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81
346화 군주란
수많은 병사들이 오가는 사이 유난히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끄응. 내가 어쩌다가…….”
불안에 떠는 이는 바로 우중만이었다.
“하아아아.”
요즘은 좀 살 만해졌다.
처음 오크 우리에 던져졌을 때만 해도 그들의 밥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왠지 동질감도 생기고…….
자신의 옛일에 대한 후회도 하다 보니 오크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당히 이례적인 부분이라 한다.
오크들은 강자를 숭상하기에 그들의 우두머리는 항상 부족에서 가장 강한 수컷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왜 우중만이 이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느냐?
이것은 상황의 특이성 때문이었다. 사육되어가고 있는 오크들에게 있어 우중만이 한 일은 무력으로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협상.
물론 우중만은 뒤늦게 찾아온 죄책감과 같은 신세라는 동질감 때문에 요청을 했었을 뿐이다.
또 그것을 일부 들어줌으로써 오크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더 괴물 같은 인간들에게 무언가를 얻어내었다는 것만 해도 신체적 강함과는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빽빽한 우리가 아니라 아직 운신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들만의 마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삶이 달라지자 그것을 얻어낸 중만을 저절로 우두머리로 인식해 나갔던 것이다.
야생동물처럼 직접 사냥을 통해 얻어내는 것이 아닌 협상을 통해 얻어낸다는 것의 차이일 뿐 우두머리의 일을 하는 것은 똑같았던 것이다.
그렇게 오크 무리를 교화시키다 보니 이젠 오크들의 왕이 되어 버렸다.
일단 중만의 삶이 나아졌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전쟁이라니…….”
오크전사들은 이제 많이 익숙해졌다.
중만의 지도와 제제하에 작은 법칙을 깨닫게 되었고, 함께 하는 사회성을 얻었다.
하나의 종족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다시 주어진 것은 함께 싸우는 법이다.
종족을 초월하여 국가라는 울타리에 스스로를 편입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게 아니다.
“왜 내가 여기에…….”
중만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로드 또 운다. 뀌익!”
“울지 마라 로드. 우리가 대신 싸운다.”
“로드 뚝!”
눈물을 흘리던 중만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크들이 허연 송곳니를 드러내며 중만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 오크들을 보며 중만이 말했다.
“카쿠챠.”
“뀌?”
“이빨 매번 닦으라 했냐 안 했냐.”
“다, 닦았다!”
“냄새가 증명한다.”
중만의 말에 카쿠챠라는 오크는 얼굴이 해쓱해졌다. 카쿠챠가 말했다.
“로, 로드는 속일 수 없다!”
“뀌익! 더러운 오크!”
순간 주변의 오크들이 카쿠챠에게 매질을 했다.
“로드를 속였다!”
“뀌이익! 오, 오크 살려!”
퍽! 퍼퍼퍽!
그 모습을 보며 중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안 닦은 건 맞을 일이 아니라니까.”
신나게 패던 오크들이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는 언제 때렸냐는 듯 부동자세를 취했다.
카쿠차가 울면서 이를 나뭇솔로 이를 닦으러 갔다.
“하아.”
다른 건 몰라도 안 씻는 것은 익숙하지가 않았다.
중만은 어디까지나 문명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그와 함께하는 오크들은 인간보다도 더 자주 씻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오죽했음 오크가 향기가 난다는 소리까지 들을까.
“하아.”
“땅 꺼지겠구만 기래.”
“오, 오셨소.”
을지우루의 목소리에 중만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이쯤되면 거의 반사적이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덕에 살면서 부동자세라는 걸 취해 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 꽤 훌륭한 반사신경이었다.
“누가 칼 들고 달리라 했네? 있기만 해도 되는 기야.”
“제, 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중만이 울상을 짓자 우루가 혀를 차며 말했다.
“니보라우. 각자 자리에서 가장 잘 하는 걸 하면 되는 기야.”
“그러니까 말입니다. 우루 장군님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가만 있으라우.”
“예?”
“지금처럼 가만 있으라우.”
우루의 말에 중만은 뭔 소린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우루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지도자라는 거이 말이디.”
“예.”
“때론 가만 있기만 해도 병사들에게 힘이 되는 거이야. 함께 싸우디 않아도 지켜만 봐 줘도 말이디.”
“제가 뭔 그런…….”
중만은 우루의 말이 와 닿지 않는지 실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 오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종족이라 듣기는 했다.
그런데 지금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그와 또 달랐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아이들마냥 눈이 반짝거렸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지도자는 내가 잘났다고 해서 되는 거이 아니디. 하늘이 내리는 것도 죄 구라인 기야.”
“우, 우루 장군.”
“백성들이 만들어 주는 지도자도 있는 거이디.”
뭔가 목이 메인 듯 목구녕이 딱 틀어막힌 느낌이었다.
“반쯤은 그런 지도자가 된 거이야.”
“제, 제가 말입니까…….”
우중만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우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기래. 가식적인 낯짝으로 구라 쳐서 표 얻어서 된 지도자가 아니라 진짜 지도자가 된 거이디.”
“하, 하지만 제가 한 건…….”
솔직히 별로 없었다.
그러나 우루는 다시 고개를 제었다.
“그건 본인이 판단하는 거이 아니디. 저들이 판단하는 기야. 알간?”
우루가 오크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크들이 히죽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중만은 다시 눈 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쯧. 아 새끼래 뻑하면 질질 짜는 거이 꼴 사납다야. 바락바락 대들 때가 차라리 귀엽디.”
우루가 눈물을 글썽이는 중만을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예전과는 달랐다.
“까짓 잘 울면 어떠네? 잘 싸우는 지도자가 있으면 잘 우는 지도자도 있는 거이디. 힘 내라우. 이미 반은 왔어야.”
반이라는 말에 중만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중만을 보며 우루가 다시 말을 이었다.
“왕이 별거 있는거이간? 민심은 천심이랬어야. 민심을 얻었으니 반은 된거 아니네?”
그 말에 중만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동안 누렸던 권력.
그 권력에 취해 있던 나날들에는 몰랐던 것이다.
진짜 누군가를 이끈다는 것.
그게 이런 것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로드 또 운다!”
“로드 뚝!”
“뀌익! 이쁜 암컷 데려올까?”
오크들이 그들의 울보 왕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루가 되돌아 나왔다.
“아 새끼 짐승이랑 있더니 되려 사람됐구만.”
기분 좋은 미소를 임에 머금고 되돌아 나오는 우루였다.
* * *
“요즘 저쪽은 다가가기도 무섭다 야.”
“그러게.”
병사들이 한쪽을 바라보며 질린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에 그 막사가 있던 곳을 대고 다들 이렇게 말했다.
노인정.
말 그대로 노인정이었다.
오십여 명 정도의 노인들이 있는 곳이었다. 쓰잘데기없는 농을 던지며 종종 웃음이 튀어나오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이 며칠 전 시에라 제국의 대군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차가운 한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상체를 벗고 환두대도를 들고 서 있는 노인이 있었다.
머리는 전체가 허연 것이 완연한 백발의 노인이었다.
얼굴에는 세월이 그대로 낙인찍은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하지만 벗고 있는 그 상체에는 그보다 더한 것들이 새겨져 있었다.
전장의 상흔들.
온몸을 뒤덮은 크고 작은 상처들이 주름보다도 더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터질 것만 같은 근육은 그가 평소에 꾸부정하게 다니던 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다.
호오오오.
길고 긴 숨이 입가를 타고 흐르자 미칠듯하게 부풀어져 있던 근육이 한풀 줄어들었다.
“어르신.”
그는 바로 장무 노인이었다.
“왜 부르는가.”
“아직도 정정하십니다요.”
그에게 말을 건 것은 또다른 노인들 중 하나였다.
“끌, 다 늙어서 뭘.”
“아닙니다요. 저희같은 무지렁이가 어르신과 함께한다는 것이 참으로 영광이옵니다요.”
“자네들이 무지렁이면 세상에 무지렁이 아닌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야인이나 마찬가지고, 어르신은 열제 폐하의 근위장이시잖습니까.”
“근위장은 무슨. 다 옛말이고 지금이야 쇠밥 먹는 노인일 뿐이네.”
“흐흐흐.”
장 노인의 답에 다른 노인들이 흐트러지게 웃었다.
한때는 가우리 최강의 검이라 불렸던 적도 있었던 그다.
지금은 그 자리를 내주고 은둔한 지 오래였지만 말이다.
“다시 칼 밥 좀 먹으려니 영 어색하구만.”
“흐흐흐, 어색한 것 치고는 잘도 때려잡으시더만요.”
다들 웃음을 흘렸다.
웃고 있는 노인들의 몸에도 장 노인에 비해 모자라지 않는 전장의 상흔들이 달려 있었다.
당연했다.
젊어서 어린 진천과 전장을 누볐던 백전의 용사들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와서는 모든 전쟁의 선봉에 섰던 이들이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용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타 그놈의 복수도 해야 하고 할 일이 참 많습니다.”
“늘그막에 피 좀 뿌리고 만대를 갈 수 있는 주춧돌 쌓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들 손주의 웃음을 볼 나이건만 눈빛들은 더없이 날카롭고 또렷했다.
“쯧쯔 그냥 칼질이 그리운 건 아니고?”
장 노인의 말에 모두가 다시 웃음들을 터트렸다.
“푸흐흐흐!”
“클클클!”
“이러니 전귀 소릴 듣지.”
평생을 부평초처럼 살아왔던 그들이기에 그동안의 평화가 좀이 쑤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도 한다.
대의.
이들에게 있어 대의는 맘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곳을 만드는 것이 대의다.
예전 정착지가 쓸려나갔을 때 피눈물을 흘렸던 이들이었다.
그래서 이후로 더 독해진 이들이기도 했다.
“까짓 전귀가 되면 어떤가.”
장 노인이 빙긋 웃자 다들 미소를 머금었다.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어르신은 왜 궁을 나오셨었습니까? 폐하를 가르쳤던 것 때문이옵니까?”
누군가가 그의 과거를 물었다.
스스로 칼을 꺾고 나온 그의 과거를 말이다.
장 노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른 노인들 역시 숨을 죽였다.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장 노인이 멀거니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진천의 막사가 있는 방향이었다.
장 노인이 입을 열었다.
“궁에 군주가 없으면 궁이 아닌 법이지.”
“아…….”
아집과 권력에 취한 자들이 득세하던 시기.
전쟁이 이어짐에도 서로를 힐난하던 이들이 있던 시기.
“군주의 자리에 있다하여 다 군주는 아니지.”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노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리가 초라하다 해서 군주인 자가 군자가 아닌 것은 또 아니고 말이지.”
장 노인의 말에 다들 빙긋이 웃었다.
비슷한 마음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열제를 위해 칼을 든 적은 이번이 처음이구먼.”
장 노인이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었다. 그러자 노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열심히 휘둘러야 하실 겁니다.”
“흐흐흐. 우린 여태 많이 휘둘렀습죠.”
그들의 너스레에 장 노인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껄껄껄껄!”
마치 후련하다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