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26
395화 문이 열리고
“이 미친놈들 무슨 짓거릴!”
검수들의 행동에 화가난 로우급 유저가 발끈하여 달려들었다. 소울아머 유저는 그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뭔가 위험한 냄새를 맡은 탓이었다.
그리고 그건 현실이 되었다.
차창!
로우급 유저의 공격을 앞선 검수가 막는 순간 뒤에 있던 검수가 동료의 몸을 축으로 아래로 파고들 듯 회전하며 검을 뿌린 것이다.
서걱!
“헙!”
순식간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검수의 공격에 로우급 유저의 무릎 아래가 잘려 나갔다.
로우급 유저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순간 다리를 베고 지나간 검수가 다시 뒤로 돌아갔다.
마치 뒤로 몸을 숨기듯.
이어서 처음 공격을 막았던 검수가 칼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콰직!
투구 위쪽에서 작은 파열음이 울려퍼졌다.
이내 붉은 선이 머리 끝에서 가슴어림을 지나 사타구니까지 이어졌다.
“비, 빌어먹…….”
눈에 핏발이 선 로우급 유저의 몸통이 양옆으로 쫘악하고 갈라졌다.
이내 피가 솟구쳤지만, 그것도 잠시 폭주하는 소울포스의 불길에 휘감겨 버렸다.
소울아머 유저가 그런 로우급 유저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허, 이런 병신을 봤나.”
수하의 죽음에 분노는커녕 경멸의 시선을 보내었다.
분명 당할 만한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조금만 성급하지 않았다면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심 놀라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서 봤기에 뒤에서 돌아 나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저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면 당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굳이 그걸 내색하지 않았다. 다만 신중을 기할 뿐이었다.
“와봐 와봐!”
그 순간 소울아머 유저가 입꼬리를 올리더니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공격.”
순간 기사들이 그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검수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굳이 니들을 상대할 필요는 없지 않아?”
소울아머 유저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은 성문 앞에서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는 카사 백작과 검수들을 향했다.
“젠장.”
달려드는 기사들을 베어 넘기던 검수둘의 시선이 소울아머 유저의 뒤를 향했다.
그리고 서로 교차하며 양 옆의 기사들을 베어 넘기며 눈빛을 교환했다.
‘가자.’
‘가자!’
동시에 둘이 곧바로 자리를 박찼다.
순간 틈이 생겼다.
아무리 검수들에 의해 모자라는 실력이라 해도 고르고 고른 황실 기사다.
기사들의 칼날이 달려 나가는 두 검수들의 몸을 갈랐다.
이미 걸레짝이 된 갑주는 더 이상 몸을 보호하지 못했다.
살점이 갈라지고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잡아!”
기사들을 떨치고 달려 나간 두 검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일렬로 나아갔다.
자세가 낮아졌다.
그때 등을 보이고 있던 소울아머 유저가 몸을 돌리며 허연이를 드러내었다.
순간 정면의 검수가 이를 악물었다.
‘당했네.’
‘젠장.’
하지만 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먼저 나아가던 검수가 자세를 낮추며 소울아머 유저의 다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뒤이어 따라오던 검수가 그의 등을 타고 앞으로 넘어오며 장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두 개의 빛이 십자로 교차했다.
차창!
순간 불똥이 튀었다.
소울아머 유저가 둘의 공격을 거의 동시에 튕겨 내었다.
“칫!”
“후우.”
검수들은 연이어 맹공을 가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말이다.
쇠붙이가 부딪히면서 불똥이 튀었다. 그들의 몸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갈라진 상처에서 피가 튀었다.
그러면서 외쳤다.
“빨리 열라고 이 멍청이들아아아!”
“끈질기구나.”
소울아머 유저가 질린 표정으로 눈앞의 검수를 바라보았다.
팔뚝하나가 없는 상태로 그를 지금까지 막아왔던 것이다.
심지어 들고 있던 장도는 반토막이 났다.
온몸의 갑주는 이미 걸레가 되어 맨몸이나 다름없었다.
그 맨몸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피로 범벅이었다.
옆구리에는 내장이 갈라진 거죽을 뚫고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눈빛은 살아 있었다. 독기. 그리고 살기.
궁지에 몰린 자의 독기와 살기는 아니었다.
반드시 적을 상대해 이겨내겠다는 의지.
“희안하단 말이야. 아직도 날 상대하겠다는 건가?”
“흐우. 저, 저 문이 열리면…….”
창백한 낮빛의 검수가 입을 열었다. 형형한 눈빛을 보내며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 날 죽일 기회는 어, 없어.”
갈라진 입술 사이로 드문드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빛과는 다르게 이미 그의 몸은 한계를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뭐?”
소울아머 유저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검수가 어깨를 들썩였다.
“힘들다. 덤벼봐. 기회를 주지.”
끝까지 도발하며 검수가 반토막 난 장도를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는 잘린 팔뚝을 앞으로 내밀었다.
잘려진 팔뚝이 까딱거렸다.
마치 오라는 듯.
도발한다.
“오라니까?”
훨씬 평온해진 목소리.
“노오옴!”
노한 소울아머 유저가 그를 향해 일검을 날렸다.
잘려진 팔뚝을 또 가르고 심장에 롱소드를 박아 넣었다.
푸푸푹!
거침없이 심장을 가른 롱소드가 검수의 등을 뚫고나왔다.
둘 사이가 가까워지자 비릿한 피내음이 소울아머 유저의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검수의 두 다리가 그의 허리를 휘감았다. 이어 목 줄기 사이가 뜨끔했다.
카드득!
순간 목을 틀었지만 갑주 사이로 파고든 부러진 칼날이 쇄골을 가르는 것이 느껴졌다.
소울포스마저 이겨내고 말이다.
“크윽!”
“쿨룩!”
소울아머 유저는 검수를 뿌리쳐 냈다.
검수의 몸이 튕겨져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하아. 빌어먹을.”
소울아머 유저가 부러진 칼이 박힌 목과 어깨부분을 움켜쥐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더는 전투가 불가능한 상처를 입은 것이다.
바닥에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검수를 보며 소울아머 유저가 질린 얼굴로 물었다.
“너…… 이름이 뭐냐.”
“괴…….”
검수는 울컥하며 올라오는 핏물을 뱉어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괴소님 이시……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는 그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는 후련한 미소가 걸려 있을 뿐이었다.
“빨리 열라고 이 멍청이들아아아!”
뒤에서 울려오는 외침에 카사 백작과 검수들은 더 바빠졌다.
“쌰앙! 어디서 멍청이라고!”
그들의 상태도 좋지 못했다.
방금 로우급 유저 하나를 상대하며 상처가 더 늘었다.
바로 눈앞에 성문이 있는데 그게 닿는 게 어려웠다.
그때 카사 백작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달렸다.
창날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지독한 고통이 따랐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검수들의 투지가.
그들의 의지에 그 역시 중독되었다.
콰득!
문을 막고 있는 창병의 장창이 옆구리를 뚫었다. 하지만 카사 백작은 오히려 나아갔다.
우두두둑!
뚫린 옆구리를 관통하는 미끈한 창대의 감각이 내장을 훑었다. 이 기묘한 감각에도 카사 백작은 나아갔다.
서걱!
그의 롱소드가 창을 내질렀던 병사의 목을 베어내었다.
힘이 부족했지만, 창을 내질렀던 병사가 목을 부여잡고 모로 쓰러졌다.
문의 경첩이 보였다.
내성문이기에 큰 경첩으로 가로질러 있는 것이 다행이랄까.
순간 문이 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지대를 두고 밀고 있는 시에라 제국 병사들의 등판들이 보였다.
푸푹! 푹!
나아가는 카사 백작의 주변에서 칼과 창날이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카사 백작의 몸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알 수 있었다.
누군지.
검수들일 것이다.
카사 백작은 고통을 잊으려는 듯 고함을 내지르며 롱소드를 휘둘렀다.
서걱! 서거걱!
“커억!”
“억!”
무방비 상태로 허리를 베인 병사들이 흐느적거리며 쓰러졌다.
주변에서도 비명이 연이어 터졌다.
검수들이다.
그들이 미친 듯이 베어넘기고 있었다.
카사 백작은 문을 가로지르고 있는 나무토막을 향해 롱소드를 내리 그었다.
퍼억!
“으아아!”
잘리지 않았다. 다시 고함과 함께 롱소드를 내리그었다.
허리가 뜨끔했지만 그의 롱소드는 거침없이 내리그어졌다.
콰직!
콱!
“힘 좀 써!”
검수의 외침이 다시 울려 퍼졌다.
카사 백작이 다시 롱소드를 그었다.
따앙! 그의 롱소드가 바닥을 찍으며 카사 백작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
카사 백작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그 단단했던 빗장의 중심에 세로로 빛이 비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하, 하하하.”
카사 백작이 웃었다.
귀청을 찢는 함성이 들려왔다.
내성 문이 열렸다.
찢어지는 함성.
순간 두 검수를 상대하던 소울아머 유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끝내 내성문이 열린 것이다.
그것이 틈이 되었을까.
만신창이가 되었던 검수가 내달리며 그의 발등에 장도를 박아넣었다.
콰직!
“크윽!”
동시에 소울아머 유저의 롱소드가 발등에 칼을 꽂은 검수의 등판에 꽂혔다.
“읏!”
그런데 빠지지가 않았다.
“키히히!”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바로 등판을 꿰뚫린 검수에게서 나오는 웃음소리다.
그가 등판을 뚫고 나온 롱소드의 칼날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손가락 몇 개는 이미 잘려나갔다.
하지만 더욱 단단히 그러쥐었다.
“놔!”
소울아머 유저가 악다구니를 썼다. 그때였다.
바람이 스쳤다.
롱소드가 가벼워졌다.
뽑힌건가?
“아…….”
아니었다.
잘렸다.
뒤에 있던 검수가 횡으로 장도를 휘두르며 롱소드를 잘라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바퀴 돌며 한걸음 더 나아갔다.
잘린 롱소드를 들고 기우뚱하고 있는 소울아머 유저의 동공에 한 줄기 빛살이 비추어졌다.
“이런 잔재주를!”
롱소드가 잘려졌지만 아직 반이나 남았다.
검수들은 이미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움직이는 게 용했다.
물러서려는 그의 발이 덜컥 멈췄다.
발등에 칼이 박혀서가 아니었다.
“키히힛!”
다른 발마저 잡은 검수의 기괴한 음성이 다시 울려왔다.
“미친 새끼들…….”
소울아머 유저의 허망한 음성이 울렸다.
그 허망함을 가르고 장도가 그의 목을 스쳤다.
둥실하며 머리통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푸른 불빛에 휩싸인 소울아머 유저의 몸통이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쿠웅!
“와아아아!”
험성이 울리고 있었다.
열려진 문으로 남부연합군의 별동대가 내달려오고 있었다.
털썩.
소울아머 유저의 목을 날린 검수가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엎어져 있는 동료의 몸을 끌어당겼다.
“쿨럭. 아프다.”
“병신. 안 아프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그렇게 주저앉은 채 가슴을 비집고 나온 롱소드의 날을 뽑아 한쪽으로 던지며 동료의 몸을 보듬어 안았다.
“그, 그런가.”
“어. 나도 아퍼.”
“힉힉힉!”
“클.”
바람 빠지는 웃음이 서로를 위로했다.
“괴, 괴소는?”
괴소라는 말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웃으며 쓰러져 있는 괴소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할 만큼은 했네.”
“조, 조금 있으면 보겠지?”
“그래.”
검수는 자신의 품에서 멍한 눈빛을 보이는 동료를 보며 답했다.
“좀, 자야지.”
“그래.”
자신을 안고 있는 동료에게 말했다.
“박팔노…… 넌. 천천히……와.”
“그래.”
“마누라에게 안부 좀…….”
“…….”
박팔노는 그 말에는 답하지 못했다. 아니 했어도 듣지 못했을 거다.
이미 그의 동공은 움직임이 없었으니까.
“무유. 자냐?”
박팔노가 품안에 있는 무유를 불렀다.
답은 없었다.
박팔노가 무유의 몸을 끌어 안으며 중얼거렸다.
“자는구나.”
박팔노가 무유의 눈을 감겨주었다.
“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