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5
강철의 열제 15화
툭.
움찔.
“흐으음.”
칼쑤만의 얼굴과 머리통을 건드리고 다니는 것이 있었다.
병사들이 떨어뜨린 창대를 주운 고진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칼쑤만의 얼굴과 머리통을 건드릴 때마다 그는 공포에 질려 움찔대고 있었다.
툭툭툭.
움찔 움찔 움찔.
“크으음.”
칼쑤만에게 당한 일이 머릿속에 깊게 새겨져 있었는지 진천은 계속 창대로 머리통을 툭툭 두드리고 있었고, 그는 그에 동조하며 계속 움찔대고 있었다.
툭.
움찔.
“장난 그만하고 떠나야지요.”
“흠.”
연휘가람이 옆에서 말문을 열자 칼쑤만을 향한 복수의 손길(?)이 멈추어졌다. 이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칼쑤만으로선 행동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부스럭.
진천이 품에서 종이 쪼가리를 꺼내자 칼쑤만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고, 순식간에 벌어졌던 살육에 숨을 죽이고 있던 마법사 리셀은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종이를 손바닥 위에 올린 진천이 칼쑤만을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멸화(滅火).”
화아악!
칼쑤만의 눈앞에서 종이에 불이 붙자 아까의 광경을 똑똑히 기억하던 칼쑤만은 자신의 몸에서 혼백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털썩.
“…….”
진천은 손바닥 위에서 타버린 재와 조용히 옆으로 쓰러진 칼쑤만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역시 난 안 되는군.”
“훗. 아무나 하면 주술입니까?”
“그렇겠지.”
흉내만 낸 단순한 삼매진화였다. 그들의 대화에서 리셀은 무너지는 기대감을 느꼈다. 휘가람이 제풀에 쓰러진 칼쑤만에게 다가가 숨을 확인했다.
“심장이 멎었네요.”
“음.”
결국 상상력이 지나쳤던 칼쑤만은 그냥 조용히 곱게 죽어 버렸다.
“자, 그럼 하던 얘기 계속할까요?”
연휘가람이 미소를 띠우며 다가오자 리셀은 섣불리 대답하기 힘들어 졌다. 병사들을 맨손으로 때려죽인 사람이나 마법도 아니면서 마나를 이용해 사람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휘가람을 보면서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휘가람의 이상한 마법은 자신의 윗줄임을 알고 있었다. 주문이 없이 시동어만 이용하여 발휘하는 휘가람이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바로 마법의 조종 드래곤일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음, 말이 갑자기 없으신데, 일단 강제로 납치한 점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그렇게 저희가 마음에 안 드시면…….”
“아, 아닙니다. 제가 필요하시니까 데려오신 거겠지요. 제가 할 일이 있으면 시켜만 주십시오.”
“거참.”
“…….”
리셀이 행동을 바꾸어 백팔십도 바뀐 모습으로 굳은 다짐을 하듯이 말하자, 휘가람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리셀의 다리가 말과는 다르게 심각한 모습으로 떨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찌 되었든 쉽게 넘어가게 되자 시체들을 적당히 정리하고 무기나 갑옷 등 돈 될 것은 수레에 담아 다시 길을 서둘렀다.
그 이후의 길은 순탄했다. 중간 중간 오크나 고블린이 덤벼들었으나 휘가람이 알아서 처리를 했다. 리셀은 쥐 죽은 듯이 있다가도 휘가람의 한마디면 눈썹이 날릴 정도로 뛰어다녀서 부담이 될 정도였다.
덜컹덜컹.
“흐음, 거의 다 왔군.”
수레 뒤쪽에서 뒹굴 거리던 진천이 몸을 일으키면서 입을 열었다. 떠나올 때와는 달리 목책 대부분이 석벽으로 교체되어 가고 있었다. 거의 보름뿐이었지만 축성 속도가 꽤 빨랐던 것이다.
“대사자가 오셨다!”
“문을 열어라!”
리셀은 레간자 산맥에 이렇게 정비가 된 마을이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문을 들어서자 진천과 휘가람과 같은 외모의 병사들이 존재하고, 또 잘 벼려진 칼날 같은 군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휘가람, 이 노인에게 묵을 곳을 마련해 주어라.”
“예.”
이제 조금씩 마을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숙영지에 들어선 진천이 휘가람에게 명을 내렸다. 그리고 말에서 내려 자신의 막사로 그냥 돌아들어 갔다.
“갑시다.”
“넷.”
휘가람의 말에 리셀은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을 한 뒤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점점 불안해지는 리셀이었다.
“대사자 오셨습니까.”
“무덕, 잘 있었소.”
달려나와 환대를 하는 대무덕에게 진천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니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셨습니다?”
“뭐 비싼 게 있어서 좀 빨리 움직였지. 나머지는 며칠 후에 도착할 것이오.”
막사로 들어서자마자 달려 들어온 대무덕에게 진천은 간략하게 말을 하곤 침상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무덕이 우물쭈물하며 서 있자 이상함을 느낀 진천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소?”
“그, 그게 좀.”
‘무슨 일 있지요 당연히.’라고 대답하는듯한 무덕의 모습에 진천은 더욱 궁금함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무덕의 말은 일단 직접 보라는 것이었다.
히히히히힝!
큐히이 큐힝!
“…….”
말들을 풀어놓은 방목장 앞에선 고진천과 연휘가람이 할 말을 잊고 서 있었고 대무덕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서 있었다.
“내 눈이 잘못된 것은 아닐 거고.”
푸히이잉!
큐히히힝!
진천의 애마인 강쇠(剛釗)가 열심히 생산 활동을 위해 즐거운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물론 사실 이것은 문제가 안 되었다. 떠나오기 전에 문제가 되었던 것 중에 전마들이 발정기가 되어 날뛸 것을 걱정했지만, 열심히 생산 활동을 하는 모습은 문제가 안 되었다. 다만 강쇠의 밑에서 울부짖는 존재가 문제일 뿐이었다.
“저게 뭐라는 건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저…… 퓨켈이라는 맹수의 한 종류입니다.”
“퓨켈?”
연휘가람의 시종처럼 따라다니던 리셀의 음성이었다.
일단 드래곤의 유희에 최대한 협조를 해야 한다는 불문율 정도는 잘 알고 있었기에 휘가람이 상관처럼 모시는 진천에게도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리셀의 대답을 들은 진천은 강쇠의 밑에서 울부짖는 퓨켈이라는 동물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 * *
얼마 전, 강쇠(剛釗)를 비롯한 가우리의 전마들은 불만에 싸여 있었다. 그나마 있던 암말들과 새로 들어온 늘씬한 다리를 가진 이 동네 암말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푸르릉.”
다가닥 다가닥!
끼히히히힝~!
결국 일은 벌어졌다.
어디선가 암컷의 향기가 풍겨오자, 강쇠가 힘껏 달리다가 도약을 한 것이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끼던 강쇠로서는 이 정도 목책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푸르릉!”
다가닥 다가닥 다가닥!
“잡아라앗!”
목책을 뛰어넘자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강쇠를 병사들이 잡기 위해 뒤따랐다. 그러나 이미 눈에 뵈는 게 없는 강쇠는 오로지 하나의 일념(?)으로 달려나갔다.
다가닥 다가닥!
“헉! 와, 완루야!(뭐, 뭐야!)”
한스 노인은 새로 경작을 시작한 곳으로 소를 몰고 가다가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전마를 보고 놀라 소리를 쳤다. 강쇠였다. 설마 했지만 분명 한스 노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후히히히힝!”
“으악!”
강쇠의 흉성이 울려 퍼지며 자신에게 뛰어오르자 한쪽으로 사력을 다해 몸을 날리는 한스 노인이었다. 그리고 곧 자신을 뛰어넘는 강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 개의 다리 외에 불끈 힘이 솟아있는 다섯 번째 다리를…….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소리.
“음머어어어어!”
“헉!”
강쇠는 한스 노인을 뛰어넘자마자 소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 소는 암소였던 것이다.
“음머어어어어!”
두두두두.
“히히히히힝!”
다가닥 다가닥!
정조의 위협을 본능적으로 느낀 암소는 필사적으로 달렸고 강쇠는 흥분도가 넘치다 못해 폭발을 하고 있었다.
“히히히히힝~!”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움머어어!”
두두두두두두.
광란의 쫓고 쫓김은 다행히 발발직전 미수로 끝이 났다.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올라탄 상태에서 열 명의 병사들에게 잡혀 끌려갔던 것이다.
“에이 썅, 마갑 죄 체우라우!”
“네, 장군.”
열 명의 병사도 모자라 직접 나서서 힘쓰게 된 부루는 거칠게 욕을 하며 마갑을 씌우라 명령을 내렸다. 그것만으로도 분이 안 풀렸는지 발로 걷어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조 너 가 소네? 소야! 오케 된 게 말이 말 같지가 안네!”
“히히힝!”
부루에게 맞으며 강쇠는 항의라도 하는 듯이 길게 울어 재끼고 있었다.
그날 밤.
또다시 일은 벌어졌다.
콰작!
“뭔 소리야!”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병사들은 재빨리 달려갔다. 소리가 난 곳은 말 울타리 뒤쪽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병사들은 허탈함을 느꼈다.
“…….”
“……이게 말이 한 짓이냐.”
“말이 말 같아야 말이지.”
“말 같지도 않은 말 말고, 말 도망간 거 말하러 가야겠다.”
말 울타리에 크게 난 구멍을 보면서 병사들은 허탈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갑을 씌워 놓으니 그걸 무기로 아예 뚫고 나간 것이었다. 강쇠는 단순한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강한 말이었다.
“큐힉!”
“큐히힝!”
레간자 산맥의 분지에는 오크들이나 오거도 함부로 오지 않는다. 그곳에는 오직 이곳에만 존재하는 퓨켈 무리가 있었다.
생김새는 소와 같이 양쪽에 뿔이 있었고, 그 가운데 이마에도 뿔이 하나가 더 있었다. 거기에 덩치는 소보다 크면서도 긴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철저한 집단행동을 하는 퓨켈 무리는 오크 떼들이라 해도 그 빠른 속도로 들이받고 지나가면 모두 죽어 나자빠질 뿐이었다.
이점은 오거라도 다를 바가 없었다. 오거는 무리를 짓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레간자 산맥의 분지는 퓨켈들의 마지막 보금자리였다.
“큐힝!”
두두두.
“큐히이이잉!”
두두두 콰쾅!
상처를 입은 퓨켈이 한쪽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엄청난 격돌이 지나가자 쓰러진 퓨켈은 일어나 꼬리를 말고 무리들 속으로 들어갔다.
사자 같은 백색 갈기에 머리에 돋은 세 개의 뿔이 유난히도 웅장해 보였다. 철저한 무리생활을 하는 퓨켈의 습성은 무리의 대장 역시 철저한 실력 행사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압도적으로 강한 새로운 대장이 탄생 하는 순간이었다.
“큐히이이이잉! 큐히이잉!”
승자의 외침은 분지를 울려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 퓨켈 무리들의 기성이 울려 퍼졌다.
“큐히히힝!”
“큐히힝!”
“큐이힝!”
“이히히히힝!”
“큐이……?”
그리고 그 순간, 새로운 대장을 환영하던 퓨켈들은 갑자기 끼어든 생소한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두구둑 두구둑 두구둑!
“이히히히히히힝!”
온몸에 암흑색으로 만들어진 마갑을 두르고, 세 개의 뿔이 솟아 있는 강쇠의 투구는 달빛에 반사되어 더욱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대지를 진동하는 육중한 소리가 습지를 흔들며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큐히히힝!”
퓨켈 무리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분명 검은 퓨켈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게다가 뿔이 달린 것을 제외하고는 음성이 마치 말이라는 종족과도 닮았다. 그러나 또 다른 것은 퓨켈들이 아는 말보다 덩치는 작고 몸집은 퓨켈처럼 단단했다.
“큐히히힉!”
“큐히익!”
그러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달려오는 새 퓨켈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새로운 대장이 된 퓨켈을 중심으로 이백여 마리의 퓨켈들이 진형을 짜고 있었다. 하지만 흉폭한 강쇠의 울음은 진형을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두구둑 두구둑 두구둑!
“우히히히힝! 끼히힝!”
마갑의 무게에 강쇠의 돌진력이 하나가 되어 가속도를 내며 진형을 향해 돌진해갔다.
“큐히익!”
“큐히히히힝!”
기세를 알아차렸음인가?
공포를 쫓듯 퓨켈들의 울음들이 퍼져 나갔다. 퓨켈이 비록 맹수였지만 강쇠는 전장에서 태어나서 창과 칼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살아온 최강의 전마였다. 그리고 이곳 레간자 산맥에서도 강쇠의 신위가 빛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큐이이이~!”
“큐이이!”
푸화아아악!
강쇠의 몸이 진형에 격돌하자 퓨켈들의 신음성이 울려 퍼지며 무리가 마치 반으로 쪼개지듯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종횡무진 휘저어가는 강쇠의 신위는 빛나고 있었고, 붉게 물든 눈빛에 퓨켈들은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큐잉!”
“푸힝!”
드디어 대장 퓨켈이 나섰다. 짧은 콧김을 뿜어내는 퓨겔의 대장 앞에 선 강쇠는 바로 달려들지 않고, 지지 않는다는 듯 콧김을 뿜었다. 강쇠도 본능적으로 상대의 강함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큐히이이익!”
“끼히이이이잉!”
투콰학!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둘의 격돌을 알렸다. 강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든 뿔은 온몸의 갑주에 의해 튕겨 나갔고 그것은 이미 패색을 알리고 있었다. 공격을 하고 지나치던 퓨켈 대장의 옆구리에 강쇠의 뒷발이 박혀든 것이다.
쿠우웅!
“푸르릉!”
“큐잉.”
정적.
단 일 합에 승부가 난 것이었다.
퓨켈 대장의 구슬픈 소리가 울려 나왔고 강쇠는 승리에 만족한 듯 거친 숨을 내쉬며 쓰러진 퓨켈에게 다가갔다.
“퓨르릉.”
“큐힝.”
쓰러진 퓨켈에게 다가간 강쇠는 갈기를 혀로 쓰다듬어 주었고, 퓨켈 대장은 부끄러운 듯 몸을 움츠렸다. 대장 퓨켈은 암컷이었다. 둘은 진정한 승부의 끝에 사랑을 느꼈다……. 종족을 초월한. 그리고 나머지 퓨켈들은 이어진 둘의 결합을 축복해 주었다.
새로운 대장인 강쇠를 위해.
강쇠와 대장 퓨켈의 신혼이 끝나고 3일 후, 강쇠와 퓨켈들의 대 이주가 시작되었다. 또다시 목책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본 것은 퓨켈 무리와 그 선두에 있던 강쇠였다. 거기에 퓨켈 무리들은 일종의 모계 사회인지 암컷의 비율이 높았던 것이다. 이백여 마리의 퓨켈 중 160여 마리가 암컷이었다.
물론 숫퓨켈들의 반항도 약간 있었지만 단지 반항이었다. 재미있는 현상은 강쇠와 전마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이쪽 세계 출신의 말들은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전마들의 발광은 줄어들고 광란은 늘어갔다.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