃을 수 없었다.
프라임 공작이 웃으며 말했다 해도 흘려들을 수 없다는 것을 그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프라임 공작이 농담이나마 저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상화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상황은 상대할 적을 의미한다.
적의 역량이 약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일단 계획한 대로 움직여야겠어. 일루이먼 부흥군 쪽수가 얼마나 되지?”
“지금 약 사만 정도로 불어났습니다. 물론 전력이 아주 높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벌써 사만이나 되었나?”
“총 일곱 개 영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앞선 전투에서 토벌군이 압도적으로 패하고 난 뒤라 모여드는 숫자가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보급은?”
“처음부터 장악한 지역이 보급에 용이한 곳들이라……. 물론 시략생산에 용이한 곳은 아니지만 따로 지원을 제대로 받는지 별달리 어려움은 없어 보입니다. 거기에 산악지역이라 사냥에도 용이하고 말입니다.”
“가든 후작이 이끄는 병력은?”
“총 팔만입니다.”
“준비는?”
“이미 마쳤습니다. 가든 후작도 이를 갈고 있습니다.”
쏜튼 후작의 말에 프라임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하지.”
“그럼 일루이먼 부흥군부터 칠까요?”
안 그래도 황도에서는 일루이먼 부흥군을 눈엣가시처럼 느끼고 있었다.
정벌의 대상이었던 놈들에게 침략을 당한 지금 상황도 치를 떨만하지만, 일루이먼 부흥군의 경우 제대로 자존심을 건드린 부분도 있었다.
제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지금처럼 시에라 제국이 커지기 전에는 이 대륙에만 삼십여 개의 나라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그걸 거의 하나로 일통한 것이 바로 시에라 제국이었다.
물론 한순간에 벌인 역사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덩치가 커진 뒤에는 국가가 무너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점령지의 반란 등이 연일 이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점령도 하다 보니 반발을 누르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그런데 지금 예전처럼 반란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원인은 외부 요인이지만, 이게 헛된 희망을 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일부 강성인 지역에서 소요가 벌어진 것이 벌써 몇 건이었다.
조짐도 있었다.
물론 그 조짐이라 할 것이 크게 신경을 쓸 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북부의 투먼제국과 남부의 가우리 동맹군이 제국의 땅을 밟은 상황이었다.
거기에 제국은 백만이라는 대군을 모았다.
이 말은 그만큼 각지에서 병력이 빠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다보니 지방 영주들은 불안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설마 하면서도 병력이 빠진 공백을 틈타 불온한 세력이 들고 일어설까봐 걱정을 한 것이다. 그렇기에 토벌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대외적인 요인으로는 제국의 땅에 변절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들의 안위가 흔들릴까 두려웠던 것이다. 황도 입장에서는 그들이 아무리 들고 일어서 봤자 지역의 소요사태에 불과했다.
결국 병력을 일으키면 꺼질 작은 촛불 같은 것이다.
지금 일루이먼 부흥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우리 동맹이나 북부의 투먼제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그러나 정작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점령지 통치를 하는 영주들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다.
죽으면 끝인 거다.
그동안 전쟁에 직접 참전하거나 또는 있는 돈을 털어 용병을 고용해서 보내거나 해서 공훈을 쌓아 얻은 영지였다. 그러다 보니 이후의 전쟁에도 일정기간 동안 제국에 봉사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있는 병력을 뽑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영지의 치안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황도 입장에서는 영주가 죽으면 재탈환하면 그만이고 그렇게 얻으면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면 된다.
영지의 다음 후대에게 넘겨준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영주의 의무 중 하나는 영지의 수호다. 그 의무를 이겨내지 못한 자에게 황제가 영지를 되찾아줄 이유는 없다.
이미 병력은 뽑아 썼으니 문제될 것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각 지방 영지의 영주들은 사방에 연줄을 대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반면 쏜튼 후작은 내부정리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안 그래도 지금 물산의 수송에 문제가 많아졌다. 그런데 내부를 정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가든 후작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 힘을 실어줬던 것이다.
“가든 후작이 좀 아까운데.”
가든 후작은 북방에서 이름난 명장이었다.
투먼 제국의 전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였고 또 오랜 기간 활동을 해왔었기에 그들을 상대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처럼 대규모 남하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를 중용할 필요가 있었다.
“아마 가든 후작이 내켜하지 않을 겁니다.”
“왜? 한 번 깨져서? 그걸 문제 삼는 놈들이 있나? 그 상황에서 병력이라도 빼낸 걸 칭찬해야지.”
“가든 후작이 아무래도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보니……. 거기에 일전에 숙청당한 이들의 추천으로 그 자리에 올랐으니 말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쏜튼 후작의 말에 프라임 공작이 피식 웃었다.
“미친놈들 쓸데없는 곳에서 충성경쟁이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가든 후작을 추천한 이들은 이미 다 죽어 나자빠졌다. 그렇다보니 그걸 본 귀족들이 생존 본능에 의하여 그와 관련된 이들을 쳐내기 바빴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가든 후작이었다.
물론 가든 후작은 실력이 좋아 중용된 이였지만 말이다.
“뭐 어차피 징집병력이 대부분일 테니까 적당한 경험을 해주는 것도 좋지.”
“그럼 일루이먼 부흥군을 먼저 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병력 지원도 해주도록.”
“병력도 말입니까?”
“놈들의 마법은 거리를 이동하는 수단도 있다지 않았나?”
프라임 공작의 말에 쏜튼 후작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예. 그건 그렇습니다.”
“어찌 될지 모르니 오만을 더 붙여두도록. 어차피 고급 병력을 막을 전력은 그가 움직이고 있으니까.”
“인간병기들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술사들에게 알려서 많이 뽑으라 하지. 남쪽에서 제대로 써 봐야지.”
“주군께서도 활용을 하실 겁니까?”
쏜튼 후작이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묻자 프라임 공작이 한쪽 입가를 올리며 대답했다.
“쓰라고 만들어씅니 써야지 않나? 그리고 병력 소모를 최소화 해야지.”
“투먼 제국 정벌 때문이십니까?”
남부 정벌 이후 최종적으로 남은 목표는 북부인 투먼 제국뿐이다.
그러나 프라임 공작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새로운 먹잇감이 생겼잖은가.”
“그럼?”
“가우리라……. 그쪽에도 제국이 둘이 더 있다지? 정말 다행이야.”
프라임 공작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그는 이번 전쟁을 통해 꽤 지루했던 삶이 재미있어지는 것을 느꼈다.
한때는 대륙일통이 목표였던 때가 있었다.
그랬던 것이 눈앞에 대륙 일통을 두자 흥미가 오히려 사라져 버렸다.
제국의 전력이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가우리가 나타나고 새로운 대륙의 존재를 알았다.
“그럼 그쪽 대륙을 진출하실 예정이신 겁니까?”
“흐흐흐.”
프라임 공작이 장난기서린 웃음을 흘렸다.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의미였다.
“그럼 확실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리고 그 때까진 카버 왕국에게 줄 건 주고, 주지 말 건 주지 말아야지 않겠나. 사실 인간병기는 좀 숨겼어야 했지만.”
그 부분은 쏜튼 후작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그저 아쉬운 정도로만 하고 남겼다.
“그래. 카버 왕국에서는 요즘 어떤가? 통신 마법사들 좀 팍팍 지원해달라 했거늘.”
“염려하신 그 인간병기를 탐내는 듯 했습니다.”
“클. 그렇군. 소울아머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병기가 바로 소울아머였다.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소울아머는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그것을 만드는 기술도 전수를 할 예정입니다.”
“로우급과 하이급은 남기고 말이지?”
“예.”
“흐음. 인간 병기는 일단 보류. 어떤 이유인지는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인간병기를 만들 재료가 많이 부족할 듯 합니다.”
“왜 부족하지?”
프라임 공작의 반문에 쏜튼 후작이 난색을 표했다.
“그게 전쟁포로는 한정되어 있잖습니까. 이번에 터그람 전쟁을 통해 좀 끌어오기는 하지만 시간이 걸립니다.”
“부흥군 있잖나.”
“그들을 토벌 후에 재료를 수급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아니 그 부흥군 말고 말이야.”
“예?”
“시끄럽다며? 병력 좀 내어주고 토벌해 오라하면 얼씨구나 할 놈들 많을 거다. 알아서 할당량 맞춰오라 해.”
프라임 공작의 말에 쏜튼 후작이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면 마녀사냥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참에 불순분자 좀 털어내는 거지. 그동안 제국이 너무 신사적으로 대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프라임 공작의 완고한 대답에 쏜튼 후작은 얼굴을 붉혔다.
“어차피 욕먹을 사람은 따로 있잖아.”
“주, 주군!”
욕먹을 사람은 바로 황제를 뜻한다.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 뱉은 프라임 공작을 보며 쏜튼 후작이 경악했다. 하지만 이미 무력시위를 한번 한 프라임 공작이었다.
“이미 욕은 열심히 먹고 있으니 좀 더 먹는다 해도 괜찮아. 그리고 그러라고 올려놓은 자리야. 황제란 건 말이야.”
“모, 목소리라도 좀…….”
프라임 공작의 거침없는 발언에 쏜튼 후작이 안절부절못했다. 물론 이게 알려져도 어찌 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알려져서 좋을 것도 없는 것이다.
“내가 땅 좀 넓히면 그 공적은 황제가 가져가잖아. 욕 좀 먹는 게 대수야? 어찌 되었든 황제 따로 만나서 그렇게 해.”
프라임 공작의 말에 쏜튼 후작은 할 말을 잃은 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