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8
강철의 열제 128화
마치 해일이 휩쓸듯, 달려오던 북로셀린 병사들을 덮쳐가는 물살의 모습과는 달리 무언가 부서져 나가는 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으아아.”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비명은 공포를 담고 있었다. 푸른 물결이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물결만이 남았다.
으깨어진 몸통조각들이 갑옷을 이루던 쇳조각과 함께 뒹굴고 있었고, 몸속을 맴돌던 혈액은 갈 곳 없이 땅에 뿌려져 있었다.
“마법사는 빨리 저자를 막아!”
기사들의 당혹에 찬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러나 기사들의 외침 속에 이미 휘가람의 시선은 마법사를 향하고 있었다.
“저, 정령!”
“아니야. 저러한 정령의 힘을 난 본적이 없어!”
마법사들의 눈빛에는 당혹감이 어려 있었고 휘가람이 만들어 놓은 참상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흡!”
공중에 떠 있던 마법사들에게서 휘가람의 눈과 마주치자 놀란 목소리가 짧게 흘렀다.
푸른 귀화가 일렁이는 휘가람의 눈빛에서는 어떠한 감정과 이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등줄기에 흐르던 땀방울을 차갑게 식혀버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가 어떠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움 살라 움타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마법사들의 영창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우리 검수들은 어떠한 공격행동도 멈추고 그저 대열을 다시 가다듬었다.
신뢰.
연휘가람에 대한 신뢰였다.
“파이어 볼!”
“파이어 월!”
“파이어 블레스트!”
마법사들이 내민 손끝에서는 각기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날아갔다. 휘가람의 몸을 맴돌고 있는 물줄기를 기화시킬 듯한 열기가 허공을 갈라갔다.
“이 손길이 가는 공간의 수(水)의 기운들은 나의 의지를 따를 지어다!”
다가오는 불길을 향한 휘가람의 광소성이 울려 퍼졌다.
평소 침착하던 음성과는 달리 광기에 찬 듯한 음성이 허공을 향한 그의 손끝을 타고 마법사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치이이익!
순간, 휘가람을 향해 날아오는 불덩어리와 불기운에서 갑자기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헉!”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
마법사들을 비롯해 허공에서의 격돌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동자에서는 경악이 어렸다.
단지 한마디의 외침과 손을 한 번 휘둘렀음이다. 그런데 날아오는 불의 기운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듯싶더니 휘가람에게 도달하지도 못하고 모조리 소멸된 것이었다.
“하압!”
휘가람의 기합성이 다시 한 번 울렸다.
동시에 소멸되었던 지점에서 파란색의 구슬이 생겨나 마법사들을 향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마법사들을 향해 날아가면서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듯 커지기 시작했다.
“워터…… 볼?”
가장 선두에 있던 마법사의 입에서 자신 없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음성의 주변으로 다른 마법사들의 음성들이 끼어들었다.
“아니야! 워터 볼 따위가 아니야!”
“저게 대체 뭐야!”
평소라면 새로운 발견이라고 눈에 불을 켤 만도 하건만, 아쉽게도 이곳은 전장이었다.
전장에서 마법사들이 상대방의 수법을 알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방어가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그것은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이기도 했다.
쿠쿠쿠쿠쿠!
커지고 있었다.
구슬만 하던 파란 물 덩어리는 이내 사람의 머리통 만해졌고, 마법사들의 얼굴이 파래질 때쯤에는 마법사들을 모두 덮고도 남을 정도로 커져버린 것이다. 그리고도 성이 안 찼는지 사방의 하늘을 덮어버리기라도 하듯 소용돌이치며 계속 커져만 갔다.
“왠지 건조해진 것 같아…….”
멍하니 바라만 보던 북로셀린 병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였다.
지상의 전투는 멈추어 있었다. 그들은 공중에서 이루어지는 격돌을 보며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인 마냥 서 있을 뿐이었다.
“프로텍트 프롬 워터 바리어!”
세살 어린아이라도 휘가람에게서 쏘아져 나간 것이 거대한 물의 덩어리라는 것쯤은 알 것이다. 이에 마법사들은 물 공격을 막기 위한 최적의 주문들을 외웠다. 세 명의 마법사들을 감싼 푸르른 막이 든든하게까지 보였다.
콰콰콰콰콰콰!
물 덩어리가 소용돌이치는 소리가 아까와는 달리 그 크기만큼이나 웅장해 졌다. 마치 폭포수에서 나는 소리처럼…….
“허헉!”
“아, 안돼!”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쏴아아아!
그런데 마법사들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푸르른 막이 마치 빨려나가듯 휘가람이 쏘아 보낸 물 덩어리로 빠르게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경악성을 내뱉는 마법사들에게로 집채만 한 물의 소용돌이가 덮쳐갔다.
콰르르릉!
“끄으아아아!”
마법사들의 몸을 덮쳐버린 물의 소용돌이.
“헉!”
북로셀린 병사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물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자리에 있던 세 명의 마법사들이 마치 온몸의 수분을 몽땅 빨린 듯 앙상하게 말라붙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퍼석.
세 명의 마법사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자 들려온 소리는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아닌 세 덩어리의 재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에 걸맞게 말라비틀어졌던 마법사들의 몸통은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으으!”
푸르던 물줄기는 어느새 붉은 빛을 띠며 북로셀린 병사들과 기사들이 몰려 있던 방향으로 빠르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모두 피해!”
마치 절규와도 같은 경고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미 공포에 사로잡힌 병사들의 몸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했다. 집채만 하던 물의 소용돌이가 마치 헬파이어를 연상케 하는 거대함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콰콰아아앙!
붉은 물의 소용돌이가 땅으로 작렬했다.
제36장 전투의 시작
“음.”
고진천의 눈은 북로셀린 진영의 중앙을 향해 있었다. 미간에 두 줄기의 골이 깊이 파였다.
“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차도 볼 수 있었던 거대한 물의 소용돌이. 그리고 이어진 굉음은 진천으로 하여금 강쇠의 걸음을 재촉 하게 만들었다.
“하야!”
“끼히히힝!”
진천의 입에서 재촉 하는 음성이 나오자 강쇠가 알았다는 듯이 길게 울부짖으며 달려 나갔다.
두두두 두두두!
보기만 해도 육중한 마갑과 진천의 무게가 강쇠에게는 짐조차 되지 않는 듯 다른 말들을 제치고 앞으로 툭 튀어나갔다. 강쇠의 다리는 땅을 부수듯이 박찼고, 땅은 비명을 질렀다.
“우우워어어어!”
진천의 성대에서 지옥에서나 들릴법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소리가 강쇠를 자극했다.
“키히히힝!”
말의 울음이라기보다는 지옥의 마수와도 같은 소리가 강쇠의 입을 뚫고 적진을 향해 울려 퍼졌다.
단 한 기의 인마가 북로셀린 군의 가시장벽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빽빽이 세워진 파이크 병들의 정면으로 달려오는 단 한 기의 기마. 그러나 파이크 병들의 다리에는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파이크의 장벽을 향해 내달리는 한 기의 기마에서 울려오는 인마의 외침 소리는 그들의 전의를 이미 꺾기 시작했다.
“으으으…….”
“당황하지 마라! 궁수들은 시위를 당겨라!”
병사들의 동요를 알아차린 기사가 소드를 휘두르며 외치고 돌아 다녔다. 궁수들의 활에 화살이 매겨지고 있는 가운데 기사는 무리에서 빠져나와 홀로 닥쳐드는 검은 기마를 바라보았다.
‘미친놈!’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지만 기사는 단지 미친 인간 하나가 말을 몰고 달려오는 것이라고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 증거로 그의 소드를 잡은 손아귀에서는 긴장으로 인한 땀이 잔뜩 배어나와 있었다.
두두두두두!
육중한 철갑을 두른 말의 속도로는 지나치게 빨라보였다. 아마도 가속도가 붙었으리라.
“발사준비!”
기사의 목소리가 궁수들의 귀로 흘러들었다. 궁수들은 점점 가까워져오는 진동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활을 위로 치켜 올렸다.
“어?”
긴장으로 말도 못하던 궁수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뭐지?”
병사의 혼잣말은 전쟁 중에 나올 말이 아니었다.
하늘에 보이는 무수한 점.
그것이 시작이었다.
쐐에에엑!
퍼퍼퍽!
“끄아악!”
점으로 보였던 것들은 궁수들의 온 몸으로 파고들며 둔탁한 소음과 함께 살아있는 생명을 꺼트리기 시작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궁수들을 비롯한 병사들에게로 쏟아져 내리자 지휘를 하던 기사들마저 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크아악!”
“방패수! 방패수 어디…… 크억!”
슈퍼퍼퍽!
궁수들의 대열은 기사들의 당황으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가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은 더없는 공포였다.
“쿼렐?”
우왕좌왕하는 병사들과 달리 쓰러진 시체의 몸 뒤쪽으로 비어져 나온 화살촉을 본 기사의 입에서는 황당하다는 음성이 흘러 나왔다.
일반적인 화살의 반 정도의 길이밖에 되지 않는 화살이 여기저기 쓰러진 시체들의 몸통에 박혀있었던 것이다.
“당황하지마라! 적의 쿼렐일 뿐이다!”
“살려줘!”
기사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이미 무너진 대열은 진정할 기미가 없었다. 이를 악문 기사의 소드가 차가운 빛을 뿌렸다.
“이익!”
츠칵!
“아아악!”
기사의 소드는 공포에 질려있는 병사의 팔을 자르고 나서 시간을 조금 둔 후 머리를 잘라내는 것으로 멈추었다. 단지 목숨만을 거둔다면 병사들의 공포심을 붙잡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따르지 않는 자는 명령 불복죄로 즉결처분한다!”
“아악!”
기사의 외침 속에 간간히 즉결 처분당하는 병사들의 비명이 길게 늘어졌다. 팔이 잘린 후 찢어지게 비명을 지르다 머리가 허공에 뜨는 모습으로 인해 궁수들을 비롯한 병사들의 마음을 그나마 잡아들일 수 있었다.
“어서 대열을 갖추어라!”
다행이 기사가 궁수들의 대열을 다시 잡았을 때는 더 이상의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 했다.
콰콰콰콰쾅!
“끼에엑!”
인간의 비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비명이 허공에서 들려왔다.
“이번엔 또 뭐야!”
병사들을 재촉하는 답답한 기사의 마음이 묻어 나오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자연히 비명이 울려나온 허공으로 돌아갔다.
“헉!”
병사들이 날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얼굴 가득 담고 날아오른 병사들은 그나마 나았다. 마치 꼬치가 꿰어지듯 꿰인 서너 명의 병사들이 기다란 창대에서 울부짖는 모습은 전장의 참혹함을 넘어서 있었다. 아니 인간과 인간의 전쟁에서는 볼 수 있을 만한 광경이 아니었다.
“저럴 수가…….”
다른 쪽에 있던 기사들도 그 광경을 목격 했는지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최선두로 달려오던 단 한 기의 기마.
단 한 기의 흑색 기마에 의하여 아비규환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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