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19
386화 황실의 씨 말리기
호위대장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담장 위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빛내는 사내.
정확히는 그가 입고 있는 갑주였다.
검은색 찰갑에 빛바랜 하얀 흉갑.
“묵갑귀마대…….”
“뭣! 그 로우급 유저와 비견된다는!”
호위대장의 중얼거림에 뭔가 들은 바가 있는지 황실의 인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일부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침착함이라기보다는 주변의 호위 병력의 실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로우급 유저와 비견되는 강자들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에는 로우급 말고도 소울아머 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우급과 소울아머 유저는 힘의 차이가 분명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호위대장은 소울아머 유저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실력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황실의 호위대뿐 아니라 황실인사들이 데려온 호위 중에는 로우급과 소울아머 유저들도 몇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들의 존재 때문에 호위대장이 여기의 인원을 빼서 황성으로 가려고 했었던 것이다.
“으음.”
그때 담벼락 위로 묵갑귀마대원들이 속속히 올라서고 있었다.
“이야! 잘도 찾았네?”
“카사 백작 그 친구가 설명을 잘해 준 거지. 어차피 있을 곳은 몇 없다잖아.”
“그렇지.”
묵갑귀마대원들이 시시덕거리며 말을 주고받는 모습에 호위대장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얕보이는 걸 좋아할 이는 없을 것이다.
뒤쪽에서도 비명 소리가 몇 울려 퍼졌다.
느낌상으로 뒤쪽으로도 침입해온 듯했다.
“원진을 형성한다. 적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황성을 습격한 이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술법사의 서신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거기에 이곳에 나타난 이들은 묵갑귀마대.
이런 실력자들을 보냈다는 것은 적은 숫자로 최대한의 성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빨리 움직여!”
호위대장의 명령에 황실의 인사들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온 기사와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보통 소속이 다르면 알력이 있을 법도 한데 그의 한마디에 한 몸처럼 움직인 것이다.
그만큼 호위대장의 실력에 반론이 없다는 의미였다.
아까 호위대장의 명대로 안쪽으로 향했던 황실의 인사들도 도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뒤쪽에서의 비명성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는 호위대장이 있는 이쪽이 더 안전할 거라 판단한 것이다.
황실의 인사들이 비교적 안전한 가운데로 이동을 하는 사이 담벼락에 올랐던 구신이 쌍곤을 허리춤에 다시 매달았다.
이어서 허벅지에 매달려 있는 둥근 고리를 잡아챘다.
“응?”
순간 호위대장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둥근 고리를 무릎을 이용해 역으로 구부리며 끝에 달린 줄을 반대편 끝에 연결하자 순식간에 활이 만들어진 것이다.
“방패수!”
호위대장의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황실인사들을 호위하기 위해 둘러싼 방패수들은 이미 순식간에 활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고 이미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활을 만들어 낸 묵갑귀마대가 빠르게 화살을 재어 날렸다.
투투퉁!
결코 멀지 않은 거리에서 쏘아 낸 화살이었다.
빠르게 직사로 날아간 화살들이 방패수들이 들어 올린 방패를 직격했다.
투투툭!
“어억!”
“억!”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방패에 화살이 깊숙이 박혀 들었다.
일부 방패수들은 방패를 깊이 파고든 화살에 피륙이 상했는지 비명을 흘리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틈 사이로 이어 날린 화살들이 마치 미꾸라지마냥 파고들었다.
“으억!”
“억!”
“뭐, 뭣들 하느냐! 저놈들을 쳐라!”
순간 황실의 혈족 몇몇이 비명을 내지르며 고꾸라졌다.
그러자 방패수들은 물론이고 원진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도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호의 대상이 초반부터 상했으니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술법사!”
중앙에 있던 술법사들이 빠르게 술법지를 날려 공격을 했다. 하지만 파이어 버드가 담벼락에 닿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묵갑귀마대원들이 육중한 갑주를 하고도 가벼운 몸놀림으로 몸을 띄우며 화살을 연이어 날렸다.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화살을 날리는 신기에 감탄할 새도 없이 방패수들은 간격을 촘촘히 하기 바빴다.
그러나 이번에 날린 화살들은 황실의 혈족을 향한 것들이 아니었다.
“억!”
“크억!”
술법을 부렸던 술법사들이 화살에 맞아 고꾸라졌다.
워낙 지근거리였기에 미처 방패술을 펼치지도 못하고 화살에 맞은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내려앉은 묵갑귀마대원들이 빠르게 내달려 오기 시작했다.
“쳐라!”
호위대장의 외침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앞으로 마주 달렸다.
그 사이 담벼락에서 솟구쳐 오른 묵갑귀마대원들이 팔을 휘둘렀다.
쾌래래랙!
그러자 십수 자루의 은빛 궤적이 곡선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마찬가지로 내달려오던 묵갑귀마대원들도 손을 휘둘러 내었다.
약 스무 자루가 넘어가는 손도끼들이 기괴한 파공음을 만들어 내며 정면으로 달려들던 기사들과 병사들의 몸통에 틀어박혔다.
빗나가는 것도 없었다.
“커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병사들은 물론이고 기사들까지 뒤로 튕겨 나가며 벌렁 나자빠졌다.
하나같이 손도끼가 자루만 남기고 대가리를 몸통에 파고든 뒤였다.
몇몇은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서 꿈틀거렸고, 몇몇은 바르르 떨다가 고개를 흙바닥에 처박았다.
그 사이 달려 나간 양쪽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콰콰콱!
둘이 붙는 순간 결판은 허무하게 나버렸다.
달려온 묵갑귀마대원들의 공격을 두 번 이상 막지 못하고 모두 바닥에 몸을 누였던 것이다.
그중 강구신은 쌍곤을 이용해 제일 먼저 달려온 이의 몸통을 후려쳐 옆으로 날리고, 뒤따라오던 이의 머리통을 다른 손에 든 철곤으로 내리찍었다.
퍼석!
마치 박이 터지는 소리와 같은 파열음과 함께 머리통이 투구와 함께 산산이 박살이 났다.
철로 된 투구임에도 말이다.
이어 머리가 박살나 허물어지는 기사의 몸통을 타고 빙그르 한 바퀴 돌아온 구신이 이번에는 철곤으로 바닥을 쓸었다.
콰두두둑!
“어억!”
“악!”
순간 그렇게 튀어나올 줄 몰랐던 병사들이 다리가 부러지며 나뒹굴었다.
그렇게 무너지는 병사들의 등판을 짚고 몸을 띄운 구신이 모둠발로 그다음 목표를 뻗어 찼다.
콰직!
안면이 박살이 나며 또 한 명의 병사가 그대로 썩은 고목이 넘어가듯이 뻣뻣이 넘어갔다.
그들도 당하기만은 싫었는지 악을 쓰며 한 손을 짚으며 바닥으로 착지한 구신을 향해 롱소드를 내리그었다.
그러자 구신이 오히려 몸을 낮춘 상태에서 양손의 쌍곤들 바닥에 박아 넣었다.
이어 양손이 자유로워 롱소드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턱!
“엇!”
내리긋던 롱소드를 쥔 팔을 구신이 양팔로 휘감으며 몸을 맴돌렸다.
“으아아악!”
순간 기사의 몸뚱이가 거꾸로 허공에 섰다.
이내 거꾸로 허공에 선 그의 몸이 바닥으로 수직낙하 했다.
어떻게 몸을 돌려보려 했지만 단단히 팔을 쥔 구신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콰앙!
거꾸로 바닥에 머리부터 내리꽂혀진 기사의 몸이 꼿꼿이 세워져서 부르르 떨었다.
바닥에 처박힌 머리 쪽은 핏물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 하나를 거꾸로 말뚝 마냥 매다 꽂은 구신이 바닥에 박아 놓았던 쌍곤을 뽑아 들고 빙글 돌리고는 양어깨에 올려 놓았다.
“뭐해? 구경만 할 거야?”
순식간에 대여섯 명이 손도 못 쓰고 죽어 나가는 모습에 질려버린 병사들과 기사들이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때 호위대장이 나섰다.
“놈.”
“그래. 네가 나와 줘야지.”
그 사이에도 사방에서 몰아치고 있는 묵갑귀마대의 수 배는 넘어 가는 호위 병력이 계속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황실의 혈족들은 시뻘게진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자신들을 지키라고 하고 있었다.
그게 시끄러웠는지 묵갑귀마대원들이 중간중간 슬쩍 날리는 손 도끼가 방패들 간의 틈을 뚫고 황실의 혈족들의 머리통을 쪼개 놓았다.
그쯤 되자 방패도 자신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 황실의 혈족들은 몸을 수그리며 비명을 내질러대었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
호위대장이 으르렁거리며 말을 내뱉자, 구신이 양 어깨에 올려 두었던 쌍곤을 천천히 내리며 대꾸했다.
“난 도망가면 살려는 줄게. 관대하지?”
“닥쳐라!”
“아! 하나는 확실하게 장담하지.”
“오!”
“나왔다!”
구신이 장담 운운하자 주변에서 싸우던 묵갑귀마대원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저 뒤에 있는 양반들은 다 죽을 거야.”
그와 동시에 와하는 웃음소리가 이어 터져 나왔다.
마치 이미 다 죽어나간 것 마냥 말이다.
“원래 내 말이 잘 맞아서 그래.”
구신이 히죽 웃으며 철곤 하나를 호위대장에게 내밀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 덤벼. 꽤 실력 있어 보이는데 구경 좀 하자.”
“오냐.”
순간 호위대장의 온몸으로 푸르른 소울포스의 기운이 화염처럼 솟구쳐 올랐다.
콰콰콰!
폭발적인 기운에 주변의 사물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흐트러져 나갔다.
이어 호위대장이 박차고 나가자 땅거죽이 푹 패였다.
콰앙!
“오!”
언제 휘둘렀는지 호위대장의 메이스가 X모양으로 교차한 구신의 쌍곤 사이에 걸렸다.
막히는 순간 호위대장이 발을 쓸 듯이 후려 찼다.
하지만 구신 역시 앞의 디딤발을 접으며 후려치는 발을 피해 내었다.
다시 접었던 발을 딛으며 뒷발로 호위대장의 낭심을 향해 차올렸다.
“헛!”
호위대장이 엉덩이를 뒤로 뺐다.
“아, 아깝네!”
“치졸한 놈!”
구신이 아깝다는 표정을 짓자, 호위대장이 벌게진 얼굴로 대꾸했다. 그러자 구신이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터져서 대가 끊기나 죽어서 끊기나 거기서 거기구만 뭘 그렇게 발끈해.”
호위대장의 얼굴은 붉어졌지만 그는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소울포스를 더욱 끌어 올렸다.
구신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 중에는 익숙한 음성도 섞여 있었다.
“젠장.”
소울아머 유저의 비명이었다.
그러나 호위대장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이는 그럴 만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쇠몽둥이를 쓰는구나? 그럼 하나보다는 두 개가 낫지.”
그렇게 실없는 농담을 던진 구신이 철곤 하나는 앞으로 내밀어 겨누고 다른 하나는 하늘로 치켜 올렸다.
그때 호위대장의 손이 앞으로 내민 철곤을 잡아 갔다.
“잡았다.”
거의 기습적으로 철곤을 잡아챈 호위대장이 그것을 뒤로 잡아당겼다.
하지만 철곤이 빙그르 돌았다.
“읏!”
순간 마주친 구신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마치 일부러 잡혀줬다는 듯.
빙그르 돌리는 철곤 때문에 호위대장의 손이 비틀리며 몸이 살짝 주저앉는 듯하자 그의 머리를 향해 구신의 철곤이 내리꽂혔다.
“겨우 이걸로!”
하지만 살짝 균형이 흔들렸다지만 무너진 건 아니었다.
호위대장이 자신의 메이스를 휘둘러 내리찍는 구신의 철곤을 후려쳐 방향을 바꾸었다.
동시에 철곤을 비트는 방향으로 몸을 휘돌리며 발로 구신의 안면을 걷어찼다.
뻐억!
뻑!
타격음이 동시에 두 번이 났다.
하나는 구신의 안면에서 난 소리였고, 하나는 허공으로 몸을 띄운 호위대장의 옆구리에서 난 것이었다.
“크으!”
“큭!”
둘이 서로 떨어지며 신음성을 흘렸다.
제387화
“좀 하네?”
구신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자존심에 상처가 난 표정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더했다.
몸을 띄워 반격했는데 그 순간 동시에 타격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옆구리가…….’
소울아머 유저들 중 둔기를 쓰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소울포스로 몸을 보호한다 해도 둔기가 가져다주는 충격력이 꽤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도 메이스를 쓰는데 이번에는 비슷한 이유로 충격을 입은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까지 충격이…….’
금이라도 간 것 같은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순간 픽 하니 웃음을 흘렸다.
“웃어? 내가 우습게…….”
구신이 어이없다는 듯 대꾸하다 말고 손을 코에 가져다 댔다.
동시에 호위단장이 웃음을 흘렸다.
“푸흐흐.”
“싸, 쌍코피?”
구신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
“크크큭!”
“쌍코피! 쌍코피다!”
“닥쳐 이것들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묵갑귀마대원들의 웃음소리에 구신이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 이거 쪽팔려서.”
구신이 피식 웃으며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미안. 소울아머 유저라고 다 같은 놈들이 아닌데 너무 얕봤네.”
구신이 옅은 미소를 던지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무지막지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큭!”
호위대장의 안색이 더 일그러졌다.
살기만으로도 느껴지는 압박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호위대장은 주변을 살폈다.
자신을 제외하고 연신 밀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호위대장은 지체하지 않고 소울스톤을 돌렸다.
순간 폭발적인 힘이 솟구쳤다.
그럼에도 호위대장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가 입은 소울아머는 하이급이었다.
십중팔구 죽거나 완전 폐인이 되는 이전의 소울아머와는 달리 한동안 누워 지내야 한다는 것을 뺀다면 충분히 위력 있었다.
구신이 히죽 웃으며 걸음을 내딛었다.
“그래. 이래야 할 맛이 나지.”
구신이 쌍곤을 휘돌리며 내달려 왔다.
콰콰콱! 카랑! 카라라랑!
한 자루의 메이스와 두 자루의 철곤이 귀청이 찢어질 듯한 굉음을 내며 맞부딪혔다.
심지어 그 격돌의 여파로 주변의 사물이 닿지도 않았음에도 부서져 나갔다.
“후웁!”
구신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양손을 더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
마찬가지로 호위대장은 메이스를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맹렬하게 몰아쳐 오는 공격을 막아 내었다.
심지어 그 사이에도 디딤발을 후리는 발길질이 오갔다.
둘 다 실전에 이골이 난 모습이었다.
하지만 미세하게 구신이 호위대장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의 쌍곤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그러자 호위대장의 방어가 약간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완벽히 힘을 흘리지 못한 탓에 미세하게 밀리며 방어에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구신이 순간 침을 모아 뱉었다.
“퉷!”
“퉷!”
그런데 침을 뱉는 소리가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이 들려왔던 것이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헛구역질을 했다.
“오욱!”
“우욱!”
그 모습을 본 묵갑귀마대원들이 한마디씩 했다.
“간접 뽀뽀라고 해야 하나?”
“침만 오갔는데?”
“어차피 뽀뽀하면 남의 거 먹는 건 같잖아.”
“아우 씨, 이빨들은 닦았나 몰라.”
거의 동시에 둘이 서로를 향해 침을 뱉었고, 그 행동에 서로 놀라 뒤로 몸을 빼다가 상대방이 뱉은 침이 살짝 열린 입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즉 상대방의 침을 똑같이 먹어 버렸던 것이다.
“이 추잡한 새끼!”
“이 썅! 뭘 처먹었어!”
둘은 벌건 얼굴로 서로를 향해 욕설을 뱉었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눈빛이 약간 달라졌다.
강자이면서도 승부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모습.
오히려 그 모습에 호감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적은 적이었다.
둘이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공방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호위대장이 먼저였다.
막다가는 조금 전과 같이 밀릴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호위대장은 머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소울포스를 미치도록 끌어 올리다 보니 소모되는 힘이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먼저 공격을 시작했지만 대여섯 합이 지나자 반격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밀릴 조짐마저 보였던 것이다.
이빨을 빠드득 갈아낸 호위대장이 바닥의 돌알을 차내 보내며 뒤로 몸을 던졌다.
구신은 날아온 돌맹이들을 몸으로 튕겨 내며 따라 붙었다.
굳이 몸을 추스를 시간을 만들어 주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호위대장의 판단은 몸을 추스를 시간을 버는 게 아니었다.
티틱!
또다시 돌아가는 소울스톤.
내달려갔던 구신이 다급하게 쌍곤을 머리위로 교차했다.
콰앙!
강렬한 충격음과 동시에 그들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무형의 동심원이 일렁이며 퍼져 나갔다.
그 주변에 있던 이들이 순간 자세를 잃고 비틀거렸다.
두 사람의 충격파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하, 이거야 원.”
한쪽 무릎이 땅에 닿을 듯 말 듯한 모습을 한 구신이 허탈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의 시선은 상대를 향하고 있었다.
호위대장의 눈이 조금씩 충혈되고 있었다.
하이급의 최종단계.
다른 소울아머와 같이 목숨을 대가로 힘을 끌어온 모습이었다.
“이쯤은 해야 이길 것 같아서.”
호위대장이 약간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좀 쎄지.”
아직도 저릿한지 쌍곤을 든 두 팔이 떨리자 구신이 뒤로 물러서며 말을 받아 내었다.
그러자 소울포스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호위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맞다. 그대는 강하다. 존경스럽군. 소울아머도 없이 그 정도라니.”
호위대장이 자조적인 표정을 지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상대방은 소울아머를 입지 않았다는 것.
타 대륙에서 넘어온 자들이 소울아머를 안 입고 전장에 나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냥 웃었다.
그저 자만심 넘치는 놈들이라며 평가절하 했었다.
하지만, 직접 맞닥트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없이도 강하니까.
그리고 소울아머가 없어도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편히 강해지는 길을 택했던 것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뭐 네놈도 열심히 갈고 닦았으면 이 몸처럼 강해졌을지도 모르지. 꼼수를 쓰지 않았다면 말이야.”
구신의 말에 호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꼼수라. 맞군 꼼수.”
그의 표정이 덤덤해졌다. 호위대장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대 같은 강자의 목을 가져가는데 꼼수를 부린 대가로 내 목을 주는 건 남는 장사겠지?”
“난 손핸데?”
구신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호위대장이 비로소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이득이네? 좋군.”
그 말을 뱉자마자 호위대장의 몸이 흐려졌다
남은 것은 그의 잔상이었다.
콰앙! 쾅! 쾅!
호위대장이 강하고 빠른 일격으로 공격해 나갔다.
그걸 구신은 슬쩍 슬쩍 몸을 띄우며 막아 내며 물러섰다.
충격을 허공에 띄워버렸던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야 충격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 맞았다.
그렇게 막아만 가던 구신이 한 손에 들린 철곤을 호위대장을 향해 집어던졌다.
“웃!”
설마하니 그가 자신의 병기를 집어던질 줄 몰랐던 호위대장이 고개를 꺾어 철곤을 피했다.
“으억!”
그 덕에 뒤쪽에서 구경하던 기사의 몸뚱이가 철곤에 뚫려 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그러나 호위대장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구신이 하나만 남은 철곤을 두 손으로 잡았다.
“미안. 두 개라서 내가 이길 거라는 말은 취소하지.”
구신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다.
그럼에도 구신의 머리카락이 하늘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불규칙하게.
그와 함께 구신의 몸 주변으로 아지랑이 같은 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쾌적했던 공기가 눅눅하게 변한 느낌도 들었다.
호위대장은 웃었다.
온몸이 조여 오는 느낌은 그도 처음 겪어 보는 것이었다.
아마 하이급 소울아머를 입은 자신이 아니라면, 저 기세만으로도 충분히 압살되어 죽어 나갔을 것이 뻔했다.
콰앙!
구신이 발을 구르자 땅바닥이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움푹 패여 나갔다.
그와 동시에 쨍한 충돌음이 울렸다.
쩌엉!
어느새 메이스와 철곤이 맞닿아 있었다.
“크오오!”
“크아압!”
둘은 누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각자의 무기를 뒤로 당겼다가 다시 상대를 향해 휘둘렀다.
쩌엉!
다시 충돌음과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주변에서는 다시 비틀거리는 이들이 눈에 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서로 땅바닥에 발을 박은 채 다시 서로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세 번이 네 번이 되었다.
그럼에도 둘은 마치 고목이 뿌리를 내린 듯 각자 다리를 박고 누가 더 강한지 힘자랑을 하듯 상대를 향해 자신의 무기를 후려칠 뿐이었다.
“큽!”
호위대장은 이를 악물었다.
한 방 한 방이 마주칠 때마다 온몸으로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져 왔다.
그 진동에 온몸의 살점들이 다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몸통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
그럼에도 피하지 않았다.
상대방 역시 잔뜩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대방의 실력이라면 자신을 상대로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힘이 빠질 때를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도 힘 대 힘의 맞상대를 해 주었다.
사실 상대방 입장이라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자신은 말 그대로 꼼수를 써서 강해진 이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맞대응 해 준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비록 오늘까지가 그의 인생의 마지막이지만, 이 순간이 후회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충분했다.
인간이 소울아머를 입지 않아도 저렇게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어렸을 적, 노 스승님께서 말하 시길 소울아머가 나기 이전의 강자들은 능히 홀로 성을 허물고 무너트릴 수 있었다 들었다.
그때는 그게 농이라고 생각했다.
소울아머 유저라면 모를까, 어찌 인간의 몸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승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둘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하면 온전하지 못했다.
마치 수십 명이 달라붙어 땅이라도 파낸것마냥 주변이 원을 그리며 패여 있었다.
그저 충격의 여파만으로도 말이다. 하지만 계속 즐길 수는 없었다.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이론적으로 속박을 해제하면 얼마를 싸울 수 있다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강자 앞에서는 그 계산은 무용지물이었다.
그의 생명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목숨을 던졌다.
비루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소울포스를 끌어 올렸다.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 따위는 더는 계산하지 않았다.
투툭 툭!
온몸에서 뭔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아마도 몸속에 존재하는 핏줄들이 터져 나가는 소리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붉은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생명의 불길 소울포스.
그 소울포스의 강렬한 불길이 몸 안의 피를 증발시키며 만들어 내는 운무일 것이다.
“그아아악!”
호위대장의 발아래가 움푹 패였다. 그리고 그의 몸이 돌았다.
폭풍과 같은 거대한 힘을 담은 마지막 일격이 구신을 향해 몰아쳤다.
콰드드득!
구신의 발바닥이 뒤틀어졌다.
그와 함께 그의 발이 마치 바닥이 진창이라도 되는 듯 파고들었다.
기괴하게 틀어진 발목을 따라 종아리가 안으로 틀어졌다.
이내 허벅지가 그 뒤를 따르고 허리가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체와 그 끝에 양손으로 쥐고 있는 철곤은 아예 반대편에 남아 있었다.
마치 사람의 몸을 비틀어 짠 것 마냥 말이다.
부와아아악!
구신의 코앞으로 강력한 힘이 담긴 일격이 다가왔다.
그럼에도 구신의 철곤은 아직 뒤에 남아있었다.
빠득!
구신의 이빨이 조각이나 부스러기가 밖으로 튀었다.
호위대장이 휘두른 메이스가 그의 머리통을 날리기 직전.
그의 허리와 몸통, 어깨가 동시에 돌았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남겨 두었던 그의 철곤 역시.
두 자루의 무기가 격돌했다.
바우우우!
세상이 진동했다.
제388화
호위대장의 투구가 충격파에 밀려 허공을 날았다.
원래라면 소울포스에 보호되는 투구가 날아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줌의 소울포스도 남아있지 않았다.
툭, 투투툭!
구신의 상체를 가리던 찰갑의 가죽끈이 투툭거리는 소리를 내며 끊어져 버렸다.
충격 때문이라기보다는 급격하게 확장된 근육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근육은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위로는 지렁이 같이 굵은 핏줄이 건들면 터질 것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서로의 무기는 여전히 맞닿아 있었다.
주변의 상황은 난장판이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수십여 미르(m)까지 땅거죽이 동심원을 그리며 뭔가에 쓸려 나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전의 격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던 이들은 이 충격파에 마치 태풍에 날아간 것처럼 멀리 날려져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반쯤은 얼이 빠진 표정들이었다.
“어우 내가 먼저 달려들었으면 관 짤 뻔했네.”
묵갑귀마대원들 역시 혀를 차고 있었다.
어지간한 충격파 따위는 흘려보낼 실력이 있던 그들이었지만, 이번은 버티기 어려웠다.
여태 소울아머 유저를 봐도 긴장 따위 안 하던 그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놀란 모습이었다.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 모습들이었다.
반면에 호위대들은 그들 나름대로 넋이 빠져 있었다.
그들의 호위대장이 정치적인 걸 싫어하는 탓에 이렇게 황실의 혈족들을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임무를 받아서 이곳에 왔다.
그러나 그의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소싯적에는 프라임 공작에게 노블 기사단장의 제의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때 그는 그걸 거절했다.
물론 당시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은 그런 그의 판단에 그냥 크게 웃고 말았다.
그랬던 실력자다.
벽창호 같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실력을 갈고 닦은.
그런 호위대장이 목숨까지 담보로 하이급 소울아머의 마지막 단계까지 발동했다.
그런데 그걸 막아 낸 것이다.
소울아머를 입지도 않고 말이다.
당연히 호위대들이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쩌적.
호위대장의 소울아머에 달린 소울스톤이 실금이 갔다.
쩌저저적!
실금은 마치 거미줄마냥 이리저리 어지럽게 번져 나갔다.
그리고 끝내 버티지 못한 소울스톤이 청아한 소리와 함께 부서져 나갔다.
“하, 하하하.”
보통 마지막까지 힘을 짜낸 소울아머 유저의 최후는 단순했다.
온몸의 생체에너지를 빨리고 빨리다가 푸른 불꽃에 휩싸여 끝내는 거죽만 남은 미이라가 된다.
그런데 지금 그의 소울스톤은 그냥 깨어져 버렸다.
순간 폭주하며 증폭되던 호위대장의 소울포스를 소울스톤이 이겨 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게 벽을 넘는다는 건가…….”
호위대장이 말라버린 입을 열었다.
잠깐이지만 뭔가 다른 세상을 엿본 느낌이었다.
그때 무기를 마주하고 있던 구신이 입을 열었다.
“그런거지.”
“그런 거군. 아쉽다.”
호위대장이 푸석푸석한 얼굴로 깨어진 소울스톤 조각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반면에 구신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결과가 뭐 이따위야. 아예 박살 내려 했건만.”
“부서지긴 했잖소.”
호위대장이 말을 받자 그제서야 그의 메이스에 균열이 생겨났다.
툭, 투툭, 툭.
강철을 벼려서 만든 메이스건만, 마치 충격을 입은 도자기 표면마냥 금이 가며 부스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후두둑 쏟아져 내리는 쇳조각을 보며 구신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완전 박살 내려 했다니까? 네놈 머리통이랑 같이.”
구신의 말대꾸에 그는 뭐가 좋은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그의 푸석하게 변한 하얀 머리카락이 힘없이 부서져 내렸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눈빛은 아직 살아 있었다.
“너 이름이 뭐냐.”
“드웬 퍼스. 퍼스가의 차남 드웬이다. 네놈은?”
“강구신. 강씨 집안 셋째 아드님이시다.”
한바탕 싸우고 나서야 이름을 주고받는 둘.
그때 비명이 내질러진다.
황실의 혈통들이 욕설을 뱉었다.
호위대장의 마지막 모습에 눈살을 찌푸릴만한 욕을 뱉고 있었다.
이런 실력 없는 자를 자신들에게 보내었다고.
이럴 때 놈들의 수장을 치라고.
힘이 빠졌을 거라며 등을 떠민다.
그 아웅다웅하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호위대장 드웬은 힘없는 웃음을 머금었다.
이런 이들을 위해 목숨을 던지며 싸웠다는 게 웃겼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향했다.
이미 무수하게 죽어 나자빠진 호위대원들이 보였다.
일부는 숨을 헐떡이며 중한 상처를 입고 울상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딱 봐도 답이 나왔다.
호위대원들을 선두로 밀어낸 것이 뻔했다.
이 와중에도 자신들의 전력을 아끼려고 말이다.
함께 모든 걸 던지며 싸워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부탁 하나 하지.”
드웬이 말했다.
“내가 들어줄 만한 거면.”
구신의 말에 드웬이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우리 애들한테 미안해서 그러는데.”
“미안하다니?”
“저런 것들을 목숨 바쳐 지키라 한 거.”
구신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뭐 할 말이 없긴 하겠네.”
“그러니…….”
드웬이 눈을 빛냈다.
흐려졌던 말끝이 이어진다.
“싹 다 죽여줘.”
구신이 웃었다.
“내 장담하지. 다 죽을 거라는 걸.”
그 말에 드웬히 들썩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대의 실력에 경의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드웬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고개를 떨구고 무릎을 꿇은 채 최후를 맞이했다.
“저런 병신 같은 자를 봤나!”
그때 바르르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분노와 경멸감이 섞인 음성.
구신이 고개를 들어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며, 너덜너덜해진 갑주를 뜯어내었다.
“넌 제일 마지막에 죽여줄게.”
구신이 살기어린 미소를 뿌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외쳤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싹 다 죽인다.”
잠시 전투를 멈추었던 묵갑귀마대원들이 살기를 뿌리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구신이 누군가가 바닥을 기는 모습에 시선을 돌렸다가, 이내 정면으로 향했다.
금방 숨넘어갈 듯한 상처를 입은 호위대원들이 울상을 지으며 그들의 대장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우중만은 정신이 없었다.
쏟아지는 화살에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아흑 어쩌자고 여기까지 온다고 해서…….”
이곳에 끌려온 부분은 있었다. 하지만 이 전장은 그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린 부분이 컸다.
승전을 거두고 돌아온 오크전사들이 우중만이 마치 그들의 왕이라도 되는 듯 치켜세우며 환호하는 모습에 들떴던 것이다.
선거 때에 느낄 수 있는 유세뽕이라는 것과는 비교 불가였다.
그래서 이 전투에 참가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날아드는 화살에 고개는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물론 전담 마법사와 오크전사들이 그를 보호하고는 있었지만, 이런 냉병기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우중만이었다.
움츠리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고개를 들어 올리는 건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다.
전장을 살핀다는 거다.
정확히는 오크전사들이 나아갈 때마다 걱정 어린 표정을 짓곤 했던 것이다.
이건 오크들 입장에선 생소한 것이었다.
이전에는 약한 자들의 소행이라 무시당할 만한 행동이겠지만, 인간의 문화가 뒤섞인 지금의 오크들에게는 조금 달리 다가왔다.
그들의 로드가 전사들을 아낀다는 느낌은 생소하지만, 그게 또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존재가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크전사들은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때 우중만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꼿꼿이 세웠다.
“어억!”
콰아앙!
보병의 대열을 벗어나 정면을 향해 돌입해 나가던 검차가 비틀거리더니 옆으로 기울어지며 크게 나뒹굴었다.
마법이나 술법 공격을 직격 당한 건 아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몇몇 검차들이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했다.
“술법이다!”
그때 남부 연합군 소속 술법사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법을 이용해 바퀴 바로 앞으로 바위를 소환해 낸 것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바위를 밟은 검차가 나뒹군 것이었고 말이다.
거의 적군의 지척에 다가와서 나뒹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바로 시에라 제국의 장창들이었다.
콰직! 콱!
창날들이 검차 여기저기를 쑤셨다.
물론 사방을 단단한 목재와 또 마법이 떨어질 만한 곳을 보호하기 위해 씌운 자이언트 크랩 껍데기는 쉽게 뚫리지 않았다.
그러나 쓰러진 채 계속 찔러 대는 창날에 연결부위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때 뒤의 문이 열리며 오크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크워어억!”
오크들이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방패를 들어 올렸다.
금방 그 방패 위를 창날들이 두들겨 대기 시작했다.
비록 낭창거리는 장창이었기에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대고 찔러 넣는 정도였지만 그 힘이 쉽게 여길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크워억!”
결국 빈틈을 내준 오크전사가 옆구리에 박힌 창대를 잡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이 신호라도 되는 듯 창대들이 슬금슬금 방향을 틀어 그의 몸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힘으로 창대를 밀어내서 살을 헤집는 것이다.
오크전사는 무기를 휘둘러 창대들을 잘라 내었지만, 이내 다른 창날들이 그를 찔러 대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창대의 아래로 기어서 다가온 시에라 제국의 병사들이 숏소드를 들고 이리저리 휘둘러 대었다.
순식간에 발목이 너덜거려졌다.
중간에 끼인 오크 전사들은 오히려 그 큰 몸뚱이가 걸리적거렸다.
적에겐 목표물이 커서 나쁠 게 없었던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그때 남부 연합군 측의 함성이 내질러졌다.
다가오던 그들이 드디어 도착했던 것이다.
칠팔 미르(m)는 되는 창대들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이어 상대방 진영을 향해 창대가 슬금슬금 나아갔다.
창대가 긴 만큼 거리의 이점은 있었지만 그 무게 탓에 한명이 아니라 두어 명이 끝을 잡아야 했다.
심지어 기병을 상대하는 것이 아닌지라 바닥에 고정을 할 수도 없었다.
능청이는 끝을 부여잡고 앞으로 밀어내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끝만큼은 날카로웠다.
밀집방진의 안타까움은 뒤로 물러설 공간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건 자신을 향해 창날이 다가온다 해도 피하기가 어렵다는 거다.
그가 피하면 뒤의 병사가 위험하다.
그걸 뒤쪽에 있는 이들이 그냥 볼 리는 없었다.
그나마 방패병들이 앞에서 막아 주는 것이 다행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창대들이 방패 위를 긁는 소리가 귀를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 아래로는 상대방을 향해 숏소드를 든 병사들이 기어가고 있었다.
시에라 제국뿐 아니라 남부 연합군 역시도 숏소드를 든 병사들이 허리를 낮추고 기어 나갔다.
그렇게 기던 병사들 중 일부는 내질러진 창끝을 피하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느릿느릿 병장기가 서로를 향해 빽빽하게 드리워진 모습이 보기에는 하품이 나올 정도였지만 그 안에서 싸우는 이들에게는 치열함 그 자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