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57
322화 날은 저물어 가고
시에라 제국군들이 불을 끄면서도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의 추가 전과는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갈고리를 던져 가설된 치에 거는 행동도 그대로였다.
다만 이번에는 병사들 역시 조심하며 성벽을 직접 공략하기 보다는 그 앞에 방패들을 선두에 두고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미노타우르스들이 그 방패들의 벽을 향해 바위를 던지기도 했지만, 적들도 술법사들을 전진 배치하여 방어술로 막아 내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 방벽은 보호되기 시작했다.
“술법사들의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의미 같습니다.”
술법사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병사들처럼 찍어 낼 수 있는 인력은 아니었기에 이런 상황에서 술법사들을 전진 배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옛날 초기에는 이런 경우가 가끔 있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쪽 술법사들이 공격을 할 때에는 적들의 술법사들이 모두 지쳐 아무런 힘도 못 쓰고 전세가 완전히 기울었던 적이 종종 기록됐었다.
그 때문에 어지간하면 쓰지 않는 운용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쓸 만한 운용이기도 했다.
일단 시에라 제국 술법사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니, 좀 희생되거나 힘이 고갈되어 버리더라도 보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모두 물리도록 하게.”
그러다 보니 치에 올라서서 화살을 날리던 궁수들도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결국 치를 포기하고 궁수들이 빠르게 넘어오기 시작하자 하나둘씩 성벽에서 뜯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쉽군요. 큰 무기 하나를 잃은 느낌입니다.”
치를 만들 때만 해도 꽤 효과적이라 생각했던 루이드 자작이었지만 오늘 전투를 치르면서 치에 대한 생각이 정반대로 되었다.
공성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반대로 수성하는 쪽에서는 확실히 적들을 효과적으로 죽여 없앨 수 있었던 것이다.
“슬슬 날이 저물어 오는군.”
하일론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늦은 오후 시작된 수성이 이제 저녁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던 하일론의 시선이 적진으로 향했다. 이제는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소울아머 유저의 푸른빛이 보였다.
굳이 싸우지 않음에도 저렇게 존재감을 조금씩 보이는 이유는 이쪽의 압박감을 유도하기 위함이 분명했다.
일종의 무력시위인 것이다.
하일론이 루이드 자작을 보며 말했다.
“어차피 준비된 건 저것 하나만이 아니지 않은가?”
하일론의 말에 루이드 자작이 웃음을 머금었다.
“적들이 사다리를 걸치기 시작합니다!”
사다리가 하나둘씩 걸쳐 올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쪽에선 시에라 제국 병사들이 뭔가를 조립하더니 밀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공성탑 같은 거군.”
“예. 많이 까다롭습니다. 공성탑 안에 술법사들이 존재하기에 쉽게 파괴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말대로 마치 탑처럼 생긴 것 세 개가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걸 성벽에 가져다 대는 순간 시에라 제국의 병사들이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자주 쓰는 병기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활용하려 할 듯한 기세였다.
예상하고 있던 수성병기 담당자들이 일제히 공성탑을 향해 투사무기를 쏘아대었다.
그러나 술법사들이 펼친 방어술에 막혀 모조리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것만 신경 써서 될 일은 아니었다.
성벽 위에 달라붙기 시작하는 적병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성벽 위에 걸친 사다리를 장대로 밀고 갈고리의 끈을 잘라 내어도 더 많은 수의 병력들이 달라붙었다.
사다리들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아래에서 밀리지 않게 사다리를 붙잡는 병사들도 많았던 것이다.
사다리를 걸치면 위에 묶인 끈을 아래에서 잡아당기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방패병들이 머리 위를 거북이 등갑마냥 보호한다.
그리고 아래쪽 역시 여러 병사들이 들러붙어 잡아서 고정하면 병사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달리듯이 올라선다.
그러나 이쪽도 마찬가지다.
사력을 다해 밀어내었다. 하지만 밀어내는 수보다 달라붙는 수가 더 많아졌다.
그러는 사이 공성탑들이 더 가까워졌다.
그걸 본 하일론이 루이드 자작에게 명령을 내렸다.
“슬슬 준비해야지.”
“알겠습니다.”
루이드 자작이 전령을 부르더니 양쪽 성 끝으로 달려가게 했다. 평소처럼 깃발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적들이 눈치 채지 않기 위해서인 듯했다.
“크아아악!”
위에서 성벽 끝에 다다랐던 아군이 비명을 내지르며 옆으로 추락하는 모습에 움츠릴 법도 하건만 사다리를 오르는 병사의 표정은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막아!”
“잡아당겨!”
바로 위가 성벽이었다.
그 위를 넘어서기 위해 먼저 올라간 병사들이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우, 우아악!”
일루이먼 병사 하나가 비명을 내지르며 떨어져 내렸다.
“응?”
그때 떨어지는 일루이먼 병사를 보던 시에라 제국군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다.
“이거 뭐지?”
성벽에 가로로 두꺼운 줄이 늘어져 있었다.
그것도 성벽 전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따라간 끝에는 양쪽 성벽 위가 보였다.
“응?”
그때 거대한 뭔가가 성벽 모서리에서 튀어 나갔다. 수성용 화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본 두꺼운 밧줄이 그 대가리 쪽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어헉!”
병사는 순간 자신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본 성벽을 가로지르는 밧줄의 용도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
우와아아아! 와아아아!
“…….”
함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가든 퍼시발 후작의 얼굴은 더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와아아아! 와아아!
비단 지금 시간이 늦은 밤이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낮에도 이미 네 번이나 교전 아닌 교전을 한 것 때문만도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함성 때문이었다.
와아아! 와아!
함성을 지켜보고 있던 가든 후작이 카버 왕국의 마법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저거 어떻게 중단시키나.”
“제가 하겠습니다.”
카버 왕국의 마법사가 함성이 터져 나오는 곳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빛이 번쩍이더니 함성소리가 사라졌다.
“됐습니다.”
“…….”
마법사가 가든 후작의 폭발할 것 같은 표정을 보곤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이것도 마법이겠지?”
“예.”
함성의 정체는 지금 가든 후작의 눈앞에 있는 물건이었다. 말 위에 매달려 있는 수정구였다.
이것의 용도는 대충 알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통신을 할 때 주로 쓰기도 하고 영상을 저장할 때도 쓰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용도로 활용 되었다.
가든 후작이 욕설을 내 뱉으며 수정구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러자 수정구가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 조각이 나서 흩어져 버렸다.
“고윈 이런 개자식!”
낮에만 네 번이나 달렸던 병력이었다.
그런 만큼 지치기도 했지만 신경도 바짝 곤두서 있는 상황이었다.
적들은 언제나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기에 이제는 함성만 들어도 자동적으로 일어서 무기를 들고 뛰기 시작한 시에라 제국 병사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병사들이 지치기는 했지만 약만 올리고 도주하는 적들 때문에 악에 받혀 있었던 상황이었다.
낮에 그리 뛰었으니 밤에는 쉬어도 될 법한데 느닷없이 함성이 터져 나왔으니 말이다. 물론 경계를 허술이 선 것은 아니었다.
야간이기에 지친 병력을 습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더 철저히 섰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니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놓치고 있는 상황에서 습격을 당했다는 판단 말이다.
그래서 전 병력이 자다 뛰쳐나와 그대로 추격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 뭔가 이상함을 느꼈던 것이다.
숲쪽에서 함성이 울려 왔는데 뭔가 움직임이 지나치게 적었던 것이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생각하여 긴장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기사 하나가 이걸 발견해 온 것이다.
함성을 담은 수정구.
와아아아! 와아! 다 죽여라!
아직도 숲 여기저기에는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많은 수를 이렇게 활용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숲 전체가 울리고 자던 병사들이 하얗게 질려서 뛰쳐나온 것이다.
“말의 귀를 망가트려 놨습니다. 그래서 이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말…….”
수정구를 매달고 달렸던 말을 살피던 기사가 분에 차 이를 악물고 대답을 이었다.
“낮 교전 중에 부상을 입고 사라졌던 말 중 하나입니다.”
결국 적들은 여기 저기 떠돌던 아군의 말을 활용하여 수정구 몇 개로 이 대군을 농락한 것이다.
“미치게 만드는군.”
가든 후작이 끓어오르는 분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심지어 추적하는 와중에 함정들이 무수히 발동하며 병사들이 꽤 상했다. 심지어 기사들까지 말이다.
적들이 이쪽에 미리 함정을 설치하고 유도를 한 것이 분명했다. 정찰병들도 이 거리까지는 살피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전략을 쓴다는 건 알고 있었나?”
카버 왕국의 마법사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활용은 없었습니다. 통신구에 음성증폭마법까지 걸은 것 같습니다. 사실 자세히 들어보면 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그때 함성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누가 멈추었나 싶어 마법사를 돌아보았다. 그런 가든 후작의 시선에 마법사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시간이 다 된 것입니다. 저장할 수 있는 분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였다. 함성이 잦아들더니 갑자기 일제히 하나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 바보들아! 어서 잠이나 쳐 자라! 내일 또 보자!
“…….”
조롱어린 음성이 일제히 터져나오고는 잠잠해졌다.
“전쟁 참 거지같이 하는구나.”
이를 빠드득 간 가든 후작이 병력을 물렸다.
“이제 조용해졌을 겁니다.”
마법사의 보고에 레비언 고윈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들이 깔아 놓은 함정에 시에라 제국군이 자다 말고 날 뛰었던 것을 보고 받았던 것이다.
“어떤 표정인지 궁금했는데 아쉽군.”
고윈이 웃음을 겨우 참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소수의 병사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들 잘도 자고 있었다. 하루종일 뛴 만큼 지금은 푹 쉬어야 할 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기동군단은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였다.
잠시 뒤 하늘 한쪽에 퍼렇게 물들어 올 때 기동군단은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도 피로가 역력한 얼굴들이었지만, 다들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사실 준비라 할 것도 없었다.
등에 든 보따리와 각자에게 주어진 무기만 챙겨들면 준비는 끝이다.
보따리에는 개개인이 먹을 식량과 물 등이 들어 있었다.
이들은 보급이 따로 없었다. 각자 먹을 것을 각자 들고 다녔다.
물론 보따리 하나만으로는 턱도 없는 양이었지만 보급병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들은 대마법사인 리셀이 직접 만든 공간 확장 가방이었다.
그걸로 소모된 물자를 보충하는 것이다.
조용한 가운데 각급의 지휘관들이 병사들의 준비상황을 확인 한 뒤 고윈에게 모여들었다.
지휘관이 모이자 고윈이 입을 열었다.
“잘들 잤으니 진짜 야습을 하러 가야지.”
고윈이 악마 같은 미소를 입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