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399
472화 희망은 꺼지고 눈물만 떨 군다.
쩔그렁.
대답 대신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쇳소리.
그건 시작이었다.
쩔그렁 쩔렁.
어디라고 할 것이 없었다.
사방에서 연신 쇳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전투가 다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전투의 마지막을 알리는 쇳소리들이었다.
그제야 함성이 울려 퍼졌다.
도합 백오십만에 달하는 대병력들이 자웅을 가렸던 대지에 울려 퍼지는 승자들의 함성이다.
“우와아아아!”
“으아아아!”
그 함성은 시에라 제국군들이 손에서 무기를 더 빠르게 떠나가게 만들고 있었다.
무기를 놓으라 외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들고 있다가 횡액이라도 당할까봐 무기를 던지고선, 허리춤에 있던 작은 단검마저 놓아 버리며 양손을 들었다.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양손을 들고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는 모습들이 마치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허…….”
그 와중에 가든 후작이 허탈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진천이었다.
순간 소름끼치는 느낌을 받은 가든 후작이 재빨리 양손을 펼쳐 올렸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표시다.
그 의사를 본 진천은 고개를 돌렸지만, 가든 후작은 다시금 소름 끼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쯧.”
“에이.”
한쪽에서 입맛을 다시는 소리와 아쉽다는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몰려왔던 가우리의 무장들이었다.
왠지 자기 차례가 없어졌다는 아쉬움들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서야 가든 후작은 자신과 헨리 백작이 이 전쟁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결정이 탁월했다는 것을 느꼈다.
항복한 시에라 제국 병사들의 숫자가 아직도 남부 연합 병력보다도 많았다.
여기저기 잘려 나가고 죽어 나갔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 함께 환호를 지르는 이들 중에는 오크 전사들도 있었다.
그쪽은 더한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몇 천 안 되는 오크들이었지만, 미쳐 날뛰니 그 지역은 아예 재앙이 되었던 거다.
온전한 시체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널린 인육을 뜯어먹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부분이 함께할 수 있느냐와 아니냐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이건 오크로드인 우중만이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노예나 가축에 불과했던 오크들이 함께한 전우로서 인정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떨군 무기를 수거하고 갑주를 해체하는 작업은 전투를 벌이는 시간보다도 더 길었다.
전투가 끝나고 달려온 마법사들이 진천 하나에 매달려 온갖 치료 마법을 쏟아부었다.
배가 뚫린 상태로 계속 싸웠으니 몸이 축날 법도 하지만 진천은 승리의 환호를 받으며 그저 팔짱을 끼고 서 있을 뿐이다.
상징이다.
승리의 상징이고 무적의 상징이다.
그가 있으므로 해서 지지 않는 불패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다.
이튿날.
항복한 병사들을 이끌고 남부 연합군은 황도로 진격을 시작했다.
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였다.
황제의 목을 따고 황실의 주요 인물들을 싸그리 쓸었다지만, 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항복한 시에라 제국군의 병사들은 가든 후작의 책임 하에 인솔되고 있었다.
남은 지휘층 인사들 중에 그보다 위의 작위를 가진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라면 가든 후작의 지위와 이름이 항복한 병사들에게 통하고도 남았다는 점이다.
그 덕에 항복한 병사들은 가든 후작에게 의지를 했고, 또 남부 연합군은 이 부분을 최대한 이용했다.
무기는 없지만, 더는 목숨의 위협은 없어 다들 만족했다.
음식도 넉넉하지 않지만, 계속 주어졌고 말이다.
항복한 이상 목숨의 위협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다들 만족한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가든 후작이 그렇게 관철시킨 것으로 했다.
그 편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지금 상황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부분은 헨리 백작이 중간에 나서서 사전에 협상을 했기 때문이었다.
헨리 백작이야 무너진 제국 이후를 대비한 정지 작업이었다.
프라임 공작은 살아서 존경을 받았지만 죽어서는 오명을 씻지 못했다.
제자들을 방패로 삼고, 또 스스로는 아름다운 최후를 맞이하지도 못했다.
이 역시 헨리 백작이 퍼트린 소문이었다.
그늘을 지워야 가든 후작의 행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도 남부 연합군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헨리 백작은 시에라는 더 이상 제국의 이름을 가지지 못할 것을 이미 예상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을 거라 판단했다.
남부 연합군의 승자인 카말과 필리어리 두 왕국의 지분과 마지막에 합류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승자인 두 왕국.
그리고 부흥군이었던 일루이먼의 몫이 우선 제외되리라 보았다.
물론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가우리와 로셀린 말론 세 동맹 역시 무시 못할 지분을 가져갈 것이다.
이렇게만 계산해도 시에라 제국이 땅덩이는 여러 갈래로 찢길 것이 뻔했다.
거기에 투먼 제국 역시 남부로 더 밀고 내려와 비옥한 토지의 한 축을 넘겨받을 것이 분명했고 말이다.
그러고도 땅덩이는 넓었다.
그중 일부가 시에라 제국이 아닌 왕국으로써 남게 될 것이다.
나머지는 또다시 찢길 것이다.
그게 헨리 백작이 예상하는 그림이었다.
그 상황에서 가든 후작이 뭔가라도 챙기려면 지금부터라도 호의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물론 그렇다 해서 나라를 팔아먹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오히려 그나마 시에라 제국의 패잔병들을 수습하고 보존한 위인이 되어야 한다.
그 때문에 황도로 올라가는 길에는 항상 헨리 백작이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역할은 하나다.
이 전쟁은 이미 패한 전쟁이었고, 더 이상 무의미한 피해는 없어야 한다며 설득하는 것.
물론 설득은 어렵지 않았다.
백만 대군은 둘째 치고 프라임 공작이 비참하게 맞아죽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길을 막아서려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 시에라 제국에 충성스러운 귀족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막아설 만큼 간이 크질 못했다.
아니 그럴 생각도 못했다.
아무도 예상 못 한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남부가 유린되고 북부에서 투먼 제국이 남하해서 땅덩이가 넘어갔다 해도 프라임 공작이라면 언제고 정상화시킬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만큼 절대적이었던 이가 바로 프라임 공작이었다.
그런 프라임 공작의 비참한 죽음과 또 제자를 방패로 세운 목격담은 온전한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이게 가능한 것은 황도가 마비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황실의 핏줄이 몰살에 가까운 타격을 받은 동시에 프라임 공작이 처참히 죽었다.
더불어 수십만이 넘어가는 대병력이 포로로 잡혔다.
그걸 수습할 인원이 황도에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막아야 함에도 명령조차 없었다.
* * *
“아…….”
쏜튼 폴리어 후작이 무너져 내렸다.
아직도 피가 지워지지 않은 황성에 나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던 쏜튼 후작이었다.
다행이 목숨을 구한 귀족이 일부 있어 모여 대책을 논의하던 중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프라임 공작의 죽음과 백만에 달하던 대군이 패한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이 소식조차 마법사가 아닌 술법사가 날려 보낸 것이었다.
벌써 이틀이나 지난 뒤에 받은 소식이다.
그나마 이들이 수습을 하기 위해 모였던 이유는 바로 프라임 공작이라면 최악의 상황은 막아 줄 것이라 판단했던 거다.
“이, 이럴 수가…….”
바닥에 주저앉은 쏜튼 후작이 부르르 떨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황성이 불타던 날.
쏜튼 후작은 또 다른 기회라 생각했다.
프라임 공작이 시에라 제국의 새로운 주인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이번 화를 피한 귀족들 중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 이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쏜튼 후작의 후속 조치에 모두 몰려들어 함께 논의를 했었다.
그러나 빠르게 전달되어지던 마법통신이 침묵했다.
그때 뭔가 불길함을 느낀 쏜튼 후작이 황도의 병력을 결집시켰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반대파들을 억눌렀다.
만에 하나 뭔가가 잘못되더라도 프라임 공작은 건제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불길한 생각을 애써 지우며 버텨왔다.
그런데 그게 무너진 거다.
“어, 어찌합니까!”
“이, 이럴 수가…….”
“우와아앙!”
살아남은 귀족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이제 다섯 살이나 될 법한 아이가 대전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이 와중에 살아남은 황실 인사 중에 가장 황위에 근접했던 아이다.
그 아이의 어미로 보이는 귀부인이 창백한 얼굴로 아이를 달래었다.
비틀거리던 쏜튼 후작이 이를 악물었다.
벌게진 눈가.
앙다문 입술.
그가 독기서린 음성을 내뱉었다.
“황도와 주변 영지에 총동원령을 내리시오!”
후작의 외침에 귀족들이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여태 알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은 무너지지 않소! 황도를 중심으로 해서 적들을 막아 내야 하오! 제국이오! 우리는 대제국이오! 시간을 끌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오!”
쏜튼 후작이 미친놈처럼 침을 튀기며 외쳤다.
그 기세에 눌린 귀족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반드시 막아 내고! 제국을 유린한 저들을 몰아내야 하오!”
눈자위는 핏줄이 툭툭 터져 나가 붉게 변했다.
심지어 흐르던 눈물마저 붉게 변해 버렸다.
피눈물이다.
광기마저 서린 그의 외침에 귀족들은 아무도 반발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멍한 쏜튼 후작이 비틀거리며 황성 복도를 거닐었다.
그의 뒤로는 침통한 표정의 기사 둘이 그를 따랐다.
“주군……. 주군…….”
연신 주군을 부르며 걷는 그의 모습이 마치 미친 사람인 양 보였다.
그러다가도 곧바로 광기어린 표정을 지으며 다시 중얼거린다.
“반드시 복수 하리라. 반드시…….”
침을 질질 흘려가며 복수를 입에 담는 그의 모습은 그 누가 보아도 정상이라 볼 수 없었다.
비틀거리던 그의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반드시!”
쏜튼 후작이 빠르게 걸음을 옮겨 나갔다.
황도의 지휘관을 중심으로 군권을 다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뛰듯 부서진 황성의 내성문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복구 작업을 하던 인부들 사이에서 칼을 든 이들이 뛰쳐나왔다.
“뭐, 뭣!”
“후작님, 피하십…….”
쏜튼 후작의 뒤를 따르던 기사 둘이 그에게 피하라 외치며 나섰지만, 습격자들의 칼날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몇 합 겨루기도 전에 대여섯 개의 칼날이 그들의 몸통에 쑤셔 박혀졌다.
쏜튼 후작도 다를 바 없었다.
순식간에 칼날들이 그의 몸통을 훑고 찔러 대었다.
털푸덕!
그대로 칼날에 몸을 내어 준 쏜튼 후작이 주저앉았다.
엎어지지도 못했다.
몸에 박힌 칼날들이 오히려 그의 몸뚱이를 지지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쏜튼 후작이 연신 피를 게워 내며 핏발 선 눈동자를 굴렸다.
습격자들이 한걸음 물러서고 눈에 익숙한 귀족 몇이 눈에 들어왔다.
황성 습격 후 살아남았던 귀족들 중 반감을 가진 이들이었다.
쏜튼 후작이 황제에 기생하며 사사건건 프라임 공작의 발걸음을 방해했던 이들이다.
주요 인사들은 엡소드등이 척살했지만, 별로 신경 쓸 인사들이 아니라 해서 한직으로 내치고 남겨 두었던 이들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덕에 황성이 무너지던 날 살아남았다.
그게 칼이 되어 되돌아온 것이다.
“푸후…….”
그들의 얼굴을 본 쏜튼 후작이 피거품과 함께 숨을 몰아 내쉬었다.
흐릿해지는 눈동자 위로 프라임 공작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복……수…….”
이루지 못할 희망을 입에 담아 본다.
눈가에 맺힌 피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주……군.”
그렇게 쏜튼 후작은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