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4
강철의 열제 14화
고진천은 쓰러져 있는 노마법사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 동네는 거지가 주술사를 하는가?”
“설마요. 주술사가 거지로 됐겠지요.”
진천의 뒤로 걸어 나오며 연휘가람이 가볍게 말을 받았다.
손에 묻은 흙을 털어대는 것으로 보아 돌을 던진 사람은 진천이었다. 옆에서 휘가람이 흥미로운 표정을 하고 쓰러진 노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의 주술은 좀 혼란한데요.”
“그럴지도. 이곳에서 느껴지는 기는 그 속성이 뚜렷하게 나누어져 순환하고 있지 않은가?”
“네.”
그들이 살던 곳의 기는 조화로움이 강했다면 이곳의 기는 각자의 성격이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는 이 마법사의 운용방식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주술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치 당의 술법사들과 유사한 게 보이기도 합니다만, 몸 안에 이루고 있는 기는 그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아예 하나의 기운을 정제해서 몸에 쌓았었지.”
“그런데 분명 다섯 가지 기운을 몸 안에 모은 걸로 보입니다. 다만 그것을 내뿜을 때 하나의 기운만 사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음. 그럴 수도 있는가 보군.”
누워 있는 노인을 여기저기 들춰보며 실험물 다루듯이 다루는 휘가람이었다.
“일단 좀 더 살펴보면 답이 나오겠지요.”
“일단…… 안으로 데려가 눕히고 쓸데없는 짓 못하게 하도록.”
“예.”
진천이 명을 내리자 이들을 다룬이 다가와 업고 들어갔다. 그러자 진천이 고개를 돌려 지옥을 경험한 두 사람에게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그게 대울 메지션가(이 마법사가) 오거 피를 에…….”
“구라쟁이!”
“예, 장군 갑니다!”
진천은 더듬거리며 말하는 베론을 보며 철저하게 말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웅삼을 두고 방금 전 상황을 전해 들은 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골드가 큰돈인가?”
“예, 장군.”
“얼마나?”
“무지 많이요.”
“…….”
결국 화폐가치에 대해 베론을 통해 다시 한번 말이 오가야 했다. 1실버면 80킬로그랑(㎏)짜리 밀 한 포대를 살 수 있다고 한다. 1골드는 10실버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화폐단위에 대해 알아들은 진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은 주술사가 흔한가?”
“주술사?”
“아까 그 늙은이 말이다.”
못 알아듣는 베론에게 웅삼이 손짓까지 동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결국 진천이 알아들은 말은 희귀하고 아는 것이 많고 비싼 인간이라는 것이다.
“흐음. 그래에?”
진천은 턱을 매만지며 기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인?(네?) 오늘 간다?”
베론은 되지도 않는 단어를 조합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아직 준비할 것도 많은 마당에 진천이 먼저 마을로 돌아간다고 말한 때문이었다. 먼저 사놓은 물건을 수레에 실어서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베론과 다룬에게 진천이 대충 한마디 던졌다.
“구라쟁이를 놓고 갈 터이니 안전에는 문제없을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
베론은 옆에서 실실 웃고 있는 웅삼을 보고 오히려 불안해했다. 그 모습을 본 휘가람이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베론, 웅삼이는 모르긴 해도 우리가 들어올 때 보았던 수비병들이 모조리 덤빈다 하더라고 능히 이기고도 남을 것이다.”
계웅삼은 백제 유민 중 하나로 싸울아비였던 남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검에 관한 한 검수들 중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해상왕국인 백제였기에 그의 아버지가 서역부터 아랍 등으로 세계를 돌아다녔던 것이었고, 그래서 웅삼이 외국의 말들을 많이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베론과 다룬이 그것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그동안의 그의 행적을 생각하면 믿음감이 전혀 있을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럼 먼저 간다. 웅삼! 일행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라. 믿고 맡기겠다.”
“예, 장군.”
그러나 그들의 걱정을 뒤로하고는 그렇게 단 하루 만에 곡물만 실어서 떠나는 진천과 휘가람이었다.
그들이 떠나고 방을 정리하러 가던 헤리슨이 배웅하던 베론을 불렀다.
“베론! 마법사님이 사라졌다!”
“……!”
분명 침대에 고이 눕혀 놓았던 마법사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 순간 베론의 뇌리로 아까 보았던 진천의 기묘한 미소와 그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주운 사람이 임자라지.’ 라는 말이…….
흔들거리는 수레를 고진천과 연휘가람이 몰고 가고 있었다. 늦은 저녁의 숲은 어둠이 유난히도 빨리 찾아온다. 수레에 죽은 듯 늘어져 있던 노마법사 리셀 시아론의 눈이 천천히 떠지고 있었다.
“…….”
리셀은 눈앞에 펼쳐진 어둠을 보았다. 간간이 달빛이 세어 들어오는 어둠 속에 풍성한 나무에 둘러싸인 숲의 모습이 고요하면서도 기괴했다.
“……화센!(뭐야!)”
쿠당탕.
“오, 일어났나?”
“저 늙은이를 어디에 쓰시려 데려갑니까?”
“귀하고 비싸다니까.”
묶인 몸을 뒤척이다 옆으로 굴러떨어진 리셀은 낮에 정신을 잃고 난 후 자신이 묶여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끄흐흑.”
수레 뒤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오자 진천은 휘가람에게 몰던 수레를 멈추라 지시했다.
“멈춰.”
“예.”
“끄으흐흐흐흐.”
“…….”
고진천과 연휘가람은 눈앞에서 울기 시작하는 노인을 보고 서 있었다. 진천은 이해가 안 되는 듯 휘가람에게 말을 던졌다.
“왜 울지?”
“보통 납치당하면 슬픈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난 주웠다.”
“납치범들도 그런 말은 할 줄 압니다. 뭐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범죄 라죠.”
“…….”
한마디도 안 지는 휘가람의 대답에 진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모습을 본 휘가람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하긴 좀 이상합니다. 울기 전에 ‘누구냐!’ 내지는 ‘뭐하는 짓이오!’ 등등의 반응이 먼전데 말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것이다.”
“……네.”
“큼.”
두 명이 앞에서 노닥거리는 상황에서도 노인은 하염없이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듯이 울고 있었다.
리셀은 가장 흔하게 길을 가던 마법사에게 자질을 인정받아 제자로 키워지게 된 케이스였다. 남들이 마나를 느끼는 데에만 1년이 걸릴 때 리셀은 단 1개월 만에 해치워 스승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1서클 수련을 시작한 지 반년 만에 모든 것을 마스터 하면서 그를 가르치는 스승에게 확신을 주었다.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라는 확신 말이다. 보통 다른 이들이 마나를 느끼고 2년은 해야 마스터 할 것들을 딱 반년 만에 해치운 것이다. 그때 나이 12세였다.
지금 납치되어가는 이 시점, 그의 나이 75세, 그는 2서클 워커(2서클을 걷는 자)였다.
그가 2서클에서 성장을 멈추자 스승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자 그는 스승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마법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원숭이도 잘 가르치면 2서클은 마스터 한다.’는…….
어디를 가나 그는 천대받고 다른 마법사들이 우대를 받을 때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실험을 해도 누구는 재료를 주어가며 실험하라고 하였지만, 리셀은 구걸을 해가면서 재료를 얻었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마법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끝인 것이다. 아마도 끌려가면 더 이상 2서클 정복의 길은 없을 것이라는 슬픔이 그를 지배 했다.
슬픔이 눈에서 멈추지 않고 흘렀다.
‘빌어먹을.’
그는 원숭이만도 못한 마법사였다.
“눈물 닦아라.”
“…….”
하얀 천이 눈앞에 내밀어 지고 묶여 있던 끈이 풀려졌다. 어두움 속에서 진천과 휘가람의 모습은 잘 보이진 않았지만, 리셀은 단 하나는 알고 있었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것.
“쯧. 무슨 말이 통해야지.”
진천이 노인의 눈물을 닦아주며 답답한 목소리를 냈다.
“오움 살라 디 크레이 움 타하, 월마루 윌루가 마나위 파워레 나와엔에가 우와엔마루위 파워마루 분분 줘우. 그렐 스울라, 그렐 반드노 원커니……. 무다케나스.(세상을 이루는 마나의 힘이여, 나에게 그대들의 힘을 나누어 주오. 가장 작으나, 가장 필요한 그대의 힘을 빌려 원하노니……. 뭉쳐라.)”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을 안 리셀은 눈물을 닦는 척하면서 차분하게 주문을 외워 나갔다. 진천과 휘가람이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자 자신감을 얻고 최후의 시동어를 외쳤다.
“에너지 볼트!”
“호오.”
시동어와 함께 생성된 두 개의 나선형 에너지 덩어리가 진천과 휘가람에게 날아갔다. 그런 모습을 본 진천의 입에선 신기하다는 음성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슈웃~ 파지직!
“웃차.”
“방(妨)!”
두 개의 에너지가 나선형을 이루며 날아갔지만 하나는 진천의 손에 잡혀 소멸하여 버리고 하나는 휘가람의 앞에서 소멸되어 버렸다.
“재미있는데요.”
“커, 커헉!”
“짜릿하군.”
손바닥이 약간 저린 듯 손을 터는 진천에게 휘가람이 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건넸고, 리셀은 숨을 쉬다가 사레가 걸린 듯이 켁켁 거리고 있었다. 숨을 고른 리셀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인터프리테이션!”
“응?”
리셀의 입에서 짧은 음성이 흐르자 반지에서 빛이 났다. 그리고 이상해하는 진천에게 바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 누구요!”
“신기하군. 어떻게 우리말을 하는 거지?”
“어떻게…… 실드도 아닌 것이 에너지 볼트를 무로 돌릴 수 있는 게요!”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말이네요?”
그의 질문은 휘가람을 향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리셀이 알고 있는 룰을 벗어난 것이었다.
진천의 경우 마스터 급의 검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휘가람의 경우는 실드도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자신이 에너지 볼트를 만들어가던 순서를 역순으로 돌린 듯 이 마나를 대기로 돌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진천과 휘가람은 그의 질문을 한 귀로 흘리고 자신들의 대화에 열중했다. 그들의 무관심에 리셀은 다시 진천을 향해 집요하게 물어갔다.
“아니 어찌 그 짧은 시간에 이 짧은 거리에서 소멸시킬 수가 있단 말이오!”
“우리말은 어떻게 알지?”
진천이 옆에서 말을 걸자 그의 면상 앞에 손을 쫙 펼치면서 반지를 보였다. 그리고는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아탬 빨이니 말 시키지 마시오!”
“…….”
진천의 얼굴이 대번에 구겨졌다. 그리고 흥분한 리셀은 자신의 처지도 망각한 듯 휘가람에게 다가가 열망에 싸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거 참.”
“마법이 맞는 것이오? 그 공식은 어떤 것이오?”
휘가람이나 진천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울다가, 무얼 날렸다가, 다시 가르쳐 달라고 졸라대니, 주어 왔다지만 납치를 한 거나 마찬가지인 진천으로선 어찌할까 고민하게 만드는 존재인 것이다. 휘가람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흐음, 일단 노인장도 주술사인 듯싶은데 타인의 절기를 함부로 알려 달라는 것쯤은 실례라는 것을 알지 않소?”
“납치는 실례가 아니오?”
“크흠.”
노인의 말에 진천이 크게 헛기침을 하면서 수레의 앞으로 갔다. 그러자 휘가람이 곤란한 듯 머리를 긁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일단 불청객부터 처리를 해야겠소. 쇄(碎)!”
슈콰콰콰콰ㅤㅋㅘㅋ!
“크아아악!”
휘가람의 손짓이 숲을 향하자마자 광음과 함께 한쪽이 터져 나갔다.
칼쑤만은 지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간만에 쉽게 한탕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열 명의 부하를 데리고 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평소에는 이런 행동을 잘 하지 않았었다. 왜냐면 주기적인 수입원을 한 번의 욕심으로 날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화전민들이 들고 들어온 물품이 꽤 많은데다 고맙게도 모자란 놈들 둘만 달랑 먼저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두 놈을 죽이고 물건을 먹어버려도 남은 놈들이 있으니 다음 고정수입에도 문제가 없고 목돈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칼쑤만의 소박한 계획은 모자란 것으로 보이는 놈의 손짓에 숲 한쪽이 폭발하자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그곳에는 활에 화살을 재던 두 명의 부하가 숨어 있었고, 폭발 후에는 그들의 몸이 박살이 나 있었던 것이다.
“히, 히이익!”
후와앙!
쩌어억!
“크악!”
폭발음에 이어 나온 것은 공기를 거칠게 찢어발기며 날아드는 주먹이었다. 숲으로 달려 들어온 고진천의 주먹에 면상을 맞은 병사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순식간에 두 명의 병사가 공중에 뜨자, 살기 위한 병사들의 발악이 시작되었다.
“두라!(죽어!)”
얼굴에 있는 흉측한 칼 자욱이 일그러지도록 소리를 지른 병사가 롱 소드를 휘두르며 뛰어나갔다. 진천을 마치 양단할 기세로 내려치는 그의 행동은 성공을 하는 듯했다.
“흠!”
쨍!
“허억!”
그러나 진천이 짧은 기합과 함께 머리 쪽으로 날아오는 칼날을 수도로 날려버리자, 병사는 부러진 칼날에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것이 그의 생애 마지막 반응이었다.
“히익!”
“어딜 가지?”
칼쑤만은 제일 실력이 좋았던 병사의 칼날을 맨손으로 잘라 버리고, 이어서 내려친 주먹으로 머리를 부수어 버린 진천의 괴력에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앞에는 휘가람이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살랜 샤오릴!(사람 살려!)”
한쪽에서 살아남은 한 명의 병사가 등을 돌리고 도망을 가자 휘가람이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박(搏)!”
휘가람의 외침과 함께 종이가 손에서 떠오르면서 허공에 멈추었다. 그리고 도망치던 남자의 몸이 바닥에서 허공으로 약간 떠오르면서 멈추어 버렸다.
“샤오릴뤄!(살려줘!)”
병사의 목소리가 공포에 섞여 있었으나 휘가람은 다시 한 번 나지막한 음성을 뱉었다.
“멸화(滅火).”
화르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이에 붉은빛으로 멸화의 문장이 떠올랐다가 불길에 휩싸였다.
화화화확!
“끄아아아!”
종이가 타오르자 허공에 들린 병사의 몸에도 같은 멸화(滅火)의 문장이 나타났다가 함께 타오르기 시작했고, 불과 몇 초 만에 종이가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과 같이 병사의 몸도 사라져 버렸다. 재도 남기지 않는 멸화(滅火)의 불꽃이었다.
움찔.
“이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칼쑤만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있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가운 밤 공기와 달리 칼쑤만의 가랑이에선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지렸군.”
“…….”
혀를 차는 휘가람의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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