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72
337화 함정을 대하는 그의 자세
“조금만 더 버텨!”
필리어리 왕국의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귀족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기사들이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고, 궁수들은 뒤쪽에서 연신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물론 화살이 소울아머 유저에게 통할 리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궁수들이 쏘는 화살은 소울아머 유저가 아닌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이들의 노력 덕인지 맹렬한 기세로 돌파하며 달려오던 시에라 제국의 별동대는 더 이상 돌파를 하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다시 이탈을 하려는 기미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기사들은 이것이 기회라는 걸 인식하고는 목숨을 걸고 적들의 퇴로를 막아섰다.
술법사들의 술법이 집중되어 더욱 큰 공을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기도 했다.
그때 기사들을 이끌고 있던 마르본 남작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꼈다.
“뭐지?”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소울아머 유저가 다섯이나 된다.
그 때문에 짧은 시간동안 희생된 병사들의 수가 이백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다행히 제때 기사단이 출동을 했고 술법사들이 제대로 대응을 해 준 덕에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이상한 것은 다름 아닌 적들의 별동대였다.
소울아머 유저야 어차피 막아서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그 뒤의 별동대들의 희생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날아드는 화살을 쳐 내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 주고는 있었지만, 실제 쓰러지거나 하는 이들이 없었던 것이다.
쓰러진 것은 그들이 타고 온 말 정도였다.
그때 뒤쪽에서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소울아머 유저인 베프 후작과 보리스 자작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때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금 적 별동대의 복장을 보면 위장을 위해 수풀을 엮어 만든 망토같은 걸 입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일반 병사들이 아니라면?
“서, 설마!”
그때 어지럽게 공격을 막아 내며 포위를 뚫고 도주하려던 적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마르본 남작의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그들을 향해 말을 달려 나가며 외쳤다.
“후작님을 보호하라! 함정이다!”
그 외침이 신호가 되었는지 적들이 일제히 위장용 망토를 벗어 재꼈다.
그리고 일순 사방으로 푸르른 빛들이 퍼져 나왔다.
“후작님을 보호…….”
마르본 남작의 말을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소울아머 착용을 마친 시에라 제국의 별동대의 검에 목이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쓰러지는 마르본 남작의 몸뚱이를 보며 위장했던 노블기사단 단원이 냉소를 흘렸다.
“쓸데없이 눈치만 좋아서 명을 재촉했군.”
오십여명의 별동대에서 오십여 명의 재앙으로 변신한 그들의 검 아래에 포위를 구성하고 있던 기사들이 순식간에 썰려 나가기 시작했다.
아까는 포위를 위해서였다면 이제는 베프 후작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포위망을 형성하는 것과 막기 위해 늘어서는 것은 진영자체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 선두에 선 것은 에디였다.
“베프 나와라! 나 프라임의 세 번째 검 에디 프리디오가 왔다!”
그의 외침이 쩌렁 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베프 나와라! 나 프라임의 세 번째 검 에디 프리디오가 왔다!”
“이런!”
외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베프 후작은 물론이고 보리스 자작 역시 당황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미 몸을 빼기에는 늦었다.
시에라 제국의 소울아머 유저들이 좌우로 뻗어나가며 역으로 그들을 포위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노, 노블기사단 같습니다!”
“젠장.”
보리스 자작의 설명이 아니어도 베프 후작은 그들이 노블기사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에디 프리디오라면 프라임 공작의 세 번째 제자다.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따로 제국에 작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거물 중에 거물이 바로 프라임 공작의 제자들이었다.
실제 노블기사단을 만들어 낸 이들.
그들 중 하나가 움직였다면 충분히 노블기사단이 함께일 것이다.
아니 이미 숫자가 오십에 달하는 것을 본 순간 그건 의미가 없었다.
노블기사단이 아니어도 재앙에 가까운 전력이었던 것이다.
병사가 2만이 아니라 3만이어도 상대하지 못할 전력이다.
“후우.”
베프 후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보리스 자작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명치어림에 있는 소울스톤으로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최후의 선택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베프 후작은 고개를 내저었다.
“늦었네.”
“허나…….”
베프 후작은 악다구니를 쓰며 적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미래를 담보로 살아난다 해서 무얼 하겠는가. 그리고 이게 알려지면 앞으로 병사들이 우리를 믿고 따르겠는가?”
베프 후작의 말에 보리스 자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함께하세나.”
베프 후작의 말에 보리스 자작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 더는 몸을 빼라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늦었고요.”
몇 마디를 나누는 그 짧은 사이에 오십여 명의 소울아머 유저들이 이미 그들을 에워쌌다.
물론 거리를 두고 포위망을 구성한 상태고 여전히 필리어리 왕국의 병사들이 달려들고는 있지만 이쯤 되면 완벽한 포위라 해도 무방했다.
그때 베프 후작이 외쳤다.
“전군 퇴각하라! 참모는 들어라! 필리어리 왕국의 병사들은 안전하게 퇴각시켜라!”
그의 외침에 병사들이 동요했다.
“그대들의 뒤는 나 베프 리온이 맡겠노라!”
“안됩니다!”
“후, 후작님!”
사방에서 기사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베프 후작은 보란 듯 가슴의 소울스톤을 돌려 버렸다. 보리스 자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우욱!
소울포스가 미친 듯이 증폭되었다. 이미 강을 건넌 것이다.
포기하라는 의미였다.
베프 후작이 다시 외쳤다.
“잊지 말지어다! 필리어리의 병사들이여! 그대들은 내일의 영광을 위해 오늘 반드시 살아가야 하느니라!”
그 외침과 함께 베프 후작과 보리스 자작이 함께 한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들이 향한 곳은 바로 조금 전 존재를 알렸던 에디가 있는 방향이었다.
“미친!”
노블기사단원 중 하나가 놀란 목소리를 내뱉었다.
베프 후작쯤 되는 이가 몸을 빼지 않고 목숨을 던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베프 후작의 외침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필리어리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빠르게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요.”
노블기사단 단원이 조심스럽게 에디에게 물었다.
“일부는 놈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공포를 심어 주는 것이 좋겠지. 스물을 끌고 추격해. 제대로 퇴각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도록 만들어.”
에디의 말에 소울아머 유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일부에게 신호를 던지고는 퇴각하는 필리어리 왕국의 병사들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서른.
스물이 뒤를 따라간 것이다.
병사들이 썰물처럼 빠지는 가운데 강대한 기운이 에디를 향해 다가왔다.
“조심하십시오!”
소울아머 유저들이 긴장한 얼굴로 외쳤다.
필리어리 왕국의 베프 후작이라면 사실 지휘관이라기보다는 돌격대장에 어울리는 성향을 가진 맹장이었다.
그 덕에 바사 론 카말 왕과도 유대를 가질 수 있었고 말이다.
그만한 실력이 있는 이였다.
그런 이가 목숨을 던지며 달려오고 있었다.
질 싸움은 아니지만 만만히 볼 이는 아니었다.
“걱정 말고. 나머지는 남은 놈을 노려. 허무하게 죽는 꼴은 당하지 마라.”
“예?”
에디의 말에 다들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예우는 해 줘야지.”
에디가 소울포스를 끌어올리며 달려오는 베프 후작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면서 가슴의 소울스톤을 돌렸다.
티킥!
하이급 소울아머의 일 단계 봉인이 풀어진 것이다.
“성능 확인도 하고 말이지.”
에디가 폭주하듯 쏟아져 나오는 소울포스를 검으로 인도하며 베프 후작을 맞이해 나갔다.
콰아아앙!
베프 후작의 칼과 에디의 칼이 맞부닥치자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사방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이 마치 폭풍에 휘말린 것마냥 나뒹굴었다.
“크으!”
에디가 살짝 이를 악물며 잇새로 미소를 머금었다.
손이 저릿할 정도의 일격이었다.
“그게 하이급이라는 물건이구나.”
“그럼 내가 네놈처럼 멍청하게 목숨이라도 걸 줄 알았나?”
“어린놈이 위아래도 없구나.”
베프 후작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하자 에디가 웃으며 대꾸했다.
“전장에선 강한 놈이 어른이지.”
“그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고쳐 주마.”
“해 보든지.”
콰앙! 쾅! 쾅!
베프 후작이 연이어 공격을 가했다.
별다른 기교가 없는 정직한 공격이었지만 최단의 거리를 점하고 날아오기에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힘도 있었다.
에디는 그 공격을 막아 내며 웃음 지었다.
“이거 일 단계를 풀지 않았어도 됐겠는데? 소문만 무성했지 별거 아니…….”
에디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황급히 허리를 뒤로 빼야만 했다.
부와악!
“이런 빌어먹을!”
베프 후작의 발길질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자칫 잘못했으면 남자구실을 못 하게 할 뻔한 일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화악!
순간 눈앞을 뒤덮은 흙모래.
베프 후작이 흙을 뿌렸던 것이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병사가 뿌리는 흙모래와 소울아머 유저가 뿌리는 것이 같은 위력일리는 없었다.
피핏!
손을 들어 뿌려지는 흙모래를 막았지만 자잘한 모래를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일부가 양 볼을 할퀴고 지나갔던 것이다.
소울포스로 보호되고 있었지만 그가 뿌린 흙모래도 소울포스의 힘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물러서는 에디를 향해 베프 후작이 일격을 날렸다.
그 일격은 곁에 있던 노블기사단이 막아 내었다. 하지만 그 힘이 대단했는지 뒤로 휘청였고, 그 틈을 타 베프 후작이 그 노블기사단의 명치어림에 칼을 박아 넣었다.
“커억!”
“쯧, 방해꾼이 있군.”
베프 후작이 칼을 뽑으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나, 이런 황당해서…….”
노블기사단원이 쓰러지는 가운데 뒤로 물러선 에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에도 베프 후작이 이렇게 추잡하게 싸웠다는 소문을 들어 본 적은 없었다.
양 볼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뒤로 물러선 그에게 베프 후작이 말을 이었다.
“어디 바람피우다 마누라에게 걸린 얼굴 같구나. 흐흐흐.”
베프 후작의 말에 에디가 피식 웃으며 쓰러진 노블기사단원을 보며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짓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데 끼어든 노블기사단원이 멍청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그러게 쓸데없이 끼어들었어.”
“언제부터 이렇게 추잡하게 싸웠지? 꼭 실력 없는 놈들이 이런 짓을 하던데.”
에디의 말에 베프 후작이 피식하니 웃으며 반문했다.
“그러게. 언제부터였을까.”
베프 후작이 살소를 흘렸다.
정확히는 고진천 등의 강자들과 싸우면서다. 아니 그들이 먼저 이런 짓을 했다.
그리고 그때 느꼈다. 이게 꽤 효과가 좋다는 것을 말이다.
실실 웃는 베프 후작을 보며 에디가 노기를 띤 채 말했다.
“추잡한 늙은이. 제대로 목을 따 주지.”
에디의 몸에서 소울포스가 성난 들불처럼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