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56
강철의 열제 156화
여러 난관(?)을 벗어난 가우리가 안정되기 위해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4년이라는 시간은 어찌 보면 긴 시간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마치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 세월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바로 고진천 본인이었다.
새삼 시간의 흐름을 느끼던 진천은 한쪽에 나있는 창가로 가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피식 미소를 머금은 진천은 몸을 돌려 다시 창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휙!
귓가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흘러왔다.
퍽! 부르르.
진천의 발밑으로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빠르게 날아온 화살 한 대가 바닥을 박혀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진천의 눈은 자연히 떨림이 잦아드는 화살을 향해 멈추어 있었다.
“…….”
진천은 열제의 공간에 날아온 화살을 보면서도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 손을 들어 이마를 감쌀 뿐이었다.
다다다다다.
짧은 발걸음 소리가 대전으로 울려오기 시작했다. 짧은 발소리가 가까워지며 나타난 여아(女兒)…….
“내 화살이 어디 가찌?”
앳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을지였다.
짧은 발을 요란하게 놀리며 달려온 을지는 진천의 발아래 박혀있는 화살을 발견하고는 제자리에 멈추었다. 그 뒤를 따라 달려오던 나인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
“…….”
진천의 눈과 을지의 눈이 마주쳤다.
어색한 침묵.
을지의 손에는 작은 목궁이 들려있었고, 복장은 어디서 뒹굴었는지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진천의 미간에 골이 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을지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거의 동시에 진행된 상황은 을지의 눈에서 눈물이 터짐으로써 마감되었다.
“우앙! 우아아앙!”
우렁찬 목소리는 진천의 미간에 파인 골을 더더욱 깊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천천히 나아간 진천은 바닥에 박힌 화살을 뽑아 을지의 전통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나인들이 열심히 을지를 달래는 모습이었다.
4년 전 을지와의 만남은 마치 처음 본 사이처럼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전장에서 살아온 자들과 맞이하는 자들의 환호가 섞인 곳에서 유모의 손을 잡고 진천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을지.
진천은 나름대로 반가움을 보이며 을지를 안아 들었다.
“많이 컸군.”
“예. 두 해가 지났으니 이제 세 살이시옵니다.”
“음.”
유모의 말을 들은 진천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아든 을지를 바라보았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진천은 무뚝뚝한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진천은 자신의 미소에 화답하는 을지를 보았다.
울먹.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동자.
바동바동.
마치 살고자 하는 어린 가축 마냥 바동거리는 팔다리.
진천이 보낸 미소의 보답이었다.
기묘한 상황에 유모와 나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진천의 뒤쪽에 도열해 있던 장수들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재미있는 놀이를 시켜주지.”
“헉!”
진천이 우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은 단 하나.
그들은 잠시 후 하늘을 날고 있는 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을지의 위치는 참으로 묘했다.
일단 고진천이 원정을 떠나 있던 상황에서 가우리의 가장 큰 어른은 재미있게도 가장 어린 을지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문제는 교육수단이 미비했다는 것이다. 나인들이나 유모는 열후로서 배워야할 교육 수단을 알지 못했고, 신분적으로 높은 위치의 을지를 힘 있게 제지할 배짱들도 없었다.
그렇다고 대무덕이 을지를 데려다놓고 교육을 시킬 수도 없었고, 교육을 맡는다 하더라도 애보기에는 뚜렷한 방도가 없었다.
결국……, 한마디로 버릇이 없어졌다는 의미였다. 천방지축으로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하여 조금 과도하게 활발하고…….
와장창!
“또 깨셨나이까!”
또래 아이들에 비해 조금 과도하게 장난을 쳤으며…….
“움머어어어!”
“꺄하하하!”
“마마, 제발 미노타우르스의 고삐를 제게 주십시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조금은 과도하게 궁금한 것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 성격이었다.
“저거 지금 뭐하는 거야?”
“꾸이 꾸익!”
“저, 그것이…….”
물론 궁금한 것이야 알려주면 문제가 없을 테지만, 그것도 궁금한 것 나름이다.
어린 을지에게 설명하기 곤란한 일일 경우에는 질문을 받은 사람이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 때 없었다.
“어서 말해줘!”
“아니 그것이…….”
오크 우리를 지키는 병사의 얼굴에도 그 난감함이 잘 표현되고 있었다.
우리 안의 두 오크는 열심히 생산적인 행동에 열정을 쏟아 붇고 있었고, 을지는 호기심에 바라보고 있었다. 을지의 궁금하다는 질문은 집요했고, 병사의 답변은 점점 중점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그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을지부루가 지나치다가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어이쿠, 뭐이래 궁금 하십네까?”
“아! 부루 장군! 쟤들 저렇게 붙어서 뭐하는 거야?”
을지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받은 부루는 을지의 질문에 현명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새끼 만듭네다.”
“새끼?”
“…….”
부루의 명쾌한 답변에 을지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반면에 주변의 병사들과 을지의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나인들은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부루의 해답이 항상, 반드시 부작용을 초래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
침묵하는 고진천.
그 앞에서 똘망똘망한 눈으로 진천을 바라보는 을지, 그리고 경악하고 있는 대전 시위와 나인들…….
마지막으로 진천의 앞에 고양이 앞의 쥐처럼 서 있는 부루의 모습이 미묘한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새끼라…….”
조개처럼 다물려 있던 진천의 음성이 말끝을 흐리며 흘러 나왔다. 그런 진천을 향해 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부루 장군이 나 빨리 만들어야 한다던데, 언제 만들어야 하나이까?”
“…….”
을지는 당장이라도 만들자는 기세였다. 그녀(?)의 눈망울에서 불타오르는 열의가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았다.
처음 을지가 열제 전으로 달려와 하던 말은 ‘우리로 가서 새끼 만들어야 하옵니다!’였다.
새끼는 둘째 치고 우리는 또 무엇인가? 이후 을지에게서 전말을 전해들은 진천에게로 부루는 당장에 불려오게 되었고, 죽음을 목전에 둔 강아지마냥 낑낑거리고 서 있을 뿐이었다.
“애가 애를……. 부루, 오랜만에 대련 좀 하지.”
진천의 조용한 권유에 끌려 나가는 부루와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을지였다.
이날의 사건으로 인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한 진천은 을지를 키워왔던 유모에 한하여 어느 정도의 제약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제약이었고, 그러한 권한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그 힘을 유모가 이용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탓인지, 우리로 진천을 데리고 간다던지 새끼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든지의 행동은 없어졌다.
그러나 이번엔 너무 많은 것을 알려준 것이 문제가 되었다.
“훗. 열제 폐하, 침소에 드시지요.”
“…….”
앳된 목소리.
잠자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고진천의 침상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을지였다.
무엇을 어찌 배웠는지, 아니 어디서 구했는지, 속이 비치는 얇은 옷을 입고 있었고, 한쪽 손으로 입가를 살짝 가리며 미소와 눈웃음마저 흘리는 모습에 진천은 묵묵히 다가갔다.
“어서 누우시와요. 호호호.”
“…….”
간드러진 목소리.
그런데 애가 그렇게 해봐야 변태가 아닌 이상 반응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어?”
진천의 미간에 그어진 두 줄기 골을 목격한 을지는 비비꼬던 몸짓을 멈추었다.
뿌드득.
이가 갈리는 음향이 진천의 다문 입에서 나지막이 새어 나왔고, 을지는 자신의 유혹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에에엥!”
그날 을지는 난생처음 진천에게 죽도록 볼기를 맞았다.
점점 심각한 일이 벌어져가자 긴장을 한 것은 나인들이었다. 애초에 이쪽으로 올 때 그녀들은 일개 나인들일 뿐이었다.
그 난리 통에 제대로 교육을 받은 고위 나인들을 추려서 나올 수도 없었다. 그저 유모와 급조된 여인들일 뿐이었다. 그러니 교육을 시켜 본 적도 없고 연애를 해 본적도 없는 그녀들에겐 오히려 을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가혹한 형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오류를 통해 조금씩 고쳐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을지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 진천이었고, 그는 을지의 사소한 잘잘못을 가지고 나인들에게 책임을 묻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서인지 삐뚤게는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두 발로 뛰기 시작하면서 을지우루의 사랑을 받은 을지는 활을 다루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진천은 오히려 자신도 검을 가르친다고 끌고 나가 리셀이 달려와 힐링을 시전하기 바쁘기도 하였다.
열제의 궁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고진천의 검술지도에 죽음의 문턱을 살짝 넘었던 을지는 그 이후 슬슬 피해 다니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들은 을지를 위하기 바쁜데, 진천은 을지의 엉덩이를 두드리거나, 훈련을 빙자한 아동학대를 하였기 때문이다.
“으으음.”
진천은 을지를 보러 왔다가 나인들을 대동하고 도망 나간 사실을 알고는 작은 신음을 흘렸다.
진천이 을지가 미워서 그랬겠는가? 단지 애정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었다. 밥만 먹고 한 짓이라곤 전쟁인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었고, 또한 이것을 바로 잡아줄만한 말을 해 줄 사람들 역시 전쟁이 주업에 전투가 취미인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그나마 휘가람이 있어 간간히 고쳐나갈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궁을 나선 진천의 귀에 익숙한 소리들이 들어왔다.
“기율 오빠!”
“오, 제니퍼, 웬일이니?”
“여기 빵을 좀 만들어 봤어요!”
여자아이가 밝은 모습으로 기율에게 빵을 들고 달려온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미리 온 여자 아이들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
진천의 눈에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을지로 투영되었고,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부여기율은 마치 자신의 모습으로 겹쳐졌다.
진천은 희망을 보았다.
“네에?”
열제의 앞이라는 것도 잊고 부여기율은 놀라 소릴 질렀다. 고진천은 열좌에 앉아 묵묵히 말을 이어나갔다.
“내 마누라가 될 아이가 날 피해 도망 다닌다는 것! 용납 못하지. 방도를 빨리 말하도록.”
“…….”
살기를 풀풀 흘리며 말을 하는 진천의 앞에서 기율은 한 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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