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402
475화 에필로그
* * *
“하아아.”
한숨이다.
결혼식을 앞둔 신랑의 입에서 나올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웬 한숨입니까? 새신랑이.”
고개를 내민 이는 바로 카사 노바 백작이었다.
“그러게 지지리 궁상처럼.”
뒤이어 필리언 제라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뭐야? 이 야밤에 기어 들어오는 거야?”
한숨을 내쉬었던 계웅삼이 두 사람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결혼을 앞둔 건 웅삼만이 아니었다. 제라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웅삼과 달리 제라르의 얼굴은 생기가 가득했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야밤이니까 왔지. 흐흐흐.”
제라르의 말에 웅삼의 눈이 반짝였다. 이어 카사 백작을 바라보았다.
“곧 유부남이 되실 건데 달리셔야지요?”
“오!”
언제 그랬냐는 듯 웅삼의 표정이 밝게 변했다. 카사 백작이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좋은 곳을 알아 놨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곳이 있어?”
“전쟁터에서도 꽃은 피는 법입니다. 흐흐.”
웅삼의 질문에 카사 백작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하지만, 웅삼이 다시 얼굴을 굳혔다.
“그런데 얼굴 팔리면 어쩌라고.”
이번 전쟁으로 팔릴 대로 팔린 웅삼의 얼굴이다.
물론 세세하게 그의 외모를 사람들이 알 수는 없지만, 흑발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찔리는 게 있는 웅삼이다.
마찬가지로 제라르도 같은 입장이었다.
“흐흐, 금발에 까만 머리가 두 분뿐이랍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이곳에 가우리 출신이 웅삼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카사 백작의 준비는 따로 있었다.
카사 백작이 허리춤에서 뭔가를 양손에 들어올렸다.
코까지 내려오는 가면이다.
“오늘은 가면 살롱입니다. 딱 좋지 않습니까? 얼굴 팔릴 일도 없고 말입니다.”
카사 백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웅삼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바로 얼마 전이 전쟁 중이었다는 것도 잊을 만큼 살롱이 위치한 일대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피를 매달고 다녔던 사람들이다. 전쟁이 끝나고 쌓인 것들을 푸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와중에 이들이 도착한 곳은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
“이 지역이 가우리의 직할지로 편입되다 보니 여기저기 연줄을 대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인들이나 하급 귀족들이 여식들을 등 떠밀어 내보내기까지 합니다.”
카사 백작이 실실 웃으며 떠벌였다.
패전국 백성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기에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럼!”
하지만, 웅삼이 거기까지 생각하는 인간도 아니었기에 과감히 먼저 가면을 착용했다.
동시에 제라르와 카사 백작도 가면을 쓰고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니 정말 별천지였다.
“오!”
“역시!”
“제가 뭐랬습니까! 원래 이 지역이 유명한 관광지다보니 이쪽으로 발달이 꽤 되었습죠.”
“여기도 왔었나 봐?”
제라르의 질문에 카사 백작이 음흉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 모습에 둘은 혀를 내둘렀다.
적국이나 다름없는 곳에 순수하게 놀러 이곳까지 쑤시고 다녔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물론 필리어리 왕국이 마지막까지 전 시에라 제국과 교역을 했던 나라기는 했지만 말이다.
화려한 장식도 장식이지만, 딱 봐도 선남선녀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중에는 검은 머리를 한 이들이 몇몇 보였다.
검은 머리는 가우리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물론 북부 용병 출신 가우리인들도 있었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다 같은 가우리인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검은 머리 주변에는 많은 여인들이 몰려 있었다.
여인들뿐이 아니었다.
남자들도 몰려들어 기웃거릴 정도다.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닐 거다.
아마도 줄을 잘 대면 나중에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판단으로 접근하는 상계의 인물들일 것이다.
점령지에서는 무력이 최고니까.
그때 웅삼이 얼굴을 굳히며 멈추어 섰다.
그러자 앞장서던 카사 백작이 당황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웅삼이 멱살을 잡아챘다.
“너 이새끼!”
“켁! 왜요!”
동시에 그의 목을 옆구리에 휘감으며 으르렁거렸다.
“이렇게 좋은 곳을 그동안 혼자 다녔어?”
“켁! 큭, 크크크크!”
“푸흐흐흐!”
장난임을 안 세 사람은 신이 나서 안쪽으로 쭉쭉 걸어 나갔다.
그때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대장?”
“…….”
웅삼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웅삼은 순간 멈칫했지만,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흐흐흐. 예.”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 그 검은 머리는 멀어져 갔다.
웅삼의 휘하에 있는 검수였다.
가면을 썼다 해도 모를 수가 없었나 보다.
지금처럼.
“…….”
웅삼과 제라르는 어느 한 곳을 보더니 재빠르게 걸음을 이동시켰다.
그들이 본 곳에는 유독 많은 여인들이 몰려 있었다.
그 중심에는 탐스러운 은발을 늘어트린 이가 잘 어울리는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저 양반은 왜 또!”
“그러게.”
탐스런 은발에 미칠 듯이 꼬인 여인네들이라면 굳이 가까이 가지 않아도 답은 나온다.
다행히 살롱은 넓었기에 그들은 무사히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역시나 웅삼의 머리카락 때문인지 많은 여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런 그들의 눈에 노릴 만한 목표가 포착되었다.
“죽이는데?”
“그렇지?”
“흐흐흐.”
그들이 포착한 목표는 마치 고고한 학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있었지만, 그 자태까지 숨길 수는 없었는지 반대로 남자들이 몰려 있었다.
다가가면서도 웅삼의 눈은 위아래를 훑었다.
그 옆의 제라르도 마찬가지였는지 감탄의 음성을 뱉었다.
“한 명은 도발적인 몸매에 한 명은 화사한 꽃과 같군.”
“그 뒤의 여성은 완숙함이 최곱니다.”
카사 백작도 한마디 던졌다.
세 사람은 남자들을 헤치고 당당하게 멈추어 섰다.
“오로지 이곳만 보이더군요. 가면을 써도 감출 수 없는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카사 백작이 먼저 나서며 작업을 시작했다.
뒤질세라 제라르도 한 여인의 앞에 서며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그대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겠소?”
쫙 가라앉은 음성.
“나 그쪽이 마음에 드는데.”
마지막에 웅삼이 말을 툭 던지자 먼저 입을 열었던 둘이 쌍심지를 켜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초치지 말라는 듯한 눈빛이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오, 오호. 오늘은 이만…….”
갑자기 여인들이 당황하기 시작하며 몸을 일으킨 것이다.
“아, 아니 왜…….”
그녀들의 반응에 제라르와 카사 백작이 이를 갈며 웅삼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 때문에 다 망쳤다는 시선이었다.
둘의 눈빛에 당황한 웅삼이 한 여인에게 다가가며 다급하게 말을 붙였다.
“그, 내가 뭔 실수 했소?”
“크흠. 아, 아니옵…….”
웅삼이 다가가자 무섭기라도 한 듯 여인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탓에 뒤쪽에 있는 이와 몸이 부딪히며 가면이 떨어져 내렸다.
순간 여인에게서 튀어나온 욕설.
“씨파 어떤 새…….”
“이실라?”
튀어나온 거친 욕설과 함께 웅삼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
“오, 오호호. 이실라라뇽~ 이사라랍니다.”
“…….”
황급히 얼굴을 가리는 여인.
누가 봐도 이실라 공주였다. 옆에 있던 제라르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려는 여인의 손목을 잡으며 나직하게 물었다.
“센시아?”
“…….”
몸이 굳어지는 여인.
그때 쾌활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머, 것 보라고요. 이분들 여기 올 거라고 했잖아요.”
그때 완숙함을 자랑하던 여인이 가면을 떨쳐 내며 당당하게 섰다.
그녀는 바로 센시아 공주의 유모 로잔이었다.
순간 세 남자가 얼어붙었다.
“우, 우린…….”
“이런 그걸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조금 더 숨겨야지요!”
그때 유모라 불린 여인의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카사 백작이었다.
그는 동시에 열심히 눈을 깜빡거렸다.
“이런! 결혼 전에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 준다는 게 호, 호호호!”
“제가 너무 빨리 모셨나 봅니다. 하, 하하하!”
카사 백작이 열심히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럼 우리는 이만 빠질까요?”
“그래야죠. 호호호!”
그렇게 두 사람이 빠져나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하필…….”
카사 백작의 질문에 로잔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여기가 가장 물이 좋다고 해서…….”
“결혼…… 할 수 있겠죠?”
카사 백작이 두려운 표정으로 입을 열자 로잔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뭐, 얼굴은 가려도 각자의 취향이 명확한데요.”
웅삼은 이실라 공주를 찍었고, 제라르는 센시아 공주를 찍었다.
가면을 썼지만 둘의 취향은 초지일관이었던 거다.
“양쪽 다 찔리니 알아서 숨기겠지요.”
카사 백작이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옆의 유모를 슬쩍 바라보았다.
왠지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러나 입구로 나온 그들의 발걸음은 그 어떤 때보다도 빨랐다.
마치 무엇을 보고 도망이라도 치듯 말이다.
검은 가면 밑으로 꽉 다물린 입.
“음.”
그 옆에 먹은 음식이 위로 가지 않고 좌우로 간 듯한 근육을 자랑하는 이가 있었다.
가면이 소용없는 이.
“가시디요.”
입을 열어도 의미 없는 이.
둘이 위풍당당하게 살롱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 *
세기의 결혼식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우중만은 비로소 사람 꼴을 찾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가 이끄는 오크 전사들 역시 사람 꼴…… 아니 문명의 혜택을 받아 제대로 된 이종족으로 인정 받았다.
그 수도 많이 늘었다.
이제는 노예가 아닌 가우리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와중에 서로 다른 대륙에 연결된 이동 마법진 덕에 특산물의 이동은 더욱 많아졌다.
이제야 다른 대륙의 존재를 다른 제국들이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은 상황.
뒤늦게 땅을 쳤지만, 이제는 가우리 동맹은 넘볼 수 없는 상대가 되어 버렸다.
기존의 가우리 동맹 이외에도 새로운 동맹들이 넘쳐 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넘쳐 나는 마나석을 보유했기에 이제는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런 가우리의 하늘에는 고진천의 발명품이 일반인들을 태우고 날아다녔다.
심지어 기묘한 마법 문물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름 또한 기묘했다.
“영화 보러 갈래?”
“난 집에서 볼란다.”
“설마 그거 산 거야? 데, 뭐더라?”
“데레비!”
“맞아! 그거!”
연유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문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거다.
물론 마나석이 넘쳐 나는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극장이라는 것이 생겨나 마법 수정구를 이용한 영화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소수지만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영상 상자도 만들어졌다.
그 중심에는 트렌든이 있었다.
“와! 아이언맨이다!”
“트렌든이다! 이번 작품 봤어요! 아이언 맨과 불의 거인!”
“우하하하! 헤이 베이비! 싸인해줄까?”
트렌든은 감독 겸 주연으로 새로운 직업을 창출해 내었다.
나름 잘 적응해 나가는 그였다.
“폐하.”
“음.”
“이제 전쟁은 없겠죠?”
진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을지.
“아마도.”
장담은 없다. 하지만 을지는 그것만으로 족한 듯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생존을 위했던 전쟁.
미래를 위했던 전쟁.
이제는 그걸 토대로 천년의 영화를 누리기 위한 토대를 계속 쌓아 나가는 데에 집중할 것이다.
진천이 하늘을 보았다.
“전쟁은 없지만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는 평화가 없으니까.”
그가 잠시 보았던 후손의 미래를 기억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던 훗날.
다시 되돌아갈 날을 위해 준비는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다.
〈대륙 정벌기 完〉
가우리입니다.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느낌입니다.
글을 쓰면서도 참 죄송할 따름이었습니다. 제 모자람 때문에 독자님들께 누를 끼쳤습니다.
많은 분들이 사랑해 줬지만, 그 기대감에 실망만 끼쳐드렸습니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뿐입니다.
완결 쳤다고 스스로에게 대견하다는 말도 못하겠습니다.
그냥 부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삶이 어려웠던 일이 끊임없이 있었습니다만, 그걸 말해봐야 답은 없었습니다.
다 변명이니 말입니다.
물론 때론 스스로 그걸 원인삼아 변명도 해봤지만, 글 못써서 먹는 욕은 싸다고 생각 됩니다.
모쪼록, 모자랐던 글을 끝까지 따라와 주셨던 독자님들께 사죄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명예 회복이랄까.
짧게나마 스핀오프를 준비했습니다.
연재는 이곳에 이어서 할 예정이지만, 이 작품은 미리 말씀 드린 대로 3-5권 이내로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시작 시기는 3월 정도로 예상합니다.
소재도 생소할 겁니다.
배경도 이곳이 아닙니다.
그 프롤로그를 여기에 이어 짧게나마 올려 보려 합니다.
-가우리 배상-
프롤로그
생기 넘치는 거리.
하지만 그 거리에는 중무장한 이들이 오가고 있었다.
통일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다.
“하아. 이건 언제 터지냐.”
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팔에 찬 액정을 보았다.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 장치다. 바로 소환 적합자에게만 주어지는 시스템이었으니까.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이 액정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디야?
“근처요.”
-알았다.
전화를 끊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중 경보가 울려 퍼졌다.
위잉! 위잉! 위잉!
순간 생기 넘치던 거리에 급박함이 펼쳐졌다.
중무장한 이들이 거리의 사람들을 소개시키고 있었다.
“왜 갑자기!”
사내 역시 놀라 뛰기 시작했다. 중무장한 이들 역시 놀란 모습을 지우지 못한 채 거리의 시민들을 소개시키는 대에 열을 올렸다.
그때 달리던 그의 앞에 뭔가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제, 젠장!”
달리던 사내는 똥 밟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등을 돌려 뛰려 했다.
그의 앞으로 중무장한 이들이 대열을 갖추는 것이 보였다.
“빨리!”
그 앞에 선 이가 사내에게 손짓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뒤에서 뭔가 파동이 뿌려졌다.
“허읍!”
그 파동에 달리던 그대로 굴러 버렸다.
쿠웅!
그 순간 울려 퍼지는 묵직한 소리.
“이, 이런 젠장!”
“C급! C급 카거다!”
카거란 말에 등줄기가 삐쭉 올랐다.
크워어억!
뒤에서 울리는 괴성.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삼 미터는 되어 보이는 이족 보행의 괴물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걸 본 사내가 울상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에이 씨! 왜 갑자기 세상이 이 따위로 변한 거야!”
그의 원망도 잠시 뒤쪽의 병력이 뭔가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투투투퉁!
묵직한 것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카거라 불린 괴물의 몸통에 연달아 날아들었다.
터터터텅!
하지만 괴물은 그걸 맞으면서 잠시 움찔거릴 뿐 크게 타격을 입는 모습은 아니었다.
당연했다.
중무장한 병력이 쏘아 내는 걸로는 저 괴물을 꺾을 수 없었으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젠장!”
사내는 울상이었다.
카거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다.
사내는 생각했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그때 사내의 팔에 달려 있던 액정이 빛을 발했다.
“어?”
순간 희망의 빛이 감돌았다.
액정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소환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였다.
“제발, 인지도 똥망만 아니면…….”
사내는 알 수 없는 말을 뱉으며 액정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액정 위로 뭔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인지도 : 0.00001
——
“씨팔! 산적도 이거보단 높겠다!”
사내는 알 수 없는 외침을 터트렸다.
이제야 활성화된 소환.
문제는 인지도였다.
저 정도 인지도라면 과거에 죽은 일반 병사 인지도나 마찬가지였다.
인지도는 무력과도 연결고리가 크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 인지도로는 카거는커녕 최하급 F급 마물도 겨우 발목을 잡을 수준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그냥 소환을 활성화시키지 않으면 된다.
주어진 소환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회는 지나가고 또 기다려야 하지만, 좋은 기회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상황이다.
“에이 씨!”
욕설이 절로 나왔다. 카거가 이미 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이라도 살기 위해서는 선택을 해야 했다.
“망했어!”
울상을 지으며 액정의 활성화 버튼을 눌렀다.
빛이 퍼지는 순간 사내는 열심히 기어 나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몇 초라도 시간은 벌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카거의 앞에 빛이 몰리며 빠르게 뭉쳐졌다.
그리고 이내 뭔가가 형체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거는 기다리기 싫다는 듯 형체가 완성되는 그것을 향해 통나무 같은 팔을 휘둘렀다.
“마, 막아!”
사내는 형체가 만들어진 것을 향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명령을 던졌다.
서걱!
순간 뭔가가 잘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머리 위로 뭔가가 날아왔다.
“어헉!”
사내가 고개를 땅에 박는 순간 뭔가가 날아와 처박혔다.
고개를 들어보니 카거의 팔이었다.
“히, 히이익!”
꿈틀거리는 것이 아직 신경이 살아 있는 듯했다.
그걸 본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
“어…….”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비늘을 이어 만든 것 같은 갑주를 입고 있었다.
건장한 사내 둘을 옆으로 이어 붙이면 저런 체구가 나올까 싶을 정도의 몸체.
하지만 비만은 아니다.
키는 작아 보였지만, 숨 막힐 같은 근육이다.
마블리를 옆으로 더 늘리고 위에서 아래로 누르면 저런 체구처럼 보일 거다.
“안 죽었어?”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는 마음에 중얼거렸다.
그때 그 소환체가 한 손을 휘둘렀다.
부와아악!
이번에는 카거의 머리통이 날았다. 인지도 0.00001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걸 본 사내가 멍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너 뭐야.”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카거를 뒤로하고 소환체가 몸을 돌렸다.
“지금…….”
그 소환체가 인상을 잔뜩 쓰며 말을 이었다.
“……반말한 거이네?”
“…….”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턱 걸치고 험악한 표정을 짓는 소환체를 보며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북에서 오셨어요?”
대답 대신 멱살을 잡혔다.
절대적으로 소환자의 명령을 듣는다던 소환체에게 사상 최초로 멱살을 잡힌 사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