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90
463화 드러난 맨얼굴
푸르륵!
순간 강쇠가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구경하던 헨리 백작이 해쓱해진 얼굴로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내가 한 게 아니잖아.”
정말 억울하다는 듯 울상까지 지으며 해명하는 헨리 백작의 말에 강쇠가 퉁방울 같은 눈으로 노려보다가 홱 고개를 다시 돌렸다.
“믿어 줘서 고마워.”
이렇게 대답한 헨리 백작이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젠장, 말 따위가 내 말을 들을 리가 없는데…….”
얼결에 변명을 하긴 했지만 자신의 꼴이 우습다 생각한 헨리 백작이었다.
퍼억!
“컥!”
하지만 그의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쇠가 어깨 위에 올려놓았던 앞발로 그의 뒤통수를 후렸다.
헨리 백작은 질린 얼굴로 강쇠를 바라보았다.
강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정면을 주시했다.
‘정말 알아듣는 거야? 그런 거야?’
차마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헨리 백작은 질린 얼굴을 한 채 다시 정면을 향했다.
무릎 꿇은 엡소드.
그런 엡소드를 보며 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을 한 채 웃고 있는 프라임 공작.
그리고 그런 프라임 공작을 바라보는 진천.
진천이 배를 비집고 나온 내장을 구겨 넣는 모습을 본 헨리 백작의 얼굴이 더욱 해쓱해졌다.
전투를 하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게 흘러나온 내장이다.
일부 기사들 중 독한 이들은 흘러나온 내장을 우겨 넣으며 싸우기도 한다.
문제는 진천의 표정이다.
큰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했고, 그런 상황에서 비어져 나온 내장을 손으로 우겨 넣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에는 고통 같은 감정이 전혀 없었다.
그저 뭐가 불만인 듯 바라보는 시선.
그게 고통 받고 있는 표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헨리 백작의 눈에는 아니라고 보여졌다.
그보다 지금 경악스러운 것은 바로 프라임 공작의 행동이었다.
뭔가 빠르게 지나가기는 했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프라임 공작이 제자인 엡소드를 방패로 삼고, 나아가 그 틈을 이용해 진천에게 일격을 날렸다는 것.
“후작님 말이 딱 맞군.”
헨리 백작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가든 후작이 프라임 공작을 평할 때 하는 말 중의 절반 정도는 질투심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드러난 프라임 공작의 맨 얼굴은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가든 후작의 평가가 후하게 느껴졌다.
“대륙 최강의 검사이자, 존경받는 이의 얼굴이 저거라니…….”
헨리 백작은 혀를 내둘렀다.
시에라 제국 최고의 권력자가 지을 표정이 아니었다. 잔혹해 보였고, 야비해 보이기까지 했다.
영웅이 아닌 간웅의 표정이다.
헨리 백작의 시선은 엡소드를 향했다.
허망한 눈동자.
왠지 그가 불쌍해 보였다.
엡소드의 온몸을 푸른 화염이 거칠게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노인의 것과 같은 주름은 더욱 깊어져 점차 미이라와 같이 바짝 말라갔다.
그 메마른 입술이 열렸다.
“왜…….”
언제든 스승을 위해 목숨을 던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남은 생명을 스승이 가려하는 위대한 길을 위해 불태우는 중이었다.
스승의 칼을 대신 맞는 것 역시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방패로 쓰이는 것과는 달랐다.
자의와 타의.
그 차이가 컸다.
그리고 지금 스승의 이질적인 표정 역시 그의 기억 속의 얼굴과 차이가 컸다.
아니 본적 없는 표정이다.
“미안하구나.”
미안하다 말하지만 그 표정은 전혀 미안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체 왜…….”
메마른 입술을 힘겹게 열며 던진 질문.
“이게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
“효율…….”
효율.
이번 전쟁을 치르면서 자주 듣던 이야기다.
개개인의 승부가 아닌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는 전쟁이다.
항상 대의를 언급했던 스승이다.
그렇기에 항상 다수의 소울아머 유저를 밀어 넣으면서까지 이기고자 했다.
물론 그런 것 치고는 꼴이 우습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효율이란 단어의 대상이 자신이 되자 뭔가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효율…… 입니까?”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은 패자의 변명일 뿐. 어떻게든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느니라.”
푸르른 불길이 점점 약해져 갔다. 생명이 거의 다 소진되어 간다는 의미다.
머리카락도 우수수 흘러내렸다.
탄탄했던 근육은 마른 나뭇가지마냥 변했다.
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갈라진 몸뚱이에서 늘어지던 내장은 마른 육포마냥 비틀어져 있었다.
엡소드가 입을 들썩이자 이번에는 이빨이 말라비틀어진 옥수수 알갱이마냥 후두두 떨어졌다.
“흐으. 흐…….”
숨도 이젠 쉬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물어봐야 할 것이 하나 남았다.
“흐스님……. 우, 우리느은 스스니메게 어떠언 의미여쓰니까…….”
이빨이 없어서인지 말도 바람 빠진 것 마냥 흘러나왔다.
엡소드의 질문에 프라임 공작이 입을 열었다.
“키우는 재미도 있고…….”
그 말에 조금이지만 엡소드의 표정이 풀렸다.
“다만, 아쉽다.”
엡소드는 힘겹게 눈을 치켜떴다. 자꾸만 감기려 했기 때문이다.
“무어가…….”
“내 제자들이 모두 여기 모여 있었으면 딱히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거늘.”
“…….”
엡소드가 입을 반쯤 벌린 채 프라임 공작을 응시했다.
더는 눈꺼풀을 추어올릴 필요가 없어졌다.
눈꺼풀도 메말라 위로 말려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다음 제자들은 더 강하게 키워야겠지.”
프라임 공작의 말.
엡소드가 입을 달싹였지만, 말은 안 나왔다.
“그래도 너는 내 방패라도 되어 주지 않았느냐. 가치 있다 생각하려무나.”
입술도 더는 달싹이지 못했다.
엡소드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감정만 맴돌았다.
후회.
메마른 줄 알았던 눈동자에 한 방울의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그 눈물마저 바닥에 닿기 전에 한줌 생명의 기운마저 끌어가는 푸르른 기운에 날아가 버렸다.
엡소드의 몸 주변에는 더 이상 푸른 기운이 맴돌지 않았다.
듣지도 못할 엡소드에게 프라임 공작의 마지막 말이 전해졌다.
“잘 가려무나.”
스승과 제자의 대화가 끝나자 진천이 입을 열었다.
“지랄을 한다.”
원초적인 욕설.
프라임 공작은 비로소 진천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제자가 시원찮아서. 이렇게 앞뒤 안 가리는 인물인지 알았다면 제자들을 이곳에 모아 놓을 것을 그랬군.”
“그러지 그랬어.”
진천이 냉소를 던지며 묻자 프라임 공작이 답했다.
“그러면 오지 않을 줄 알았지. 그리고 뭉쳐서 붙으면 불리할 줄 알았으니까.”
집단전에 특이하게 강력한 모습을 읽었던 거다.
그래서 제자들을 뿌려 각개격파를 노렸던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생각 이상으로 가우리의 무장들은 강했고, 반대로 각개격파를 당해 버렸다.
심지어 함정 속에서 모두 살아 나온 것도 예상 밖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고.”
프라임 공작이 거센 기운을 뿜으며 진천을 향해 바로 섰다. 환한 얼굴이다.
“이 정도 역경까지는 원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업적을 쌓는 데는 커다란 대항마가 있을 필요는 있지.”
“업적이라…….”
“대단해. 이리 강할 줄이야.”
프라임 공작이 감탄 어린 음성을 뱉었다. 허나 진천은 덤덤하게 말을 받았다.
“난 강하지. 세상에서 제일.”
“그 강한 이가 내 손에 죽는다. 역사에 길이 남겨 주지. 최고의 대적자로 말이야.”
“역사?”
“그래. 난 제자의 죽음에 분노한 스승으로서 복수를 해내는 거지. 아마 역사에는 그리 남을 거야.”
욕망 덩어리.
프라임 공작은 하나의 거대한 욕망 덩어리였다.
그간의 세월은 프라임 공작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때론 침묵하였고, 은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생긴 지금, 원초적인 욕망이 모습을 드러낸 거다.
“아까 말했지?”
진천이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지랄한다고.”
진천의 냉소 섞인 말에 프라임 공작의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사라졌다.
“배때기가 아니라 주둥이를 찢을 걸 그랬군.”
프라임 공작의 말에 진천이 다시 답했다.
“방패로 써먹을 제자가 남기라도 했나?”
프라임 공작이 진천의 답변에 롱소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내 손으로 마무리 지어야지. 왜? 저들을 기다리는 건가?”
프라임 공작이 고갯짓을 했다.
뒤쪽에 다가오고 있는 진천의 수하들.
“그 몸으로 그들을 기다린다고?”
프라임 공작의 눈이 진천의 배를 향했다.
밀어 넣었던 내장이 다시 꾸물거리며 비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걸 보며 다시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좋아 죽겠다는 것처럼.
“아니. 쟤들은 구경 오는 거야.”
“구경?”
“네놈 목 따는 구경.”
진천이 천천히 힘을 주었다.
근육이 다시금 꿈틀거렸다. 그러자 비어져 나온 내장이 요동쳤다.
배 밖으로 튀어나올 듯 말이다.
그러나 진천은 천천히 손으로 내장을 다시 밀어 넣으며 근육을 더욱 키웠다.
“무슨?”
프라임 공작이 그 모습을 보며 점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내장을 밀어 넣고 손을 때자 뒤가 보일 것 같았던 큰 구멍 위로 시뻘건 살덩이가 꿀렁이며 메워져 갔다.
내장은 아니다.
“후우우.”
진천이 심호흡을 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근육을 쥐어짰다.
승모근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불뚝 솟아올랐다.
활배근은 마치 등짝에 방패라도 단 것처럼 넓게 펴졌고 너른 가슴은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리고 뚫렸던 배는.
주먹만 한 복근으로 뒤덮였다.
마치 차돌을 박아 넣은 것 같은 모습이다.
구멍 난 배 역시 마찬가지다.
팽창한 근육이 구멍을 메워 버린 거다.
“그렇게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며 싸울 수 있다고? 장난해?”
순간 굳어졌던 자신의 표정이 창피했는지 프라임 공작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물었다.
“궁금해?”
진천이 입꼬리를 올렸다.
질문을 던지며 눈알을 부릅떴다.
역팔자로 올라간 눈썹에 부릅뜬 눈알.
앙다물고 한껏 올라간 입꼬리.
악귀 같은 표정.
“그럼 덤벼 봐.”
진천이 환두대도를 까딱였다.
“그러다 우리 애들 오면 너 오줌 지린다.”
그리고 비아냥댄다.
“크아아아!”
프라임 공작이 포효를 터트리며 진천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래도 대륙 최강이라 불리던 이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 그의 모습이 진천의 앞에 나타났다.
콰창!
환두대도와 롱소드가 맞닿아 있었다.
“막아?”
“그럼 이걸 못 막아?”
진천의 대꾸에 프라임 공작이 대답 대신 공격을 택했다.
콰콰콰콰콰!
프라임이 빠르게 움직이며 롱소드를 휘둘렀다.
피가 튀었다.
진천의 몸에 상처가 늘었다.
갑옷 같은 근육이지만 갑옷은 아니기 때문이다.
베어지고 그 사이를 근육이 비집고 들어선다.
작은 건 내주고 큰 건 막아 내었다.
잔뜩 키워 올린 근육이 속도를 떨구었지만, 진천은 그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프라임 공작의 공격을 막아 갔다.
그런 진천의 주위를 맴돌며 프라임 공작이 미친놈처럼 날뛰었다.
분명 진천의 몸에 상처는 늘었다. 피도 튄다. 유리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커다란 바위를 앞에 두고 칼질하는 망나니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