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05
370화 다시 울리는 전장의 북소리
“옆자리를 원한다지?”
“예.”
진천의 질문에 가르히 왕이 답했다.
“내 옆자리가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왜?”
진천이 무덤덤하게 되물었다. 그러자 가르히가 답했다.
“원래 한몫 챙기려면 판돈이 커야 하지요.”
한 나라의 왕이라기에는 저속한 표현이었지만 가르히는 거침이 없었다.
“흐음.”
가르히의 현실적인 답에 진천이 까칠해진 턱을 매만지며 지켜보았다.
“기왕 사는 미래 크게 사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어진 가르히의 말에 진천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준비 단단히 하도록. 낙오한다 해서 누군가가 구해 주러 오지 않는다.”
“예.”
이것으로 되었다.
가르히의 숙소는 라이드 왕의 옆에 만들어져 있었다.
데얀 왕국의 병사들은 왕의 친정에 환호를 터트렸다.
그동안 쏟아지던 근심이 한번에 풀리는 모습이었다.
그런 병사들의 환호를 받으며 막사에 들어섰던 가르히 왕은 다시 옆의 막사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라이드 왕이 무장을 갖추고 나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응? 훈련하러 나왔나?”
“뭐, 살려면 해야지 않습니까.”
“그런데 표정은 죽으러 가는 건데.”
라이드 왕의 표정은 가르히 왕의 말마따나 죽으러 가는 사람마냥 푹 죽어 있었다.
“그게…… 가우리의 무장들과 훈련을 하러 가는데 뭐라 설명이 어렵소.”
가우리의 무장들이라는 말에 가르히 왕의 눈이 빛났다.
“강자들이라지?”
“뭔 상상하시는지는 압니다만…….”
쓴 웃음을 짓던 라이드 왕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좋지! 오랜만에 실력 좀 펼쳐 볼까!”
호기롭게 외치는 가르히 왕은 라이드 왕의 입가에 새겨진 잔혹한 미소를 보지 못했다.
“형님.”
라이드 왕이 드러누운 채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
“살아는 계시오?”
라이드 왕의 질문에 가르히 왕이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 던졌다.
“개객기.”
“푸흐흐흐.”
그 때 그들의 옆으로 젊은 청년 하나가 날아와 처박혔다.
“꾸웨에엑!”
비명도 요란했다.
그런 그를 향해 가르히 왕이 고개를 슬쩍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누구…….”
“일루이먼 부흥군의 라임 왕자…… 아니지 이제는 라임 왕이겠군요.”
“끙.”
“내게 이 제의를 처음 한 게 저 친구였소.”
“우라질.”
그 한마디를 던지고 다시 고개를 처박는 가르히 왕의 귓가로 우렁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자 다 쉬었으면 다시 일어들 나시게! 어허허허!”
대무덕의 호탕한 음성이었다.
순간 세 명의 시체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물론 마지막에 날아온 라임 왕은 울상을 지으며 답했다.
“전 지금 날아왔는데…….”
“으허허헛!”
무덕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훈련을 빙자한 생지옥이 뭔지 하나씩 알아갔다.
그날 저녁.
걸레가 되어 돌아온 가르히를 본 버스터 공작이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버스터 공작은 기존 파병된 병력을 점검하느라 가르히 왕을 따르지 못했었다.
물론 호위기사들 역시 왕의 훈련이니 따르지 말라는 말을 듣고 나서지 않았다.
라이드 왕의 조언 때문이었다.
솔직한 이유는 쳐 맞는 꼴을 호위기사들에게까지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물론 라이드 왕의 호위 기사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끌려가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기도 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버스터 공작에게 가르히 왕이 입을 열었다.
“강자들에게 배움을 받는 거네.”
“실력이 어느 정도 입니까.”
순간 가르히 왕이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상상 그 이상이 아니라 상상 밖으로 벗어난 인간들이었다.
실력이나 무지막지함이나.
고민하던 가르히 왕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자네도 하겠는가?”
“전하와 함께라면 어디든 간다 하였사옵니다.”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는 버스터 공작의 어께위에 손을 올리고 있던 가르히 왕의 입가에는 아까 라이드 왕의 미소와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 * *
트렌든은 답답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옆을 바라보았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필리언 제라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헤이 브로.”
“뭐.”
“그 자세로 벌써 다섯 시간째라고.”
제라르는 트렌든을 바라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원래 낚시는 세월을 낚는거다. 모르냐?”
제라르의 말에 트렌든은 입가를 씰룩이며 말했다.
“오케이. 어쩐지 한 마리도 안 잡고 있어서.”
“…….”
“난 그걸로 물고기를 잡는 줄 알았지.”
순간 제라르는 낚싯대로 트렌든을 팰까 고민을 했다.
“디데이는 언제?”
“뭔 말이야?”
결국 낚싯대를 접은 제라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작전 언제 하냐는 거지.”
“전쟁이 시작되는 때.”
“오케이.”
계속 대기만 하고 있으니 온 몸이 쑤시는 트렌든이었다.
그들은 목표물 인근 바다에 비행선을 띄워놓고 모습을 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간간히 마법사들이 장거리 정찰을 하며 그곳의 마법진이 가동되는 시간 간격과 횟수, 그리고 주둔하고 있는 병력 수를 확인을 해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해도 대기가 길어지니 답답한 것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어디 낚시는 처음인데.”
트렌든이 제라르가 접어놓은 낚싯대를 펼쳐서 바다에 드리웠다. 그 모습을 보며 제라르가 픽 하니 웃었다.
“미끼는?”
“오 마이갓!”
순간 트렌든이 놀란 눈으로 제라르를 바라보며 외쳤다.
“왜!”
“난 세월을 낚는데 미끼까지 필요한 줄 몰랐어! 뎀잇! 그런 중요한 걸……응?”
순간 낚싯대가 휘어지며 줄이 팽팽히 당겨졌다.
“예아!”
트렌든이 그걸 그대로 잡아채자 팔뚝보다 큰 물고기가 그대로 끌려 올라왔다.
퍼드덕! 퍼덕!
잡혀 올라온 물고기가 바닥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그걸 본 트렌든이 히죽 웃으며 제라르에게 말했다.
“오케이. 세월을 낚는 데 미끼가 필요하지만 물고기를 낚는 데는 미끼가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군. 땡큐 브로…… 컥!”
어느새 트렌든의 뒤로 돌아간 제라르가 그에게서 배운 것을 써먹고 있었다.
뒤에서 팔뚝을 감아 트렌든의 목을 조이며 제라르가 말했다.
“니 신 만나러 가게 해 줄게.”
트렌든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퍼덕이던 물고기 마냥.
* * *
둥! 둥! 둥!
이른 새벽부터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재정비를 끝낸 두 집단이 서로를 향해 다시 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었다.
“음?”
적진을 바라보던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깃발만 가져다 놓았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긴한데.”
여전히 남부 연합 깃발들 사이에 두 대영주들의 깃발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전면에 여기저기 상징들 속에도 존재했다.
배제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거나 그냥 깃발만 세우고 혼란이 없었던 것처럼 척하거나 둘 중 하나일 수 있었다.
“뭐 상관은 없지.”
프라임 공작은 간단하게 털어버렸다.
그때 적진 주변에서 마법이 폭발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함께 쫓기듯 날아오는 까만 점들.
카버 왕국의 마법사들이었다.
미리 사전에 정찰을 나갔던 이들이었던 것이다.
“꽤 고생하는군.”
“저번에 저들의 예측 때문에 흘린 피가 팔만입니다.”
“그렇긴 하지.”
잠시 뒤 정찰을 마치고 되돌아 온 마법사들의 우두머리가 다가와 보고를 했다.
“저번과 같은 함정은 없습니다. 그리고 적들의 부대 구성이 이전과 거의 동일해 보입니다.”
“결국 쓰는 군. 뭐 롬 왕국이든 데얀 왕국이든 이쪽이 무너지면 자신들도 끝이니 최선을 다해 설득했겠지.”
어느 정도는 예상 범위에 있었기에 프라임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들 했군. 그럼 미리 준비들 잘 하시게.”
“알겠습니다.”
프라임 공작의 말에 마법사들이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되돌아갔다.
그들은 다시 함정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 전투로 마무리 하고 싶구나. 황성이 영 시끄러워서.”
프라임 공작이 불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한쪽에 있던 엡소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젠장, 곁에 있을 때는 입도 뻥긋 못하던 것들이.”
“폐하이시다.”
“예, 스승님.”
불평을 늘어놓던 엡소드는 프라임 공작의 말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저번과 같은 진영으로 간다. 혹시 저번처럼 미친놈들이 있으면 그때는 제대로 맞이하고.”
“예.”
말린 왕국의 소울아머 유저들에 꽤나 놀라긴 했었다.
목숨을 도외시 한 이들의 참전 덕에 선두에 섰던 병력들은 뒤로 물려야만 했다.
말린 왕국의 깃발만 봐도 움찔거리는 것이 영 못써먹을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소울아머 유저들도 그들이라면 치를 떨었다.
나름 그들의 의도대로 공포를 심어주기는 한 것이었다.
하지만 몰라서 당한 거지 이쪽도 알면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있었다.
그 예로 오십여명의 소울아머 유저를 한데 뭉쳐서 대기 시켜 놓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꽤나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저번에 써먹었던 용병들의 숫자도 대충 채워 그 빈자리를 매웠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다들 각자 자리로 움직이도록.”
“예.”
프라임 공작의 명에 참모를 겸 하는 셋째 제자인 에디 프리디오만 남고 각자 흩어졌다.
“자, 오늘은 제대로 얼굴이나 볼 수 있으려나.”
프라임 공작이 기대감을 가지고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물었다.
북소리와 함께 병력이 이동을 시작했다.
기병과 보병들이 보조를 맞추었다. 양 날개에는 중장기병이 그리고 그 뒤에는 언제든 뛰쳐나갈 준비가 된 경기병이 자리를 잡았다.
중앙은 창병과 방패병이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검차를 밀고 있는 오크들이 중갑을 걸치고 전진해 나갔다.
검차 역시 이전처럼 써먹지는 못한다.
기습이나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번에 또 써먹는다면 아마도 중간에 적진에 있는 마법사들이 바닥을 패이게 만들거나 작은 바위 따위를 솟구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달리던 검차가 뒤집힐 공산이 컸다.
결국 이번에야 말로 힘 대 힘의 전투다.
물론 전력 자체는 이전 전투에 비하면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리셀이야 두 말 할 것도 없고 필리언 제라르나 계웅삼의 검수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적지 않았다.
거기에 말린 왕국도 빠지게 되면서 저번 전투에 보여준 그들의 신위를 기약할 수 없었다.
그들의 마법 전단도 말이다.
또 트렌든 역시 생각지도 못한 공을 세워 주었던 이였기에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진전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을 대신할 이들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바로 새로이 초인의 반열에 오른 검수가 둘이나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백에서 둘이라는 숫자가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평생을 가도 초인이 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적은 숫자라 볼 수 없었다.
거기에 추가로 가능성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나름의 비장의 무기를 숨긴 채 가우리의 남부 연합군이 시에라 제국군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