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2
강철의 열제 132화
전통에서 또다시 화살을 뽑아내던 우루가 눈살을 찌푸리곤 반쯤 꺼낸 화살을 도로 넣었다.
“끙…….”
마음먹은 대로 결과가 안 나오자 우루의 입에서는 아쉬움이 담긴 한숨이 비집고나왔다.
“뭬야. 도망 가잖네!”
그 한숨이 끝나기도 전에 부루가 버럭 고함을 쳤고, 우루의 얼굴이 똥 씹은 듯이 일그러졌다.
“제길.”
우루의 입에선 처음으로 낭패가 섞인 음성이 흘렀다. 멀어져가는 퍼거슨 후작의 대열을 바라보는 그들의 귓가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남은 적 기마들을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도록.”
어느새 그들의 뒤쪽으로 다가온 고진천은 아직도 식지 않은 핏물을 뒤집어 쓴 채로 서 있었다.
“남겨 놓은 놈들이라도 쓸어버려야지.”
“알갔습네다.”
좋은 기회를 놓쳤지만 진천은 아무런 타박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전쟁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투도 아니었다. 그들이 할 일은 어느 정도 남로셀린의 숨통만 틔어주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 정도만 한다면 자신들이 전장에서 사라진다 해도 쉽게 그들의 존재를 알 수도 없을 것이고 알 겨를도 없을 것이니 말이다.
아악!
퍼거슨 후작이 남겨놓은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하나둘 땅바닥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감상 하듯이 진천은 그렇게 서 있었다.
“어서 처리하고 다시 대열을 정비 하라우!”
부루의 고함소리가 정리되어가는 전장에 울려 퍼졌다.
* * *
아무리 철저한 방비가 되어 있더라도, 헬리오스 바이칼 후작이 직접 이끄는 본대를 언제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목책을 세우고 저항하던 방어선이 무너지자 약속이나 한 듯이 뒤쪽으로 물러가는 북로셀린의 병사들을 보며 바이칼 후작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행이군.”
“그렇습니다. 생각 외로 빠른 시간에 적 방어선을 무너뜨렸습니다. 어서 이 기세로 밀어 붙여야 합니다!”
무너진 방어선을 뒤로하고 후퇴하는 남로셀린의 동부군 정예를 바라보던 실렌 베르스 남작이 흥분한 기세로 바이칼 후작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바이칼 후작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베르스 남작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다행인건 우리가 빨리 적의 방어선을 무너뜨린 것이 아닐세.”
“아!”
그때서야 베르스 남작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적 호위기사단 말씀이군요.”
“음.”
만약 북로셀린 기사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퍼거슨 후작의 호위 기사단들이 나섰다면 이렇게 쉽게 뚫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바이칼 후작의 심중을 헤아린 베르스 남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이지만, 아마도 우리 앞으로 나타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매의 군단이 큰 힘이 될 줄이야.”
바이칼 후작의 흡족한 목소리에 베르스 남작은 쓴 웃음을 지었다. 만약 매의 군단이 합류되어있는 부대가 아니었다면 이 작전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바이칼 후작은 아직 가우리 군에 대해 반신 반의였던 것이다.
‘후작 각하, 그들은 전귀들입니다.’
가우리 군들의 전투를 지켜보아왔던 베르스 남작은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하고 다시 전장으로 눈을 돌렸다.
“남로셀린의 강아지들아! 나 휘리안 남작의 칼을 받아라!”
“마지막 발악이군.”
바이칼 후작과 베르스 남작의 눈에 달려 나오는 한 떼의 기마가 보였다. 기사들로 이루어진 기마대가 아닌 것이 눈에 보였지만, 그 선두에서 소드를 뽑아들고 있는 자는 그들도 익히 아는 자였다.
“내가 상대해 줘야겠군. 후후후.”
바이칼 후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몰아 나가려 했다.
소드 마스터인 그가 직접 움직이려 할 만큼 휘리안 남작은 무위가 뛰어난 기사였다. 그러나 그 옆에서 베르스 남작이 조용히 저지했다.
“그러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음.”
휘리안 남작의 기마대무리를 향해 달려 나가는 십 여기의 기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들은…….”
바이칼 후작의 입이 슬쩍 열리자 베르스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함께 남로셀린 진영으로 왔던 삼두표와 그의 병사들이었던 것이다.
“킁, 할 수 있는 만큼 잔인하게 죽여!”
선두에서 달려 나가던 두표의 음성이 메아리치자 뒤를 따르는 병사들의 입에서 복명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충!”
“오크 앞의 고블린 같은 놈들!”
달려 나가는 두표 일행을 향해 북로셀린의 휘리안 남작이 말을 내 뱉으며 달려왔다. 나름대로의 격장지계였으나, 이쪽의 반응은 별 차이 없었다.
“킁, 오크나 고블린이나.”
사육의 대상일 뿐인 것들의 비유는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두표의 생각이 끝이 나는 것과 동시에 무리는 격돌했다.
콰콰콱!
거칠게 울려 퍼진 소리에 휘리안 남작은 말에서 순간 균형을 잃었으나 가까스로 고삐를 잡고 말을 몰았다.
‘뭐야!’
입으로 말을 꺼내진 않았으나, 격돌 하면서 느껴진 힘은 자신을 상회하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상대방의 봉을 흘리기 위해 가져다댔던 방패의 반이 뜯겨져 날아간 것을 본 휘리안 남작은 다시금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네놈은 누구냐!”
휘리안 남작이 말을 되돌리며 자신을 치고 지나간 거한에게 물었다. 그는 삼두표였다.
“니 애비다.”
“크윽!”
당황했었던 그에게 돌아온 두표의 격장지계는 충분히 화를 돋웠다. 하지만 정체를 밝히지 않는 상대의 실력에 더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호흡을 다시 바로잡는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리저리 나뒹구는 십 여기의 기마들이었고, 모두다 자신이 끌고 온 기마였다.
기사들은 아니었지만, 지금 땅에서 뒹구는 인원들은 그리 쉽게 나가떨어질 병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적 기마를 한기도 떨어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휘리안 남작의 마음은 조금씩 급해져 갔다.
“바이칼 후작의 호위기사단이구나!”
복장이 달랐지만 휘리안 남작은 그들의 정체를 그렇게 확신하고 외쳤다. 그러나 되돌아온 대답은…….
“개똥이다! 우린 그 노인네랑 상관없어!”
예의를 상실한 대답이었다.
물론 전쟁터에서의 예의란 개도 안가질 것이었지만 최소한 귀족간의 대화내용은 아닌 것이었다.
휘리안 남작의 임무는 병사들이 후퇴하여 다시 방어선을 구성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버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게 느껴졌기에 필요 없는 말이라도 많이 하여 시간을 끌어 보려 했다.
“네놈 나와 단기 결전을 하자!”
“킁, 오냐!”
두표가 수락 하자 휘리안 남작은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저자와 단기결전을 하는 만큼 시간을 끌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던 휘리안 남작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눈앞으로 달려오는 것은 두표 뿐만 아니라 나머지 기마들까지였던 것이다. 다급한 휘리안 남작이 말을 몰아가며 외쳤다.
“단기결전을 수락 하고 이게 무슨 짓이냐!”
휘리안 남작의 호통에 들려온 대답은 암울했다.
“킁! 너는 나랑 단기 결전이고 내 휘하들은 너희 휘하들과 떼거리 결전이다 됐냐?”
휘리안 남작은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될 리가 있냐!’라는 문장을 다시 삼키며 말을 달려 나갔다.
“흐아아압!”
두표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오며 묵봉이 휘리안 남작을 향해 쇄도했다. 휘리안 남작은 힘으로는 불리하다고 느꼈는지 소드를 비끼며 흘려보냈다.
탱!
“헙!”
괴성과 함께 날아온 봉에는 아무런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자신의 말이 비명을 질렀다.
퍼억!
“끼히히힝!”
“으어엇!”
자신이 아닌 말의 머리에 틀어박힌 작은 도끼를 본 휘리안 남작은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러나 신속한 동작으로 무사히 바닥에 착지한 것은 머리를 잃은 몸뚱이뿐이었다.
바이칼 후작의 입에서 나지막한 감탄사가 흘렀다.
“호오.”
“이대로 밀어 붙인다! 전군 앞으로!”
북로셀린의 휘리안 남작의 머리통이 박살나 흩뿌려지는 것을 시작으로, 그나마 후방을 막아서던 북로셀린의 기마들이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무너져갔다.
그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베르스 남작의 명령이 뒤따랐고, 바이칼 후작은 간단히 처리한 두표의 무위에 호감을 나타냈다.
“어떠한 지위를 주더라도 끌어오고 싶군 그래.”
바이칼 후작의 말에 베르스 남작은 아쉬운 눈빛을 했다.
“어떤가?”
바이칼 후작은 회유 가능성을 묻는 것이었다.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후작을 본 베르스 남작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불가능 합니다.”
“불가능?”
힘들다는 말도 아닌 불가능이라 못을 박는 말에 바이칼 후작은 의외라는 눈빛을 보냈고, 베르스 남작은 이전에 요새 수성전에서 혼을 토하듯 부르짖던 두표의 모습을 떠올렸다.
고개를 땅으로 향한 채 천천히 가로젓고 있는 베르스 남작의 모습을 본 바이칼 후작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가우리라……. 이 전투가 끝이 난다면 볼 수 있겠지.’
후작은 말고삐를 잡고 진군하는 병사들을 독려하며 달려 나갔다. 지금은 눈앞의 전투를 치러야 할 때였다.
제38장 공수래(空手來) 만수거(滿手去)
여세를 몰아 진격해 들어가는 남로셀린 군과는 달리 가우리 군은 북로셀린 후방에서 전열을 재정비 하고 있었다. 고진천을 위시한 지휘부는 자신들의 움직임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적진을 무시한 채 모여서 말을 나누고 있었다.
“대열은 정비 되었는가?”
“기렇습네다. 기리고 연 장군 일행이 무사히 귀환 했다고 합네다.”
을지부루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진천은 전방을 바라보았다.
적진이 눈 안에 들어왔다. 그때 매의 군단이 맡은 지역에서 몇 개의 기마가 달려왔다. 이제는 남작이 아닌 대사자가 된 레비언 고윈을 선두로 베스킨 삼형제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열제 폐하, 어찌 진격을 멈추신 것이온지…….”
도착한 고윈은 의아한 눈빛으로 진천을 바라보았다.
“용쓸 일 없다.”
무심한 듯한 말투에 고윈의 얼굴위로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한마디로 이 전장의 주역은 가우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전과를 올리는 것보다 부대 병력의 보전이 최우선이라는 뜻.
“버티기만 해도 되겠습니다.”
가우리 군이 후방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북로셀린 군은 병력이 분산되는 결과가 나온다. 그것 때문에 처음 돌입을 할 때 강력하게 몰아친 것이었다.
진천역시 그렇게 쓸데없는 힘을 낭비해가며 잔인하게 죽여 나간 이유도 적들의 뇌리에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도 가우리 군을 향한 북로셀린 병사들의 눈엔 공포가 서려 있었다.
“버틴다라…….”
진천의 입술이 슬쩍 열렸다. 미간이 약간 구겨진 것이 무언가 생각 하는 듯했다. 고윈 남작과 을지 형제는 그런 진천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고윈.”
“예.”
진천이 말문을 열자 고윈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저 인원이 먹으려면 군량이 상당히 많겠군.”
“그렇습니다.”
“위치를 짚어 보겠나?”
기괴하게 울라간 진천의 입꼬리와 함께 고윈의 무뚝뚝한 얼굴에서도 미소가 그려졌다.
“한 번에 두 가지를 노리시는군요.”
고윈의 말에 진천이 짧게 대답했다.
“세 가지다.”
적 진영을 공격함과 동시에 보급물자를 파기 한다면, 적의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와 함께 적의 장기전 수행능력을 떨어트리게 된다. 그런데 또 다른 한 가지는…….
“먹는 거 버리면 벌 받지.”
고윈은 진천의 말에 보급품 파기가 아닌 노획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그럼 슬슬 움직이지.”
진천이 투구를 뒤집어쓰자 고윈 일행은 다시 자신의 진영으로 말을 몰았고 병사들은 자신들의 지휘관들을 보고 저마다 무기를 고쳐 잡기 시작했다.
“진군하라!”
장수들의 진군명령이 전달되자 고수들은 북채를 휘둘렀다.
둥둥둥둥!
처음의 기습과는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었을까? 전장을 울리는 북소리는 묘한 흥분을 일으켰다.
“오, 온다!”
그와는 달리 북로셀린 진영은 아까의 공포가 지금의 북소리와 더해졌는지 술렁이기 시작했다.
둥둥둥둥!
척척척척!
일부러 그러는지 아니면 우연인지 북소리와 병사들의 내딛는 발소리가 묘하게 일치되었다. 그것은 지축을 울리기 시작했고, 북로셀린 병사들의 심장 고동소리와 일치하기 시작했다.
“궁수 앞으로!”
“앞으로!”
가우리 군의 궁병들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미노타우르스나 물소 뿔로 만든 최고급의 맥궁은 아니었으나 소의 갈비뼈로 정교하게 만든 복합궁은 북로셀린 군의 활보다도 사거리가 몇 배나 길었다.
“계속 진군하라!”
사거리에 들어왔음에도 궁병들은 시위를 먹이지 않고 걸음을 옮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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