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22
391화 성문을 열어라
나아가면서도 만나는 이들에게 웅삼은 유사한 유도 질문을 던져 보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꺼려하는 방향이 한곳으로 중첩되었다.
대전이 있는 방향이었다.
문제는 길이었다.
개구멍에서 올라오던 길은 비교적 허술한 부분이 있었다.
외부의 침입에 대응하면서 황성 내의 수비 병력이 바깥쪽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심부로 나아갈수록 지키는 이들이 집중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지금처럼 조심스럽게 나아가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이동하면서 처리한 이들이 알려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뭐, 쉽지 않을 건 예상했잖아?”
제라르의 질문에 웅삼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도 일단 문은 열어 줘야지?”
제라르의 말에 웅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마지막 혼란을 위해 그리 많지도 않은 침투 요원들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웅삼은 자원하고 나선 검수들을 바라보았다.
다섯 명이다. 어차피 황성을 습격해 온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병력을 개구멍으로 빼냈다가는 대번에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 리셀이 요란하게 흔들어 줘서 그렇지 제라르와 웅삼이 빠진 걸 지금쯤 눈치 챘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소수만이 움직여야 했다. 웅삼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위험한데 어쩔 수 없다.”
“칼밥 먹는 놈이 안 위험한 곳이 있수?”
“에이. 위험한 거 가리려면 칼 잡지 말아야지 않소.”
“황제 목 따는 건 쉬운 일이유?”
다들 킬킬 거리며 한마디씩 던졌다.
어차피 양쪽 다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안쪽에서 문을 연다는 건 더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황성의 눈길은 성문을 향해 있었다.
병력 역시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고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여기 있는 다섯 명이 성문을 열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거다.
반쯤은 내놓은 목숨들이다.
하지만 다들 별로 고민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실실 웃으며 대꾸할 뿐이었다.
항상 구박하며 장난질을 하던 웅삼이 그들과 눈길을 하나씩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때 카사 백작이 그들이 있는 자리로 걸어가 섰다.
“넌 왜?”
“대충 길잡이라도 해야죠.”
카사 백작의 말에 웅삼이 어이 없다는 듯 되물었다.
“니가? 어차피 길도 잘 모르잖아. 와 봤다고는 하지만…….”
카사 백작이야 일반적인 구조나 알지 내부의 구조를 알 턱이 없었다.
그런데도 위험한 일에 스스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적어도 먼저 한걸음 나설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외모가 그리 튀지는 않으니 황성을 벗어 나기 전까지는 미끼라도 할 수 있고…….”
카사 백작이 어설피 웃었다.
그 모습에 웅삼이 마주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다리는 덤덤하게 말하는 것과 달리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름 기사급은 된다며?”
“딱 턱걸이니 병사 두엇은 상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짐이나 되지 마라.”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차피 지금부터는 짐입니다.”
카사 백작의 말에 웅삼은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제라르는 그런 카사 백작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고선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전쟁 끝나고 미친 듯이 달려 보자고.”
“흐흐흐, 알겠습니다!”
그렇게 웃은 카사 백작이 다섯 명의 검수들과 함께 등을 돌려 사라졌다.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웅삼과 제라르는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밖에서의 소란이 커지면 그때가 신호라 생각했다.
문을 안쪽에서 공략한다면 아마도 혼란은 더해질 것이다.
물론 그리되면 황제가 피신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판단을 내리기 직전의 순간을 노릴 것이다.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조심스럽게 전진을 해야 했다.
“우리도 가자.”
웅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 * *
으와아아아!
전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의 수성이었다.
카버 왕국의 수비 병력들은 개미떼마냥 들러붙는 말론 왕국과 로셀린 왕국의 연합군을 떼어 내지 못했다.
그 결과 성벽이 점차 장악당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기습으로 인해 당황해 하던 카버 왕국의 병사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성벽 위마저 점 령당하자 급격히 사기가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흐음.”
헬리오스 바이칼 공작이 흡족한 모습으로 성벽 위에 올라 전장을 훑어보았다.
“그래도 정예는 정예군.”
하지만 이 혼란 속에서도 카버 왕국의 전열은 흩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빠르게 물러나 대열을 정비해 나가고 있었다.
“이쪽도 준비를 좀 해야겠어.”
전장을 살피던 바이칼 공작이 전령을 불러 명령을 전달했다.
성벽 위에 올라선 병사 하나가 뿔고둥 소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불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깃발을 든 병사가 휘휘 내젓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친 듯이 밀어붙이고 있던 병사들이 발걸음을 멈추기 시작했다.
대신 성벽위의 전투는 더욱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방패수! 빨리 빨리!”
성벽 위를 장악한 지휘관들의 명령에 병사들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왔다.
그 옆으로는 방패를 마치 개미들이 먹이라도 나르듯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이내 내성을 향해 방패들이 줄을 이어 세워지기 시작했다.
“작정을 했구나.”
카버 왕성의 수비 책임자인 세비 카르스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성벽 위에 세워지는 방패들을 보니 적들이 단순히 수도를 치고 빠지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이 끌고 온 병력을 봐도 알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도 있었다.
카버 왕국의 전력은 신성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후예를 자청하는 이들 중에서는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하지만 지금 상황은 안 좋았다.
압박을 위해 병력은 남하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기습.
왕이 잡히면 끝나는 전쟁.
불리한 상황임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저들을 막아내고 잡아낼 수 있다면 상황은 반 전할 수 있었다.
저들의 패배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일단 두 제국이 움직일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두 제국이 지난 제국전쟁 이후 틈을 보고 있었다.
오랜 내홍을 겪었지만 말이다.
거기에 대충 불씨도 심어 주었다.
소울아머로 만들어 낸 가짜 초인 말이다.
그런데 일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 일격을 당하니 뼈아플 수밖에 없었다.
“막아야 한다.”
이를 빠득 갈은 카르스 백작의 눈이 이글거렸다.
창밖을 바라보던 카버 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위험하옵니다!”
상체를 창밖으로 기울이다시피 한 카버 왕의 모습에 귀족들이 창백한 얼굴로 만류했다.
하지만 카버 왕은 으르렁거리는 음성을 내뱉었다.
“닥쳐라 좀.”
소울아머까지 차려입은 그가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하겠느냐만 그래도 일국의 왕이다.
당연히 이곳에서 그의 안위가 제일 중요했다.
심지어 가우리의 궁수는 유명했다.
만에 하나 저 중에 신궁이라 불리는 을지우루라도 있으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결국 뚫렸군.”
카버 왕이 입술을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곳의 기습이었기에 어차피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라 판단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도 이른 시점에 성벽을 점령당했다.
보통은 성벽을 넘어 성문을 열 것이겠지만, 적들은 오히려 한숨 쉬어 가는 선택을 했다.
성벽을 자신들의 차지로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수성이 아니라 반대로 공성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퇴로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물론 그럴 의무는 없었다.
비록 많은 병력이 남하해 있다지만 명색이 왕성이다.
인근에 병력이 아예 없을 리는 없었다.
다만 시간이 부족할 뿐.
반면에 적들은 많은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물론 적들도 바보는 아니다.
“중구난방으로 밀고 오는 게 차라리 속 편했거늘.”
카버 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거점을 만들어 한 번 쉰 뒤에 한 방에 치고 들어올 것이 뻔했다.
힘이 있으니까.
비등한 상황이라면 승기를 잡았을 때 밀고 들어오려 했겠지만, 저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들이 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니까.
심지어 헬리오스 바이칼이라는 거물이 지휘를 하고 있는 병력이다.
저런 자신감은 당연했다.
“후우.”
카버 왕은 검 손잡이를 그러쥐며 중얼거렸다.
“이번만 막으면 된다. 그럼 역으로 치고 내려갈 수 있다.”
위기는 기회다.
부릅뜬 두 눈을 한 채 그의 입이 다시 달싹였다.
“황제가 되는 거다.”
이 상황에서도 그의 욕망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카사 노바 백작의 발걸음은 꽤나 침착해져 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아가면서 몇 차례의 미끼 역할을 잘 수행해 내었기 때문이었다.
의외로 황성에서 돌아다니는 그를 의심하는 인원은 별로 없었다.
뭔가 무력이 뛰어나거나 적으로 여기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었다.
그저 눈길 끄는 미남자라는 정도가 특이점이었다.
그 덕에 지나치면서 긴장이 풀어진 적들을 순차적으로 상대해 낼 수 있었다.
그때였다.
요란한 발걸음이 사방을 울리기 시작했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있다!”
“젠장.”
카사 백작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누군가의 시체를 본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이런 상황이니 조금이라도 늦게 발견된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간사하기 마련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발각되었다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때 카사 백작의 앞으로 뛰어오는 수명의 기사들이 보였다.
“위험합니다! 지금…….”
“잠깐.”
그들 중 하나가 카사 백작에게 위험을 알리려다가 제지를 당했다.
기사들 중 선임으로 보이는 이였다.
“수행원 없이 다니십니까?”
“이 마당에 수행원이 뭔 말인가. 저 밖에서 적들을 막는데 보탰네.”
카사 백작은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그를 따르는 검수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몸을 숨기며 따르고 있었다.
아무리 그들이 위장을 한다 해도 무리는 있었다.
발걸음부터가 티가 날 수 있었다. 기사쯤 되면 발걸음만으로도 알 수 있는 정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렇게 홀로 있어야 경계를 덜 받는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이리 말하면 두셋 중에 하나는 감탄을 하며 지나쳤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기사는 그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감탄을 하며 지나쳤던 때는 침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고 지금은 인지한 상황이었으니까.
“실례지만 가문이 어디십니까.”
되물어 오는 기사를 보며 카사 백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보면 억울해서 내뱉는 한숨일 것이다. 하지만 이 한숨은 다른 의미였다.
왠지 눈앞의 기사에게는 변명이 통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노바 백작가네.”
“…….”
노바 백작가라는 말에 기사는 뒤를 돌아보았다.
제국에 남작 자작이 얼마나 많겠는가.
심지어 백작이라는 귀족위를 가진 이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이곳이 황성이라는 곳이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귀족이 있을 리가 없었다.
“모르는 게 당연하네.”
카사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승작 한 지 얼마 안 되었거든.”
“승작 말입니까?”
승작이라는 말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승작이 될 시점이 아니다.
전쟁의 양상이 딱히 자랑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카사 백작이 다시 말했다.
“필리어리 왕국이라 모를 수도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