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45
310화 투먼 제국의 남진
“나 조든이 네 목줄을 따겠노라!”
일격을 나눈 뒤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며 충격을 흘린 조든 백작의 외침에 론바르는 대답 대신 다시 곡도를 휘둘렀다.
카아앙!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조든 백작이 이를 악물었다.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소울아머를 입지 않은 채 상대하고 있는 론바르를 보며 모욕감을 느낀 것이다. 물론 자신도 소울아머를 입지 않고 소울포스를 운용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소울아머를 입지 않으면 소울포스의 운용이 매끄럽지 못하고 지속시간도 짧았다.
그렇기에 소울아머를 입는 것이다.
그런데 론바르는 여전히 소울아머를 입을 생각이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던 조든 백작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론바르는 소울아머를 입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입고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입고 있는 것은 소울아머가 아니라 일반 갑주였던 것이다.
“네놈이 무덤을 파는구나아아!”
조든 백작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자, 그제야 론바르가 대꾸를 해주었다.
“젠장, 주둥이로 소울아머 유저가 된 놈이군.”
“뭐? 반드시 네놈을…….”
거친 음성으로 무어라 내뱉으려던 조든 백작은 론바르의 공격에 밀리며 말끝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쾅! 쾅! 콰앙!
연이은 공격에 조든 백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힘에서 밀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본격적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론바르의 공격 하나하나가 막기 버거웠던 것이다.
심지어 힘을 흘리지도 못하게 각도를 조절해 가며 공격을 이어나가니 비틀거리는 것이 당연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러고도 론바르의 표정은 평온했던 것이다.
마치 소울아머 따위는 없어도 된다는 듯.
‘어디에도 론바르가 이런 식으로 싸운다는 정보는 없었다!’
소울아머를 벗고도 이렇게 강력한 면모를 보인다는 정보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당황하는 것이 당연했다.
조든 백작은 이를 악물고 론바르의 공격을 받아넘기는 데에 집중했다. 그런 조든 백작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론바르가 입을 열었다.
“닥치니까 좀 낫군.”
“큭!”
뭐라 하고 싶은데 입을 열 시간조차 없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론바르의 공격을 막는 데에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체 다른 놈들은 뭘 하는 거야!’
그가 떠올린 것은 함께 나왔던 소울아머 유저였다. 하지만 소울아머 유저나 로우급 유저나 정신없는 것은 조든 백작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상대가 비록 론바르는 아니었지만, 평소 하찮게 보던 투먼 제국의 소울아머 유저들에게 정신없이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숫자에서 밀렸다.
이 역시 시에라 제국의 착오였다.
이전과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면 이런 부분도 예상에 뒀어야 했는데 보여주는 전력과 달리 이런 전력은 철저하게 숨겼던 것이다.
실제 투먼 제국에서 출발할 때에 소울아머 유저들을 일반 전사들 속에 숨겨서 내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노출된 소울아머 유저들은 가짜를 거처에 바꿔치기하여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속였던 것이다.
이 역시 시에라 제국이 투먼 제국이 이번 전쟁에 제대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시에라 제국으로 하여금 투먼 제국이 이번 전쟁에서 뭔가를 적당히 얻기 위해 규모만 키운 것으로 착각할 만하게 유도한 것이다.
“크아악!”
익숙한 비명 소리에 조든 백작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럴 수가!”
시선을 돌렸던 조든 백작은 왜 자신을 도우러 아무도 안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두 명의 소울아머 유저에게 협공당해 쓰러지는 아군 소울아머 유저의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소울포스를 휘감은 무기들을 다수 목격했다.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한눈을 팔았던, 조든 백작 역시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카가각!
불똥과 함께 그의 소울아머가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크윽!”
“한눈 팔 실력은 되고?”
론바르가 냉소를 비치며 그의 몸뚱이에 상처를 늘이기 시작했다.
멀쩡한 상황에서도 막기 급급했던 조든 백작이다. 상처로 인해 조금씩 둔해지는 그로써는 론바르를 막을 수 있는 실력이 없었다.
상처도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론바르가 만들어낸 상처는 깊이가 조금 옅더라도 움직임이 둔해지는 근육만을 골랐던 것이다.
그렇게 조든 백작의 몸에 상처가 늘어나는 것과 함께 익숙했던 이들의 처절한 비명이 연이었다.
그리고 싸우고 있던 조든 백작의 주위로 투먼 제국의 기마들이 연이어 스쳐 달렸다.
암울해진 상황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은 조든 백작이 빠르게 자신의 소울스톤으로 손을 가져갔다.
서걱!
“크아아아!”
하지만 그 역시 커다란 틈을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최후의 방법을 쓰려던 그의 손목을 론바르가 잘라내어 버렸던 것이다.
피를 뿜으며 바닥에 뒹구는 손목을 보며 조든 백작이 허망한 시선을 보내었다. 그런 그의 목에 곡도를 가져다 대며 론바르가 조소를 머금고 말을 뱉었다.
“폭주를 선택하려면 아까 했어야지. 시간 낭비는 말자고.”
조든 백작이 론바르를 향해 울부짖으려 했지만, 원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푸우웁!
벌려진 입가로 피분수만이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이미 론바르의 곡도가 그의 울대를 가르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절반 이상이 잘려나간 조든 백작의 목은 그의 머리통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쩌억 갈라지며 더 크게 벌어졌다.
그렇게 뒤통수가 등 위쪽에 닿아버린 조든 백작은 세상이 거꾸로 된 생소한 풍경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풍경은, 무너진 요새벽으로 물밀 듯이 몰려가는 투먼 제국의 기마 뒷꽁무니들뿐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카버 왕국의 마법사가 당황한 얼굴로 건물 밖으로 튀어 나왔다. 상대적으로 막기 수월하다는 시에라 제국의 판단을 믿고 통신 마법사 하나만을 보내놨던 상황이었다.
마법사의 수가 한정된 탓에 중요도가 떨어지는 북방은 이렇게 통신 마법사만 각 요새에 한 명씩 보내놨던 것이다.
그래도 이번 원정에 참여한 마법사들의 수준이 그리 떨어지지 않았던 탓에 그는 상황의 불리함을 깨닫는 순간 바로 투명화 마법을 펼쳤다.
그들은 절대 잡혀서는 안 되는 이들이었기에 상황이 불리하면 바로 몸을 빼라는 사전 명령이 있었던 것이다.
마법사는 주변의 이목을 숨기고 투명화 마법을 펼치고는 조심스럽게 날아올랐다. 명령이었지만 도주하는 주제에 당당하게 이동할 철면피는 못 되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화아악!
빛과 함께 그가 펼친 투명화 마법이 취소가 된 것이다.
더불어 허공으로 떠오르던 그의 몸뚱이 역시 바닥으로 처박혀 버렸다.
“이런 빌어먹을!”
“신성제국 쪽 억양이네?”
전장을 구르는 전투 마법사답게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그대로 몸을 굴려 큰 부상을 막았다. 하지만 욕설을 뱉어내던 본인의 입은 막지 못했다.
바닥을 구르고 일어선 카버 왕국의 마법사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등줄기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투명화 마법가 부유 마법이 취소되는 것을 느낀 순간 상대는 같은 마법사임을 알았지만,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까지는 막지 못했던 것이다.
“큭.”
세 명의 마법사가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투명화와 비행마법이 거의 동시에 취소된 것을 보고 적은 최소 두 명 이상이라 생각했던 그의 판단이 맞았다.
“으음.”
신음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시에라 제국 병사들을 찾아보았지만, 그를 도울만한 이들은 없었다. 당연했다.
원래라면 그를 보호하는 기사들이 있어야 했지만, 투명화 마법까지 펼치고 몰래 탈출하던 중이었다. 당연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지키는 이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 적…….”
“침묵의 대지!”
주변에 적의 침투를 알려 보려던 카버 왕국의 마법사의 목소리는 봉인되었다.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이어 마법이 작용되는 영역을 벗어나려던 그의 발목을 땅에서 솟아나온 흙더미가 올가미처럼 죄었다. 그와 동시에 등짝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그는 정신을 잃고 나자빠졌다.
“잡았다.”
가우리 동맹 소속 마법사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정신을 잃은 카버 왕국의 마법사를 들쳐매고 몸을 숨긴 채 날아올랐다.
다른 마법사가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만약 있다면 다른 조원이 잡든 알아서 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하나 잡았으니 되었다.
아마도 하나 이상은 잡지 않을까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전술이 행해지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휘관을 잃은 에그먼 요새는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주변 다른 요새들 역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함락되고 있었다.
아직도 메케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요새의 성벽 위에 서 있던 론바르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푸흐흣.”
공성을 시작하고 식사 한 끼 할 법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요새는 이미 함락이 되어버렸다. 공성에는 병신이라 불렸던 투먼 제국 입장에서는 이기고 나서도 얼떨떨한 따름이었다.
공성전에 하염없이 통나무만 깎으며 투덜거리던 이들은 이제 없었다.
한쪽에서 상황을 보고받고 있는 그리팔을 보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별것 아닌 수라 생각했거늘.”
이런 간단한 방법에 속아 넘어갈까 생각했던 론바르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직했다.
피해도 적었다.
적의 소울아머 유저들과 로우급 유저들은 거의 다 척살했고, 로우급 유저 둘은 사로잡았다.
소울포스를 탈탈 털리며 탈진해 쓰러진 것이다.
로우급 소울아머를 확보하게 된 것도 꽤나 큰 수확이기도 했다.
론바르 본인이 소울아머를 멀리하며 본신의 실력을 높이고자 하는 것과 별개로 로우급 소울아머는 투먼제국의 전력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
시에라 제국 황성이 벌집을 쑤신 것처럼 변해 버렸다.
북쪽에서 날아온 비보 때문이었다.
“어떻게…….”
쏜튼 폴리어 후작이 창백한 얼굴로 부르르 떨었다.
아직 십만의 충원 병력이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북부 방어의 주요 거점 요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것도 공성을 통해서 말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이 소식이 알려진 것이 요새들이 무너지고 나서라는 점이었다.
각 요새들과 정기적으로 주고받는 연락이 끊어지자 인근 요새로부터 정찰대를 파견했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거지꼴로 퇴각 중이던 패잔병 일부였다.
그들을 통해 요새가 무너진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점 역시 늦은 감이 있었다.
투먼 제국이 이미 다음 목표를 향해 밀려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인 것이다.
“설마 주공이 북쪽이었던 건가. 대체 어떻게 이런 신속하면서도 과감한 병력 전개를 할 수 있는 거지?”
쏜튼 후작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