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77
342화 선물의 결과
시에라 제국 황실의 대전 안에는 더없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테이어 영지의 독립선언.
그 내용을 보면 시에라 초대 황제로부터 얻은 자위권을 보장받은 지역의 군주로서 지금 외세의 침탈로 인해 제국이 흔들리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해당 영지는 제국의 일부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덧붙여 있었다.
그리고 변명처럼 황도에서 거리가 있어 스스로의 자위권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이 덧붙여 있었다.
이와 더불어 내부 정돈이 되면 반드시 시에라 제국의 위기를 타파하는 데에 있어 선봉장이 되겠다는 말도 있었다.
변명이었다.
그리고 어느 측면에서는 합리적인 변명이기도 했다.
실제 초기 개국 공신 가문에 내려져 있는 권리 중 하나가 바로 자위권 행사다.
스스로의 안위를 스스로 챙기겠다는 그런 권리.
물론 당시에는 그게 권리가 아니었다.
초기 공신 가문은 시에라 제국 확장의 선봉장들이었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방패가 되었던 곳들이었다.
다른 곳에서의 영토 확장전쟁을 벌일 때 이곳은 자신들의 힘으로 방패가 되어 인근 국가의 진군을 막아섰던 곳들이었다.
그들이 있어 뒤를 걱정하지 않고 확장 정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방패였던 곳들은 이후 새로운 선봉장들이 되었다.
공격해 오던 적들을 향해 나아가는 최전선에 섰던 것이다.
초기의 시에라 제국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이 무리한 임무를 내려 주었던 것이다.
그런 영지들 태반이 무너져 흔적도 남지 않은 곳들이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이게 권리가 아닌 의무라 불리기도 했다.
그랬던 것이 제국이 바로 서자 권리가 되었던 것뿐이다.
그나마도 시일이 지나며 대 영지들을 절름발이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권리이자 의무 덕에 일정 병력을 유지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기에 항상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 칼날이 되어 되돌아온 것이다.
허덕였던 원인이었던 인근 핵심 영지의 영주들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부터다.
그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제는 사문화되었던 인근 영지의 수호에 대한 조항을 이용하여 장악을 했던 것이다.
스스로의 자위를 위한 권리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존중된다는 초대 황제의 약속을 가지고 지금 이렇게 나왔던 것이다.
“어찌하면 좋겠소.”
리베란 루 비에라 황제의 목소리가 바닥에 깔리듯 낮게 흘러나왔다.
음성의 고저는 낮았지만 그에 담긴 분노는 숨길 수 없었다.
마치 맹수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 했다.
“말이 왜 없소.”
모두 꿀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닫고 있었다.
한쪽에선 쏜튼 폴리어 후작이 초췌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라고 모든 것을 다 살필 수는 없었다. 물론 이런 위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막장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예상까지는 못 했었다.
그가 예상했던 부분은 오히려 그들이 병력 운용권을 가지겠다는 형태로 참전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변수는 일루이먼 부흥군 토벌이었다.
‘역시 가든 후작을 물리는 것이 아니었어.’
가든 후작을 물리도록 결정한 것은 황제다.
그렇다고 그걸 들어서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황제에게 돌릴 수도 없는 것이다.
황제의 결정에 반발을 못한 이유는 그의 결정의 밑바탕에는 그만한 타당성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루이먼 부흥군을 견제해야 할 가장 큰 세력이 바로 지금 독립을 선언한 테이어 영지였던 것이다.
물론 지적이지는 않지만 일루이먼 부흥군 사이에는 힘없는 작은 영지들이 옹기종기 있을 뿐이었다.
그들 절반 이상은 황실의 힘인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생산기지에 가까웠다.
물론 핵심은 일루이먼 부흥군이 장악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크, 큰일났습니다!”
그때 대전으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신을 담당하는 마법사에게 붙여놓은 전령의 음성이었다.
“무슨 일인가!”
내용을 듣지도 않았지만 노기가 먼저 뻗혀 나오는 리베란 황제의 음성이었다.
“바만 영지와 기드만 영지의 영주들이 모두 암살을 당했습니다!”
“허…….”
노기를 비쳤던 리베란 황제마저 전령의 보고에 넋을 놓았다.
“어찌…….”
쏜튼 후작마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두 영지의 영주들이 암살을 당했다는 사실보다도 그 위치가 문제였다.
모두 테이어 영지 인근의 영주들이었다.
또 한 가지.
두 곳은 황실과 연이 없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쏜튼 후작이 이를 악물었다.
“후버 테이어 이 미친 작자.”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쏜튼 후작은 두 영지의 영주가 암살당했다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올린 이가 바로 테이어 영지의 영주인 후버 백작이었다.
* * *
중년의 남자가 깔끔한 단 위에 앉아 보고를 받고 있었다.
“병력 장악을 마쳤습니다. 전하.”
“병사들의 소요는?”
“없었사옵니다.”
중년의 사내는 바로 후버 테이어였다.
그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에라 제국의 안위를 위하여 두 영지들을 일단 본 왕국이 담당하는 것이 최선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그러 하옵니다.”
그의 가신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원인은 찾았는가?”
“휘하 기사단장의 반란이었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즉참했사옵니다.”
아직 피가 마르지 않은 갑주를 입고 보고를 올리는 사내는 신생 테이어 왕국에서 제일가는 무장이었다.
나이는 중년을 지나고 있었지만 그 실력은 시에라 제국에서도 손꼽는다 알려져 있었다.
“고생했네. 이본 공작.”
“아닙니다, 전하.”
테이어 영지의 가신 가문의 수장이기도 했던 그는 테이어 영지가 왕국을 선포하면서 공작 위를 받았다.
두 사내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동시에 묘한 미소가 입가에 자리잡았다.
아니, 둘뿐 아니라 다른 가신들 역시 묘한 미소를 입에 달고 있었다.
두 영지에는 용병과 징집된 병력이 각각 만 오천과 만 삼천 가량이 있었다.
일루이먼 부흥군을 견제하라는 명에 의해 두 영지의 영주들이 끌어 모았던 병력이었다.
그리 큰 세력은 아니었지만 이번 일을 기회 삼으려 했던 것이 분명했다.
또 인근 대 영지인 테이어 영지의 움직임에 위기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황실의 비호를 위해 그런 병력을 끌어 모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병력은 고스란히 신생 테이어 왕국으로 흡수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방비를 더해야 한다. 경들은 왕국의 기틀을 다지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마라.”
“예, 전하!”
가신들의 외침에 신생 테이어 왕국의 왕인 후버 테이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긴장되지 않다면 거짓이다.
시에라 제국은 아직 건재했다.
구십만의 대군이 아직 버티고 있었고, 일부 영토가 적들의 발 아래에 있다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일부일 뿐이었다.
하지만 후버 왕은 이 승부수가 먹힐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대영주들의 행동으로 보아 비슷한 복심을 감추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증거로 아침에 날아온 서신들이 있었다.
그 내용은 그들의 결정이 안타깝지만, 이 또한 제국을 위한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로를 확인한 것이다.
거기에 후버 왕은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한 것에 불과했다.
시작은 가우리가 했지만, 그 방법이 자신들에게 있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도 두 영지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인근 영지의 영주들이 알아서 선택을 할 것이 뻔했다.
어차피 구십만의 대군은 당장 움직이지 못한다.
슬슬 남부의 연합군과 교전거리에 들어섰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들이 방향을 튼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남부 연합군은 황도로 진군을 시작할 것이다.
그게 가장 효과적이니 말이다.
또 그 선택을 안 하더라도 남부 지역을 평정해 나갈 수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북부도 말이다.
“황실에서 연락만 기다리면 되겠군.”
후버 왕은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가 분노하기를 말이다.
그건 또 다른 계기를 주게 되는 일이 될 것이다.
남부 연합군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계기를 말이다.
그때 자신은 다른 대영주들과 함께 당당히 한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들의 힘을 모은다면 못해도 이십만 이상의 병력을 구성할 수 있다.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두 영지의 본보기에 주변 영지들이 고개를 숙인다면 말이다.
가신들이 사라지고 난 뒤 후버 왕은 이본 필립 공작과 함께 남았다.
“황실이 너무 해먹었어.”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린 이들이옵니다.”
“그래.”
황실의 힘이 강하다는 것.
그게 황제의 위를 반석에 올리는 이유였다.
황제가 무슨 일이 당하더라도 황가의 힘이 있는 이상 존속할 수 있다는 자신감.
문제는 그 황가의 힘이 강하기에 피해를 입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공신가다.
제국 초기 열둘의 공신가문이 이제는 다섯밖에 안 남았다.
그중 하나는 이름만 남았고 하나는 위태위태한 상황.
사실 나머지 셋도 한 세대만 더 지나가면 비슷한 처지가 눈에 불 보듯 훤했다.
“가르히의 움직임은 어떤가.”
남은 공신가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영지가 바로 데얀 백작령이었다.
마찬가지로 그 역시 야심가였고, 남부 정벌에 앞장서려다가 황실의 견제로 속을 썩였던 이다.
“아마 그쪽도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선물을 보냈으니 말입니다.”
이본 공작의 선물이라는 말에 후버 왕이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내 선물을 좋아해야 할 터인데 말이지.”
후버 왕의 미소가 점점 진해졌다.
* * *
결정을 미루며 사태를 주시하던 가르히 데얀 백작은 아침에 날아 온 소식에 허탈한 미소를 머금어야만 했다.
“미치겠군.”
인근 영지의 영주 둘이 지난밤에 암살을 당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남부 연합이 꾸민 것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독살이다.
그 형태가 달랐다.
그리고 황실의 뒷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든든한 줄을 잡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는 정도.
“후버 이 정신 나간 놈의 선물인가?”
가르히 백작의 중얼거림에 기사단장인 버스터 필 자작이 신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찌할까요. 지금 두 영지는 공백이 큽니다. 아들들도 모두 당했습니다.”
버스터 자작의 말에 가르히가 진한 웃음을 머금으며 물었다.
“황제라면 내가 아니라 해도 믿겠나?”
그의 질문에 버스터 자작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어떠한 선택을 하시던 제 칼은 준비되어 있나이다.”
그의 말에 가르히 백작이 명을 내렸다.
“지금은 전시 아닌가. 그에 맞는 결정을 해야지. 병력을 보내게. 그게 인근 영지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우리들의 판단 아니겠는가.”
“알겠나이다.”
버스터 자작이 고개를 숙이고는 서재를 나섰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가르히 백작이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예 등을 떠미는구나.”
그의 입가의 미소가 점점 더 진해졌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거 홀로 남아 입을 열었다.
“죽어도 왕으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왕의 길.
그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