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11
377화 멈추면 죽는다
* * *
“재빨리 걸어 잠궜구먼.”
헬리오스 바이칼 공작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시에라 쪽은 황성 안의 별궁이라 바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거 우리는 좀 아쉽군.”
“아마도 규모의 차이가 있는 이유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겠군. 왕성치고는 협소한 편이니.”
카버 왕국의 왕성은 왕성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원래는 카버 왕국 이전의 영주 성의 규모였기 때문이었다.
카버 왕국이 북부의 패자가 되었지만 카버 왕은 새로운 왕성의 건축을 미뤘었다.
그의 야심은 신성제국의 재통일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 후에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새로운 황성을 지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의 왕성이 규모면에서 작을 수밖에 없었다.
카버 왕국 입장에서는 불행 중 다행인 상황이었다.
물론 위기는 여전했다.
“적들의 규모는 어떠한가?”
바이칼 공작의 질문에 참모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보이는 것만으로는 아직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성의 규모상 최대한 끌어 모은다면 만에서 만 오천 정도를 예상하고 있사옵니다.”
참모의 보고에 바이칼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약간 부족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뭐 그렇다고 무너트리지 못할 이유는 없지.”
바이칼 공작이 눈을 빛냈다.
카버 왕국 공략은 여러 의미를 두고 있는 전투였다.
되살아나려는 신성제국의 잔재를 다시 꺾어 버리는 것, 그리고 다시 대륙에 가우리를 중심으로 한 동맹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투웅! 퉁! 퉁!
미리 로셀린 왕국에서 준비해 온 공성병기가 조립이 끝이 났는지 연달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위들을 날려 올렸다.
콰쾅! 쾅!
몇 개의 바위가 성벽을 두드렸지만 마법 방어가 펼쳐진 상황이었는지 큰 피해는 없어 보였다.
“기습인데도 방비가 꽤 빠르군.”
“그건 좀 아쉽긴 합니다.”
곧바로 카버 왕국의 왕성으로 진입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모자랐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적들의 반격이 날아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문만 걸어 잠그고 있는 정도라는 의미였다.
“시간이 좀 걸려도 어쩔 수 없지. 병력 진군 시키게.”
바이칼 공작이 결정을 내렸는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잠시 후 말린 왕국의 병력이 선두에서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기도 했다.
이 인근에 어느 정도 규모의 병력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이들 병력이 우세라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난다면 어떤 상황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두고 함락을 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그나마 지금 상황상 적들도 많은 병력이 곧바로 달려올 수 없다는 점이었다.
로셀린 왕국이나 친 로셀린 성향의 국가들 인근으로 카버 왕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무력시위를 위해 전진배치 되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전격적으로 움직였고, 또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정예만을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에라 제국과의 일전을 벌이는 병력에는 누수가 있지만 그것은 가우리의 저력을 믿기로 했다.
믿지 않았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말린 왕국의 병력이 성벽으로 다가갈 때 즘에야 화살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화살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고무적인 것도 있었다.
“적 마법 전력이 생각보다 약합니다.”
이쪽의 마법전단이 날아올라 성벽을 두드리는데 날아오는 반격이 미미하다는 점이었다.
참모의 말에 바이칼 공작이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짓기는 했다. 하지만 이내 그럴 수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에라 제국으로 꽤 많은 숫자의 마법사들을 보냈으니까. 용병 마법사들을 활용한 모습도 보였지만 한계는 있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습니다.”
참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연합군의 마법전력을 상대하기 위해 카버 왕국은 적지 않은 마법전력을 쏟아부은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소울아머 유저를 조심해야겠지.”
“그건 그렇습니다.”
바이칼 공작이 염려하는 바를 참모도 이해했다.
소울아머의 단점이 아무리 신경 쓰인다 해도 곧바로 전력이 올라가는 병기를 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충분히 활용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쪽도 은퇴했던 이들에 한한 것이지만 말린 왕국의 기사들이 스스로 소울아머를 입었기에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했다.
“있어도 상관없지. 그래서 내가 온 것 아닌가?”
바이칼 공작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신감 넘치는 웃음이었다.
콰쾅! 쾅!
성벽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마, 마나석이 버티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어 마법이 훼손되었습니다!”
“궁수들을 빨리 움직여!”
카버 왕성의 지휘관들은 외성에서 악을 써대고 있었다.
병사들이 속속들이 배치되고는 있었지만 한 번에 병력이 몰리는 탓에 제대로 정돈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문이라도 빨리 걸어 닫았기에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적들도 이 틈새를 노리고 맹공을 퍼부어 왔다.
그 탓에 병력의 배치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 날아드는 화살들이 많아지면서 병사들이 적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화살에 맞아 고꾸라졌다.
그때 마법사들이 일제히 방어 마법을 성벽 위로 펼쳐 내었다. 그러자 뿌연 막이 서렸다.
물론 그 위를 두들기는 연합군의 공격에 방어마법이 자주 깨어져 나갔지만, 병사들에게는 약간이라도 여유가 생길 수 있었다.
성벽 위로 올라선 병사들을 맞이한 것은 어느새 성벽을 기어오르는 말린 왕국과 로셀린 왕국의 연합군 병력들이었다.
일부 성벽 위로는 기사들이 올라서서 점점 점유공간을 늘려가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
“성문을 사수하라!”
카버 왕국 병사들은 성벽과 성문을 사수하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 * *
필리어리 왕국의 귀족들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져 갔다.
시에라 제국 쪽에 펼쳐진 기묘한 깃발.
그 형상을 보아 인간의 거죽임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거죽 위에 대롱거리는 머리통이 왠지 익숙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 밑으로 두루마리가 펼쳐지며 그 인간가죽으로 만든 깃발의 정체를 알게 해 주었다.
바로 필리어리 왕국의 베프 후작이었다.
‘필리어리의 베프 후작 여기에 휘날리다.’
명백한 조롱이었다.
“으아아아!”
필리어리 왕국의 기사들이 거칠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베프 후작 각하를 모셔 와라!”
“공격하라!”
필리어리 왕국 병사들이 일제히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 탓에 전진하는 대열이 약간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베프 후작은 영웅이었고, 또 그가 마지막까지 보여준 모습에 필 리어리 왕국의 병사들과 기사들은 그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저렇게 처절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으니 흥분을 안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깃발의 위치가 묘했다.
시에라 제국의 대열 앞이었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이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필리어리 왕국의 병력이 빠르게 이동을 해 나가자 그 모습을 뒤늦게 본 레비언 고윈이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적의 의도는 단순했다.
흥분을 유도해서 대열을 흩트리는 것.
고윈은 필리어리 왕국의 병력을 다시 원위치 시키려 했으나 이미 그들은 그 깃발을 사수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억지로 막는다면 그것 또한 사기를 꺾는 일이 될 것이다.
거기에 지금 필리어리 왕국의 정예들이 이탈한 상황이라 병력 장악력이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치겠군.”
고윈은 재빨리 전장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깃발이 움직이는 뒤쪽으로 일단의 기마대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그 기마대로 흐트러진 대열을 무너트리려 할 것이 뻔했다.
“이것 참.”
이쪽을 바라보니 이쪽의 기마대는 이미 다른 쪽에 배치가 되어 있어 출동한다 해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할 수 없지.”
한숨을 내 쉰 고윈이 뒤를 돌아 보았다.
눈을 멀뚱거리며 뜨고 있는 기동군단의 모습이 보였다.
“달릴 준비해라!”
순간 병사들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이전 전장에서는 달리는 건 거의 견제 후 퇴각할 때였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병력을 향해 고윈이 말을 이었다.
“이전과 같다. 달리라면 달리고 죽이라면 죽인다. 뒤처지는 동료는 과감하게 명복을 빌어 줘라. 남겨진 자는 미련을 버려라.”
고윈의 말에 병사들이 얼굴을 굳혔다.
비정한 말이지만, 저 말은 모두 자신들을 위한 말이라는 것을 안다.
절대로 뒤처지지 말라는 의미와도 같았다.
그런 병사들에게 고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거 하나만 기억하라. 우린 멈추면 죽는다.”
고윈의 말에 병사들이 한 목소리로 답했다.
“멈추면 죽는다!”
쩌렁 쩌렁한 외침이 터져나갔다.
고윈은 그런 병사들을 뒤로하고 깃발을 올렸다.
단독작전에 돌입한다는 허가를 구하는 깃발이었다.
잠시 후 허가한다는 의미를 담은 깃발이 솟아올랐다.
“가자!”
고윈이 말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 오만여 병력이 천천히 속도를 높여 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효과가 좋군.”
베프 후작의 거죽으로 만든 깃발을 올려다보며 에디는 피식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러며 전진해 오는 필리어리 병력을 슬쩍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걸려든 느낌이 없잖아 있을 정도였다.
“으음.”
그런데 약간 느낌이 묘했다.
카말 왕국 쪽은 반응이 느렸다.
이쯤 되면 가장 먼저 튀어나올 만한 사람이 있는데도 말이다.
“바사 론 카말왕이 이 상황에서 참는다고?”
에디의 중얼거림에 뒤에 있던 노블 기사단의 일원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개가 똥을 참지요.”
“그렇지.”
“응?”
그제야 에디가 중얼거린 것의 의미를 안 소울아머 유저가 살짝 얼굴을 굳혔다.
카말 왕국 쪽 반응이 없다는 것을 그도 느낀 것이다.
“바사 왕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이 전쟁에 그가 없다고?”
“아, 아닙니다.”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이런 전투에 그가 빠지는 것 역시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잘 풀리는 것 같으면서도 기묘한 느낌을 지우지 못하는 에디였다.
“이상한데.”
정기 보고 시간이 되어 연락을 시도했던 카버 왕국의 통신 마법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통신이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시에라 제국 황성에 이 소식을 전달하면 그쪽에서 본국으로 전달한다.
그런데 지금 시에라 제국 황성과의 통신이 연결되지 않고 있었다.
“이, 이상하네. 이봐! 주변 통신 방해가 있는지 파악 좀 해봐!”
통신 마법사의 외침에 곁에 있던 마법사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이 넓은 전장에 그런 짓을 누가 하겠어? 그 마력 가지고 한 발이라도 더 날리지.”
“그, 그렇지?”
“거기에 그런 게 펼쳐졌다면 우리가 못 느낄 리도 없잖아.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동료 마법사의 말에 통신 마법사가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방해 마법장도 없는데 통신이 안 되는 건 무슨 이유지?”
“뭐?”
순간 마법사들의 얼굴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