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17
383화 태풍과 같이
* * *
기병이 양측을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드디어 본대들도 상대방을 향해 발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양측 도합 백오십만에 달하는 병력이었지만, 마치 한 덩어리들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남부 연합군이야 시에라 제국 깊숙이 들어서면서 계속된 작전으로 인해 정예화가 되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징집병이었던 시에라 제국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거기에 초전에 피해를 보기는 했지만 그때 참전했던 경험이 병사들에게는 큰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양측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드디어 서로의 간격이 몇 호흡이면 다다를 때까지 다가왔다.
시작은 고진천이었다.
“흐읍!”
그간 귀찮게 들고 다니던 머리통을 주렁주렁 꿰고 있던 창대를 그대로 전방으로 날려 보냈다.
무게가 상당할 텐데도 일직선으로 날아간 삭은 그대로 선두의 기병을 날려 버렸다.
마지막 창대에 꿰인 희생자였던 것이다.
이어 진천은 활을 꺼내 들었다.
앞서 던진 창대가 신호였을까?
진천이 활을 들어 화살을 재는 순간 거의 동시에 뒤를 따르는 병력들이 일제히 화살을 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마주 오던 시에라 제국의 기병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딱 봐도 묵직한 중갑 기병이 활을 꺼내드는 모습에 놀란 것이다.
물론 사전에 들은 바는 있는지라 부랴부랴 방패를 들었지만 그보다 빨리 화살이 날았다.
투투투투투!
사방에서 까맣게 화살이 날았다.
선두에는 불과 몇 호흡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화살이 직사로 쏟아져 나왔고, 바로 뒤로는 수만 대의 화살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시에라 제국 측에서는 몇 천은 되는 기마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와 함께 대열이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 제일 먼저 화살을 날렸던 진천이 강쇠와 함께 내달렸다.
그런 진천을 향해 시에라 제국의 소울아머 유저 셋이 거의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까와 달리 진천의 양 옆으로도 소울아머 유저 둘이 따라붙고 있었다.
바로 롬 왕국과 데얀 왕국의 왕들이었다.
각기 왕이기 이전에 무를 쌓았던 이들이었다.
콰콰쾅!
격돌과 동시에 균열이 갔다.
진천의 일격을 막아선 시에라 제국의 소울아머 유저가 뒷걸음을 치는 사이, 진천의 환두대도가 롬 왕국의 왕을 상대하던 소울아머 유저의 뒷목을 쳐버렸다.
“이런 비겁한!”
“병신이군.”
비겁 운운하는 소울아머 유저를 보며 진천이 피식 웃었다.
그 하나를 노리고 셋이 달려들었던 이들 입에서 나온 것 치고는 궁색한 변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격돌하자마자 하나가 기습적으로 목이 달아났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소울아머 유저가 이리 쉽게 죽어 나가는 것이 적응이 안 됐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것 치고는 이후 공격에 나름 선방을 하기 시작했다.
두 명에 불과하지만 진천을 비롯한 다른 두 명의 공격에 잘 버텨 나갔다.
그러는 사이 뒤쪽에서 서로 달려온 기병들 간의 대전이 펼쳐졌다.
양쪽에서 쭉 내민 창대들이 서로를 교차해 나갔다.
콰직! 콱!
순간 중앙에서 창대들이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그 와중에 일부는 창대에 맞아 뒤로 날아가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러나 대다수는 시에라 제국 기병들이었다.
일단 무게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말들의 질도 차이가 컸다.
전부는 아니지만 선두 대열에 나서있는 개마기병들의 말들은 상당수가 퓨켈과의 교배종인 퓨마였다.
또 그중 일부는 퓨켈이었다.
물론 퓨켈을 탄 이들은 단순한 개마기병이 아닌 묵갑귀마대원이었고 말이다.
그들이 맞이한 것은 상대 소울아머 유저들이었다.
물론 홀로 맞서지는 않았다.
개마기병과 조를 짜듯이 함께 움직여 나갔다.
선두에서 막으면 뒤이어 달려온 개마기병들이 창대로 소울아머 유저를 견제했다.
소울포스가 보호하는 몸을 뚫기는 어려웠지만 물리적인 충격력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우지끈!
“젠장!”
이미 부러진 창이었음에도 그것을 활용해 옆구리를 후려치자 그 충격력에 몸이 잠시 휘청일 지경이었다.
물론 후려친 창대는 아예 산산히 조각이 났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콰직!
환두대도가 롱소드의 옆면을 후려치자 흔들렸던 균형 탓에 재차 공격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때 공격을 가한 묵갑귀마대원이 말머리를 돌리면서 발을 들어 말의 대가리를 걷어찼다.
“끼히히힝!”
머리통을 가격당한 말이 휘청거리는 순간 소울아머 유저가 훌쩍 뛰어내렸다.
차라리 말이 없는게 나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뛰어내리는 순간 묵갑귀마대원이 몸통으로 밀어 쳐버렸다.
“어윽!”
순간 밀려 나간 소울아머 유저가 비틀거리며 바닥에 겨우 내려섰다.
그런 소울아머 유저를 향해 환두대도가 떨어져 내렸다.
콰직!
환두대도에 실린 힘에 한쪽 무릎이 꿇려졌다.
“이새끼!”
하지만 소울아머유저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그대로 롱소드를 휘둘렀다.
말의 다리라도 잘라 버리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를 환두대도로 내리친 이는 이미 멀어져서 또 다른 아군의 가슴팍에 칼을 박아 넣고 있었다.
마치 지나간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그 모습에 열이 치솟은 시에라 제국의 소울아머 유저가 욕설을 뱉었다.
“이런 개…….”
하지만 욕설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갑자기 뒤에서 느껴진 살기 때문이었다.
소울아머 유저쯤 되면 공격을 당할 때 몸으로 때울만한 것과 아닌 것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지금 뒤에서 느껴졌던 날카로움은 몸으로 때워서는 안 될 공격이었다.
그렇게 한 바퀴 뒹군 그를 향해 한 노인이 맹렬하게 말을 달려오면서 환두대도를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듯 휘둘렀다.
“이익!”
소울포스를 급격히 끌어 올리며 롱소드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콰창!
“소, 소울포스가…….”
롱소드에 어린 소울포스가 마치 유리가 깨어져 나가듯 산산히 부서졌다.
롱소드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그 환두대도는 그대로 몸통에 틀어박혀왔다.
와직!
“크흡!”
소울아머가 왼쪽 가슴 아래 갈비에서부터 오른쪽 어깨 위까지 쩍 갈라졌다.
갑주가 갈라지는데 몸뚱이가 온전할 리 없었다.
입에서 역류하는 피를 겨우 삼키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쇠망치가 그의 머리통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직!
비명도 없었다.
떨어져 내린 망치는 간단하게 머리통을 박살내 버렸다.
소울아머를 간단하게 처리했음에도 그 노인은 혀를 찼다.
“쯧, 늙긴 늙었구먼.”
“으허허! 어르신 백년은 더 사시겠습니다!”
“백년은 무슨.”
그렇게 말을 툭 내던진 이는 바로 장무 노인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노인들이 말을 몰아가며 사방의 적들을 부수어 나가고 있었다.
바로 장무 노인과 은퇴했던 묵갑귀마대원들이었다.
“으음.”
프라임 공작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가우리의 중갑기병의 강력함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막상 결전이 벌어지니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프라임 공작이 전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감탄마저 서려 있는 음성이었다.
“단순 집단 전술운용이 아니구나.”
한 몸처럼 몰고 나가 대열을 무너트리고 몸을 빼는 일체화된 모습.
비록 시에라 제국군의 기병들이 대규모로 손발을 맞춘 경험이 적다해도 그 정도의 호흡정도는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상대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치 분업을 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선두가 치고 나가면 뒤의 대열이 다음 공격을 이어받듯이 재차 공격을 가한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스쳐 지나가다보면 처음 방어를 했던 기병은 이미 난도질을 당해 쓰러져 버린 후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선두에서 그렇게 치고 나가느라 가속이 줄어든 이들을 대신해서 뒤에서 달리던 이들이 튀어 나가며 처음의 역할을 대신했다.
즉 이쪽은 언제나 가속도가 붙은 기병이 순차적인 일격을 막아 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 하나를 잡고 손을 섞는 게 아닌 것이다.
그렇게 강력한 일격을 연달아 맞는데 멀쩡할 리가 없었다.
문제는 적들은 이런 행동을 아주 자연스럽게 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싸우는 동료가 앞에 있어도 뒤에서 손도끼를 날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서로의 칼을 마주하기라도 하는 순간에는 그렇게 날아온 손도끼에 맞아 죽거나 흔들리거나 한다.
흔들린다면?
죽음이다.
다시 뒤에서 몰아치는 공격에 버티고 버티다가 일격에 죽어 나자빠진다.
바닥으로 몸을 날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된 말들이 오히려 떨어진 이들을 짓밟는데 더 적극적이다.
장애물을 피하려는 본능보다는 부수려는 본능이 먼저인 듯 말이다.
그렇게 검은 대열에 말려드는 시에라 제국의 기사들이 마치 맑은 물에 먹물이 번져가는 것처럼 흡수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분명 두 무리가 붙은 이후로는 가속을 얻을 만한 구간이 없음에도 밀어붙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소용돌이치듯 움직이는군.”
처음에는 직진으로 달렸다. 하지만 접전 이후에는 가우리군의 있는 부대 쪽에서는 작게 소용돌이치는 듯한 움직임이 보였다.
그렇게 되면 이론적으로 추력을 얻을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수많은 기마들이 뒤섞인 전장이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문제는 가우리의 개마기병들의 움직임은 그 이론을 그대로 현실 화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병력수가 차이난다는 게 이리 고마울 줄이야.”
프라임 공작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다시 중앙으로 향했다.
“저긴 더 거대하군.”
중앙 쪽은 더했다.
다른 쪽은 작은 소용돌이가 여기저기에서 몰아치고 있다 치면 중앙은 그야말로 물이 가득 찬 나무통에 구멍이 났을 때처럼 커다란 소용돌이가 존재했다.
마치 태풍의 중심과도 같았다.
“이런!”
그때 프라임 공작의 동공이 커졌다.
그 중심을 향해 공을 세우려는 소울아머 유저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에 선두에서 거침없이 소울아머 유저들을 상대하며 싸우던 모습과 지금의 전술은 완전 동떨어진 것이었다.
가진바 무력만을 믿고 종횡무진한다 생각했는데 중앙에서 자리를 잡고 전투를 벌이는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주변에서 맴도는 병력이 적절한 병력을 잘라먹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소울아머 유저는 그대로 흘려주는 듯했다.
하지만 다른 병력은 철저히 갈아 낸다.
즉 가우리의 황제는 자잘한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순차적으로 소울아머 유저들을 하나둘씩 줄여 나가기만 하는 것이다.
“완전 속았군.”
프라임 공작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뭔가 상황이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프라임 공작은 곧바로 전령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중앙은 함정이라고.
말을 달리는 을지우루는 지척까지 적이 왔음에도 활을 놓지 않았다.
더 신기한 점은, 적이 칼을 휘두르는 속도보다 그가 화살을 재어 쏘는 것이 더 빠르다는 점이었다.
실제 우루를 중심으로 사방에 화살에 맞아 죽은 시체가 그득했다.
우루는 아예 작정을 했는지, 우루의 말안장에는 아직도 화살을 담은 주머니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화살에는 한계가 있었다.
“화살이 떨어졌다!”
앞쪽에 화살을 빼곡히 박은 방패를 들고 있던 시에라 제국의 기사가 악다구니를 쳤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기마들이 일제히 우루를 향해 몰려왔다.
“기래. 와보라우.”
우루가 두 눈을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