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66
331화 황도의 결정
북부의 요충지를 점령했던 북부 제국의 발걸음은 한번 멈추는 듯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하자 바빠진 것은 시에라 제국 황실이었다.
미리 충원을 해 놓기는 했지만 그 병력의 일부는 충원도 되기 전에 공중분해되어 버린 상황이라 심적인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 짐작했던 사실 하나가 밝혀졌다.
북부에 그리팔이 있다.
터그람 왕국의 수호신이었던 그리팔이 북부 투먼 제국의 진영에 있다는 것이 밝혀졌던 것이다.
외모는 물론이고 전쟁 중 잃었던 다리까지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자 투먼제국의 남하에 골머리를 썩이던 이들이 다급해졌다.
투먼 제국이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투먼제국에 그리팔이 있다는 것은 상황자체가 달라짐을 말하고 있었다.
이미 일전의 공성전에서 봤듯이 공성에는 병신이라 불리던 투먼 제국이 일제히 서너 개의 성을 깨고 단숨에 차지할 정도로 위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즉, 단순히 그리팔이 그들 진영에 있는 것을 넘어 병력 운용에도 확실한 관여를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뿐 아니었다.
공성 이후 주변을 장악해 나가는 모습 역시 기존 투먼 제국의 모습과 달랐다.
꼼꼼하게 정찰망을 짜서 개미 한 마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제대로 장악을 해 나갔다.
이는 이전 남부 삼국에서 공통적으로 해 오던 습관과 같은 것이었다. 적들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면 그만큼 대응을 먼저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상대적 약자인 그들은 주변장악에 대하여 힘을 기울였다.
전선과 관련된 곳은 더더욱 그랬다.
그걸 투먼 제국과 같은 강자가 하니 압박이 더 심했다. 주기적인 정찰을 해야 할 판에 촘촘한 정찰망을 미리 짜 놓으니 파고들 틈이 더 없었다.
거기에 상대는 활에 능숙하고 초원을 뛰어다니는 기마부족들이었다. 얼굴도 마주치지 못하고 쏟아진 화살세례에 피를 보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남하를 또 시작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섯 개의 성.
남하도 순식간이었고, 함락도 순식간이었다.
물론 이전과 달리 수성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는 했지만 숫자에서부터 달랐다.
거기에 다섯 군데의 공성이라 했지만 그 다섯 군데의 위치가 교묘했다.
안쪽에 두 곳의 성을 포함시켜 버린 것이다.
그 두 곳은 밖과 완전히 차단이 되어 버렸다. 보급도 끊기고 오도 가도 못 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완전 사석이 되어 버렸다.
물론 외부에서 최전선의 성을 공략할 때 호응을 하기 좋은 위치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일반적인 경우였다.
상대가 기동성에서 더 뛰어난 투먼 제국이기에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사방에서 화살비가 쏟아지면서 난입이 이어질 것이다.
거기에 지금 북부 지역에 파리를 틀고 있는 부족들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었다.
이건 한마디로 치고 빠지는 전술이 아니라 영구 점령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초원 부족들이 소수 남하하여 일반적인 성 이외에도 작은 마을들을 목표로 털어 대고 있었다.
일부 영지에서 토벌 병력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초원 부족이 아닌 투먼제국의 타격대였다.
그러다 보니 북부의 영지들은 심각한 타격에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방어 거점을 빼앗긴 위쪽의 영지들은 그런 식으로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차 남하로 인해 성들이 무너지니 다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투먼제국에서 또다시 남하하는 병력이 포착되었다 합니다!”
“끄으응.”
리베란 루 비에라 황제의 입에서 절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북부 쪽의 소식은 더 늦어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버 왕국에서 보내주었던 마법사들이 일부 성이 함락되며 잡혀 간 이후, 그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후 용병 마법사들을 보내 주기는 했다.
국적이 모호한 마법사들로써 그들도 자신들이 누구에게 고용되었는지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이는 카버 왕국이 앞으로의 연막을 위해 보내 주었던 인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야말로 연락책 이외에는 써먹기 힘든 이들이 많았다.
거기에 잡혀가도 괜찮을 인원이다 보니 통신 장악을 당한 상태에서 뭔가를 하려 하기보다는 빠져나가려 애쓰는 것이 많았다.
당연했다.
평범한 통신 마법사로써의 계약인 줄 알았는데 눈이 가려진 채 이동되어져 오고 나니 전혀 다른 신세계가 아닌가.
하루하루를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막상 전투가 벌어진 뒤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북부가 너무 위험합니다. 병력을 증파해야 하옵니다.”
“후우.”
북부로의 병력 증원이 지금 화두였다.
처음 십만을 뚝 떼어 올려 보낼 때만 해도 이런 걱정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북부전선이 무너지고 지원 병력 일부가 도착도 못하고 와해가 되자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거기에 지금 각지의 보급도 삐걱이고 있었다.
특히 일부 대영지들이 여러 이유로 보급을 그야말로 극도로 조심히 행하고 있어 물자의 이동이 답답할 정도로 느린 상황에 봉착했다.
물론 전선으로 가는 물자야 문제가 없는 상황이지만 황도 인근의 영지들은 그야말로 창고가 탈탈 털린 상황이라 백성들은 더욱 피폐해졌다.
“가든 후작 쪽 병력을 빼야 합니다!”
“지휘관 역시 경질해야 합니다!”
급기야 가든 퍼시발 후작의 거취문제까지 튀어나왔다.
지원 병력을 추가해서 보냈건만 공성은 연이어 실패를 했고 결과는 마땅치 않았다.
“지난 오일간 교전 숫자가 이십 회가 넘습니다! 그런데 그 전투에서 한 것이라고는 술래잡기를 한 것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소모되는 물자는 거의 배에 달하고 있사옵니다! 폐하! 결단을 내리시어야 하옵니다!”
이미 전달을 받은 바 있었다.
매의 군단이니 철벽의 하일론이니 하는 이들이 있어 토벌에 애를 먹고 있단 말이었다.
물론 일루이먼 부흥군 쪽의 병력 다수가 이제 신병의 틀을 벗고 있는 병력이지만,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는 그것을 이유로 너그럽게 있을 수 없었다.
리베란 황제가 쏜튼 폴리어 후작을 바라보았다.
쏜튼 후작 역시 난감한 표정이었다.
다들 말하는 대로 어느 한쪽만 무너지면 끝나는 전쟁이기는 하지만 북부의 움직임이 너무 심상치 않았다. 적당히 밀고 내려오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었지만 정말 잘 다져 가며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단순 침략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거기에 그들의 대군을 무너트린다 해도 남부 정벌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밀고 내려가야 끝이 나는 것이다.
“일단 주변의 병력을 더 징발하여 북부를 보강하는 것이 최선이옵니다.”
그래도 일루이먼 부흥군을 놔둘 수는 없었다.
주변 대영주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다른 귀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 병력들이 나으리라 보시오! 당장에 북부에서 미친 듯이 밀고 내려오면 그땐 어쩌려 하오!”
황도의 위치는 남부에 치우쳐 있어 상대적으로 북부의 남하에 안전한 편이었다. 그만큼 시에라 제국은 남부의 확장을 최우선시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반대로 북부 쪽의 역량은 상대적으로 남부 쪽에 비해 떨어진다고 봐야 했다.
제국의 북부 지역은 치열한 남부와 상황이 여러모로 달랐다. 평온 그자체인 지역이었다.
물론 최북단의 경우는 수시로 들락거리는 초원부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지만 그 아래의 지역은 그런 북부전선의 상황 덕에 쏠쏠한 이득을 벌어들이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제국의 남부는 점령군들이 먹여 살리고 북부는 북부전선이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특히나 북부는 북부전선의 병력과 최북단에 위치한 영지들 덕에 전투의 위험성이 거의 없어 상비군이라 할 것도 얼마 없을 정도였다.
남부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북부에서 벌어들인 재화로 물적인 지원을 하며 재원을 불리는 정도였다.
언젠가는 제국이 북부로 올라갈 때를 기다리며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이렇게 아웅다웅하는 것도 당연했다.
따지고 보면 일루이먼 부흥군 역시 남부에 속하는 위치였고 말이다.
“가든 후작은 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결국 리베란 황제가 폭발하고야 말았다.
원래라면 지금쯤 일루이먼 부흥군을 밀고 북부로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아직도 숨바꼭질 중이니 열이 안 받을 수가 없었다. 황제가 된 이후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것이다.
영광으로 점철된 역사를 만들어 가도 모자랄 판에 제국의 출범이후 처음으로 남부를 침탈당한 황제라는 오명까지 뒤엎어 썼다.
아니 처음 황제에 올랐을 때도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이 만들어 준 황제라는 소문에 당당하지 못했던 그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명백히 밀리던 상황에 일황자와 프라임 공작이 그의 손을 들어 준 것이었으니 말이다.
“폐하!”
쏜튼 후작이 당황하여 황제를 불렀다. 하지만 이미 폭발한 리베란 황제를 말리기에는 늦었다.
“이미 시간은 충분히 줬다. 안 그런가!”
“예…….”
“가든 후작을 일루이먼 반군 토벌의 사령관에서 해임하고 그 병력을 북부로 올려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일루이먼 지역 주변 영지에 병력을 충원하여 그들이 더는 확장치 못하도록 하라! 쏜튼 후작!”
“예, 황제폐하!”
쏜튼 후작이 리베란 황제에게 부복을 했다.
“우왕좌왕하는 것도 지쳤느니라! 당장에 이를 시행하고 북부 방비에 출중한 이를 천거하도록 하라!”
리베란 황제의 명에 쏜튼 후작이 눈을 감았다.
그런 그를 향해 리베란 황제가 말을 이었다.
“그대의 걱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허나 북부의 적은 우리가 놀림감으로 삼던 그런 야만족으로 볼 수 없다. 안 그런가!”
“예.”
“이미 준비 중인 일도 있으니 그리하라.”
준비 중인 일이라는 말에 대전의 다른 귀족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쏜튼 후작은 알아들었다.
카버 왕국의 사신의 요청에 응했던 일이었다.
내부의 분란이 있더라도 외부의 전쟁이 마무리되면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건 명확했다.
시에라 제국이 땅은 지금 침범당해 있더라도 아직 힘은 온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프라임 공작에게 이 전쟁을 마무리하는 대로 남부 정벌을 최단기간 내에 마무리하라 전해라!”
“알겠사옵니다.”
“그 다음은 북부가 되어야 한다. 허나 지금 시간이 끌리면 북부의 야만족들이 우리가 만든 성에 터를 잡고 전선을 유지하려 할 수 있다. 이는 먼 앞날에 우리 병사들의 피가 무수히 흐를 수 있는 일이다.”
리베란 황제의 명에 쏜튼 후작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것 역시 틀린 말이 아니었다.
초원지대인 투먼제국과 달리 지금 그들이 점령하고 있는 북부지 역은 방어하기에 나쁘지 않은 지형이었다.
그렇기에 그곳을 장악한 이래로 더는 북부로 밀고 올라가지 않고 남부를 항상 먼저 치려 했었다. 그런데 그 지역을 야금야금 빼앗기고 있었다.
황제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닌 것이다.
“명대로 하겠나이다.”
쏜튼 후작이 리베란 황제의 명을 받들었다.
더는 무리였다. 아무리 프라임 공작이 위력시위를 했어도 황제는 황제였다. 그 위치를 더 자극하는 순간 황실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었다.
대전을 나오는 쏜튼 후작의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