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94
467화 하늘이 보였다
속도와 속도.
힘 대 힘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기교는 없었다.
그 이상의 힘과 속도로 마치 상대를 무너트리겠다는 듯 서로 맞부딪히고 있었다.
프라임 공작 역시 이전처럼 바위에 칼을 날리는 듯 펄쩍펄쩍 뛰지 않았다.
전혀 밀림이 없는 모습.
반대로 진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은 공격은 감수하면서까지 버텨 왔던 모습과 달랐다.
물론 이건 프라임 공작의 공격 성향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급함을 버리고 나서 상대방의 힘을 최대한 빼놓기 위한 압박이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까드득!
악다문 프라임 공작의 이빨이 강하게 갈려 나갔다.
그의 눈동자 위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힘을 쥐어짜는 것이라 판단했다.
저 오만스러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겠다고 생각했다.
아까와 다른 힘을 이용하면 무너트리는 것은 시간문제라 생각했다.
실제로 숨겨 놓은 힘을 사용했다.
진천의 몸 상태가 아무리 좋다 해도 달라진 속도와 힘에 놀라야 정상이다.
하물며 진천은 큰 상처를 입고 있던 상황.
그럼에도 그의 공격을 멈추어 서서 받아 내고 있었다.
흘려 내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맞받아치고 있었다.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
그러나 자신이 질 리 없다는 감정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아니 질 수가 없다.
재차 소울포스가 그의 몸으로 솟구쳐 올랐다.
콰앙!
진천은 프라임 공작의 공격을 묵묵히 받아쳤다.
잔뜩 일그러진 프라임 공작과는 대조적인 표정.
물론 그렇다 해서 그의 몸이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막을 때마다 배의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그럼에도 진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저 미간의 깊은 골만이 여전할 뿐.
다시 한번 막아 내는 순간 환두대도가 조금 전보다 더 뒤로 밀리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진천의 얼굴에 변화가 찾아왔다.
옅은 미소.
“재미있군.”
한쪽 입꼬리만이 올라가 있는 옅은 미소다.
즐겁다는 기분과는 거리가 먼 미소.
투툭!
진천의 근육이 다시 팽창하는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다시금 날아오는 프라임 공작의 롱소드를 맞받아 쳤다.
콰앙!
그러나 이전과 달리 중간에서 부딪히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약간 뒤늦게 받아치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럼에도 진천은 여전히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웃어?’
진천의 미소를 본 프라임 공작 역시 일그러진 얼굴을 피며 미소를 머금었다.
허세는 아니다.
오히려 허세는 진천이라 느끼기 시작했다.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힘을 모아 내려친다. 역시 이번도 마찬가지.
프라임 공작이 공격하면 진천이 받아치는 느낌.
처음처럼 중간에서 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이지만 반응이 조금 늦다.
미세한 차이지만 그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힘에서는 여전하지만 속도에서 자신이 앞서기 시작한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찰나지만 계속 이대로 공격을 해 나가면 그 차이는 점점 커질 것이다.
그러다가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그때가 승부의 마지막이다.
승부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판단이 서자 그의 온몸을 맴도는 소울포스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콰아앙!
가든 후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조금이지만 진천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아까와 다른 프라임 공작의 모습.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분명 지금 프라임 공작은 전에 없던 힘을 내고 있었다.
‘저 갑주?’
갑자기 프라임 공작의 실력이 치솟았을 리는 없으니 이유는 하나다.
지금 프라임 공작이 입고 있는 갑주.
그게 원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울아머라고 다 같은 아머가 아니기에.
소울아머의 한계치가 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거기에 하이급 갑주는 그것을 더 끌어올렸다.
그런 만큼 프라임 공작의 것이 더 특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맞붙기 전에 했던 행동을 보면 확신이 든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가든 후작이 굳은 얼굴로 주변을 돌아봤다.
잠시 멈췄던 전투지만,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황제가 위험한데 이대로 구경할 리가 없다.
물론 치욕은 잠깐이지만, 최후의 순간에는 개입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일개 무장이 아닌 황제이기에.
그러나 시선을 돌린 가든 후작의 얼굴에는 의문이 서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동요치 않는 모습.
장 노인은 물론이고, 이곳까지 악착같이 뚫고 왔던 무장들도 마치 동네에서 벌어진 싸움을 구경하는 것 마냥 편해 보였다.
‘뭐지?’
위화감이 느껴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 보았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분명 밀리는 모습이다.
아까는 찰나의 간격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더 진천 쪽으로 밀려와 있었다.
이걸 모를 이들이 아니다.
자신도 알아보는데 자신과 비등한 전투를 벌인 장 노인이나 다른 이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때 가든 후작의 눈에 이질적인 것들이 포착되었다. 장 노인이나 다른 이들의 입가.
마치 비웃는 듯.
한쪽 입가가 올라가 있었다.
전부 다.
같은 표정.
“뭐야?”
이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놀란 가든 후작이 고개를 돌렸다.
분명 밀리는 모습의 진천이다. 그런데 그의 입가에도 이들과 같은 미소가 서려 있었다.
밀리는 이의 표정이 아니다.
그때 가든 후작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포착되었다.
그건 바로 궤적이었다.
밀리는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동작을 가져가야 한다.
그러려면 궤적이 커서는 안 된다.
차라리 힘을 빼더라도 속도를 올려 먼저 마중 나가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지금 진천이 만들어 내는 궤적은 그와 전혀 달랐다.
콰아앙!
맞부딪히자 뒤로 튕겨 나오는 진천의 환두대도.
그 환두대도가 멈추지 않고 더 뒤로 빠진다.
그리고 다시 마중을 나간다.
또 울린다.
콰앙.
온몸으로 그들이 만들어 내는 충격파가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밀리는 모양새 때문에 놓친 것이 있었다.
“더 커졌어…….”
콰아아앙!
그런 가든 후작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장 노인이 그를 슬쩍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든 후작은 장 노인의 시선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저 점점 벌어지는 입을 하고 진천과 프라임 공작의 전투를 바라볼 뿐이었다.
꽈아앙!
더 길어진 궤적.
더 강해진 부딪힘.
순간 가든 후작은 또 다른 것을 보았다.
“설마?”
살짝 떨리는 음성.
가든 후작이 떨리는 입술로 멍하니 말을 뱉었다.
“그걸 노린다고? 지금?”
꽈아아앙!
또다시 굉음이 울려와 충격파가 놀란 가든 후작을 휩쓸고 지나갔다.
“최후의 발악인가!”
프라임 공작이 크게 웃으며 외쳤다.
그러나 프라임 공작은 즐겁지 않았다.
그건 바로 진천의 입가에 걸린 미묘한 미소 때문이었다.
비웃음.
프라임 공작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것이 유리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비수가 되었다.
마치 이렇게라도 이기면 좋냐는 비웃음 같았다.
“패자의 변명 따위!”
진천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건만 프라임 공작은 홀로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답은 없었다.
“그래. 언제까지 그 입 다물고 있을지 두고 보자!”
천지를 울리는 굉음에 그의 외침이 묻혀 지나갔다.
맞받아치고 뒤로 튕겨 나오는 환두대도를 그대로 뒤로 가져갔다.
상체부터 역으로 뒤틀어진다.
마치 밀려 나가는 것 마냥 상체가 반 바퀴 뒤로 틀어지고 그것을 따라 허리가 돌고 무릎이 돈다.
발목까지 뒤틀어질 때 즈음.
진천의 몸이 마치 뒤틀어 짜는 빨래마냥 더 뒤로 틀어진다.
그 와중에 프라임 공작의 롱소드가 물러나기를 멈추고 다시 떨어져 내린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뒤틀어졌던 몸이 당겨진 시위가 튕기는 것마냥 되돌아간다.
뿌연 기류가 진천의 몸을 타고 흐르며 겉을 감돌던 핏물이 한쪽 방향으로 쏠려 나간다.
꽈아아앙!
충격파에 겉돌던 핏물이 진천의 몸 뒤로 안개처럼 퍼져 나간다.
다시 튕겨지는 환두대도 진천의 상체는 이미 뒤로 살짝 기울어진 상황.
마치 프라임 공작은 찍어 누르고 진천은 상체를 눕혀 가며 막아 내는 모양새 같았다.
그러나 그런 불리함 속에서도 진천의 몸은 뒤틀어졌다가 펴졌다가를 반복한다.
그 모습이 마치…….
벌목을 하는 나무꾼 같았다.
패에엑!
환두대도가 진공을 만들어 내며 다시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이번에도 충격파는 사방으로 뿌려진다. 그리고 이후에 고막을 통 해 소리가 울려와 귀를 간질인다.
진천의 시선은.
프라임 공작을 향해 여전히 꽂혀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는 프라임 공작이 아니었다.
다시금 진천을 향해 날아드는 롱소드.
그것이다.
마치 나무꾼이 찍어 내던 통나무의 결을 바라보듯.
그 롱소드의 한 점을 바라보며 반쯤 몸을 누인 진천이 다시 환두대도를 휘두른다.
아래에서 대각으로 솟구치는 환두대도가 다시금 떨어져 내리는 롱소드를 쳐올린다.
무형의 막과 짙고 푸르른 기운과 만나는 순간.
충격파가 시작되는 그 지점.
진천의 동공에 그 짙고 푸른 기운이 한순간이지만 밀려 흐트러지는 것이 걸려 들어온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작은 소음이 진천에게 느껴진다.
까득.
종잇장처럼 세워진 칼날과 칼날이 교차하며 만나는 소리.
유형화된 힘이 해소되는 그 순간의 맞부딪힘.
진천의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
마치 환영한다는 듯.
와아아아아아!
사방에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승리의 함성.
그 함성의 주체는 바로 시에라 제국 쪽이었다.
승부가 난 건 아니다.
하지만 승부의 추가 기울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진천은 여전히 뒤로 물러서지 않고 있었지만, 그의 상체는 달랐다.
마치 쓰러지기 전의 통나무 마냥 뒤로 기울어진 몸.
단단해 보이는 두 다리가 지탱하고는 있지만, 툭 치면 바닥으로 꺼질 것 같은 위태로움.
그게 시에라 제국 기사들과 병사들에게는 승리의 전조처럼 보였나 보다.
그 가운데에서 가든 후작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 속을 수밖에.”
함성을 지르는 이들을 보며 가든 후작은 씁쓰레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모를 수밖에.”
가든 후작은 프라임 공작을 바라보았다.
가장 빠른 직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는 프라임 공작의 롱소드.
그에 반해 이제는 원을 그리기 시작한 진천의 환두대도.
물론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원을 감추는 것은 바로 미칠 것처럼 부풀어 오른 진천의 몸이니까.
튕겨져 나온 환두대도가 진천의 몸통을 똬리 트는 뱀마냥 역으로 휘리릭 돌아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모습을 정면에서는 보기 힘드리라.
아니 조금씩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기에 모를 수밖에 없다.
아니 알더라도 당연하다 느낄 수밖에 없다.
떨어져 내리는 힘을 튕겨 내기 위한 발악처럼 보일 수도 있다.
또다시 두 무기가 마주치는 순간 가든 후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가능한 거군.”
가든 후작의 시선은 진천을 향했다.
허탈한 표정.
그가 중얼거렸다.
“그를 몰라도 한참을 몰랐어.”
스스로를 탓하듯…….
고개를 내젓는다.
그리고 허탈했던 그의 표정이 바뀐다.
그 표정이 오묘했다.
마치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다.
높고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동경의 시선을 보내는 아이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