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13
379화 황성으로 침투하라
“저건 또 뭐야?”
에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필리어리 왕국의 병력을 잘라먹기 위해 기동 중이던 기병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저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일부 병력은 낙마를 하여 바닥으로 뒹굴고 있었다.
그런 기병들을 향해 일단의 병력이 빠르게 내달려오고 있었다.
“일루이먼?”
일루이먼 부흥군의 깃발과 이상한 형태의 새로운 깃발이 달려 있었다.
“이런!”
보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속도로 달려온 그들은 낙마한 기병들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속도가 저하된 기병들을 향해 갈고리가 달린 창날로 끌어내리는 등, 대 기병 전술의 최적화를 보여 주었다.
물론 기병들은 그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빠르게 대열을 정비하고 다시 전투에 임했다.
그러나 이미 일루이먼군의 대열은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뒤로 도주 하면서 연신 기병들을 향해 뭔가를 일제히 집어던졌다.
촤라라락!
“돌멩이?”
딱봐도 돌멩이다.
별다른 건 없었다.
그러나 그 돌멩이를 던진 숫자가 족히 수천은 되었다.
물론 수천 개의 돌멩이 중 기병들을 맞춘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박처럼 쏟아지는 돌멩이의 세례는 부담을 가질 만했다.
최소한 말들에게는 꽤나 거슬리는 일이었다.
“정말이지…….”
에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그들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었다.
사람 복장 터질 정도로 뛰며 성가시게 구는 데에만 집중된 병력.
그 평가에 딱 어울렸다.
“그러고 보니.”
에디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이번 전투에 끼어들었던 가든 후작이 뒤늦게 기억난 것이었다.
“열 받을 만하군.”
에디가 씁쓰레한 미소를 머금었다.
오만여 병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십수 명의 기마.
딱 봐도 가든 후작임을 알 수 있었다. 가든 후작의 이동경로를 보며 에디는 다시 혀를 내둘렀다.
오만여 병력이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아무리 이 전쟁이 도합 백오십 만에 가까운 병력이 움직인다 해도 오만이라는 숫자는 대 병력이었다.
그런데 그만한 병력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달리는 그들을 향해 화살들이 쏟아졌음에도 외곽의 병력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방패를 들어 올리며 빠르게 이탈을 해 나가고 있었다.
물론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병력이 있기는 했지만 그게 또 놀라웠다.
그대로 멈추어 서더니 뭔가를 또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낙오된 병력끼리 모이더니 방패를 한쪽에 올려 소규모 군진을 만들며 버티기 시작한 것이다.
버티다 살면 사는 거고 아니더라도 대신 표적이 되어주는 형태다.
마치 도마뱀이 꼬리를 잘라내는 것처럼 말이다.
미리 약속된 행동임이 분명했다.
“가든 후작이 고생하실만 했군.”
에디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가든 후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대 병력을 십수 명의 기마가 쫓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가든 후작은 빠르게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꽁무니를 거의 따라잡았다 싶을 때 즈음이었다.
뒤쪽의 병력들이 일제히 또 뭔가를 집어던진 것이다.
펑! 퍼엉!
“뭐야 이거!”
족히 수십 개는 되는 주머니들이 날아왔다. 그리고 그것들이 바닥에 닿는 순간 작은 폭음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순간 마법공격인가 싶었지만 이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치겠구나…….”
가든 후작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뿌연 먼지 같은 것이 시야를 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너머로 적들의 꽁무니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를 펼쳐 놓은 것만 같았다.
가든 후작이 그 연기를 뚫고 나가기 시작했다.
“이딴 잔재주를!”
그렇게 연막 안으로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쿠엣취!”
“끼히히힝!”
“쿨럭!”
“아악! 내 눈!”
순간 연막에 들어섰던 이들이 일제히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가든 후작 역시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씨앙놈의 새끼드으으을!”
가든 후작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다.
그냥 연막이 아니었다.
뭔가 매운 것이 섞인 가루를 뿌린 것이었다.
그것을 살짝 들이키기만 했음에도 눈코가 따가웠고 심지어 콧속과 목구녕 속은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사람이 이런데 말은 오죽했겠는가.
말이 미친 듯이 난동을 피웠다.
기수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아니 대다수 기수들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어찌 말을 다독이겠는가.
순간 말 위에서 뛰어내린 가든 후작이 칼로 자신의 말 머리를 잘라 버렸다.
순간 그 절단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자 가든 후작이 그걸로 목을 축이며 시선을 돌렸다.
비릿한 피맛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조금 전까지 타들어가는 것 같던 느낌은 많이 줄어들었다.
마침 바람이 불어와 뭉쳐있던 연기가 흐트러졌다.
“쿨룩.”
잔기침을 흘린 가든 후작이 서둘러 시선을 돌려보았다.
“젠장.”
이미 뒤쫓던 적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자신을 따르던 이들이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쿨룩! 후, 후작님!”
헨리 백작이 눈이라도 멀어 버린 것 마냥 찔끔 감고 손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이젠 하다하다 별 짓을 다하는 구나.”
때로 불을 이용해 이와 유사한 전술을 쓰기도 하지만 이렇게 무기처럼 활용하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심지어 독도 아니었다.
그랬다면 아예 소울포스가 작용을 해서 독성을 해소 시켰을 것이다.
그냥 단지 매울 뿐이다.
“일단 뒤로 물리자. 꼴이 더러워서 뭘 못하겠다.”
가든 후작이 이를 악물고는 뒤로 걸음을 물렸다.
* * *
십여 개의 불 거인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침입자를 막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다.
“이건 뭐 갑자기 나타나?”
달리던 필리언 제라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카사 백작이 대답했다.
“이거 원래 있는 장치입니다. 적들이 갑자기 덤벼오면 막게끔 술법으로 준비를 해 놓은 겁니다. 그래서 함정이 있을 수 있다고 한 거고 말입니다.”
그 말을 하며 여태 길잡이 역할을 한 배반자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거 이제 쓸모없어졌네.”
제라르가 몇 마디 툭 던지자 배반자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나 이거야 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제라르가 몸을 옆으로 날렸다.
콰콰콰콰!
불거인이 쏘아낸 불기운이 그가 있던 자리를 스쳐지나간 것이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카말 왕국의 기사 둘이 까맣게 탄 채 옆으로 쓰러졌다.
“리셀은?”
제라르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정말 화려하게 싸우고 있었다.
사방으로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술법사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트렌든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적들을 하나씩 줄여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도 바쁘네.”
불거인들이 기함을 터트리며 크게 한걸음을 내딛어왔다.
“뒤, 뒷길이 있긴 합니다!”
길잡이로 데려온 황성의 배반자는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런 함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이었다.
당장 자신의 목을 베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말한 것이었다.
“카사. 따라가! 애들 붙여 줄게!”
“네에?”
“가라고!”
그 말과 함께 제라르가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그의 몸 주변으로 뇌전이 어리기 시작했다.
콰치치치!
자잘한 뇌전이 마치 그를 중심으로 마치 소용돌이치듯 맴돌기 시작했다.
콰앙!
제라르가 크게 발을 내딛으며 롱소드를 휘둘렀다.
파지지지직!
마치 초승달과 같은 뇌전의 기운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퍼어엉!
그때 가장 가까이에 다가온 불거인이 폭음을 만들어 내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어 제라르는 그대로 또 한 기의 불거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퍼엉!
또다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이크크!”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불거인의 뒤에 내려선 제라르가 온몸이 그을린 채로 팔딱거렸다.
뜨겁긴 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제라르는 계속 불 거인을 두들겨 나갔다.
그 뒤를 따라 카말 왕국과 필리어리 왕국의 소울아머 유저들도 달려들었다.
제라르와 달리 그들이 공격을 가한 불거인은 팔다리가 잘려나갔음에도 다시 몸을 붙이고 있었다.
“이거 연휘가람 그 양반이 할 때는 쉬워 보이더니…….”
또다시 한기의 불 거인을 와해시킨 제라르가 혀를 내둘렀다.
아직 절반도 못 해치웠지만 벌써 갑주가 벌겋게 달아올랐던 것이다.
물론 막는 입장에서는 경악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뒤에 늦게 도착한 마법사들이 대응을 시작했다.
“부, 불거인이 이제 다섯 기밖에 안 남았습니다!”
황성의 내성 안쪽에서 밖을 살피던 술법사가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야!”
황성의 방어를 맡고 있던 술법사들이 연신 아우성을 쳤다.
황성의 방어용인만큼 전장에서 바로바로 불러내는 불거인과는 또 틀렸다.
밀도도 높았고, 신체의 단단함도 달랐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없애는 것이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런 것을 벌써 절반이나 날려 먹은 것이다.
“소울아머 유저들은?”
“오고 있습니다!”
“와야 막는다! 최소한 황성 안으로 적들이 발을 들이지는 못해야 한다!”
“예!”
“명심해라! 황성 안으로 놈들이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막아도 산 목숨이 아니야!”
황성도 황성이지만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열심히 싸워야만 했다.
그렇게 시에라 황성의 방어병들이 나름 목숨을 걸고 분전을 해 나가고 있었다.
그 때 접전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일단의 무리들이 조심스럽게 이동해 왔다.
“여긴?”
“아까 말한 뒷길입니다.”
“확실해?”
카사 백작이 조심스럽게 묻자 배반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무슨 길인데?”
“그…….”
순간 배반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밤 나들이 갈 때에…….”
그 말에 카사 백작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너, 남자구나!”
“가, 감사합니다.”
“안내해.”
“……예.”
카사 백작의 명령에 배반자는 조심스럽게 수풀을 뒤져 뭔가를 들춰내었다.
그러자 작은 입구가 눈에 보였다.
그 안으로 배반자가 조심스럽게 기어들어갔다.
“흐음.”
카사 백작이 안으로 들어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다듬어지지 않은 토굴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만 많이 드나들었는지 주변이 좀 멘들거리는 느낌이 났다.
“이거 어디로 연결된 거지?”
카사 백작의 질문에 배반자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빨래 모아 놓은 곳입니다.”
“빨래?”
“원래 이곳이 창고 터였는데 예전에 비가 불면서 땅이 꺼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딱 사람 하나 드나들 공간이 생기는 바람에…….”
“이거 밤나들이 말고도 이 길로 뭐 좀 빼돌렸겠는데?”
카사 백작의 중얼거림에 앞서가던 배반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괜찮아. 지금은 더한 짓을 하고 있으니까.”
“예…….”
왠지 울상을 짓는 듯한 배반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 배반자를 선두에 둔 이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