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437
35화 침략자들
* * *
보통 노을이라 하면 자줏빛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곳의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푸른 밤이 찾아오기 직전의 그 빛과는 또 달랐다.
그저 태양이 보랏빛이라도 되는 듯 대지 역시 보랏빛을 띄고 있었다.
거기에 흙은 퇴비마냥 거뭇한 색상일색이었다.
이따금 서 있는 나무의 이파리 역시 녹색과 보랏빛이 어울리지 않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기괴한 형태의 짐승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대지에 높게 솟은 거대한 성이 있었다.
권력의 상징처럼 말이다.
높이만도 삼십여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대전.
-3군단장이 소멸했더군.
묵직한 음성이 커다란 대전을 울렸다.
그 끝에는 권좌가 있었다.
게르하이오 펜 기오르그.
사자의 대공이라 불리우는 이였다.
권좌에 앉아 있는 그는 미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없이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주변으로 언데드라 불리우는 존재들이 도열해 있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옵니다.
무력으로 따지면 그리 높지 않은 이가 바로 카르베이온이었다.
다만 그의 중요도는 결코 낮지 않았다.
그는 그 어떠한 땅도 마계의 형질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물론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이라면 다른 비슷한 능력을 가진 이들보다 같은 시간 동안 수 배 이상의 범위를 장악할 수 있었다.
마계의 환경에서 벗어나면 그 능력이 크게 줄어드는 마계의 종족들에게는 그 능력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일반 마수야 그 능력의 차이가 미미하다지만, 강할수록 그 능력의 제약이 심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대지정화는 필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지. 우습게 되었어.
기오르그의 중얼거림에 도열해 있던 이들이 몸을 떨었다.
마계의 대공은 하나가 아니다.
각자의 영역을 가진 이들이 모두 일곱이나 되었다.
그들 중 점령에 나선 이는 총 셋이다.
마계에서도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회다. 강자들의 세상이기에 그들 간의 자존심 싸움 또한 치열했다.
그것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모처럼 스스로 균열을 낸 세상을 찾았건만.
마계의 존재가 다른 차원을 침공하는 일은 드물었다.
일부 세상에서 그들의 힘을 필요로 하여 계약을 통해 조금씩 영역을 넓혀 가는 경우는 있었다.
때론 터부시 되는 존재로, 때론 약해진 마음을 흔들며 신적 존재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곳으로 신호가 온 것이다.
차원을 뚫고 말이다. 그게 기회가 되었다.
이곳이라고 해서 모든 차원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스로 먹이가 되길 자처하듯 신호가 왔던 것이다.
기회였다.
그래서 침공을 했고,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다만 처음에는 하급 마물부터 보내어 영역을 넓혀 갈 필요가 있었기에 서두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기가 되어 본격적인 침공을 준비하는 이때에 처음부터 일이 틀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행성 재미나더구나. 강림자라 했던가?
-그러하옵니다.
-그러한 대응은 오랜만이더군. 별의 기억이라…….
별의 기억.
그건 그 세상에 영향력을 끼친 영웅들의 흔적을 되살려 불러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문명보다 물질문명이 더 발달한 세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별이 의지가 있어서 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곳의 침공을 받는 순간 인과의 법칙과 어우러져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마치 면역체계 같은.
-투쟁의 역사가 긴 행성일수록 두드러지는 현상이옵니다.
-그렇지. 하지만 어차피 조각난 기억이 전부일 뿐이다.
기오르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내 인내심을 시험치 말라.
기오르그의 말에 다들 허리를 숙였다.
그때 대전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보랏빛 아지랑이가 온몸을 뒤덮고 있는 존재가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왔는가.
-왔나이다.
-회유와 교언의 마족이여.
회유와 교언의 마족이라 불리는 이. 마켈그로이어 백작이었다.
-그대 재미난 일을 했다 들었다.
-별일 아니옵니다. 차원의 틈새에서 끼어들어온 이들일 뿐.
마켈그로이어 백작의 말에 기오르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번 일에 최적화 된 존재들을 끌어 모았더군.
-운이 좋았나이다. 대공이시여.
-조만간 그대가 우리의 영역을 넓히는 최전선에 서 주어야 할 듯하구나.
기오르그의 말에 마켈그로이어가 부복하며 외쳤다.
-기회만 주신다면 신명을 다하겠나이다.
마켈그로이어의 외침에 기오르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러가 있거라. 기회는 곧 주어질 것이니.
-기다리겠나이다. 사자의 대공이시어.
기오르그의 명에 마켈그로이어는 뒤로 물러서더니 다시 들어왔던 곳을 통해 밖으로 되돌아 나갔다.
그가 사라진 뒤 한쪽에 서 있던 이의 불만 어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근본 없는 넝마주의자이옵니다.
-그 능력으로 백작 위를 올랐으면 그 또한 실력이다.
-허나…….
-카르베이온의 훌륭한 대체가 될 것이다. 그 능력으로 기존 마계백작의 위를 찬탈하였으니.
-더는 언급 말라.
기오르그의 말에 말을 꺼내었던 마계귀족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더는 실수가 없어야 할 것이다.
기오르그의 눈이 다시금 차가워졌다. 처음처럼.
* * *
정보요원들이 보내준 내용을 취합하던 정보부로 학자로 보이는 이가 열띤 얼굴로 달려들어 왔다.
“그 강림자를 확보해야 합니다!”
연구원의 외침에 초췌한 얼굴의 케인 스미스 국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외교적 마찰이 있을 수 있소.”
“하지만, 그는 침략자들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허나 죽이는 것과 먹는 이야기만 해대고 있소.”
“그것조차 도움이 됩니다!”
연구원이 열변을 토하자 케인 정보국장이 그를 서늘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걸 모르지 않으니 요원들을 무리한 것을 알면서도 운용하고 있는 것 아니겠소.”
“모든 외교적 힘을 총 동원해서라도…….”
“그걸 왜 여기서 떠드는 것이오? 백악관에 가서 떠들어야 하는 것 아니오?”
“그…….”
“연구를 하라 했지 사고를 치라 했소! 지난 몇 년간 희생당한 요원이 몇인 줄 아시오!”
케인 국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연구원이 얼굴을 붉혔다.
“새로운 발견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 희생이 이 세상의 파멸을 불러올 뻔했소. 아니지, 이미 아프리카 대륙은 반쯤은 파멸한 상황 아니오?”
케인 국장이 정곡을 찌르자 연구원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그 빌어먹을 게이트를 닫을 방법부터 찾으란 말이오!”
“게, 게이트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게이트가 다시금 커지면서 침식지들이 다시 확장을 시작한 것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시오?”
연구원이 눈을 감았다.
“그건 아직 증명된 바가…….”
연구원의 변명에 케인 국장이 아직 열려 있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생떼 부리지 말고 되돌아가서, 그걸 당장 증명을 해 보시던가.”
케인 국장의 축객령에 연구원은 마지못해 되돌아갔다.
“후우. 빌어먹을.”
케인 국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연구가 이런 일을 초래했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보부의 모든 역량을 쏟았다.
그 과정에 있어 많은 희생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저들은 뻔뻔하게 다가와 또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책상물림들!”
콰앙!
케인 국장이 그의 책상을 강하게 내려쳤다.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 * *
“……저기 차라리 장소를 옮기는 건.”
육의찬 감독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이미 주변 땅 매입이 끝났다더군.”
전창걸 대표가 방긋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 서울 액션스쿨이 있는 땅 주변에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국가에서 이쪽에다가 연구 시설을 짓는다고 열심히 파 재끼고 있는 것이었다.
육 감독이 전 대표의 멱살을 잡았다.
“이 인간아! 당신은 여기 주변 땅 팔았으니까 기분 좋겠지!”
“케에엑! 그, 그건 아니고!”
“내 체육관 벽 날아간 거 못 봤어?”
“그, 그건 나라에서 수습해 준다고…….”
육 감독은 울고 싶었다.
처음엔 반가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기억이 났다.
고진천이 처음오고 난 다음 이 체육관이 얼마나 많이 부서졌는지를 말이다.
그런데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 떨어지지 않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차라리 고진천은 훈련이라도 함께 하며 서울액션스쿨의 도약을 이끌어 주기라도 했다.
그런데 을지부루는 달랐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훈련뿐이었다.
“그, 그래도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일걸?”
전 대표의 말에 육 감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쪽에 자릴 핀 거요?”
“응? 아 저번에 우리 건물이 좀 부서져서. 왜 그래. 우리사이에.”
“끄응.”
최근 들어 균열이 잦아졌다.
퍼스트 엔터의 사옥 근처에서도 한번 발생되어 건물 일부가 파손이 되었다.
그래서 이쪽으로 이전을 해 온 것이다. 이쪽 시설도 나쁘지 않았다. 퍼스트 엔터가 잘 되고 나서 이쪽에 공동투자 형식으로 시설물들을 확충했으니까.
좁긴 해도 일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후우.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전 대표의 말에 육 감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말이다. 이제 좀 살 만하다 싶더니.”
세상이 미지의 위험과 공존하기 시작한 지 칠 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것이 증명되었다. 오히려 일부 경기가 다시 좋아지며 세계의 경제는 다시 불이 붙었다.
마물 덕분에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으니까.
거기에 한국은 가장 빠르게 그 사태를 벗어난 덕에 그 특혜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가 되었고 말이다.
그 와중에 사람들을 달래 주는 엔터산업은 사람들에게 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
전 대표가 육 감독을 슬쩍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냐?”
전 대표의 말에 육 감독이 그를 한번 슬쩍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야 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부루의 존재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디.”
“염병 못 피하면 죽는 거지.”
전 대표의 말에 육 감독이 툴툴거렸다. 하지만 둘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좋다면 좋은 거다.
* * *
“너무한 거 아냐?”
“응? 뭐가?”
최후배 경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경미 경위를 바라보았다.
“내가 알아봐 달라 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쿵짝이 맞아?”
“말은 바로 해라. 쿵짝이 맞은 게 아니라…….”
을지부루 이야기인 것이다.
“후우. 말을 말자.”
“알잖아. 십년 전 우리가 엮였던 거.”
“알긴 하지.”
이 경위는 최 경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하간 그 약속은 지켜.”
“약속? 그냥 말해나 본다고 한 거지!”
그의 말에 이 경위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게 그거지! 지금 긴급균열 대항팀 난리 난 거 몰라? 어제도 균열이 발생했다고! 이번 주 들어서 네 번째라고!”
“기동대에서 해결했다며!”
“후우. 그래서 그나마 다행인 거지. 어찌 되었든 우리 쪽 인원도 끼워줘. 위에는 자신들이 연구해서 준다던데, 우리도 뭐라도 준비해야 하잖아.”
이 경위의 말에 최 경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데 내일 저녁 시간 없나?”
“응?”
“아니면 말고.”
히죽 웃는 최 경위를 보며 이 경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먹을래?”
최 경위의 얼굴이 해맑게 변했다.
제36화
* * *
마켈그로이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공성을 나왔다. 그의 앞에 육중한 갑주를 입은 마족 하나가 다가와 부복했다.
-그들은 어찌 하고 있는가.
-색정의 지배자 스베냐 반 실바로니아 대공이 요청한 반란지를 진압하고 있나이다.
-반란자가 변경백이었다지?
-그러하옵니다.
마켈그로이어 그가 주로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용병의 운용이었다.
일개 떠돌이 마족이었던 그는 자신의 특성을 활용하여 하위 마족들을 회유했다.
그렇게 회유와 계약을 통해 용병대를 구성하여 영향력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마계의 3대 강자인 기오르그의 변경백 하나를 꺾고 그 영지를 흡수했던 것이다.
힘을 숭상하는 마계인 만큼 그의 본신의 능력보다 끌어들인 용병들의 힘으로 변경백 자리를 찬탈한 것에 대해 다른 마족들이 그를 경멸했지만,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군주들에게는 그의 용병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었다.
거기에 그들의 용병 중에는 특이한 존재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존재 덕에 이번 차원의 침략에도 한 몫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런데 스베냐 대공이 그들을 다시 쓰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안 될 말이지.
이제는 그들을 마계의 세력 다툼에 쓸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침공의 한 축을 차지했던 카르베이온의 자리를 차지할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마켈그로이어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들을 불러라. 새로운 침략의 선봉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알겠나이다.
마족이 그의 명에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지독히도 말을 안 듣는 놈들이지만, 이번에는 꽤나 쓸모가 있겠어. 실력만큼은 대단한 놈들이니까.
마켈그로이어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 *
전신 길드원들은 밝게 웃고 있었다.
“와 신병이다.”
“흐흐흐.”
“그래. 이거지.”
그들의 앞에 새로이 합류한 인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 소속의 소환자들과 기동대 소속의 소환자, 그리고 긴급균열 대항팀 소속의 소환자들이 이곳에 함께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모종의 훈련을 통해 소환자의 생존력을 향상시킨다는 이야기만 듣고 도착한 상황이었다.
“빈이 니가 왜 그리 우릴 반겼는지 알 거 같다.”
“그쵸?”
고빈이 회죽 웃으며 되묻자 임병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그래. 이걸 우리만 당하기에는 억울하지.”
“제 말이요.”
“흐흐흐흐.”
전신 길드원들이 해맑게 웃었다.
그런 그들의 미소에 도착한 이들이 환영의 의사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옥에 빠져들었다.
* * *
판도라 멤버들이 무대 위로 나타나자 군인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비록 군통령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무려 판도라다. 그녀들의 등장만으로도 분위기가 확 달궈졌다.
“얘들아 안녕! 니들 고생이 많다!”
“누나! 제이 누나!”
제이가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자 군인들이 다들 자지러졌다.
이들은 침식지 주둔군의 장병들이었다.
통일이 이루어진 후 장병들에게 있어서는 이곳이 최전방이었다. 그런 만큼 고단한 나날 속에 이런 위문공연 가뭄 속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세인누나! 날 가져요!”
“세인 짱! 세인 짱!”
굵은 톤의 연호에 세인은 밝게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밝아진 모습에 제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은 그녀들에게 있어 휴식기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렇게 행사를 다니는 것은 세인이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을지부루와의 만남 이후 부쩍 밝아진 표정의 세인이었다.
비록 원했던 이는 아니지만, 그를 통해 그들의 옛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저리 좋을까?”
“안녕 오빠들!”
레이니까지 등장하자 군인들이 모두 일어서 열심히 반동하기 시작했다.
이어 불꽃이 터지며 위문공연이 시작되었다.
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들으며 경계를 서던 기동대원들은 피식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겠다. 새끼들.”
“아이씨. 나도 보고 싶은데. 하필 경계가 잡힐게 뭐야.”
“그게 부럽냐? 지금 난리 난 거 모르냐? 긴급이잖아.”
“알긴 하지.”
긴급이라는 말에 함께 경계를 서던 기동대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긴장 좀 풀어 주려고 온 거지. 우리야 월급이라도 받지. 쟤들은 징병 아니냐.”
“쩝.”
기동대원은 입맛을 다셨다.
얼마 전 침식 균열이 터진 이후 전 군에는 비상력이 떨어졌다.
심지어 침식지 주변으로 소환자들을 소집하는 소집령도 떨어졌다.
각 침식지 주변 십 키로 이내로 주거를 옮기는 것이 골자였다.
물론 거기에 일반 균열이 자주 생기기 시작하면서 긴급균열대항팀에 예비 소집도 벌어졌다.
“중국 소식 들었냐?”
“들었지. 그래도 거긴 인구수가 어마어마해서 소환자 숫자도 많잖아. 그 덕에 침식 균열을 깔끔하게 막아 냈다지?”
“그래 봐야 막은 거지 우리 봐라. 이번에 전신 길드에서 하드캐리 했잖아.”
“하긴 대단해. 그런데 중국에서 이번에 전설 급 무장이 방한 한다대?”
“나도 들어서 알지. 장비라니…… 삼국지 게임 참 많이 했는데.”
그렇게 말을 나누던 그들이 고개를 돌렸다.
“응?”
“뭔데?”
“뭔가 보이는 거 같은데?”
저녁어스름이 깔린 덕에 시계가 좋지 못했다.
“상황실에 문의 넣어 봐. C7지역에 뭔가 보이는가.”
C7지역이라는 말에 시선을 돌린 기동대원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아이씨, 아니면 좋겠는데.”
먹구름이 모이는 듯한 모습에 불길함을 느끼기 시작한 대원이었다.
“11호기 꺼졌어!”
“12호기도 끊어졌습니다!”
“15호기 인근으로 돌려 빨리!”
상황실은 난리가 났다.
그때 경계초소에서 보고가 들어 왔다.
“뭐? C7?”
“씨팔 난리 났네! 지금 떨어진 거 다 그쪽 지역 맞아!”
감시를 위해 띄워 놓은 드론들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다른 쪽 드론을 이동시키던 운용병이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에이씨!”
“뭔데?”
“긴급 쳐야 할 것 같습니다! 침식 균열이 또 벌어진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언젠가 터질 줄은 알았는데…….”
상황실은 긴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침식지 내부에 있던 소환자들 5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일단 최초 저지 가능한지 물어보고, 그게 아니면 정찰 임무라도 좀 부탁해 봐.”
마치 시장바닥처럼 고성이 난무하고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줌 기능 있는 드론 그쪽으로 이동시켜! 저번에 위에서 내려온 식별자료 있지!”
“예!”
“그거 확인 준비하고!”
“전신 길드에 지원 요청해! 빨리!”
거친 숨소리들이 상황실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씨팔 여기 무너지면 바로 서울이야. 막아야 해!”
“하아.”
“상황실도 지금 난리 났는데 이거 아무래도…….”
“침식 균열이다. 젠장 저걸 또 볼 줄이야.”
상황실에 연락을 넣었던 경계초소를 점령중인 기동대원은 세상 다 산 사람같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랏빛 뇌전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필 밤이야 왜.”
어둠은 여러모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싸이렌 소리와 함께 신나게 울려 퍼지던 음악이 멈추었다.
“후우. 운도 없는 놈들.”
신나게 즐기고 있었을 병사들을 떠올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에에에엥!
싸이렌이 울려 퍼지자 제이와 레이니, 그리고 세인은 얼굴을 굳혔다.
“무슨 일이야?”
그때 승배가 헐떡거리며 달려오더니 외쳤다.
“빌어먹을 침식균열이 터진 것 같아!”
“아…….”
환호하던 병사들은 이미 대열을 맞춰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니.”
그 병사들을 보며 제이가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었다.
“일단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해. 여기 있으면 위험하니까…….”
그때였다.
주변의 공기가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뭐, 뭐지?”
그때 기동대원 하나가 바이크를 타고 그들에게 달려왔다.
“일단 내부 벙커로 이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부로요? 밖으로가 아니고요?”
승배가 당황한 얼굴로 묻자 기동대원이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주변에 일반 균열이 동시 다발적으로 터졌습니다. 지금 이동하는 게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군의 보호를 받으시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기동대원의 말에 승배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그녀들에게 입을 열었다.
“일단 이동하자. 그리고 육감독님에게 전화 할게.”
승배의 말에 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육감독에게 전화를 한다는 말은 곧 부루에게 알리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타타타타타!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릴 들은 기동대원이 그녀들을 안심시켜 주려는 듯 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
“총성이 울리는 거 보니 폐급 같네요. 차라리 다행입니다. 가시죠!”
기동대원을 따라 승배와 판도라 멤버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승용차를 임시로 바리케이트를 친 군인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총성과 함께 매캐한 화약 냄새가 풍겨졌다.
“제논! 제논 좀 비춰!”
제논이라 불리는 강한 불빛의라이트가 전방을 비췄다.
균열을 통해 쏟아져 나온 것들이 미친 듯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분대화기 빨리 거치해!”
소대장이 지위를 하는 가운데 한쪽에서 바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기동대다!”
기동대들이 외부 지원을 위해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그 수는 턱도 없이 작았다.
“왜 이것밖에 안 됩니까!”
기동대장에게 소대장이 목소리를 높이자 기동분대장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답했다.
“침식균열을 막는 게 우선 아닙니까!”
“그건 아는데 여기 뚫리면 후방에 구멍 나는 거예요! 뒤에서 마물들이 미친 듯이 달려드는데 맘 놓고 침식 균열을 막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나마 폐급이라 좀 힘들겠지만 막을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나마 일반 균열에서 나오는 개체 수는 적은 편이니…….”
그때 누군가의 욕설이 튀어나왔다.
“씨팔. 졸라 많네…….”
화가 나서 내뱉는 욕설이라기보다는 어이없이 뱉어 내는 것에 가까웠다.
“무슨…….”
대화를 나누던 기동분대장과 소대장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미치겠네.”
기동분대장이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여기 12분대장인데. 기동대대장님 좀 바꿔 줘.”
-현장 나가셨습니다.
“여기 지원 필요해.”
-안 된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아는데. CCTV 통해서 이쪽 상황 눈으로 봐라. 싹 다 쓸리게 생겼어.”
-예?
잠시 뒤 절망적인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저게 다…….
“그래. 침식균열만 신경 쓰다가 뒤를 당하게 생겼다. 빨리 조취 좀 취해!”
그렇게 외치고 분대원들에게 장비 배치를 명했다.
“하아.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한숨을 털어내는 기동분대장의 눈앞에 새까맣게 몰려오는 마물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 * *
텔레비전을 보던 육 감독이 울려 오는 전화를 받았다.
“어, 승배냐?”
-여기 난리 났어요!
“응?”
-침식 균열이 발생해서…….
육 감독은 멍한 얼굴로 갑자기 떠오른 속보를 바라보며 말을 가로챘다.
“젠장. 지금 뉴스 보고 있다. 내 빨리 장군님께 알릴 테니 애들 잘 간수해!”
-예! 빨리요!
화면에는 계속해서 침식균열 보도와 함께 판도라 멤버들이 고립되었다는 속보가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