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282
347화 눈앞에 적을 두고
시에라 제국 전역에 전쟁의 불씨가 휘날리고 있었다.
황제의 총동원령에 처음에는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영주들의 독립 이후 서슬이 퍼래진 황실의 시선에 다들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일례로 독립한 영지 인근의 작은 영지 하나가 통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황실은 멀고 신생독립국은 가까운 탓에 두려움에 줄을 대려다가 그 낌새를 알아챈 황실이 인근 영지에 명령을 내린 것이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영주성은 그대로 불타고 일가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여자는 모두 노예로 전리품이 되어 흩어졌으며 영지민들은 승자들의 전리품이 되었다.
그리고 해당 영지는 전부 불태워져 당분간 쓸모없는 땅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어서 독립을 천명한 곳 주변의 영지들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짜는 한 편 동원된 병력의 일부를 그쪽으로 진군 시켰다.
물론 정예병이라고 하기에는 머릿수만 채운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견제는 충분했다.
이는 황실이 그들의 병력이 남부 연합군에 합류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 때문인지 독립한 영지들의 움직임은 방어선을 두텁게 하기 위해 분주했다.
그러나 모든 영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낌새를 알아챈 독립영지들은 병력이 채 모이기도 전에 일부 영지를 들이쳐 무너트리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그 때문에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의 대군과 남부 연합군이 대치하고 있는 곳 이외에도 전장의 불씨는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전장이 아님에도 총동원령을 내린 이후 하루도 빼지 않고 갑주를 입고 대전을 나선 리베란 루 비에라 황제를 은밀히 접견한 쏜튼 폴리어 후작이 입을 열었다.
“카버 왕국에서 일을 벌이기로 했다고 하옵니다.”
“그래? 빌어먹을 놈들 지나치게 조심성만 많은 놈들.”
리베란 황제가 이를 갈았다.
왕국 따위가 같은 위치에서 논의하려는 꼴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로써는 그들에게 좋은 말이 나오기가 힘들었다.
물론 그들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손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멋모르고 시작한 교류에서부터 삐꺽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마법과 술법의 교류다.
그들로부터 마법을 전수 받는 조건으로 이쪽의 술법을 전수를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삐꺽임의 시작이었다.
마법을 가르칠 인재 천여 명을 뽑아 보내었더니 그중에 정작 마법의 재능을 보인 이들은 열다섯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술법은 어지간하면 전수가 가능했었던 것이다.
비교 하자면 이쪽은 이제 마법이 어떤 맛인지 맛을 보는 정도인데 저쪽은 얼추 술법지를 뿌리는 이들이 나올 정도였다.
마법의 특성을 몰랐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지만 왠지 속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황금의 유출도 적지 않았다.
최근 남부 연합군이 제국 땅을 밟은 뒤 헤집어 놓은 통에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들을 통해 보급을 지원받아야만 했었던 것이다.
허나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도 그쪽에서 일을 벌이려면 비축된 것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막대한 황금을 소비하고 나서야 보급의 숨통을 틔웠던 것이다.
그 와중에 이제야 저들이 그쪽 대륙에서 일을 벌인다 하니 다시 욕설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장 전력에 보태야 할 소울아머 유저들이 빠진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이제야 일을 벌이니 좋은 말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전쟁이 끝나면 관계란 언제든 뒤집힐 수 있사옵니다.”
쏜튼 후작의 말에 리베란 황제가 후욱 하고 숨을 몰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좋은 소식이 올 것이옵니다.”
쏜튼 후작이 애써 위로의 말을 건네고는 뒤돌아 나섰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황제의 앞에서와는 달리 영 마뜩찮았다.
“여우같은 놈들.”
그 역시 카버 왕국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대군끼리의 일전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이즈음에 와서 일을 벌인다는 것은 의도한 바가 명확하다는 점이었다.
빼도 박도 못한 시기에 일을 벌여야 가우리를 중심으로 한 남부 연합군의 병력이 뒤로 물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시에라 제국이 이 전쟁을 손쉽게 이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시에라 제국이 큰 피해를 입는 선에서의 승리가 그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결과일 것이다.
만약 이쪽이 압도적으로 이기게 되면 어떠한 형태로든 그쪽 대륙의 이권에 끼어들리라 판단한 것이 뻔했다.
그 시간을 최대한 늦춰서 얻을 것을 얻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우리의 전력을 그 정도로 본다 이것이지. 후회할 것이다.”
쏜튼 후작은 그대로 이빨을 빠드득 갈았다.
* * *
카버 왕국의 샤우 환 카버 국왕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꽤나 답답할 건데 잘도 참는군.”
그의 말에 주변에 모여 있던 귀족들이 슬슬 웃으며 말을 거들었다.
“아마도 전쟁이 끝난 뒤에 제대로 힘을 보여 주겠다는 심산이겠지요.”
“그렇겠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카버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결과가 어찌되리라 보는가.”
“확실히 백만에 가까운 전력을 순식간에 만든 것만 보아도 그들의 부는 이전의 신성제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사옵니다.”
“견제할 세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땅이니까.”
그들도 시에라 제국의 저력에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기사들의 수준이 평균적으로 떨어진다 해도 그 숫자는 이곳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거기에 로우급을 비롯한 소울아머 전력은 정말 탐이 날 정도였다.
그것을 입은 이들을 상대할 전력이 이곳에는 몇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같은 소울아머를 입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말이다.
“반반이옵니다.”
승부 예측에 반반이라는 말에 카버 왕이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그리 보는 것이 분명했다.
“그쪽의 정보로는 지금 가우리의 전력은 지난 전쟁에 비할 바가 아니긴 하지.”
강하다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시에라 제국에서 그들이 벌인 일들을 접한 뒤로는 혀를 찰 정도였다.
“한 나라에 십대 초인이 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입니다.”
“후우.”
그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안되는 전력이었다.
그나마 확장정책을 필 만한 인구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런데도 반이라…….”
그런 경악스러운 전력으로도 반반이라는 말에 카버 왕의 얼굴이 펴지지 못했다.
그만큼 시에라 제국의 전력도 무시무시하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소울아머 유저를 요청한 것이다.
최소한 그들이 붙을 때 즈음에 이쪽 대륙에 혼란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야 기존 신성제국 영역의 국가들을 다시 하나로 만들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다시 제국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시에라 제국의 힘을 등에 업고 가우리 동맹의 한 축을 집어 삼키는 것.
그게 카버 왕국의 일차 목표였다.
이에 더 나아간다면 하이안 왕국까지다.
가우리 제국과 말린 왕국 정도는 시에라 제국에 양보해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훌륭한 방패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카버 왕이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패한다면?”
“패해도 가우리 동맹에 큰 타격이 있지 않겠사옵니까?”
카버 왕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약간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처음 시에라 제국과 손을 잡았을 때와 지금의 상황이 꽤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북부에 그런 전력이 있는지도 몰랐을 때였기 때문이었다.
“인간병기를 최대한 활용한다 하니 아무리 가우리라 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마법전단을 활용한 그 함정이 제대로만 먹히면 가우리의 강자들은 더 이상 두려워 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한 귀족이 애써 부담을 덜려는 듯 말을 이어 붙이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부분에서만큼은 카버 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상대들은 괴물이기에 이 승부를 반반으로 보는 것이다.
“작전 시행은?”
카버 왕의 질문에 귀족 하나가 조용히 답했다.
“이틀 후이옵니다.”
“으음.”
카버 왕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서도 제대로 불이 붙어야 할 터인데.”
“지금이라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초인이 씨가 말랐던 상황에 소울아머의 등장으로 각국들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았다.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복잡했던 각국의 국내사정이 어느정도 해결되면서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도 맞았다.
“이기든 지든 가우리가 큰 타격을 입는 순간 바로 불을 붙이면 되는 거야.”
그렇게만 되어도 이쪽은 여력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시에라 제국도 지금 전장에서 패한다 해도 숨을 돌릴 시간이 생긴다.
지금 다시 백만 이상을 찍어 낼 수 있는 저력이 있는 나라다.
“가우리가 타격을 크게 입고 승리를 한 뒤에 터트리는 것이 최 선의 방법이지.”
카버 왕이 서늘한 시선을 보내었다. 카버 왕국 입장에서는 그것이 최고의 결과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자고.”
카버 왕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 * *
양쪽의 대군이 하루에 일정 거리씩 이동을 했다.
이미 눈 앞에 도시 면적을 넘어가는 대군의 진영이 있음에도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걸음씩 이동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교전은 시작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정찰대들이 소소한 교전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소수의 교전에서 승기를 잡은 것은 남부 연합군이었다.
“빌어먹을!”
그리그가 투구를 내동댕이쳤다.
“오늘도 놓쳤소?”
그리그가 분통을 터트리는 모습에 막내제자인 이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북부 떨거지들도 아니고…….”
그리그가 뒷말을 흐리고 이를 빠드득 갈았다.
“쓰읍.”
그의 말에 이븐은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조우 순간 화살을 쏟아 붙고 그대로 도주를 했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리그가 이동했을때에는 이미 자리에 없었을 것이고 말이다.
최근에 벌어진 잦은 교전의 결과가 다 이랬다.
실제 로우급 유저를 끼어 넣었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먼저 보고,
먼저 쏘고,
먼저 튄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미칠 것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거기에 적들은 숫자도 더 적게 운용했다.
그렇기에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적들의 정찰대 운용에 계속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에라도 빨리 붙고 끝내는 게 좋겠다. 젠장, 이게 뭔지.”
그리그가 주먹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거의 다 왔잖아요. 적어도 내일 모래는 크게 붙겠지.”
이븐의 말에 그리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남부 연합군의 진영을 바라보았다.
“갈가리 찢어 놓겠다.”
그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당장이라도 뛰어들 것 같은 기세로 말이다.
그렇게 이틀이 더 지났다.
시퍼런 새벽부터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