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68
441화 돌려깎기를 보여주지
콰콰콰쾅!
거대한 폭음에 인근에 있던 시에라 제국군은 멍한 표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법과 술법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폭음이야 익숙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익숙함 이상의 소리가 들려오면 돌아보게 되는 것은 본능에 가까웠다.
그중에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귀족들이나 기사들도 있었다.
“저, 저쪽은?”
“지, 지휘부가…….”
전장에서 병사들을 통솔하던 귀족들은 폭발이 일어난 장소를 확인한 순간 머리가 텅 비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빨리 확인해!”
술법사들이 서둘러 서신을 보냈고, 그보다 소규모의 지휘단위에서는 전령이 출발했다.
하지만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빌어먹을! 지휘부가 몽땅 날아갔어!”
“지시 하달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전장에 나서 있는 지휘관들은 순식간에 공황에 빠졌다.
안 그래도 지휘부가 상대방의 전술적 변화에 답답한 대응만을 지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전체를 알 수 없는 전장 지휘관들도 느끼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 지휘부마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바로 상급 부대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다지만, 수십만이 넘어가는 병력이다.
그만한 병력의 상급 부대만 해도 한둘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프라임 공작이나 제자들은 모두 전투 중이었다.
전 군단에 마비가 오는 것은 당연했다.
바우우웅~!
멀리서도 들리는 폭음과 보이는 폭발현장의 모습.
“멋지군! 그런데 누구지?”
“얼음폭풍 비슷한 게 보이는 걸로 봐서는 리카르도 대법사 같습니다.”
일단 적진이다.
그래서인지 환한 얼굴로 묻자 곁에 있던 마법사가 대답해 주었다.
“아……. 어디 갔나 했더니 화려한 걸 해주었군.”
이번 전투에서 만큼은 리카르도 대법사는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
진천이 그의 복수를 존중해 주었던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리카르도 대법사가 복수에 눈이 멀어 일을 그르치거나 할 이가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카버 왕국으로 말론 왕국 마법사들이 꽤 많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그가 남는 것만으로도 사실 큰 도움이라 생각했다.
리셀도 빠진 상황이니 말이다.
그런데 침묵 끝에 뭔가가 터진 것이다.
“가만?”
그때 고윈이 눈을 찌푸리며 적진을 지켜보았다.
뭔가 보이던 것이 안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쪽에 뭐가 있었지?”
그때 때맞추어 마법사가 확대 마법을 그의 앞에 펼쳐 주었다.
그러자 그가 응시하던 곳의 위치가 크게 확대되어졌다.
부서진 병장기와 살점으로 추측되는 붉은 덩어리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커다란 구덩이도 보였다. 그리고 꽤 많은 수의 깃발들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모습으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설마?”
그때 다른 마법사가 달려와 고윈에게 보고를 했다.
“리카르도 대법사님의 보고입니다!”
“내가 지금 보는 게 혹시?”
마법사의 보고가 시작되기도 전에 고윈이 살짝 흥분한 얼굴로 되물어왔다.
“적 지휘부 괴멸! 개인 임무 달성이라 하셨사옵니다!”
“으라챠!”
순간 고원이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에 찬 음성을 터트렸다.
동시에 고윈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치면 지휘관 때려 쳐야지.”
고윈이 눈을 반짝이며 옆의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전 예하 부대에게 명령을 하달한다. 모두 통신 대기!”
“예!”
통신을 담당하는 마법사들이 일제히 통신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전투 중인 곳의 경우 가끔 시간이 지연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 경우 현장의 안정이 먼저이기에 급한 일이 아니라면 연결만 해놓고 대기하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전황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오래지 않아 통신이 연결되었다.
“모두 연결되었습니다!”
통신을 총괄하는 마법사의 대답에 고윈이 적진을 연신 살피며 입을 열었다.
“먼저 각 예봉을 맡은 예하 부대에게 전한다! 지금 부로 버티기는 철회한다!”
[필리어리 철사자 군단 확인했습니다!]
[카말 붉은 곰 군단 확인했습니다!]
[카말 늙은 여우 군단…….]
각기 적들과 접전 중이던 군단에서 속속들이 확인 답변이 들어왔다.
이어 고원이 다시 명령을 하달했다.
“버티기에서 강공으로 전환하며 각 예비대는 전력을 투사하여 예봉을 맡은 군단을 보조한다!”
마찬가지로 답변들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고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단! 적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전술에 치중하지 말고 적을 토막내는 데에 집중하라! 적을 쪼개라!”
고윈이 말하면 답변들이 우루루 나온다. 그리고 다시 고윈이 외친다.
“매의 군단 및 일루이먼 왕국의 기동군단은 두 무리로 나누어 돌려깎기를 행하라! 추격전과 확대는 금지다! 숨통 찾는 쥐새끼는 풀어줘라! 누가 봐도 알 수 있어야 한다!”
고윈의 명령에 일루이먼 왕국과 매의 군단을 지휘하는 지휘부들이 일제히 답변을 했다.
“후방의 경기병대 중 2, 3, 4대는 뒤로 빠져 기동력을 재확보하고, 두 군단이 수월하게 깎아 낼 수 있도록 흠집을 내는 일에 충실한다!”
또다시 연신 답변이 울려왔다.
전장을 살피던 고윈이 답변이 끝나자 우렁차게 외쳤다.
“지금 시작하라!”
남부 연합군의 진형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휘부에서 바라보던 고윈이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중얼거렸다.
“살들을 싹 다 도려내 주지.”
남부 연합군이 강력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하자 시에라 제국 군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삽시간에 와해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그 구심점은 프라임 공작이었고, 그는 건재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휘부가 날아갔다 해도 예하부대의 지휘부는 남아 있었다.
그 덕에 중앙의 병력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았다.
지휘부가 날아갔을 때를 대비한 해법은 다들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지금 접전을 벌이던 최전방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지휘부가 날아갔다는 소식과 함께 갑자기 남부 연합군이 강공을 가해 오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병력간의 연계가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워낙에 큰 폭발이었기에 총지휘부가 다 날아갔다는 소식이 안 돌 수가 없었다.
딱 봐도 지휘부를 상징하는 깃발들이 모조리 날아갔고, 전황을 알리는 북이나 뿔고둥 소리가 딱 끊어졌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합군은 헐거워진 연계를 끊어내기 위해 집중했다.
그러자 병력의 지휘관들은 과감하게 이탈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포위 상황이 아니기에 바로 이탈 후 뒤쪽으로 돌아가서 재정비 후 합류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노리는 이들이 있었다.
두두두두두!
“적 기병대다! 방패수 둘러!”
“창병들은 뒤에서 대기병 방진을 펼친다!”
그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고슴도치마냥 창날을 세우고 방패를 세우는 사이를 틈타 화살들이 날아 들었다.
“궁기병! 화살방어! 화살방어!”
쏘아지는 화살을 확인한 지휘관이 짧게 명령을 펼치자 병사들이 머리 위쪽으로도 방패를 들어올렸다.
명령에 따르는 병사들의 행동은 기민했다.
비록 본체에서 떨어져 나왔다지만, 패주해서 쫓기는 것이 아니라 재정비를 위해 이탈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빠르게 날아든 화살에 아무런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지고 일부는 방패의 틈사이로 비집고 나온 덕에 방패병들이 고꾸라지며 틈이 생겼다.
물론 병사들 역시 살기 위해서 그 틈을 매웠다.
하지만 그들에게 위기는 그것이 아니었다.
쿠구구구구!
뭔가 달려오는 소리였다.
“중장기병?”
그 소리에 놀란 지휘관이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먼지구름.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모습을 드러낸 것은 보병들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뭐, 뭐가 저리 빨라!”
그때 병사들 사이에 있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 일루이먼의 기동군단이다!”
일루이먼 반란 사건 당시 토벌대 소속이었던 병사인 모양이었다. 물론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저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놈들은 곧 지쳐 쓰러질 것이다! 동요하지 말라!”
“저 미친놈들은 밤이고 낮이고 멈추지 않고 뛰어다니는 놈들입니다! 기병으로 추격해도 말이 먼저 지쳐 떨어져 놓치는 미친놈들이란 말입니다!”
지휘관의 말에 병사가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하지만 지휘관은 성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가 칼을 휘둘렀다.
촤악!
피가 뿌려지며 저들의 정체를 밝혔던 병사가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동요하지 말라! 경기병들이 이탈하면 대열을 흩트리지 말고 전속 이탈한다!”
즉결처분 덕인지 병사들은 입을 다물고 천천히 병력을 물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소, 속도가 늦춰지지 않습니다!”
“놈들이 가까워져 옵니다!”
“놈들의 궁기병이 다시 옵니다!”
외곽의 기사들이 당황한 얼굴로 보고를 연이었다.
지휘관 역시 눈이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이탈된 병력의 수는 불과 수천이었다. 하지만 지금 달려오는 병력의 수는 수천이 아니었다.
순간 본대로 합류할까 했지만, 남부 연합군이 스물스물거리며 본대를 감싸고 있었다.
포위도 아닌 어정쩡한 형태였다.
“화살이다!”
그 사이 다시 스쳐 지나갔던 궁기병들이 화살을 쏘아내었다.
“움직이며 대열을 유지해! 멈추지 말라!”
멈춘 상태에서도 완벽히 방어를 해내지 못한 화살 공격을 움직이면서 얼마나 잘 막을 수 있겠는가.
더 많은 수의 병사들이 고꾸라졌다.
그리고 화살이 쏟아지는데 얼마나 빨리 움직이겠는가.
거북이처럼 더 더뎌졌다.
“적들이다!”
결국 기동군단과 조우하게 되었다.
맞닥트리기 직전 그들을 향해 무엇인가가 쏟아졌다.
“뭐지?”
“화살은 아니다!”
“피해!”
갖가지 외침이 난무했다.
쏟아진 것은 짱돌들이었다. 우두두 하고 우박처럼 쏟아지는 짱돌 세례에 병사들이 여기저기 맞아 쓰러졌다.
기사들이야 갑주가 보호한다지만 병사들은 그게 아니었다.
보호받는 곳보다 보호받지 못하는 부위가 더 많았다.
투퉁! 탕! 탕! 퍼퍽!
돌멩이들이 방패와 몸뚱이를 두들기는 소리들이 연신 들려왔다.
몇몇은 돌에 맞아 정신을 잃었는지 나자빠져 있었다.
“으아아아!”
그때 누군가가 병장기를 던지며 이탈했다.
하나가 되고 둘이 되었다.
그들을 막아야 할 지휘관이나 기사들 역시 투석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도, 도망치면 살 수 있어!”
“닥쳐! 도망치면 죽는 거야!”
“저길 봐!”
한 병사가 가리킨 방향.
먼저 도주한 이들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쪽으로는 돌멩이 하나 날아가고 있지 않았다.
꽤 멀어진 병사는 이제 달리면서 갑주까지 벗고 있었다.
추격을 하는 이들도 없었다.
“에이 씨!”
이탈이 시작되었다.
탈주가 시작되었다.
방진이 무너졌다.
“돌아와! 돌아오라고오오!”
지휘관의 외침이 맥없이 울려 퍼졌다.
그 사이 삼분지 일이 빠져나갔고 그 허술해진 대열로 기동군단이 들이닥쳤다.
오랜 시간도 아니었다.
그들이 덮치고 난 뒤에는 시체만 나자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본대를 이탈해 복귀하려던 시에라 제국 병사들에게 각인되어져 갔다.
튀면 살고, 멈추면 죽는다는 각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