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70
335화 좋은 기억은 나눠야 제맛
무언가 포근한 빛이 그의 몸을 감쌌다.
깨질 것 같았던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을 느끼며 아르시온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아르시온은 자신이 패배했음을 알았다.
그것도 일방적이었다.
잠시나마 호기를 부렸던 자신이 창피할 따름이었다.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선 아르시온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크게 배운 건 없었다.
선빵 당하고 일방적으로 맞다가 끝난 것이니까. 아니 없지는 않았다.
‘난 아직 멀었다.’
초인이라고 다 같은 초인이 아니라는 것. 아직 그에게는 갈 길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직도 올라갈 위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목표의식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깼으면 준비하게나. 허허허.”
“예?”
그때 아르시온이 고개를 돌려보니 무덕이 어느새 환두대도를 들고 서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또다시 대련이었다.
비록 진천에게 일방적으로 깨지기는 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초인 과의 대련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기회는 흔한 것이 아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선 그가 자세를 잡고 긴장을 했다.
진천에게 당한 것이 있어서인지 그는 자세를 잡자마자 먼저 일격을 날렸다.
가르침이라면 가르침이다.
선빵.
그러나 무덕은 그의 일격을 그대로 후려쳤다. 막거나 흘리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후려친 것이다.
콰아앙!
“크읏!”
순간 아르시온의 몸이 뒤로 튕기듯 날았다.
먼저 공격한 만큼 자신의 일격에 힘이 더 실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오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뒤로 튕기며 그는 공중에서 자세를 잡아갔다.
“후우!”
겨우 자세를 잡은 그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힘이 좋군.”
무덕이 웃으며 답하자 아르시온 이 호기롭게 외쳤다.
“감사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록 밀리기는 했지만 진천과의 대련에서 느끼지 않았는가.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말이다.
더욱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오늘의 대련은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들뜰 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아르시온이 힘차게 외쳤고 무덕은 그의 마음가짐에 화답했다.
“나 역시 최선을 다하겠네.”
무덕이 웃으며 다시 환두대도를 들어올렸다.
좀 전에 느꼈던 포근한 빛이 그의 몸을 감쌌다.
찢어질 것 같았던 뱃가죽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끼며 아르시온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배! 내 배!”
정신을 차린 아르시온은 자신의 배부터 살폈다.
“아…….”
구멍은 안 났다.
무덕에게 일격을 당하는 순간 복부가 통째로 뜯겨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자신의 복부가 아직 멀쩡하다는 것을 느낀 아르시온이 무덕에게 예를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른 음성이 들려왔다.
“날래 준비 하라우.”
“응?”
한쪽에서 우루가 활 대신 대부를 들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뭔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이었지만, 아르시온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상대는 신궁 우루.
활 실력이 신의 경지에 달했다는 이. 하지만 원거리 무기인 활과 근접전 무기를 든다는 것은 달랐다.
물론 그쯤 되면 근접전에서도 일가견이 있겠지만, 그래도 자신은 평생을 검을 연마한 이다.
이 대련에서 만큼은 최소한 지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다. 거기에 우루는 중병기인 대부를 들었다.
속도에서도 자신이 앞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가겠습니다!”
결의에 찬 아르시온이 빠르게 몸을 날리며 우루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포근한 빛이 그의 몸을 감쌌다.
“허억!”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아르시온은 자신의 머리통을 확인했다.
분명 아까전만 해도 대부에 머리통이 쪼개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머, 멀쩡하다.”
다행히 머리가 쪼개지지는 않았다. 그렇다 해도 우루의 도끼질은 정말이지 빠르고 파괴력이 강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형제가 바로 개문산성의 영웅이자 대부신왕이라 불리던을지부루였지.’
도끼를 들었다고 유리할 줄 알았던 자신의 생각이 순식간에 산산 조각이 났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그의 형제에 대한 기억을 해 낼 수 있었다.
“감사합…….”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기세에 아르시온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먼저 갈까?”
“……아닙니다.”
웅삼이 장도를 어께에 걸친 채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삼인방이 모여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다.
“…….”
좋아할 게 아니었다.
대련은 아직 끝이 난 것도 아니었다.
아르시온은 무기를 고쳐 잡으며 낮게 욕설을 뱉었다.
“썅.”
이건.
합법적 돌림빵이다.
* * *
“후욱! 훅!”
검을 내려칠 때마다 땀방울이 튄다.
수없이 해 왔던 검술이었건만, 그것을 임하는 이들의 눈에는 언제나 진중함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동료 중 하나가 초인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목격한 순간 모두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의심을 떨쳤다.
과연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말이다.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그들의 머리를 휘감았다.
물론 일부는 조급함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분위기 자체가 확 달라진 것은 맞았다.
그때 그들의 연무장으로 누군가가 들어섰다.
“헛!”
“아르시온경!”
“이보게 아르시온!”
연무장에 들어선 이는 바로 아르시온이었다.
초인이 되면서 카말왕국이 있는 대륙으로 길을 떠났던 그가 사흘 만에 돌아온 것이었다.
연습을 하던 이들이 그를 맞으러 몰려들었다.
“어땠나?”
“정말 다른 대륙이라는 게 있었나?”
“그곳은 어떤가?”
“혹시 그거 해 봤나?”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에 아르시온은 몸을 움찔했다.
그 반응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떠나기 전에 반드시 다른 초인과의 대련을 상으로 부탁할 것이라는 건 이들도 알았다.
아르시온의 시선이 먼 하늘을 향했다.
“대련이라…….”
약간은 멍한 듯 보이는 그의 표정을 본 다른 검호들이 들뜬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련했군!”
“누구와 했나?”
“어떤가?”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 질문을 듣던 아르시온이 한쪽에 가서 짐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그 짐 속에서 새로운 검을 꺼내 들었다.
“선물 받은 건가?”
“오!”
부러워하는 목소리를 듣던 아르시온이 답했다.
“박살났네.”
“응?”
“가지고 간 검. 박살났다고.”
“대련 중에?”
“그렇지.”
대련 중에 무기가 박살났다는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초인이 뽑아내는 오러블레이드로 강화된 무기가 박살이 났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게 가능한가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렇게 새 무기를 꺼낸 아르시온이 연무장 한쪽에 가서 천천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왠지 범접할 수 없는 그 무거움에 다들 말을 더 붙이지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그때 그들의 시선이 약간 부담이 되었는지 휘두르던 검을 내리며 아르시온이 입을 열었다.
“대련 말일세.”
“어땠나?”
“초인은 시작점에 불과했네.”
“뭐?”
그 말에 다들 놀랐다.
“우주라더군.”
“응?”
난대 없는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아르시온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하늘 밖의 하늘을 보았다 했더니 그건 바로 우주라 하시더군.”
“누, 누가?”
“마왕.”
“어헉! 자네 그분과 대련을 한 겐가! 이런 부럽구만!”
“아! 나도 언젠가!”
그들을 향해 아르시온은 다시 말을 이었다.
“전장에 있던 모든 초인과 붙어 보았네. 삼인방 역시 초인의 반열에 오른 지 좀 됐더군.”
“이런 그런 귀한 경험을!”
“아! 역시!”
“과연 어떨까. 소울아머 유저와는 확실히 다른가?”
들떠서 떠들어 대는 소리에 연무장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그렇게 다들 아르시온의 씁쓸한 미소를 보지 못한 채 들뜬 얼굴로 부러워하며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르시온이 말했다.
“말씀하시길. 이후에 초인이 된 이들은 언제든 대련을 청하면 전쟁 중이라도 해 주겠다 하셨네.”
그 말에 연무장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오와아아아!”
“와아아!”
그들의 열기가 피부로 와 닿았다. 그 모습을 보던 아르시온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건, 대련이 아니라 지옥이네.’
자신이 당한 걸 솔직히 말하기는 싫었다.
속된말로 쪽팔렸다.
또 말한다 해도 대련을 청할 것 같기는 했다. 검을 든 자들은 그런 이들이었으니까.
다만 혹시나 대련을 선택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면 왠지 억울할 것 같았다.
자신이 한 경험.
모두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었다.
“크크크크!”
순간 아르시온의 얼굴에 기괴한 표정이 서렸다.
살짝 광끼 마저 어린 그가 중얼거렸다.
“나만 당할 순 없지.”
그 어떤 때보다 아르시온의 검은 매섭게 허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 * *
가든 퍼시발 후작의 경질소식을 들은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깃들었다.
“쯧. 차라리 북방으로 함께 보낼 것이지.”
그의 실력이 아까웠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토벌의 책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피해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시간이 더 있었다면, 피해가 있더라도 맡겼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못했다.
“북방 떨거지들이 제대로 확장을 하고 있군. 전쟁이 끝나도 골 아프겠어.”
프라임 공작이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새로운 전선이 생겨나 버렸다.
원래라면 이쪽전선을 마무리 하는 대로 남부를 정리하고 그 병력으로 북방을 밀려 했었다.
그런데 북쪽에 새로운 진지가 구축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그리팔이 직접 끼어들은 전선이 생긴 것이다.
이미 한차례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터그람 왕국의 반쪽 군대로 자신을 막아선 전력이 있던 그리팔이었다.
하물며 모래알 같다고는 하지만, 그 전력이 약하지 않은 북부 전사들을 그가 지휘한다.
아마도 쉽지 않은 전쟁이 이어질 것이 뻔했다.
“시간이 문제군.”
프라임 공작이 입맛을 다셨다.
할 일이 갑자기 많아져 버린 느낌이었다.
사실 지금 시에라 내부의 대군만 정리한다면 나머지 남부 정벌은 아무나 맡겨도 문제가 없다.
북부는 그가 직접 밀면 된다. 그렇지만 새로운 대륙이라는 먹잇감이 생겨난 지금 시간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실 것 있습니까? 이번 전쟁에서 적들에게 악몽을 심어 주면 됩니다. 그러면 알아서 도로 기어들어갈 겁니다. 두려움이란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그가 히죽 웃으며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프라임 공작의 귓가로 제대로 파고들지 못했다.
프라임 공작이 뭔가를 기억에서 꺼내듯 입술을 달싹였다.
“적에게 악몽을…….”
“그겁니다.”
그리그는 자신의 말에 호응하는 줄 알고 히죽 웃으며 말을 붙였다. 하지만 프라임 공작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묵갑귀마대.”
“예?”
“그들의 구호라더군.”
“아, 일전에 직접 보셨다 했지요. 그…….”
뒷말은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사부인 프라임 공작의 자존심에 누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희미해진 볼의 상처.
그걸 보고 다들 의아해했었다. 그의 얼굴에 상처를 처음 본 까닭이었다.
“목연타라 했지.”
갑자기 떠오른 기억이었다.
그리고 너무도 선명하게 남은 기억.
프라임 공작은 한참을 말이 없이 앉아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