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40
강철의 열제 140화
“제길, 새끼 말인가…….”
선두에서 달리던 기사의 눈에 들어온 말들은 크기가 작아 보였다. 하지만 달릴 수 있다면 그만이다. 함정까지 파서 죽이는 남로셀린 진영에서는 어차피 죽음만을 기다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버러지 같은 북부 놈들!”
눈앞에 들어온 검은머리의 말몰이꾼을 향해 분노를 담은 소드를 뿌렸다.
쉬카칵!
“어?”
허리가 뜨끔했다.
땡그랑.
그의 발아래 떨어진 소드의 윗부분이 보였다. 그러나 더 이상의 말 보단 어이없다는 말만 흘러 나왔다.
“어어…….”
털썩.
어이없을 수밖에 없었다.
눈동자 안으로 상체 없는 자신의 하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체의 단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로 인해 하늘에 걸린 두 개의 달이 붉게 물들여져 갔다.
“칼!”
“모두 조심해!”
단 한 수에 상체와 하체가 갈라지는 모습을 본 기사들은 참담함을 느끼며 경고성을 발했다.
쉬카카칵!
여기저기서 쇠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기라알! 악마 같은 놈들!”
어느 북로셀린 기사가 동료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피가 어둔 밤하늘을 수놓는 모습을 보며 절규했다.
“끄륵.”
털썩.
“다 끝났군.”
곧게 뻗은 직도에서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몸속보다는 차가운 공기를 받아서인가?
피는 아직 그 온기를 다 잃지 않아서인지 더운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쓰러진 북로셀린 기사들의 시신을 바라보던 남자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젠장. 아직 술도 한 잔 못했구만, 이런 개똥같은 경우가 있나!”
“이거 치우려면 또 시간 가잖아.”
눈살을 찌푸리는 그들.
“내 참 별게다 딴죽이네.”
최강 가우리 군중에 최정예.
묵갑귀마대원들이었다.
개마기병, 즉 가우리 철기병의 기본 장비 수는 엄청났다. 거기에 전투 후에는 그 장비에 들어가는 손이 엄청나 보통 한 개의 기마에 딸린 하인들이 몇 명씩은 붙어야 했다. 물론 그것은 이곳의 기사들도 마찬 가지였다.
하지만 애초에 이 대륙으로 넘어올 당시 가우리 군은 전투 병력만이 간신이 넘어왔기 때문에, 최정예라는 그들이 직접, 일반 보병들이 술을 기울이며 쉬는 시간에도 늦게까지 장비와 말을 점검 해야만 했다.
“씁! 칼 다시 닦아야겠네…….”
짜증 섞인 음성이 조용히 흘렀다.
마지막에 이쪽으로 향했던 기사들은 늑대를 피해 호랑이 입에 머리를 들이 밀었던 것이다.
“저게…….”
북로셀린 기사들이 집단으로 탈출 했다는 소리에 직접 기사단을 이끌고 달려 나왔던 바이칼 후작은 믿겨지지 않는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후우.”
그 옆에서 베르스 남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탈출했던 자들이 모두 잡혀서 안도를 한 것인가?
“…….”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바이칼 후작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탈출 했던 포로 기사들의 반이 죽고 반은 지금 먼지 나게 맞고 있는 상황에 안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탈출한 것이 북로셀린의 기사들이라 들었는데, 어찌 칼 질 서너 번을 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는가.”
“…….”
바이칼 후작의 말에 베르스 남작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침묵을 지켰다.
“거기에 부상을 당한 자들에 다가서기도 전에 쓰러져 저렇게 죽도록 맞는 것이 정상인가?”
“…….”
바이칼 후작은 못 믿겠다는 눈빛이었다. 복장을 보니 기사들의 복장은 아니었기에 놀라는 것이었다.
남로셀린 병사들이 손도 못 댄 기사들이 부상자들에게 죽도록 밟히는 모습과 또한 말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광경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말 주변에 있던 이들이 최강의 무력을 자랑하는 병력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보통 이 늦은 시간까지 말을 돌보는 것은 마지기거나 또는 일반 병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검세가 놀랄 만큼 빨랐기 때문이었다.
“저것이 가우리입니다…….”
며칠 전 베르스 남작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다시금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 이후 남작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직접 가우리 인들의 활약상을 보지 못했다면 절대로 믿지 못할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지금의 남로셀린에 필요한 힘이라는 것이다. 섣불리 다가가서 남작이나 자작 따위의 작위로 때울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
베르스 남작은 뒤쪽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빠진 바이칼 후작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보이지도 않는 행렬의 뒤를 바라보았다.
‘왜…….’
베르스 남작역시 며칠 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의문에 쌓였다. 그의 뇌리에 스친 영상은 붕대로 감은 다리로 쓰러진 기사들을 신나게 밟고 있는 가우리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왜 그 많은 병사들이 부상당한 척을 했을까.’
그 이후 철저히 지켜본 바로는 다쳤다는 팔로 식사를 한다던지 하는, 한 마디로 꾀병을 부리고 있는 병사들이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문득 고진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용병인가 하는 것들도 돈을 받는데, 우리가 미쳤다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 전쟁을 한 것은 아니란 말이지.’
차가운 물이 끼얹어진 느낌이 들었다.
‘설마 치료비까지!’
베르스 남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왕이라 자처하는 그가 돈 때문에 병사들에게 그런 꾀병을 부리게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베르스 남작은, 아직 진천을 몰랐다.
제41장 위력 시위
환영행사가 끝이 난후 바이칼 후작과 베르스 남작은 중심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작 위를 주어 남로셀린 왕가의 포용의 덕을 보여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허허허, 그렇습니다. 그리 하면 알세인 왕자님께 충성을 다 할 것이라 보옵니다.”
“경들의 생각이 그리 하다면 내 흔쾌히 백작 위를 내리겠소.”
“…….”
바이칼 후작이 도착하여 본 것은 이미 가우리 군에 대한 그들의 결론이었다.
고진천에게 영광스러운 남로셀린 귀족의 자리를 주자는 것이 결론이었으나, 바이칼 후작은 왠지 불안한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알세인 왕자님께 바이칼이 한마디 올릴까 하옵니다.”
“오! 어디 말해 보시오.”
열여섯의 나이에 국가의 운명을 떠안은 파밀리온 알세인 로셀린 왕자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이번 전투에서 우리를 도운 가우리…… 왕국의 포상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을 기하심이…….”
“어허, 바이칼 후작. 가우리 왕국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군대를 이끌고 왕이라 칭하면 전부 왕이 되는 것이오!”
바이칼 후작의 말을 받은 것은 루이 테리칸 후작이었다.
이번 전쟁만 아니었으면 여생을 편히 보냈을 그였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바이칼 후작과 함께 남로셀린을 지키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였다.
“테리칸 후작님, 그렇지만 말입니다…….”
“허허허, 바이칼 후작. 아무리 우리가 간악한 북로셀린과 신성제국의 흉계에 잠시 이렇게 밀려났지만, 육백 년의 전통을 지닌 왕국이오. 당장 힘이 든다 해서 그런 무리들을 일일이 인정 한다면 분명 다른 국가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테리칸 후작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이칼 후작은 베르스 남작을 통해 가우리라는 곳의 전력에 대해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은 상태였다. 그리고 자신 또한 어느 정도는 직접 눈으로 확인한 상태였다.
난감해 하는 바이칼 후작의 귀로 다시 다른 귀족의 말이 들려왔다.
“바이칼 후작님, 아니 그렇습니까. 어디 가우리라는 나라가 생겼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위치도 어디 있는지 알리지 않는다니, 그것이야말로 허구의 왕국이란 말 아닙니까?”
“허나…….”
가우리는 베르스 남작에게조차 철저히 위치를 발설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현재 이들에게 설득력이 없어지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가우리 입장에서는 험지인 레간쟈 산맥이라지만 알려져서 이득 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말로만 국가지 아직은 기틀조차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나라아닌가? 이번 전쟁의 목적조차 백성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귀족의 말꼬리를 이어 다시 테리칸 후작의 목소리가 흘렀다.
“그리고 후작, 그 가우리라는 무리가 혹여 우리 남로셀린의 한 지역을 장악 하고 나라라고 칭할 수도 있지 않소?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오히려 상황을 파악해서 군대를 바치라 해도 무방할 것이오.”
“으음.”
이렇게 귀족들의 말이 계속 이어지자 바이칼 후작은 자신이 너무 과민 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시아론 리셀의 존재가 생각났다.
“그들에게는 대법사도 있사옵니다.”
“뭣!”
“대법사라니!”
“사실이오!”
갑자기 귀족들의 목소리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현실적으로 대마법사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에서 6서클의 상징인 대법사라는 존재는 큰 파장으로 다가왔다. 남로셀린에도 단 한 명만이 있지 않은가?
바이칼 후작은 변화된 분위기에 힘을 얻은 듯 말을 이어나갔다.
“거기에 이미 말씀드린 매의 군단은 동부군에 견주어도 그리 밀리지 않는 전력입니다. 그 매의 군단을 이끄는 레비언 고윈 남작은 하이안 유일의 기사라는 칭송까지 받는 자입니다. 그가 가우리의 신하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하셔야 합니다.”
“음.”
알세인 왕자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바이칼 후작의 말을 단순히 흘리기에는 그 자체의 위치가 너무 컸고, 그렇다고 그대로 믿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럼 그들이 이 전투에 끼어들어 뭘 얻고자 했겠소?”
“그건…….”
테리칸 후작의 질문에 바이칼 후작은 할 말을 잃었다.
전쟁에서 지는 편에 끼어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물론 가우리 군이야 불난 집에 뛰어 들어가 쓸 만한 것을 가져온다는 명분이었지만, 그것을 누가 짐작 하겠는가.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테리칸 후작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세인 왕자님께서 좀 더 관용을 보이셔야겠습니다. 바이칼 후작이 허언을 할 사람도 아니고, 대법사라는 지위만 해도 백작 위 이상의 위치를 얻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백작이라는 위치는 철회하심이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이칼 후작은 테리칸 후작의 말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알세인 왕자의 말에 테리칸 후작이 신중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노귀족의 음성이 홀 안으로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 * *
복잡한 요식 행사가 끝이 나고 바이칼 후작이 남로셀린 왕자를 만나는 동안 고진천과 나머지 장수들은 화려한 홀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통역 아이템을 모두 제거 하도록.”
고진천의 음성이 조용히 흘렀다. 갑자기 들린 영문 모를 소리에 을지 형제들은 고개를 약간 갸웃거렸지만 저마다 명령에 군소리 없이 따랐다.
“계 대사자.”
진천이 뒤쪽에 있는 계웅삼을 부르자 그가 한걸음 앞으로 나오며 군례를 올렸다.
“예, 열제 폐하.”
“네가 통역해라.”
“충!”
쉬운 방법을 굳이 어렵게 만드는 진천이었다.
레비언 고윈과 시아론 리셀은 이해할 수 없는 듯 고개를 갸웃 거렸다.
“왜 굳이 통역 아이템을 빼는지 궁금한가?”
“예, 열제 폐하. 소신이 우둔하여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고윈의 대답에 진천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아쉽나?”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손가락에서 통역 반지를 빼내는 진천이었다. 고윈은 진천의 대답에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하이안 왕국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행동. 지금 외교의 우위는 가우리가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남로셀린은 그렇게 생각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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