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50
315화 인해전술
성벽 위에서는 마치 석궁처럼 생긴 것에 커다란 돌멩이를 올려놓고 당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수성 무기보다는 작고 석궁이라고 보기에는 과하게 컸다.
그것을 가지고 돌멩이 하나도 아니고 그릇 같은 것에 담아 올려놓고 여러 개를 동시에 쏘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무기 자체가 아니었다.
“뀌익!”
투웅! 퉁! 퉁!
그것을 당기는 이가 바로 오크였던 것이다.
그것도 온몸을 갑주로 중무장한 오크 말이다. 사실 저런 무기 자체가 신기할 건 없었다. 원래 저런 형태의 무기는 연사력이 딸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쏘는 오크는 마치 일반 활시위 당기듯 열심히 당기기를 반복했다.
화살들이 오크에게로 날아왔지만 온몸을 가린 갑주 덕에 거의 피해도 없었다.
그런 것이 약 스무 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도, 돌이 모자라!”
“벌써 다 떨어졌다고?”
심지어 연사력이 너무 좋다 보니 쌓아 놓았던 돌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짜는 따로 있었다.
“우으으!”
미노타우르스라 불리는 괴수는 오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거의 어른 머리통만한 돌을 양손으로 번갈아 집어던지고 있었다. 물론 미노타우르스의 경우는 그냥 던지는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간간히 섞여 날아가는 작은 바위는 스쳐도 중상이었다.
“빌어먹을!”
초반은 무난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직 성벽에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돌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들의 사상자가 많았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돌은 돌대로 날아오고 화살은 화살대로 뒤쪽을 공략하기 시작하니 초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공성전에서는 사기가 필수였다.
드높은 사기는 없던 용기도 만들어 주는 법이었다.
그런데 지금 성벽에 제대로 달려들지도 않았는데 병사들이 돌에 두드려 맞으니 사기가 바닥일 수밖에 없었다.
화살에 맞는 것보다도 상황은 더 나빴다.
일부 강하게 날아오는 돌이나 큼직한 돌에 맞은 병사들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제대로 머리라도 맞으면, 그야말로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린 호박이 박살나는 것처럼 터져버리기 일수였다. 그걸 보고 정신나가 주저앉은 병사는 날아오는 화살에 죽기 딱 좋았다.
“상황은?”
“아직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십분지 일에 가까운 병력이 죽거나 다친 듯 합니다. 하지만 전부 전투 불능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지금 전투가 벌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에디 백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음 같아서는 소울아머 유저나 준비해 온 인간병기를 미리 투입하고 싶었지만,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걸 염두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아니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는 적당히 투입해서 싹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초반 적들의 저항을 보니 이건 정말 제대로 준비된 방어전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저 성의 형태가 확실히 조잡하지만 카말 왕국 지역에서 방어전 때 이용되었다는 성 구조가 맞습니다.”
“나도 알아!”
그게 아니더라도 공성에 경험이 많은 이들은 보는 순간 어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병력 더 밀어넣어!”
지금 말입니까?”
“그래. 지금. 교대로 흔든다는 계획은 일단 취소다.”
에디 백작의 말에 참모는 대답을 하곤 명령을 전달했다. 원래라면 병사들을 순차적으로 투입해 가며 적들의 피로도를 높일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틈이 나면 그대로 성벽을 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틈을 만들면 그만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초전부터 일방적으로 당해 사기가 떨어지면 다음에 투입될 병사들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다.
차라리 지금 병력을 투입하면 먼저 나가서 고전하는 이들은 조금이나마 사기가 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후 투입되는 병력은 아직 첫 번째 투입 병력의 상황을 제대로 모르기에 열심히 달려 나갈 것이다.
“차라리 이게 나아.”
“그럼 총력전으로 가실 겁니까?”
“으음. 일단 다 준비시켜. 놈들도 시간을 끌려할 수 있어. 그 틈을 파고 들자고.”
에디 백작의 의견에 참모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적들이 초반의 승기에 방심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설피 병력을 투입했다가 휴식을 취해 버리면 오히려 적들이 원하는 형태로 전투가 흘러갈 수 있었다.
그럴 바에야 제대로 힘으로 밀어버리는 것이 정답이었다.
잠시 후 시에라 제국군 본진에서 또다시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쉬지 않고 몰아치려나.”
루이드 자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리자 하일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거라네. 거기에 우리가 장기전을 준비했다면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 칠 때 분명 틈이 생길 것이라 판단할 것이 뻔하고 말이야.”
“예.”
답을 하는 하일론의 표정은 꽤 평온해 보였다. 사실 이쪽도 두 가지 다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들이 이쪽의 공격을 유연하게 막고 장기전을 한다면 그에 맞는 수성을 할 것이고 그게 아니고 한방을 노린다면 이쪽도 그에 맞게 대응을 하기로 말이다.
“그리고 아마 저쪽은 꽤 마음이 편할 걸세.”
“지금 상황에서 말입니까?”
처음 돌입했던 병사들이 약 칠, 팔천은 되었다.
그중에 일할 가량이 제대로 오지 못하고 죽거나 다쳐서 드러누웠다. 그리고 그 공격을 뚫고 들어온 병사들 역시 성 아래에 제대로 도달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하니 루이드 자작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루이드 자작에게 하일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적들은 우리가 거의 모든 패를 깠다고 생각했을 거네. 마법사도 그렇고 사거리를 구분한 수성 병기들이나 투석 공격 등 말이지.”
“그건…… 그럴 수 있겠군요.”
“거기에 자신들은 아직 소울아머 유저들을 잘 아꼈다고 했겠지. 그 이상항 인간 병기도 말이야.”
소울아머와 인간병기에 대한 말이 나오자 루이드 자작의 얼굴이 저절로 어두워졌다.
대책을 세워도 사실 겁나는 것이 소울아머 유저다.
“괜찮네. 걱정말게나. 우리도 아직 안 깐 패가 있지 않은가?”
오크전사나 미노타우르스는 아직 제대로 선을 보이지 않았다. 적들은 성벽 위에 그저 덩치 큰 누군가가 수성병기를 조작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언 듯 언 듯 보이기만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미노타우르스의 경우는 성벽 안쪽에서 돌을 던져대었으니 충분히 숨겨졌고 말이다.
와아아아아!
사기를 올리는 함성이 크게 울려왔다.
제 이진이 달려나가고 에디 백작은 전선을 뚫어져라 살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저게 저래서 저렇게 놨군. 허, 이런 빌어먹을.”
“목책 말씀이십니까.”
참모도 전장을 살피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았다.
그들이 지금 지켜보고 있는 것은 뭔가 두서없이 놓여 있어보였던 목책이었다.
꽤 허술해서 신경만 제대로 쓰면 충분히 지나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목책을 돌아가는 순간 바닥으로 훅 꺼지는 병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또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함정을 파는 건 당연하니 말이다. 그걸 보는 순간 병사들은 오히려 함정이 있던 곳을 노린다.
이미 한번 발동한 함정은 더 이상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 곳에 아군의 시체가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에 아예 고정된 석궁 같은 것이 있는 듯했다. 일정 숫자의 화살이 그쪽으로 연사되어지고 있었다.
겨냥을 못해도 그냥 당기면 되는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숙련되지 않은 궁수라 해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었다. 물론 팔이 아플 수 있지만 막상 접근전이 될 때까지 못 써먹을 일반 병력도 충분히 방어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목책 자체가 적의 진격을 방해하는 용도가 아니라 유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두 번째 진격이 이루어지고 나서도 성벽에 제대로 다다른 이가 없을 정도였다.
시에라 제국의 병사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방패로 작게 방진을 만들어 날아오는 화살을 막으며 나가가는 모습도 보였었다.
그들에게는 큼지막한 바위가 하늘로 솟구쳤다가 떨어졌다.
멀리 쏘아보내는 것을 포기한 바위가 적당한 시점에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악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그 모습을 보고 예상했던 것이다.
수성이나 공성용 투사 무기의 특징 중 하나가 부정확함이었다.
거리와 지역을 가늠해서 쏘는 것이지 마음 먹은 곳으로 제대로 날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적들은 용케 그걸 해내고 있었다.
그건 미리 수성 병기를 고정한 뒤에 일정한 크기의 바위를 골라서 보지도 않고 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적의 지휘관이 누구지?”
“일단 일루이먼 귀족 출신으로 루이드 자작이라는 자였는데…… 제대로 된 정보는 없습니다.”
“정보가 있는 놈들이면 다 잡혀 죽었지. 젠장. 절대 일루이먼 떨거지는 아니야. 가우리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겠지.”
“그리팔 후작도 그쪽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팔이 언급되자 에디 백작이 고개를 내저었다.
“으음. 그런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북부 쪽에서 그가 있다는 말이 있어. 그게 더 정확할 거야.”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가우리라는 놈들이 맞는데. 듣기로는 북쪽 야만족들마냥 말을 타고 뛰어다니는 전술에 능하다 들었는데 정말 의외입니다.”
“그러게. 어떻게 이런 전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이 가우리에 대한 느낌은 북쪽 투먼 제국의 전술에 개개인의 전력이 강하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수성전을 보니 이게 보통이 아닌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드디어 병사들이 무수히 많은 아군의 시체를 넘어 성벽으로 다다르기 시작했다.
“피해가 컸지만 이제 제대로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으음.”
참모는 약간 희망적으로 봤지만 에디 백작의 얼굴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성벽 아래에 다다른 병사들이 오르기도 전에 삼면에서 쏘아진 화살에 그저 막기 바빴던 것이다.
“역시 까다롭군.”
그 와중에 방패병들이 전면과 좌우로 방패를 들어올려 다른 병사들을 최대한 보호했다. 그러는 가운데 사다리와 갈고리가 쏘아져 날아갔다.
“이쯤에서 병력 추가 투입하지.”
“예.”
아직은 미미했다.
하지만 세 번째 병력까지 투입되면 상황은 좀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적들은 상대해야 할 병력이 많아지기 때문에 어느 한쪽은 포기하고 성벽에만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와 함께 기사들이 다수 섞인 병력이 일루이먼 부흥군의 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앞선 병력들이 개척과 성벽을 공략하는 목적이라면, 지금 투입되는 병력은 성벽에 올라 장악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다.
물론 언 듯 보이는 푸른 빛이 소울아머 유저의 투입을 의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