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75
340화 에디가 원한 것
뒤늦게 날아온 마법사들이 서둘러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이내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빌어먹을 놈들 이런 마법에도 중첩을 걸어 놓나?”
마법사들이 서둘러 연신 마법을 펼쳐내었다.
그러자 비로소 균형을 잡은 노블 기사단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적들을 보며 혀를 찼다.
뒤쫓자면 못 쫓을 것도 없지만 이미 꼴사나워진 상황이었다.
거기에 소울포스를 생각한다면 저 뒤를 쫓는 것은 낭비나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놈들.”
에이크 백작이 이를 악물고 돌아서려 할 때 한 마법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 있소?”
“저 그게…….”
그제야 아까 붉은 빛을 떠올린 에이크 백작이 물었다.
“아까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이오.”
“확실하지는 않지만 복수의 각인 같습니다.”
“복수의……각인?”
생소한 것이지만 복수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것만 해도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에이크 백작은 서둘러 몸을 살폈다. 하지만 별 다른 이상은 느끼지 못했다.
“저주의 일종이오?”
“그건 아닙니다만…….”
잠시 머뭇거리던 마법사가 말을 이었다.
“일종의 추적 마법 비슷한 겁니다. 신체상의 피해라든지 그런 것은 없습니다만…….”
“추적 마법?”
에이크 백작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어이없군. 암살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어차피 이들은 본대로 복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런 건 의미가 없다.
그러나 마법사는 약간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까 그 마법사들이 아마도 말린 왕국 출신인 듯 합니다. 그것도 리카르도 대법사의 제자들이고 말입니다.”
“강한자요?”
“집요한 이입니다.”
집요하다는 말에 에이크 백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자의 복수를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현 마법학계에서 가장 끈질긴 인물입니다.”
“어이없군.”
가볍게 피식 웃음을 흘리는 에이크 백작에게 마법사는 다시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표식을 지닌 이중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는 없습니다.”
순간 에이크 백작의 얼굴이 굳었다. 이건 저주라고 하는 것보다 기분이 더 나빴던 것이다.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는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의미이고 또 이 표식이 있는 한 계속 방향과 위치를 시전자에게 알려 주니까요.”
“웃기는군.”
여전히 가볍게 대하는 에이크 백작에게 마법사는 한숨을 푹 쉬고 말을 이었다.
“이건 아직 해지했다는 이도 없습니다. 일단 최선을 다해 마법의 위력을 낮추어 보도록 해 보겠습니다만…….”
“필요없소.”
“예?”
“오면 죽이면 될 일.”
에이크 백작이 서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의 반응에 마법사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어디든 강자의 자존심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법이다.
카버 왕국의 마법사는 더 이상의 설득을 포기했다.
대신 아직 전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물론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말린의 대법사가 여기에 와 있다니…….’
적들의 전력이 점점 더 강력하게 느껴지고 있어 불안할 뿐이었다.
콰콰쾅!
베프 후작의 공격을 에디는 어렵지 않게 막아 내고 있었다.
베프 후작은 목숨을 건 대결이었지만, 에디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에디는 여유를 찾아갔다.
처음의 꼼수에 당황한 것도 사실이지만, 프라임 공작이 공들여 키운 만큼 그 실력은 출중했다.
반면 베프 후작은 입을 꽉 다물고 검을 휘둘렀다.
그런 베프 후작에게 에디가 입을 열었다.
“늙은이. 이제 슬슬 힘이 빠지는구나. 머리가 허옇게 변한 것을 보니.”
머리카락은 이미 허옇게 셌다. 그뿐 아니라 얼굴에는 늙은이마냥 주름이 자글자글 들어섰다.
생명력 고갈이 외부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베프 후작이 눈을 빛냈다.
“어디까지 여유를 부리나 보자꾸나!”
순간 베프 후작의 온몸에서 소울포스가 증폭되기 시작했다.
“응?”
이미 한차례 증폭이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울포스가 미친 듯이 늘어나는 모습에 에디가 살짝 당황했다.
콰앙! 쾅! 쾅!
일격 일격이 강렬했다.
“웃!”
에디는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의 소울포스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일반 소울아머인데…….”
상대의 소울아머는 분명 하이급이 아닌 일반형이었다.
물론 하이급은 시에라 제국만이 보유하고 있는 형태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착각을 할 정도로 지금 베프 후작의 공격은 강렬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에디는 뒷걸음질을 쳐야만 했다. 그때 뒤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그 비명소리는 익히 익숙한 음성이었다. 노블기사단의 목소리였다.
목숨을 던진 소울아머 유저의 힘이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었다.
자신과 달리 서른 명 가까이 포위해서 힘을 빼 놓고 있을 것이 뻔한데 이런 비명이 터질 정도라면 말이다.
또다시 비명이 일었다.
에디는 결국 고개를 돌렸다.
“미친…….”
보자마자 그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베프 후작과 함께 폭주를 선택한 소울아머 유저의 몸에는 칼자루 두 개가 달려 있었다.
누군가가 박아 넣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칼자루에는 그 누군가의 손목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던진 목숨.
살을 주고 뼈를 취한 것이 분명했다.
바닥에는 두 명의 소울아머가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한 명은 손목과 머리가 없었고 다른 한명은 소울아머를 해제한 채 동료들에 의해 뒤로 끌려나오고 있었다. 누르고 있는 배에는 꾸역꾸역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병신 같이. 방심하지 말라니까.”
에디가 욕설을 뱉으며 중얼거리는 순간 강렬한 충격이 그의 손에서 느껴졌다.
콰작!
“큭!”
한눈을 판 덕에 잠시의 틈이 생겼던 모양이었다. 베프 후작의 공격을 흘리지 못하고 그 충격을 그대로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진짜 충격은 그게 아니었다.
콰앙!
“읍!”
베프 후작의 몸통박치기였다.
물론 그 순간 몸을 띄워 충격을 흡수했지만, 뱃속이 뒤집히는 느낌을 받았다.
꽤 강렬한 일격이었던 것이다.
“젠장!”
“네놈이야말로 방심하지 말거라!”
“이런 미친 늙은이!”
순간 베프 후작과 눈이 마주친 에디가 다시 욕설을 뱉었다.
주름져 있던 얼굴이 이제는 뼈 위에 거죽만 남은 것처럼 변해 있었다.
허연 머리카락은 힘없이 뽑혀져 풀풀 날리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베프 후작이 뿜어 내는 힘은 더욱 강렬했다.
최후의 한 줌까지 활활 태워 버리겠다는 듯, 베프 후작은 에디를 연신 밀어붙였다.
그렇게 십 수 번의 공격을 에디가 정신없이 막아 내었다. 그때 틈이 생겼다.
공격 일변도인 탓에 베프 후작의 복부가 빈 것을 느낀 것이었다.
그 순간 에디가 발을 내질렀다.
휘잉!
하지만 그의 발은 닿지 않았다.
“피해?”
몸을 빼내며 에디가 화난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늙은이가 무리를…….”
도발을 위한 말을 뱉으려던 에디의 얼굴이 굳어졌다.
“…….”
“뭐야.”
푸르게 활활 타오르던 불꽃은 더 이상 없었다.
검을 지팡이 삼아 서서 에디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거죽만 남은 얼굴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웃어?”
에디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흘…….”
베프 후작의 입에서 힘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누군가가 달려왔다.
“후작님!”
“흐…….”
베프 후작이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새 몸에 세 개의 검이 더 늘어 다섯 개의 검이 온몸에 박혀 있었다.
심지어 팔 하나도 없었다.
보리스 자작이었다.
“꼴이 말이…… 아니군.”
“흐윽! 흑! 흑!”
보리스 자작 역시 한계였다.
그의 얼굴 역시 가죽만 남은 채였다.
“나 힘이 없네.”
“후작님.”
“부탁하네…….”
그 말과 함께 보리스 자작이 이를 악물고는 그대로 검을 들어 올렸다.
“멈춰!”
순간 에디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에디를 향해 베프 후작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비웃음이다.
에디가 달려드는 순간 보리스 자작의 검이 베프 후작의 심장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달려드는 에디를 향해 몸에 뽑혀 있던 무기를 뽑아 휘둘렀다.
서걱!
이미 힘이 바닥난 이의 공격에 당할 에디는 아니었다.
에디의 검이 보리스의 심장 어름을 베었다.
그러자 보리스 자작이 힘없이 고꾸라졌다.
“이런 빌어먹을…….”
에디는 쓰러진 보리스 자작이 아닌 베프 후작을 바라보고 이를 갈았다.
베프 후작은 검을 짚은 채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런 병신 같은…….”
에디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목적은 이뤘다.
필리어리 왕국의 상징 중 하나를 베었다.
그러나 입맛은 썼다.
끝까지 막다가 끝난 꼴이 되었다.
물론 정신없이 몰린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막다가 끝난 것은 맞았다.
이제 좀 본때를 보여 주려니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두고두고 놀림감 되겠군.”
에디가 씁쓰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보았다.
노블기사단이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철수한다.”
그때 노블기사단원이 물었다.
“머리를 잘라 갈까요?”
그러자 에디가 평온하게 잠든 베프 후작을 보며 절대 그 평온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대로 가져간다. 통으로 가죽을 벗겨 깃발처럼 내걸고 전장에 나설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베프 후작의 시신을 떠메고 자리를 떴다.
* * *
바사 론 카말 왕이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멀리서나마 베프 후작의 마지막 모습을 몰래 담아 온 마법사의 영상을 본 후였다.
“이 친구야……. 이 친구야…….”
약간은 허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필리어리 왕국 진영은 침통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다고 사기가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베프 후작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필리어리 왕국은 침통한 분위기에서도 전의만큼은 더없이 높았다.
복수의 의지를 다짐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바사 왕이 술병을 기울이며 다시 중얼거렸다.
“잘 가게나.”
바사 왕이 비어 버린 술병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의 손에는 오래된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검을 휘둘러야 잠이 들 듯했던 모양이었다.
* * *
“흐음.”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이 바닥에 놓인 미이라 형상의 시신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베프 후작의 시신이었다.
“하나가 죽고 하나가 상했다라. 이것 참.”
소울아머 유저가 하나로만 알았는데 둘이나 되었다.
그리고 몸을 피하려 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목숨을 던지며 남았다.
그 덕에 오십 중에 둘이 희생을 한 것이다.
“쯧, 확실히 물렀어.”
프라임 공작이 혀를 찼다.
소울아머 유저가 목숨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 것인데도 안일하게 대한 노블기사단에 대한 질책이었다.
“죄송합니다.”
에디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이걸로 깃발을 만든다고?”
“예. 허락해 주십시오.”
에디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좋도록. 놈들이 이성을 잃으면 더 재미있지. 단 그 깃발은 네가 책임져라.”
“알겠습니다.”
프라임 공작의 허락에 에디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에디가 원한 것.
바로 베프 후작의 가죽으로 만든 깃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