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52
강철의 열제 152화
–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이곳은 너희가 올 곳이 아니다. 떠나라.
골드 드래곤의 음성이 울렸다.
“이곳이 그대의 땅인가?”
고진천의 목소리가 골드 드래곤을 향했다.
– 이곳은 성지. 나는 이곳을 지킬 의무를 가지고 있다. 물러가라. 이것이 너희에게 내리는 은혜이니라.
골드 드래곤이 진천의 질문에 답하였다.
“이곳에서 떠나라?”
– 그렇다.
진천의 반문에 골드 드래곤의 확인이 뒤따랐다.
진천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수만의 눈동자들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희망에 벅차있던 눈동자들은 지금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고, 전열을 가다듬고 있던 검은 눈동자들은 울분에 휩싸여있었다.
진천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눈을 감았다.
멀리 연기가 솟구치던 평양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쟁을 피해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보따리를 들고 수레에 실고 걸음을 옮기던 가우리 백성들이 떠올랐다. 피눈물을 머금으며 이곳으로 떠나기 위해 배에 오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인간은 땅 위에 있을 때, 비로소 살아간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땅을 잃는다면 희망도…… 미래도 없다.
진천의 눈이 천천히 열렸다.
진천은 골드 드래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이곳은 내가 지킨다. 그 의무를 넘겨받겠다. 그러면 안 되겠는가.”
– 내 호의를 거절하는구나. 마지막 경고다. 떠나라.
골드 드래곤의 거절 의사가 확고하게 들렸다.
떠나라니.
대체 어디로.
어디로 떠나란 말인가?
갈 곳을 잃어 최후의 터전을 찾아온 이들에게 떠나라니. 고향을 등지고 새로 마음을 푼 이곳에서 떠나라니, 어디로! 이곳이 아니면 더 이상 갈 곳은 없다.
“내 대답은…….”
진천이 말문을 열며 다시 한 번 뒤를 보았다. 그의 인생에 있어 이렇게 망설이던 적은 없었다. 전열을 갖추고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으리라.
그는 골드 드래곤을 올려다보며 잠시 끊어졌던 대답을 이었다.
“불가(不可)!”
– 크오오오오오!
진천의 답변과 골드 드래곤의 분노가 허공을 메웠다. 그리고 절대적인 존재의 응징이 시작되었다.
– 모조리 이 땅에서 재가 되리라!
뜨거운 열기가 드래곤의 머리 위에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내 열기는 불꽃으로 변해갔고, 리셀은 경악했다.
“헤, 헬 파이어!”
지옥의 불이 만들어졌다. 리셀은 그것이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헬 파이어 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저렇게 거대한 열기를 내뿜는 불덩어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리셀은 진천이 앞으로 나서자 자신도 모르게 주문을 외워가기 시작했다.
“오움 살라 디 크레이 움타아! 세상을 이루는 마나의 힘이여 내게 힘을 나누어 주오! 열기를 이기는 근원! 시리도록 차가우니 그 어떠한 열기도 이기리라! 아이스 베리어(얼음의 막)!”
위이이이잉!
차가운 얼음의 벽이 뜨거운 열기 앞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냉기가 느껴지는 그 위로 뜨거운 열기의 덩어리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죽음의 선고와 함께.
– 오만한 인간들에게 내리는 나의 응징이니라. 헬 파이어.
고오오오오!
“크윽!”
리셀의 이마에서 핏줄이 불끈 솟아오른다. 얼음의 장막이 헬 파이어에 닿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녹기 시작했다. 그때 리셀의 옆으로 달려온 사람이 있었다.
“진언(眞言)의 힘!”
촤라라락!
노란 종이들이 부채처럼 펼쳐졌다. 심유한 눈빛을 하고 있는 그는 바로 연휘가람이었다. 멈추지 않는 주문이 흘러나왔다.
“불은 불로써 다스린다.”
콰콰콰쾅!
리셀의 얼음막이 깨어져 나가고 불길이 고개를 내민다. 그러나 휘가람의 음성에는 서두름도, 조급함도 없었다.
“지저에서 솟구치는 활화산의 용암처럼, 세상을 녹이는 힘! 멸천지염(滅天地炎) 출(出)!”
화르르르!
휘가람의 손에서 떠난 노란 종이들이 불줄기로 변하여 먹이를 향하는 뱀의 머리처럼 헬 파이어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두 힘이 마주치자 굉음을 만들어냈다.
쿠아아아앙!
세상으로 불비가 내린다.
허공에서 부서져 내린 불꽃들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 유흥꺼리가 되는군.
부서져 내리는 불비 사이로 골드 드래곤의 모습이 흐리게 들어왔다. 그리고 오만한 듯한 음성도…….
– 어디 이것도 막아보라.
그 말과 동시에 골드 드래곤의 배가 천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서, 설마!”
마나가 골드 드래곤의 입으로 모여드는 것을 눈으로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일렁이는 아지랑이에 빛이 굴절되고 있었다. 리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드래곤 브레스!”
신이 내린 권능.
드래곤의 절대적인 힘을 상징하는 브레스였다.
“으으음.”
항상 잔잔한 미소를 띠우고 다니던 휘가람의 얼굴이 참담히 일그러지며 신음마저 흘렸다.
“……후.”
휘가람의 양 어깨가 깊은 숨과 함께 늘어 내려졌다.
“휘…….”
그 모습을 본 진천이 뒤에서 그의 애칭을 불렀다. 휘가람의 일그러졌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그그!
대기가 진동한다.
그그그그그!
숲이 울어재낀다.
그오!
그 모든 움직임이 찰나의 순간 멈추어진다.
그리고…….
신이 주었다는 드래곤의 권능이 쏘아져 내린다.
그아아아아아아!
“오움 살라 디 크레이 움타아……!”
리셀의 입에서 주저 없이 주문이 외워졌다. 자신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8서클 방어 주문을 이어나갔다.
‘……제발!’
리셀의 마음에 간절함이 깃들었다. 마법의 실패는 그 본인에게 돌아온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자신의 서클을 알기 때문에 그런 우를 범하지 않는다. 하지만 리셀은 자신의 서클을 모른다.
‘제에발!’
막연히 해야 한다고만 느낄 뿐이었다. 리셀의 심장에 무한의 고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이루는 마나의 힘이여, 내게 힘을 나누어 주오! 절대적인 힘에 대항하는 절대의 방패! 깨어지지 않는 절대 믿음의 힘! 엡솔루트 베리어(절대 방어)!”
그위이이잉!
리셀의 신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심장의 무한의 고리가 회전한다. 세상의 마나가 요란하게 공명하는 소리는 보는 이들의 얼을 빠지게 했다.
“나의 심장이여! 마나의 근원이여 돌아라!”
간절한 외침이 수인을 맺은 손끝을 향했다. 그리고 찬란한 빛의 막이 절대 권능을 막아섰다.
쩌엉!
드드드드드드!
무적의 창과 무적의 방패가 충돌했다. 지진이 난 듯 땅이 울부짖었고 리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며 맴돌았다.
“끄아아아아아!”
붉게 물든 리셀의 입에서 절규와 같은 외침이 터져나간다. 한계인가?
푸확!
붉은 피가 안개처럼 피어나왔다. 그리고 절대의 방패도 거두어졌다. 하지만 끝은 아니었다.
쏴아아아아!
시리도록 푸른 물줄기가 브레스를 향해 날아올랐다. 허공에 떠올라 푸르른 구체 속에서 쉴 새 없이 물을 뿜어내는 연휘가람의 눈에는 결의가 새기어져있었다.
치이이이!
두 개의 힘은 수증기를 뿜어내어 마치 안개가 낀 듯 하게 사방을 뿌옇게 만들어갔다.
모든 이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힘과 힘의 대결. 전설 속에서나 듣던 대결이 수만의 사람들을 증인으로 삼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줄기의 빛…….
쩌엉!
두 힘의 대결은 커다란 굉음과 함께 끝이 났다.
– 크롸아아아아!
털썩.
모든 힘을 태웠음인가?
흑단처럼 검었던 머리가 하얗게 변한 채로 휘가람이 허공에서 실 끊어진 연처럼 떨어져 내림과 동시에 골드 드래곤의 고통어린 울음소리가 퍼졌다.
“거기까지다.”
고통에 울부짖는 드래곤을 향해 무엇인가 던진 듯 허리를 숙이고 오른 팔을 앞으로 내밀고 있던 고진천의 꾹 다물어진 입에서 새어나온 말이었다.
– 고통! 고통! 이것이 고통인가!
골드 드래곤의 입에서 믿을 수 없다는 소리가 터졌다.
드래곤의 한쪽 눈에 박힌 기다란 창. 바로 진천이 날린 것이었다.
진천은 천천히 몸을 세우며 피를 토하며 쓰러진 리셀과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를 하고 있는 휘가람을 보았다. 찰나의 대결이 멈추자 병사들이 달려 나와 둘을 데리고 뒤로 물러섰다.
더 이상의 방패는 없다.
고진천은 강쇠를 몰고 천천히 나섰다.
다각 다각 다각.
강쇠는 눈앞의 거대한 존재가 무섭지도 않은지 진천이 이끄는 대로 나아갔다. 진천의 심장과 강쇠의 심장이 하나가 된 듯 울렸다.
– 인간이여 묻겠다! 더 이상 막아 설 자는 없다. 대항 하겠는가!
분노에 휩싸인 골드 드래곤의 입에서 또다시 진천을 향한 질문이 흘러나왔다. 진천은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내리어진 결정은 하나였다.
천천히 손을 허리에 매여져 있는 환두대도를 향해 가져갔다. 그리고 진천의 변함없는 의지를 담은 대답이 시작되었다.
“너에겐 우리가 하찮은 미물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진천의 뒤에 있는 수만의 사람들에게는 한자 한자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그의 손이 환두대도의 자루를 단단히 그러쥐었다.
“너에겐 이 땅이 단순히 지킬 맹약의 대상일 지도 모른다.”
스르릉.
환두대도의 차디찬 날이 도집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스르르릉.
태양을 반사시키는 환두대도의 날카로운 날이 도집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우리에게 이 땅은, 나라의 수탈을 피해 도망쳐왔던 이들과…….”
엎드려 보고만 있던 화전민 출신 병사들이 진천을 바라본다.
“전쟁을 피해 새 터전을 찾아온 이들과…….”
떨고 있는 아이들을 감싸 안고 머리를 숙이고 있던 남 로셀린 출신 백성들이 고개를 들었고……,
“고향을 잃고 떠돌아다니던 이들과…….”
엎어져 있던 북부용병들이 검을 그러쥐고 일어섰으며…….
“나라의 의미를 잃었던 이들…….”
땅바닥에 처박혔던 매의 군단의 깃발이 새워진다.
“그리고 다시는 친지를 볼 수 없는 이곳으로 나와함께 내동댕이쳐졌던 이들의 마지막 쉼터다.”
울분을 분노로 승화시키는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의, 원래의 가우리 병사들이 천천히 전투의 불꽃을 태운다.
“난 물러서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의지이며.”
뽑혀 나온 환두대도가 천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신념이며.”
태양을 가를듯한 기세가 진천에게서 피어오른다.
“가우리의 열제로써 백성을 지켜야 할 나 고진천이 이어받은…….”
진천의 눈빛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숙명이다.”
진천의 환두대도가 앞을 향해 그어졌다.
“돌격 앞으로!”
끼히히히힝!
진천의 외침과 강쇠의 울음이 전투를 알리며 불을 질렀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을지부루와 을지우루의 외침이 뒤따랐다.
“편전을 날리라우!”
패패패패팩!
“돌격!”
소리는 있되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기를 찢으며 편전의 애기살이 통아를 벗어나 날아오를 때, 고진천의 뒤로 묵갑귀마대가 달려 나갔고, 그 옆에는 고윈 남작과 베스킨 삼형제가 달렸다.
“킁! 방패수는 방패를 버리고 소도를 든다!”
“장창수 돌입준비! 기마대의 뒤를 따른다!”
삼두표와 몽류화가 들끓고 있는 병사들의 전의를 확인했다.
“크흑흑흑.”
그런 가우리인들 틈에서 유일하게 노란 머리와 노란 눈동자를 가진 하일론이 눈물과 콧물을 잔뜩 흘리며 도끼를 그러쥐고 있었고, 기율은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가족을 지키는 길이다!”
“우욱욱욱.”
하일론은 대답대신 울음을 억누르며, 공포를 억누르며 달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전투를 보던 매의 군단과 북부용병, 그리고 화전민 출신병사들과 남로군이 분연히 일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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