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58
323화 양치기 중년 고윈
뒤늦게 잠이 든 시에라 제국 진영 사방에 코고는 소리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런 소음 속에서 잠이라도 제대로 잘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들 쥐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그만큼 피곤한 하루였다는 의미였다.
정리된 상황도 엉망이었다.
반쯤 허물어진 막사도 있었고, 심지어 일부 병력은 막사의 천을 깔개삼아 자고 있기도 했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간밤의 소동으로 인해 난장판이 된 진영을 정리하기보다는 휴식이 먼저라는 판단에 잠을 재웠던 것이다.
적들의 행동으로 보아 내일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솟구쳐 올랐다.
“스, 습격이다!”
불화살이었다.
경계를 서며 꾸벅꾸벅 졸던 병사 하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백여 개에 달하는 불화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덕에 잠을 자던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다들 눈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이었지만, 자다가 습격에 당해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때 사방에서 함성이 울려퍼졌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지휘관들이 서둘러 병사들을 정비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묘했다.
“놈들인가!”
가든 후작이 이를 갈며 나타났다.
하지만 지휘관들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찰대로부터는 연락이 없었습니다만…….”
“음.”
와아아아!
또다시 불화살이 날아들었다. 그새 방진을 꾸린 병사들이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 내고 진영에 붙은 불을 껐다.
함성은 컸으나 공격은 왠지 미약했다.
물론 자다가 당한 덕에 날아온 화살에 일부 병력이 상한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왠지 아까 당했던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때 한 마법사가 다가왔다.
“탐색을 하니 주변에 마법적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까 소동으로 인해 마법사가 우선적으로 마나의 기운을 탐색하는 마법을 쓴 것이다. 아까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라 이런 마법을 쓰지 않았었다.
대번에 발각되는 형태의 마법이기에 쓰지도 않았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번 당한 이상 두 번은 당할 생각이 없었다.
“젠장 또 잠을 설치게 됐군.”
가든 후작이 주변을 둘러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병사들도 왠지 눈치를 챈 모양인지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진짜 습격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늘은 아니군. 그래도 모르니 추격조만 편성해서 확인 시키고 병사들은 재우도록 하게.”
헨리 백작의 질문에 가든 후작은 간단하게 명령을 내렸다. 진짜 습격이면 지금 했어야 했다. 조금이지만 먼동이 트기 시작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시끄러운 소리를 해체할 마법사들도 함께 하도록 확인도 바로 할 수 있게 말이야.”
“예.”
지원받은 마법사가 귀환 전력이었지만, 이럴 때 안 쓰면 또 언제 쓰겠는가. 헨리 백작은 카버 왕국 마법전단장에 협조를 구하고 추격조를 편성해 내보냈다.
아마 밖의 정찰조도 이 소란을 듣고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병사들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났다.
함성이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잠을 자지 못한 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남은 헨리 백작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렇게 거의 고요해질 즈음, 다시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 와아아!
이번에는 불화살도 없었다. 그저 아까보다 더 먼 거리에서 함성이 울려퍼질 뿐이었다.
눈에 잠이 덕지덕지 붙은 마법사가 뭔가 주문을 외우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거리가 멀긴 하지만 마나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젠장.”
헨리 백작이 살짝 욕을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꽤 효과적인 수단이기는 했다. 하지만 병사들도 익숙해졌다는 듯 살짝 뒤척이기만 할 뿐 다들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주변을 제대로 정리하고 진영을 꾸려야겠군.”
지속된 추격전 때문에 주변을 제대로 정리 못한 것이 이번 일을 불러일으켰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평소라면 좀 넓게 주변에 초병을 배치했을 것인데, 약간 안일하게 주변 정찰대 정도만 운용을 해 놓고 잠을 청했던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그때 문득 헨리 백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들어온 보고 있었소?”
“보고라면…… 아까 발견해서 끄기 시작한다고 보고는 들어왔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멀지만 이런 소란이면 보고가 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헨리 백작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해 보겠습니다.”
마법사는 별것 아닐 거라는 표정으로 수정구를 활성화 시켰다. 아까와 비슷한 상황이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법을 활용해 탐색부터 해 보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보고를 안 했을 것이고 말이다.
“응?”
그런데 마법사의 표정이 살짝 이상했다.
또다시 주문을 외웠다.
역시나 수정구는 반응이 없었다.
그쯤 되자 마법사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때였다.
쐐애애액!
소나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새벽 하늘을 울렸다.
후두둑!
이내 바닥에 떨어져 내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아악!”
“컥!”
“스, 습격이다!”
“에이 씨. 또 뭐야?”
병사들의 행동은 반반이었다.
화살을 맞은 이들의 비명과 또 거짓습격이 시작되었나 싶은 이들의 투덜거림. 하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명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아아악!
불화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불덩이가 이십여 개가 날아왔다.
“제, 젠장!”
진영에 남은 카버 왕국 마법사들이 서둘러 방어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막아 낸 것은 절반에 약간 미치지 못했다.
마법사들 역시 잠을 청하고 있기도 했고, 남아 있는 마법사의 숫자도 적기도 했다. 정찰대와 함께 밖으로 빠져 나간 마법사가 여덟이었다.
스물다섯 명의 전단원 중 삼분지 일에 달하는 인원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몇 개의 불덩이는 시에라 제국의 술법사들이 막아 낸 것이다.
콰아앙! 콰앙!
불덩이가 사방에서 폭음을 울리며 불꽃을 피어 올렸다.
환해진 주변으로 쏟아지는 화살에 비명을 내지르며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연이은 가짜 습격에 방심했던 것이 컸다.
“빌어먹을!”
사방에서 병사들을 깨워 방어를 준비하는 지휘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심 덕에 초반 피해는 있었지만, 그래도 제때 수습하여 병력을 움직여 나갔다. 그 와중에도 화살이 쏟아졌지만 병사들은 분노를 불태우며 나아갔다.
차라리 빨리 적들과 붙어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가든 후작이 가장 열이 받았는지 선두에서 소울아머 유저들을 이끌고 달려 나갔다. 그러나 사방에서 아까와 같은 조잡한 함정 덕에 진군이 더뎠다.
새벽이라지만 제대로 시야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라 피해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또 뒤쪽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들이 떠나 온 진영 쪽이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본 헨리 백작이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개 같은!”
진영이 있는 곳을 향해 수많은 불화살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물론 축겨하는 병사들을 빼고 남겨둔 이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보급을 노린 건가.”
헨리 백작이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화광이 새벽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아주 큰 불이 난 것이다. 아마도 꽤 많은 것들이 불타고 있을 것 같았다.
저 멀리서 가든 후작의 분노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고윈 이 개새끼야! 안 싸워도 좋으니 얼굴이나 한번 보자아아아!”
헨리 백작이 그 외침을 들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고윈 개새끼.”
딱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
에디 백작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한 방에 밀어 붙이려는 계획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적들의 수가 적은 것을 이용해 지루한 장기전을 펼치고 있을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소울아머 유저들을 몰고 가 성벽을 무너트리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적들의 준비가 너무 좋았던 것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던 것이다.
이전까지 보았던 것보다도 더 큰 수성용 화살 두 발이 각 성벽의 끝에서 발사되는 순간을 그는 잊지 못했다.
그 두발이 날아가는 순간 상벽 위에 걸쳐져 있던 수십 개의 사다리가 일제히 뒤로 나자빠지며 수백의 인원이 마치 나른 낙엽이 강풍에 우수수 떨어지듯 떨어져 내렸다.
그뿐 아니라 떨어져 내린 아군에 깔린 또 다른 희생자들은 어떤가.
심지어 공성탑들이 일제히 우직 소리를 내며 뒤로 기우뚱하며 썩은 나무 기울어지듯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단 두 발의 거대 화살 끝에는 성벽을 가로지르고 있던 단단하기 그지없는 밧줄이 매여 있었던 것이다.
그걸로 사기는 바닥을 쳤다.
에디 백작 역시 병사들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성벽에는 그런 밧줄이 몇 개나 더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용도를 몰랐으면 모를까 안 이상 병사들은 아까처럼 용기를 내지 못할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바뀐 전략은 무너진 공성탑 주변으로 방벽을 만들고 전초기지처럼 활용하여 가진 투사무기를 활용해서 지연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성벽에 걸쳐진 밧줄들을 갈고리를 이용해 잡아 당겨 내렸다.
그럴 때마다 적들은 하나씩 성벽 양 끝에서 거대화살을 쏘았고, 아까와 같은 일은 없었지만 그에 휩쓸린 병사들이 한 번에 수십 이상은 되었다.
마치 빗자루로 쓸린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 것까지 모두 걷어내었습니다.”
참모의 보고에 에디 백작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못했다 말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만큼 그가 지금 분노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휴식은 충분했겠지?”
“예.”
지연전으로 바꾸면서 병사들을 돌아가면서 잠을 재우고 휴식을 취했다.
다행히 뒤쪽으로는 적들의 습격이 없었다.그리고 마법사들이 돌아가며 하늘로 올라가 살핀 덕에 예비 병력을 더 모아 공략을 해 나갈 수 있었다.
“적들도 지쳤을 겁니다.”
“우리도 지쳤지.”
참모의 보고에 에디 백작이 짧게 답했다.
이쪽이 쉬는 만큼 저쩍도 일부 병력을 쉬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돌아가면서 공략을 해도 수성을 하는 이들보다 많은 수였다.
또 무너진 공성탑의 위치 덕에 가까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쪽도 불화살을 이용한 화공을 계속해 나갈 수 있어 적들도 편히 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준비 시켜. 아침식사는 하일론이라는 놈을 내 면전에 무릎 꿇려 놓고 하겠다.”
에디 백작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슬슬 오려는군.”
하일론의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었다.
적들도 이쪽을 꽤나 괴롭혔다. 물러가서 다시 공성을 시도할 법도 하지만, 그래서는 이쪽만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적 지휘관이 바보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사실 전투 상황에서는 판단이 제일 중요했다.
병사들을 넣고 빼는 그 순간의 판단이 승부를 결정짓기 때문이었다.
하일론의 중얼거림에 답하려는지 시에라 제국 병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어서들 오시게.”
피곤에 절어 있던 하일론의 눈동자에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