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53
318화 오늘 승부를 본다
아무리 흉악하고 살벌한 놈들이라지만 그들이 소울아머 유저급이라는 건 아니다.
물러서는 자에게 칼을 휘둘러도 된다는 면죄부가 있어 병사들에게나 두려움의 존재가 된 것 뿐이다.
“이 새끼 어서 안 뛰어나…….”
“살려줘!”
독전대의 서슬 퍼런 칼날을 피하지 못한 병사가 머리를 감싸며 절규어린 외침을 터트렸다.
“……어?”
분명 죽는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느낀 병사가 의아함에 고개를 들었다.
“헛!”
자신을 죽이려 했던 독전대가 가슴팍에 화살을 박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고 말았다.
“사, 살았다.”
지금만큼은 적군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독전대원은 바로 자신의 뒤쪽에 있었다. 자칫 잘못했다면 자신도 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젠장.”
좋다가 말았다.
하지만 주변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은 분명 아까와 같았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것은 독전대원들이 화살에 맞는 모습이 자꾸 눈에 뜨인다는 것이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일단 살아났으니 독전대원들의 눈에 뜨이지 않아야 했다. 천운으로 살아난 병사는 재빨리 커다란 방패를 하나 주워 들고 함서을 지르며 성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와 같지는 않았다.
쉴 새 없이 주변 눈치를 살피며 나아갈 뿐이었다.
이제는 독전대도 물러서는 병사들을 베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살기 위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바빴다.
“젠장…….”
전투를 하면서도 이게 뭔가 싶었다. 하지만 살아야 했기에 그저 입 다물고 눈치 보며 나아갈 뿐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독전대를 노리는군.”
네빌 남작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붉은 갑주를 입힌 것은 아군에게 물러서면 죽는다는 경고를 하기 위함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노려질 수도 있었다. 그의 곁에 있는 독전대장도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활의 사거리 때문에 더 당하는 것 같습니다.”
“사거리도 문제지만 지금 보면 제대로 노리고 있어.”
네빌 남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독전대를 보면 확실히 노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른 화살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쏟아붓는 것이라고 치면 독전대를 노리는 화살들은 마치 암살자들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마치 골라잡는 느낌인 것이다.
독전대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단순 수하들이라서가 아니었다. 독전대의 특성상 특수한 목적을 가진 작전에도 활용되는 고급인력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일반 병사들에게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독전대가 계속 쓰러지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봐야겠군.”
“직접 말이십니까?”
“어차피 성벽을 넘으라는 임무를 받았지 않나?”
네빌 남작이 피식 웃었다.
비록 로우급 소울아머를 입었다지만, 그의 실전적인 검술은 꽤나 소문이 나 있었다.
네빌 남작이 로우급 소울아머를 활성화 시키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전대장 역시 그의 뒤를 따르며 로우급 소울아머를 활성화 시켰다.
그렇게 독전대가 당하는 공간으로 나아간 네빌 남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독전대장.”
“예.”
“그대를 노리고 날아온 화살이 있는가?”
네빌 남작의 질문에 독전대장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스치듯 지근거리에 떨어지는 것들은 있었지만 노리고 쏜 느낌은 없었습니다.”
“저격수가 꽤 실력이 좋군. 가우리 쪽의 궁수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응?”
그때 네빌 남작이 독전대의 시체를 뒤집어 보았다.
“이거?”
그 시체에 박혀 있던 화살을 뽑아 살펴본 네빌 남작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독전대장 역시도 이를 악물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면…….”
“북쪽의 야만족 화살입니다.”
“빌어먹을.”
독전대원의 몸에서 뽑혀 나온 화살은 투먼 제국이나 초원 부족이 쓰는 화살과 같았다.
둘 다 가든 후작의 밑에서 북쪽에서 활약을 했었던 이들이었기에 형태만 봐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동맹관계가 어느 정도 확인이 된 상황이니 물자를 지원받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날아오는 화살들의 정확도를 봤을 때 군사적 지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독전대장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혹시 북쪽 야만족들의 기병들도?”
“설마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게?”
둘이 동시에 놀란 눈을 했다.
그때 독전대장이 조급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분명 카버 왕국의 마법사들이 정찰을 했을 때는…….”
“정체 들키면 털릴까봐 알짱거리기만 하는 놈들을 자네는 믿을 수 있나?”
네빌 남작이 불신을 표하자 독전대장도 입을 다물었다.
“분명 가우리라면 이 거리에서도 우릴 노렸을 거네. 듣기로는 그쪽에서는 활만으로도 소울아머 유저를 제압할 실력자들이 있다고 들었으니.”
그때였다.
화살 한 대가 휙하니 날아와 네빌 남작의 투구를 툭 때리고 튕겨 나갔다.
“…….”
“저…….”
독전대장이 괜찮으냐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로우급이라 해도 소울아머 유저다. 소울아머 유저씩이나 돼서 화살 하나 갑주에 스쳤다고 괜찮냐는 말을 하는 것은 웃기는 소리다.
문제는 맞은 부위가 공교롭고 또 때도 공교로웠던 것이다.
“젠장.”
느껴지는 기운이 별것 아니어서 신경쓰지 않았더니 머리통을 치고 지나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모양새가 참 그랬다.
네빌 남작이 차라리 막을 걸 하는 후회를 하는 사이 독전대장이 서둘렀다.
“일단 에디 백작님께 전령을 보내겠습니다.”
“그러게.”
네빌 남작이 애써 평정을 찾으며 대답했다.
독전대장이 전령을 보내는 사이 네빌 남작은 이를 악물고 성벽을 바라보았다. 창피한 것은 둘째 치고 지금 상황이 모호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저 안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숫자 이상의 병력이 또아리를 트고 있다면, 지금처럼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물론 북부 쪽에 몰린 투먼 제국군의 병력수를 보면 이곳까지 여력이 있을까 생각도 들지만, 각성에 일이천씩만 추가로 들어와 있어도 공성이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으하하하!”
하일론이 주먹을 불끈 쥐고 웃음을 터트리자 그를 보던 루이드 자작이 어색하게 웃으며 축하의 말을 건네었다.
“축하드립니다. 맞추셨군요.”
“흐허허. 고맙네. 이번엔 제대로 맞췄구만.”
“네. 맞추시긴 했습니다.”
이 먼 거리에서 머리통을 맞췄다는 것만 해도 기분이 좋은 하일론이었다.
네빌 남작이 보낸 전령의 보고를 들은 에디 백작은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투먼 제국 쪽 화살이 맞기는 하군.”
그 역시 가든 후작을 모시며 북방에 있었던 무장이었다.
병사들은 북방에서 수비를 하던 이들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휘를 하고 훈련을 시켰던 이들은 모두가 북방에서 이름난 장수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전령이 가지고 온 화살을 보고 곧바로 북부 야만족들 화살임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초원 부족인지 투먼제국인지 알 수 없으니 영…….”
초원이나 투먼 제국이나 같은 북방이기에 화살을 만드는 양식이 비슷했다.
처음에는 약간 각기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마치 짠 것처럼 같은 형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투먼제국이 초원부족인 것처럼 약탈을 하기 위해서기도 했고, 때론 시에라 제국에 대항해서 전부 투먼제국의 병력인 것처럼 허장성세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물론 확실히 두 부류는 달랐다.
어쨌든 시에라 제국이 야만족이라 하기는 했지만, 투먼 제국은 대군을 운용할 줄 아는 이들이었다. 반면에, 초원부족은 부족들이 모여 많은 병력을 모아봐야 그냥 몰려다니는 게 전부였다.
전술적으로 더 취약하다는 의미다.
“어쩌지요?”
참모는 만에 하나 있을 기병 병력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마법사들을 다시 닦달해서 안쪽을 들여다보든 하라고 하게.”
“지금 말입니까? 그들은 만에 하나 있을 방어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뭔지 알아야 방어준비를 할 거 아닌가!”
에디 백작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참모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직접 말을 달려 나갔다.
“그리고 본진도 준비하라.”
“지금 말입니까?”
“잘 알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지금 병력을 빼자는 건 아니겠지?”
“그, 그건 아닙니다.”
에디 백작이 이를 갈며 명령을 내렸다.
“오늘 안에 끝을 본다.”
***
가우리의 통신 마법사가 소식을 전하러 고진천의 막사로 헐레벌떡 달려 들어갔다.
“급보이옵…….”
순간 마법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넓은 지휘막사에 인간이 대글대글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죄다 지휘관이다.
당연히 말단 통신마법사로서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진천에게 직보를 하는 이였기에 항상 행동거지에 조심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진천이 까다로운 성격도 아니었고, 익숙해진 부분이 있어 상관은 없었지만 다른 이들이 그득하니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고윈인가?”
진천이 묻자 막사에 있는 지휘관들이 일제히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부, 부담된다.’
마법사가 자신에게 몰린 눈동자들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그럼 일루이먼 부흥군?”
“그쪽도 아닙니다!”
마법사가 뻣뻣이 선 채로 답하자 다들 일제히 시선을 돌리며 실망감을 내비쳤다.
“에이.”
“쯧.”
그들의 외면은 보고를 하기 위해 달려온 통신 마법사가 죄를 지은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심문이 끝났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진천을 비롯한 가우리와 가우리 동맹들의 귀족들이 다시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마치 칼날이 서린 듯한 시선들이었다.
“어떤 아새끼들이네?”
을지우루가 으르렁거리는 음성을 뱉어내자 마법사가 침을 꿀떡 삼키고는 여전히 긴장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카버! 카버 왕국입니다!”
드디어 베일에 쌓여 있던 마법사의 배후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역시.”
“아직도 망령이 남아 있었으니.”
로셀린 쪽 귀족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인접해 있는 그들이었기에 항상 감시의 눈을 놓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의심은 의심일 뿐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어느 정도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심문이 거의 끝나가니 각기 알아낸 것을 입을 맞춰보면 확실해질 것입니다.”
마법사의 보고에 우루가 다시 물었다.
“기거이 확실한 거이간? 구라칠 수 있디 않아?”
“아닙니다! 남자 여럿과 붙어먹은 일처럼 사소한 것도 다 뱉었습니다.”
그 말에 우루가 다시 물었다.
“나눠먹는 거이 뭔 문제가 된다는 거이간?”
그런 우루를 다들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여자 마법사가 잡혔었나 보구먼.”
헬리오스 바이칼 공작이 분위기를 돌리려는 듯 말하자 마법사가 빠르게 정정해 주었다.
“남잡니다!”
“…….”
다들 못 들을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 얼굴을 확 찌푸렸다. 그러자 우루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이거이 뭔 소립네까? 같이 좀 압세다!”
그런 우루를 보며 진천이 한마디 했다.
“항상 말하지만 모르면 가만 있어라. 중간은 간다.”
“…….”
우루가 얼굴을 팍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