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73
446화 필요한 건 주제파악
삼인방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구체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킁, 그냥 깨자니…….”
“닥쳐 이 돼지야!”
“그 입 다물어!”
“끙…….”
두표의 의견은 한 방에 묵살되었다. 류화와 기율은 당장이라도 두표의 멱을 딸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들의 주변으로는 인간병기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도륙한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의 몸에도 자잘한 상처가 그득했다. 냥이도 몸에 난 상처를 혀로 핥고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소울아머를 입은 인간병기들을 모조리 처리했지만 그들은 아직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뭔가 또 함정이 있을까 걱정된 것이다.
물론 두표는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인간이기에 다 처리하고 나서 강철봉으로 후려치려 했었다.
그런 두표의 뒤통수를 기율과 류화가 후려쳐서 막았고 말이다.
생각보다 빠른 두표의 행동 덕에 이곳에 갇히기도 했으니 당연한 응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무슨 수가 없나?”
“땅을 파볼까?”
기율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자, 류화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두표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아, 진짜!”
두표의 빠른 행동력에 둘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두표는 한쪽에 떨어진 방패를 삽 대용으로 삼아 파내었다.
한 번 파낼 때마다 땅이 마치 굳힌 돼지기름 퍼내듯 푹푹 퍼 나갔다.
그렇게 몇 번을 퍼내니 금방 사람 하나는 충분히 묻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파는 사람이 남다르다 보니 결과도 남달랐던 것이다.
“킁! 뭐 이래!”
하지만 땅을 파 내려가도 검은 구체는 변함없었다.
혹시나 싶어 더 깊이 파냈지만 마찬가지였다.
“땅 파는 건 아닌가보다.”
“그러게.”
위에서 류화와 기율이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을 때 열 뻗친 두표가 그대로 방패를 집어던졌다.
“아우!”
“야!”
두표가 삽 대용으로 쓰던 방패를 던지는 순간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경악성을 터트렸다.
두표가 던진 방패가 검은 벽면을 두들겼던 것이다.
터엉!
다행히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순간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응?”
“그냥 깨는 게 맞나?”
두 사람은 두표의 뒤통수를 후렸던 것도 까먹은 채 흔들렸던 검은 벽면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힘껏 휘둘렀다.
와장창!
검은 벽면이 깨어져 나갔다.
“킁, 내 말이 맞잖아!”
두표가 깨어지는 벽면을 보며 억울하다는 외침을 터트렸다.
“그러게?”
“미안.”
하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짧게 답변을 남겨 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만 갇혔었나봐.”
“그러게.”
기율과 류화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그들을 향해 시에라 제국의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죽여라!”
기율과 류화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뒤로 슬쩍 물러섰다.
“어억!”
“엇!”
그러자 그들에게 달려들던 기사들이 비명과 함께 그들의 앞에서 훅 꺼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육편이 솟구쳐 올랐다.
“킁, 뭐야 이거!”
그 육편 조각과 함께 두표가 땅바닥에서 튀어나왔다.
그러자 시에라 제국 기사가 욕설을 뱉었다.
“빌어먹을 함정을 파다니!”
순간 세 사람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암정?”
기율이 기가 차다는 듯 입을 놀렸고, 두표는 적들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현란한 욕설과 사지를 말로도 찢어죽일 것 같은 표현을 쏟아 내었다.
류화는 피식 웃으며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함정 같은 소리 하네. 내가 하면 아름다운 사랑이고, 니들이 하면 원래 불륜인 거다.”
류화의 말에 기율과 두표는 순간 그를 향해 무기를 휘두를 뻔했다.
물론 그러기 전에 시에라 제국 기사들과 병사들이 그들에게 달려들었지만 말이다.
그리그가 우루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본 이븐은 기사들을 이끌고 전장을 누볐다.
이븐의 뒤로는 두 명의 노블 기사단원과 로우급 유저 넷이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 뒤로는 이십여 명의 기사들이 따르던 중이었다.
“쳇, 활 쏘는 놈이 날 노렸어야 했는데.”
그리그가 맡은 상대가 왠지 아까운 이븐이었다.
그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검은 구체가 깨어졌다.
마침 그가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오호?”
이븐의 눈이 반짝였다.
그걸 보자마자 기사들을 이끌고 깨어진 구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사형들이 공을 세우는데 나라고 가만있을 수 없지.”
이븐은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전체적인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걸 모를 이븐이 아니었지만, 그는 이게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머리들을 잡으면 승리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의 주역 중 하나가 되고 싶은 욕심이 그를 이곳으로 이끈 것이다.
콰콰콰!
기사들과 병사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피를 뿌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세 명?”
그 중심에 선 이들은 총 세 명이었다. 그 앞에는 함정 같은 곳에 기사들의 시신이 언뜻 보였다.
“혹시 삼인방?”
무장을 보니 마법사를 통해 전해 들었던 이들 같았다.
특히 옆에 있는 거대한 맹수를 보니 확신이 들었다.
“쯧.”
순간 이븐은 김이 새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마법사들은 그들의 능력이 초인에 달했을 것이라 했다.
실제로 그 셋이 제국과의 전쟁에서 초인 하나를 꺾었다는 말을 전해 주기도 했었고 말이다.
거기에 필리어리 왕국의 왕실을 습격했을 때 그들이 묵갑귀마대를 이끌고 수많은 소울아머 유저를 막아내었다는 첩보도 들었고 말이다.
거기다 지금 이 함정을 뚫어 낸 것도 대단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사형제들은 초인이라 불리는 강자들과 맞붙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김이 새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븐은 의욕 넘치는 얼굴로 말을 달려 나갔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다른 놈을 사냥하면 되지.”
이븐이 눈을 빛내며 그대로 말 위에서 몸을 날렸다.
이븐의 검이 푸른 섬광이 되어 삼인방을 향해 뿌려졌다.
“킁, 뭐지?”
누군가가 갑자기 커다란 동작으로 날아드는 것을 본 두표가 미간을 찌푸리며 강철봉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대기를 가르는 커다란 궤적.
갑자기 날아든 이는 이븐이었다.
이븐의 소울포스가 담긴 검과 두표의 강철봉이 만났다.
콰창!
뭔가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꾸웨에엑!”
그 비명소리에 기율과 류화가 두표를 돌아보았다.
“뭐야?”
“돼지라도 잡은 거야?”
그들의 질문에 두표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생각하는 수준은 돼지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던 이가 분노한 얼굴로 다시 나타나 외쳤다.
“크윽!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아아!”
분노한 이븐의 외침을 들은 삼인방은 헛웃음을 흘렸다.
“허, 살다 살다 이젠 별게 다 만만하게 보네.”
기율의 말에 둘은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븐이 다시 달려왔다.
이븐의 롱소드가 어지러이 흔들리더니 마치 십여 자루의 칼을 동시에 휘두르는 듯한 잔상을 만들어 공격을 해왔다.
“자! 어느 게 진짜인지 맞춰 봐라!”
화려한 검식이 만들어 낸 십수 개의 검날들을 보며 류화가 한숨을 내쉬곤 창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창을 찔러갔다.
장날은 하나가 둘이 되고 이내 넷이 되었다.
그렇게 창날의 환영이 불어나며 이븐을 향해 덮쳐 갔다.
“어헉!”
이븐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자신 있게 뿌린 자신의 검영이 순식간에 집어삼켜졌다.
열댓 개는 되어 보이는 검의 형상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족히 수십 이상의 창날이 그에게 날아든 것이다.
“어억!”
이븐은 순간 짧은 비명을 질렀다. 이어 자신의 롱소드를 거두며 방어를 펼쳤다.
하지만, 그의 몸을 수십여 개의 창날이 꿰뚫고 지나갔다.
“으아아아아아!”
이븐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아 아아아…….”
비명을 내지르던 이븐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꿰뚫었던 창날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몸이 뚫린 곳도 없었다.
“제, 젠장!”
순간 이븐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에게 십수 개의 창날의 환영을 선사한 자는 자신이 이끌고 온 소울아머 유저와 로우급 유저 등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를 우롱해?”
이븐이 이를 악물었다.
단순한 환영이었다.
그래서 자존심에 금이 갔다.
비명도 질렀기에.
이븐은 열이 받았다.
“크압!”
이븐은 소울 포스를 끌어 올리며 전투 장소에 다시 끼어들었다.
“살았네?”
다시 뛰어드는 이븐을 보고 기율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러자 류화가 기사 하나를 창날로 찍어 넘기며 답했다.
“제법 하드만. 죽으라고 찔렀는데 그 순간 막아내더라고.”
“그런데 비명은 왜?”
“뭐, 잔상에 놀랐나보지.”
류화가 별것 아니라는 듯 중얼거렸다.
사실 작정하고 찌른 건 맞았다.
그러나 상대는 빠른 판단으로 공격을 멈추고 방어에 충실했던 것이다.
거기에 그 시점에 적들의 소울아머 유저들과 기사들이 달려들었기에, 공격의 효율도 떨어졌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이븐은 열이 받을 수 있었고 충분히 치욕스러울 수 있었다.
이븐이 가세하자 삼인방은 더욱 바빠졌다.
“힘은 못한데, 확실히 생각하고 칼질하는 인간이 더 낫긴 하네.”
“건 그렇지.”
셋은 싸우면서도 적에 대한 평가를 두런두런 주고받았다.
그게 적들을 더 자극했다.
“합격에 능한 자들이다! 따로 떨어트려라!”
“갈라놔!”
“따로 떨어지면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에서 이븐과 노블 기사단원등의 시에라 제국 기사들이 뱉은 말에 셋의 고개가 한 번에 돌아갔다.
“뭐가 어째?”
“킁! 미쳤구나.”
“아까 창대로 똥꼬까지 뚫어 버렸어야 했는데!”
순간 셋은 열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등을 마주하고 싸우던 진영을 깨고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두표였다.
“크아아!”
괴성을 울리며 그가 강철봉을 휘둘렀다.
그러자 몇몇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피했다.
그러나 미처 피하지 못한 기사 하나가 그대로 몸통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냥이 역시 커다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게 움직이며 앞발로 기사 하나를 작살내었다.
뻐버버벅!
마치 고양이나 호랑이마냥 앞발로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기사의 몸뚱이를 난타해 버린 것이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서서 두들겨 맞던 기사는 갑주와 몸통이 하나로 되어 핏덩이가 된 채 쓰러졌다.
기율은 쌍부를 마치 팽이 돌리듯 돌리며 전후좌우로 양팔을 휘둘렀다.
카락! 칵!
쌍부가 만들어 내는 원은 가로막는 것들을 박살을 내었다.
그러면서도 기율의 몸뚱이가 허공을 뛰어넘을 때면 어김없이 머리 한두 개씩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마냥 툭툭 떨어져 나갔다.
류화는 발걸음을 좌우로 놀리며 ‘z’의 형태로 움직이며 창대를 쭉쭉 뻗었다.
한 번 뻗을 때마다 한 명의 몸통에 구멍 하나씩 만들어졌다.
소리는 더욱 기괴했다.
뽁! 뽁! 뽁! 뽁!
갑주를 뚫는 소리치고는 방정맞았지만, 당한 이들은 언제 당했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구멍에서 뿜 어지는 피를 보며 ‘어?’ 하다가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걸 본 이븐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갔다.
그들의 실력이 부풀려진 게 아니고, 자신이 그들의 실력을 깎아 내린 것이 맞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