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00
365화 망망대해
전열이 무너지자 도주하던 남부 연합군이 반전하며 화살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도 가도 못하던 시에라 제국군들은 날아오는 화살에 큰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이 대열을 정비했을 때에는 멀어지는 먼지구름만을 바라봐야만 했다.
이런 일은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추격전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멀쩡히 달리다가 갑자기 나타난 함정에 당하기도 했다.
잘 달리던 말이 고꾸라진다던지 갑자기 바닥이 푹 꺼진다던지 말이다.
그 덕에 시에라 제국의 위력정찰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 * *
“고생하셨습니다.”
몇몇 지휘관들이 사방에 널브러진 마법사들과 드워프들에게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위로의 말을 보내었다.
아무리 간단하다지만 하루 만에 그 많은 함정을 만들고 설치했으니 정신은 물론 체력까지 탈탈 털리는 것은 당연했다.
전날 이쪽에서 대응을 위한 위력 정찰을 하며 밀어붙이는 사이 이들은 리셀을 위시한 마법사들을 동원하여 함정을 동시 다발적으로 설치하고 빠진 것이었다.
마법사들이 만들던 스크롤은 모두 사물을 감추는 것이었다.
자세히 살피면 뭔가가 일렁이는 모습이 드러나는 조잡한 수준이었지만, 말을 달리는 입장에서는 그것을 간과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함정이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더 단순했다.
적들의 위력 정찰 규모가 작아야 오백이고 보통은 천 단위가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 정도 숫자가 움직이려면 일정한 규모의 길이 확보되어야만 했다.
그 길에 대해서는 롬 왕국의 길잡이들이 안내를 했다.
그 덕에 미리 만들어 놓은 단순한 함정을 드워프들이 재빨리 가서 설치하고 마법사들이 스크롤을 이용해 마무리했다.
그 외에 설치형 함정은 리셀이 이동 마법을 활용하여 미리 설치된 것을 통으로 옮겼다.
또한 일부 마법사들은 땅을 팠다. 디그 마법을 이용해 일부 대지에 구멍을 여기저기 만들어 놓고 나머지 병사들이 그 위를 살짝 가리고 마찬가지로 스크롤을 이용해 눈가림을 했다.
어차피 발목을 잡기 위한 함정들이었기에 이 정도도 충분했다.
게다가 이런 작전에 이골이 난 가우리 군이었기에 일부는 전쟁 중에 칼질하는 것보다는 삽질하는 게 더 많다고 푸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고생이 빗나가지는 않았는지 시에라 제국군은 무방 비로 움직이다가 크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 * *
“하루 만에 그게 가능한가?”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이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우리군의 특수성 중 하나가 바로 함정을 잘 활용한다는 것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에 사방에 이런 짓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도 못했다.
그 정보를 전해 준 카버 왕국 마법사들도 얼떨떨한 표정들이었다.
에디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답했다.
“아무래도 우리 정찰 병력의 규모가 큰 것을 역이용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제 한차례 기습적으로 그들도 대규모 병력을 운용한 것이 바로 이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끄응.”
에디의 말에 프라임 공작이 인상을 구겼다.
이날 하루 피해만 해도 적지 않았다.
사망자라 해 봐야 삼백 정도다.
그런데 부상자 숫자가 이만에 달했다.
물론 그 부상자들 대부분이 경상자에 가까웠지만 전투력 손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리만 삐끗해도 전투상황에서 제 능력을 보이기 어렵다.
그런 환자가 이만이 늘었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나면 치유가 되지만 그 전에 다시 전투가 벌어질 것이 뻔했다.
“이거 생각보다 머리를 잘 쓰는군. 그리팔 저리가라야. 자기보다 덩치가 큰 적을 상대할 줄 아는 작자들이야.”
프라임 공작의 지적은 정확했다.
이 세상에 오기 전부터 그랬지만, 가우리는 항상 병사들의 수적 열세에서 싸워 왔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대군을 괴롭힐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시에라 제국이 정벌전쟁을 해 오며 상대하던 적들은 모두 수의 열세에서 최선을 다했었기에 나름 그에 대한 방비는 충실한 편이었다.
그들도 알기 때문이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적은 처음이었다.
보통 수가 모자라면 틀어박혀 농성을 하며 시간을 끄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치고 빠지거나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상대하는 적들은 보란 듯 밀고 나와 맞상대하며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전혀 다른 유형의 적인 것이다.
“절묘하게 눈을 가리는군.”
“그렇습니다. 선입견을 잘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수가 적다는 선입견.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이들의 강력함을 앞세운 과단성에 대한 선입견.
이런 것들이 이런 피해를 입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한 것이다.
그때 사방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적이다!
적이 쳐들어 왔다!
“이건 또 뭔가?”
프라임 공작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사방에서 함성이라니.
“놈들이 우리 정찰 병력을 회수한 틈을 타 역공을 들어온 모양입니다!”
함께 막사에 있던 참모가 당황하여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프라임 공작이 인상을 찌푸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멍청이!”
“예?”
“여기 병력이 몇인데 놈들이 멍청이도 아니고 그런단 말이야! 마법사들로부터 이 병력을 뒤덮을 만한 환상 마법은 불가능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나!”
“아…….”
참모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프라임 공작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 가든 후작이 당했다는 그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프라임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의심할 것은 딱 그거 하나였다.
소리를 담아 시끄럽게 구는 것.
프라임 공작이 에디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마법사 친구들에게 협조 요청하고 병사들 좀 다독이도록 해라.”
“예.”
문제는 병사들이었다.
프라임 공작의 명령에 밖으로 나온 에디를 반긴 것은 완전무장을 한 그리그와 이븐 도어였다.
“놈들이 왔다!”
“이참에 싹 쓸어버립시다!”
그리그와 이븐의 말에 에디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때 뒤에서 엡소드가 혀를 차며 다가왔다.
“놈들이 바보도 아니고 정말 쳐들어 왔겠냐?”
“예?”
이븐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대사형인 엡소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그 역시 머리를 긁었다.
뭔가 분위기를 보니 헛짚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가든 후작에게 써먹은 방법인 듯합니다.”
에디가 그리그에게 짧게 설명하자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때 이븐이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뭐? 그걸 누가 속는다고.”
“네가.”
이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되돌아오는 에디의 답에 순간 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리그도 자조적인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나. 젠장, 네놈이 설레발을 쳐서 이런 거잖아!”
“사형! 왜 나 때문이오! 먼저 흥분한 게 누군데!”
“아싸 적이다 하고 먼저 튀어 나간 건 네놈이다!”
“둘 다 입 좀 닥쳐라. 처맞기 전에.”
엡소드의 한마디에 둘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니들이 이 정도면 다른 놈들은 어떻겠냐.”
동시에 그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난장판이었다.
갑주도 차려 입지 않고 무기를 들고 각자 위치를 향해 달려가는 병사들부터, 나름 최선을 다해 병사들을 독려하는 기사들과 지휘관들.
“후우.”
동시에 네 사람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수습이나 하자.”
엡소드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며 걸음을 옮기자 다들 한숨을 쉬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놀리듯 사방에서 울리는 함성소리가 바뀌었다.
우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웃음소리였다.
“정말 짜증나는 놈들이야.”
엡소드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 * *
“평온하군.”
“Shit! 지랄 맞게 평온해.”
푸른 하늘을 구경하며 모로 드러누운 제라르의 중얼거림에 트렌든이 투덜거렸다.
“쯧, 너 같은 놈들을 관심종자라 하드만.”
“노노! 스타성이라 해야지. 이래 봬도 대중의 인기를 가진 몸이었다고. 인류 최강의 격투가가 바로…….”
“그 실력으로?”
“……솔직히 당신들은 괴물이잖아. 난 아직 인간이라고.”
트렌든이 애써 변명을 하자 한쪽에 있던 마법사가 투덜거렸다.
“지랄, 언제는 강철의 히어로 어쩌고 해 놓고선.”
“닥쳐 쟈비스!”
“내 이름은 쟈비스가 아니라고!”
마법사가 발끈하는 모습을 보던 제라르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쟈비스가 아니었어?”
“아닙니다!”
“아니면 말고.”
그렇게 한 사람의 신경을 긁어 버린 제라르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쯤에서 출동이다. 가라 인간 최강 쇠파리.”
“Goddam!”
트렌든이 욕설을 남기고 출동했다. 그가 사라지자 제라르가 입을 열었다.
“쟈비스. 제대로 뺑뺑이 돌려. 이 망망대해를 다 살피려면 시간이 얼마 없다고.”
“쟈비스가 아닙니다요!”
“별명이라 치자.”
“끄응.”
마법사…… 쟈비스는 울상을 지으며 독한 눈으로 수정구를 응시했다.
아마 이 여파는 트렌든이 모두 뒤집어 쓸 것 같았다.
트렌든의 역할은 비행선에서 나와 주변의 바다를 뒤지는 것이었다. 물론 마법사들도 비행 마법을 펼칠 수 있지만 마법적인 처리가 된 트렌든의 마법갑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나석은 충분했기에 비행도 훨씬 오래 할 수 있었고, 또 마법사들에 비해 수 배는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었다.
거기에 마력 탐지를 위한 장치까지 달았으니 움직이는 감지장치나 마찬가지였다.
“저런 걸 레이다라 하던가? 레이더라 하던가.”
“예?”
“있어. 저놈 동네에 있던 물건. 미드 보면 나와.”
“미드는 뭡니까?”
“저놈 나라에서 만든 연극 비슷한 거.”
“예…….”
쟈비스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들어봐야 정신만 사납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렌든은 바다를 살폈다.
처음에야 드넓은 바다를 보며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망망대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봐도 봐도 똑같은 모습.
변화 없는 그림에 심신이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한마디로 지루해 미칠 것 같았다. 괜히 이 갑주를 입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간혹 무인도를 발견했지만 접근해 봐야 감지기는 별 무반응이었고, 딱 보기에도 사람 하나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때였다.
“응?”
제법 커 보이는 섬이 보였다.
왠지 뭔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그쪽으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쟈비스 보여?”
[보입니다.]
“조용히 접근한다. 스텔스 모드 온!”
[굳이 그런 말 안 해도 되지 않습니까?]
“셧업!”
[문 닫으라고요?]
“빌어먹을 통역기.”
투덜거린 트렌든이 그대로 바다를 가르며 날아갔다.
몸을 숨겼다지만 저곳에는 마법사들이 득실거릴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접근을 했다. 속도도 줄이며 말이다.
그러자 신호기가 반응을 했다.
“오호?”
신호기 중앙에 있던 유백색의 마나석이 점차 붉은 빛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마나의 유동이 있다는 의미였다.
[찾았다!]
기운찬 쟈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