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58
431화 붉은 선이 향하는 곳
고윈의 얼굴이 밝아졌다.
후방의 위협이 해소되고 있었다. 통신마법사의 연락을 통해 무덕의 공이 컸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진천이 고립되어 있었다.
심지어 진천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깃발들을 보니 적들도 이 전투의 승부가 진천을 통해 결정된다는 것을 느낀 듯했다.
당연했다.
시에라 제국은 황제가 쓰러졌다. 그에 걸맞는 결과를 만들어 내야 결집력이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프라임 공작의 선언을 봤을 때 확실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결코 정복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천을 제압하는 것이 필요한 게 당연했다.
“전체적인 상황은…….”
반전까지는 아니지만 최악은 넘겼다. 이쪽 역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거기에 병력의 질이 시에라 제국에 비해 좋았다.
일단 연합군이라는 구성체의 단점일 수 있는 지휘체계가 안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삼국동맹을 통해 상호 보완적으로 운용했던 덕이 컸다.
그리고 가우리 연합군 역시 서로 오랜 전투를 함께하면서 서로 익숙한 상황.
두 무리가 하나로 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여기까지 진군해 오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가장 큰 강점은 시에라 제국군의 상당수가 새로운 징집병이라는 점과 달리 이쪽은 시에라 제국의 침략 전쟁에 총력을 다해 왔었기에 실전을 거친 정예라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가우리 연합이 그들에게 기댈 구석이 되어 준 이유가 가장 컸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콰차앙!
또 하나의 검은 구체가 터져 나갔다.
그곳에서 소름끼치는 하울링들이 합창이라도 하듯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몸집들이 사방으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오크전사들이었다.
“허?”
의외였다.
중만과 오크들이 저걸 깨고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깨는 것은 물론이고 그와 동시에 시에라 제국의 전열을 무너트리며 나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붉은 기운을 띄우며 사방으로 몰아치는 오크전사들의 활약에 시에라 제국군의 전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저들도 저 정도의 위력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고윈은 명령을 내렸다.
“날개를 자른다.”
고윈의 명령이 통신 마법사들을 통해 흘러 들어갔다.
그 통신마법은 새로이 합류한 두 명의 초인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남부 연합군 후미의 양 날개는 감싸려 하는 시에라 제국군의 양 날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남부 연합군의 허리 부분에서 일단의 병력이 좌우로 나뉘어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바로 새로운 초인들이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중갑보병들이 밀어붙이자 시에라 제국의 대열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워낙에 속공이었고, 소울아머 유저들은 중앙에 몰려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을 막을 전력은 없었다.
물론 중앙에 전력이 몰린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함정에 빠지자 만에 하나 있을 퇴각 상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고윈은 전력을 후미에 일부 배치했고, 그 판단 덕에 지금의 상황이 가능했던 것이다.
와아아아!
남부 연합군 병력이 내지르는 사기 가득한 함성이 전장을 울렸다.
먼저 왼쪽이 무너지면서 시에라 제국군의 왼쪽 포위 병력이 단절되었다.
이어 오른쪽마저 무너지면서 오른쪽 병력들이 단절되었다.
그때 오른쪽의 추격전을 막기 위해 운용되었던 궁기병들이 좌우로 나뉘었다.
기병의 빠른 기동성으로 시에라 제국군 병력의 옆구리를 타고 지나며 연신 화살을 날렸다.
궁기병의 수는 수천에 불과했지만, 그 하나하나가 명사수였다.
심지어 옆구리가 터져 나가며 본대와 잘린 그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아아!”
외곽에서 동료 하나가 화살에 맞아 고꾸라졌다.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사방을 돌아보았다.
보이지는 않지만 함성을 들으며 지금 궁기병들이 화살을 쏘아 대는 곳을 제외하면 모두 적들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병사는 외곽에 위치한 덕에 뒤쪽과 앞쪽에서 적의 병력이 이쪽 병력을 감싸기 위해 돌아 나오는 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황제도 죽었고, 상황도 불리하게 느껴졌다.
결국 병사의 선택은 하나였다.
“으아아!”
궁기병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다른 곳은 도주할 곳이 없었다. 궁기병들이 있다지만,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차라리 그쪽이 생존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내달리던 병사를 따라 일부 병사들이 함께 따라 달렸다. 돌격해 나가는 줄 아는 듯 애처로운 고함을 내지르는 병사들도 있었다.
일부는 주저주저 하다가 그쪽이 살길이라 판단한 병사도 있었다.
그때 먼저 달리던 병사와 다시 되돌아오며 활을 쏘던 궁기병의 시선이 마주쳤다.
거리는 멀지만 왠지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 병사는 들고 있던 칼을 앞으로 던져 버렸다.
궁기병을 맞추기 위함이 아니었다.
무기를 버렸다는 의미다.
그리고는 양팔을 벌리고 미친 듯이 뛰었다.
울며불며 뛰었다.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소리를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살려달라고 외쳤다.
그때 화살이 날아왔다. 그 화살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퍼억!
“꺼억!”
하나가 비명과 함께 나뒹굴었다. 뒤따라 무기를 쥐고 달리던 동료다.
연이어 그의 주변으로 몇 대의 화살이 더 날아왔다.
마치 화살이 그를 피하는 듯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죽은 이들은 무기를 쥐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서 도주를 선택한 그는 무기가 없었다.
뒤에서 그걸 눈치챈 시에라 제국 병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던지며 도주를 택했다.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무기를 내던지고 달려 나갔다.
그러자 화살은 더 집요하게 날아들었다.
무기를 든 자들을 향해 말이다.
그러자 분위기는 전염병처럼 번져 나갔다.
무기를 버려야 산다고 말이다.
그렇게 양측의 병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크워어억!
오크 전사들이 미친 듯이 밀고 나갔다.
중만은 그 중심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롱소드 하나를 쥐고 따라 달리고 있었다.
원래 좋은 체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 온 뒤 오크들과 부대끼고 살아가며 원치 않아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보니 나름 체력이 붙었다.
그뿐 아니라 전쟁에 원치 않게 참여를 당하면서 했던 훈련이 그의 체력에 보탬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위해 죽어 나가던 오크들을 보며 눈이 뒤집힌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비록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롱소드라도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전쟁에 취해서일지도 몰랐다.
오크들은 붉은 기운을 뿌리며 시에라 제국군을 말 그대로 도륙해 나갔다.
촘촘히 짜여졌던 중장보병의 방진은 이미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오히려 야성이 폭발하며 공격 본능이 살아났다.
그렇다 해서 훈련을 했던 몸이 기억을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방진은 흐트러졌지만, 협력 공격은 여전했다.
아군을 향해 공격해 오는 이의 뒤를 친다던지, 때로 로우급 소울아머가 달려오면 서넛이 뭉치면서 방어와 공격을 연이었다.
팔다리 하나 잘리는 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로우급 유저라 해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오크 무리가 죽음의 향연을 벌이기 시작하는 순간 좌우의 병력이 무너지자, 군단의 지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지휘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고윈과 그들 간의 차이점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지휘부를 호위하던 이들은 혼란스러워 하는 그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들은 지휘부처럼 혼란스러워 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전황이 크게 흔들린 것은 사실이었다.
거기에 양 날개의 병력을 합치면 십만에 달하는 인원이기도 했다. 어쩌면 더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이쪽의 병력 수는 많았다.
물론 사기가 무너진다면 병력 차이는 의미가 없긴 했다.
하지만 이쪽은 아직 적들의 수뇌부를 포위하고 있었다.
특히 진천이 고립되어 있어 그만 잡아낸다면 이 전쟁은 끝난 것이라 판단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천이 저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카버 왕국으로부터 지겹게 들은 것이 그것이었다.
그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수천의 병력도 수만의 병력이 낼 수 있는 힘을 낸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하나가 꺾인다면 그들이 가지는 충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무적이라 생각한 이가 쓰러진다면 그것은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충격임이 분명했으니까.
멀리 갈 것도 없었다.
프라임 공작이 쓰러진다는 건 상상도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아마 시에라 제국군은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 프라임 공작은 진천과 같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전투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유리하니까 말이다.
그때였다.
호위부대 주변에 있던 마법사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아 마나 파동이 약간 미묘하게 흘러서 말입니다.”
“누가 접근이라도 한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이 주변으로 은신 마법을 탐지하는 마법을 깔아 두었으니 말입니다. 대법사 이상의 고위급 마법사 아니면 개미 한 마리도 통과 못 합니다.”
“그런가?”
마법사의 장담에 호위책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리셀은 이곳에 없다.
그리고 상당수의 마법사가 카버 왕국과 시에라 제국 황성을 공략하기 위해 빠져 있었다.
그 덕에 적은 숫자의 카버 왕국 마법사들이 숨통이라도 트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술법사들의 숫자로 압도하기도 어려운 것은, 그들이 전부 휘가람 한 사람에게 묶여 힘 겨루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행이지.”
호위 책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져갔다.
그때 마법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저 양반에게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지?”
마법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생각을 멈췄다.
뭔가 마법적인 아이템을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죽고 죽이는 전장 사이로 숨을 죽이고 천천히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그가 스쳐 지나가도 주변의 이들은 보지 못하는 듯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쪽이구나.’
그렇게 시에라 제국병사들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이는 바로 리카르도 백작이었다.
그의 동공에 희미한 붉은 선이 비춰지고 있었다.
‘다행이구나.’
리카르도 백작은 희미한 미소를 입에 가져갔다.
원래 그는 진천이 갇힌 구체를 깨기 위해 몸을 은신해서 침투를 했었다.
하지만 까다롭게도 그 근처에는 일부 마법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물론 그들을 제압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 곁에 있는 엡소드라던지 소울아머 유저들이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사리 틈을 노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마침 진천이 함정을 깨고 나왔던 것이다.
그때 리카르도 백작의 눈에 희미한 붉은 선이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제자를 죽인 이에게 자신이 걸어 두었던 추적 마법이었다.
그 추적마법이 향하는 곳은 바로 지휘부의 깃발이 있는 곳이었다.
리카르도 백작은 그것을 본 순간 바로 목표를 바꾸었다.
그건 바로 복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