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69
강철의 열제 169화
항구도시에 도착하자 알세인 왕은 부두에 정박해 있는 배들과 수많은 뗏목을 보고 멈추어 섰다. 그곳에는 항구도시에 사는 백성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빨리 가셔야 합니다.”
바이칼 후작은 알세인 왕을 바라보며 배에 오르길 간청했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알세인 왕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뒤늦게 도착한 계웅삼이 다가와 알세인 왕에게 예를 올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 년 전 저희가 귀국할 때 테리칸 후작이 부탁했습니다. 남 로셀린 왕가를 지켜달라고…….”
알세인 왕의 고개가 웅삼에게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열제 폐하는 그 약속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이 일로 해서 저희 가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던 대륙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을 무릅쓰고 모시는 것입니다.”
알세인 왕의 고개가 땅으로 떨구어졌다.
“오르시지요.”
“그래. 가야지.”
알세인 왕의 힘없는 발걸음이 배를 향해 내딛어졌다.
수십 척의 배와 급조된 뗏목이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그 위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눈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떠나온 땅을 향하고 있었다.
알세인 왕과 유니아스 공주, 그리고 동부의 무신이라던 바이칼 후작과 베르스 남작 또한 그들이 떠나온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차갑네.”
뺨 위에 떨어진 빗방울을 느낀 유니아스 공주는 천천히 입을 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처연한 음성이 흘렀다.
“하늘이 우나 봐요.”
한두 방울이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쏴아아아.
어느새 소나기가 되어 내리는 비.
유니아스 공주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들이 쉴 새 없이 그녀의 얼굴을 두들기고 있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물줄기가 그녀의 눈가에서 흘러 뺨을 타고 내렸다.
하늘이 슬피 우는 날, 남 로셀린은 멸망했다.
제52장 의혹
남 로셀린의 멸망.
그것은 대륙의 호사가들에게는 아무런 여흥거리도 되지 못했다. 신성제국이라는 거대제국이 북 로셀린의 뒤를 밀어주면서 그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오히려 남 로셀린이 육 년이 넘는 기간을 저항하며 싸워온 것이 놀랄 일이라면 놀랄 일이었다.
전쟁은 수많은 재화를 낳는다.
대륙인들의 관심은 오직 이것뿐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륙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 첫째는 중앙해협의 해적왕.
소문만 무성하고 그 흔적도 위치도 찾아내지를 못했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가 중앙 해협을 장악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타당성이 있었다.
짧은 시간동안 그 많던 군소 해적들이 사라진 것과 그 해적들이 조직화 된 것. 이 전력은 해상제국마저도 위협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정도의 규모를 가진 해적이라면 본거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곳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때 고문서에나 있던 터틀 드래곤의 등장과 동시에 해적들의 자취가 사라짐으로써 호사가들은 해적들이 터틀 드래곤에 의해 괴멸되었다는 추측들을 했다.
둘째는 로셀린 전쟁의 중요 전력이었던 매의 군단의 증발이었다.
알려진 사실이라고는 레비언 고윈이 하이안 왕국을 탈출하여 북 로셀린 진영을 역습했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매의 군단이 반란을 위해 남 로셀린에 붙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전투 이후 고윈 남작과 매의 군단의 흔적은 남 로셀린에 남아있지 않았다.
셋째는 뇌전의 제라르와 북부용병들의 증발이었다.
신성제국과 연방제국의 암약의 증거인 북부용병들을 태운 함선이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것이다.
거기에 그 선단을 이끌던 이가 바로 대륙의 십 인이라 불리며 자유기사라고도 불리던 필리언 제라르라는 사실은 의문을 더욱 증폭 시켰다.
사람들은 제라르가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것이라고도 하였지만 타당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제라르 정도의 거물이 무엇이 아쉬워서 두 거대제국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는 말인가?
어떤 이는 이들이 이동한 경로가 해로라는 것을 이유로 들어 이 역시 터틀 드래곤에 의해 바다에 수장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밝혀진 바가 없었다.
넷째는 천 년만의 드래곤의 등장이었다.
거의 전설처럼 이야기로만 내려오던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레간쟈 산맥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레간쟈 산맥은 여전히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어지게 되었다.
드래곤의 등장당시 레간쟈 산맥 주변 주민들의 증언과 제국의 마법사들이 모여 조사한 것을 통해 그것은 명확한 진실로 알려졌다.
레간쟈 산맥에서 뭉쳐진 마나양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수치였다는 조사결과가 나오자, 각국은 레간쟈 산맥에 대한 출입을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런데 드래곤이 나타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분명한 것이, 드래곤에 대항한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의 힘 역시 인간의 기준으로는 불가능 하다고 판단이 된 것이다.
어떤 마법사는 드래곤들의 영역 다툼이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판단하였으나 역시 사실여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다섯째는 드워프들의 대이동이었다.
대륙각지에 숨어살던 드워프들이 한 순간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사냥꾼들의 추적은 드워프들의 행적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 흔적이 끝나는 곳은 레간쟈 산맥이었다. 일부 대규모 사냥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갔으나, 하나같이 몬스터들에 의하여 몰살에 가까운 타격을 받고 도망 나왔다.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드워프들 역시 산맥의 초입에서 더 들어가지 못하고 몬스터들의 습격에 몰살을 당했을 것이라 했다. 그 증거물로 드워프제 공구 수십여 점이 살아남은 사냥꾼들에 의하여 수집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일로 인하여 각 제국에 사는 드워프 노예들의 몸값이 폭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섯째는 패망한 남 로셀린 왕가의 증발이었다.
항구도시로 쫓겨 간 남 로셀린 왕가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로 항해를 떠났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흔적이 레간쟈 산맥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레간쟈 산맥의 사건들로 인하여 갔다 하더라도 생존이 힘들 것이라 판단했다.
어떤 학자는 그들이 신(新) 대륙을 찾아 떠났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 주장역시 그들에게 준비의 시간도, 그만한 탐사용 배도 없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통일 로셀린 왕국에서 발표하길 남 로셀린 왕가의 인물들이 표류하다가 좌초되어 사망 하였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바닷가에 밀려온 몇 구의 시신들을 확인해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발표를 믿게 되었다.
* * *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화, 황제폐하, 노여움을 거두소서.”
“큭큭큭.”
샤우 환 밀리오르 황제의 기괴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그 앞에는 통일 로셀린 왕국의 국왕인 베인 카델 로셀린이 고개를 조아리며 떨고 있었다.
“어때, 로셀린 왕국을 모두 네 손에 넣으니 세상이 달라 보이더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밀리오르 황제의 따분한 듯한 말투에 카델 국왕은 바닥에 바짝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걸했다.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밀리오르 황제가 커다랗게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큭큭큭, 좋아. 죽여주지.”
스르릉.
“헉!”
근위 기사의 소드를 뽑아든 밀리오르 황제가 천천히 황좌에서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카델 국왕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밀리오르 황제의 손에 들린 차가운 소드가 카델 국왕의 볼에 닿았다.
“카델, 카델, 카델…….”
밀리오르 황제는 카델 국왕의 이름을 무료한 표정을 지으며 부르다가 소드를 볼에다 대고 천천히 그어 내렸다. 날카로움에 찢어져버린 볼 살에서는 이내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화, 화, 황제 폐하, 자비를 베푸소서!”
찰싹!
“히익!”
황제는 핏물이 맺혀있는 소드를 그대로 떼었다가 아이 혼내듯 카델 국왕의 볼을 두들겼다. 그럴 때마다 카델 국왕은 몸을 움찔거리며 자비만을 찾았다.
“내가 왜 로셀린을 합병 하지 않고 너에게 주는지 아느냐?”
“모, 모르옵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쯧쯧, 나이도 나보다 많은 친구가 겁도 많군.”
밀리오르 황제가 혀를 차며 소드를 어깨에 둘러매자 그제야 공포가 가신듯 카델 국왕의 떨림이 줄었다.
쐐액!
“으헉!”
밀리오르 황제의 어깨에 올라갔다 생각 했던 소드가 섬광처럼 카델 국왕의 머리를 스쳐지나가자 그는 혼비백산하여 엉덩방아를 찌었다.
툭.
새로이 만든 왕관의 윗부분이 그대로 잘리어 바닥에 떨어지자, 갑자기 밀리오르 황제가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핫!”
카델 국왕의 사타구니는 어느새 축축해졌다.
밀리오르 황제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다시 황좌에 올라가 앉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카델 이친구야, 난 자네의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서 놔두는 거라네.”
“예, 예, 알겠습니다.”
카델 국왕은 죽음에서 살아온 듯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계속 고개를 조아렸다.
“병신같이 잔머리 쓰지 말도록. 더럽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밀리오르 황제는 차가운 음성으로 카델 국왕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잠시 후 슈엥 공작이 다가와 황제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오! 슈엥 공작. 뭔가 알아냈는가?”
밀리오르 황제의 환대에 슈엥 공작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이고는 천천히 두루마리를 펴서 읊어 나가기 시작했다.
“정보전 인원들을 총 동원 해서 알아본 결과 이번 전쟁에 제 삼의 세력이 끼어든 것 같다는 보고입니다.”
“제 삼의 세력이라…….”
밀리오르 황제는 눈을 감고 음미하는 듯한 표정으로 슈엥 공작의 보고를 들었다. 슈엥 공작의 음성은 계속 이어졌다.
“일단 하이안 왕국과 우리 신성제국 국경, 그리고 남 로셀린 국경을 통과한 일단의 부대가 있다는 보고이옵니다. 처음에는 남 로셀린의 잔당이 벌인 일로 판단했으나, 수상한 점이 계속 발견이 된 것입니다.”
“계속.”
밀리오르 황제의 음성이 건조하게 변했다.
슈엥 공작은 목을 가다듬고는 다시 두루마리를 읽어 나갔다.
“일단 전쟁이 끝난 후에 조사 해본 결과 작게는 한 개 마을부터 크게는 한 개 도시까지…… 인구가 증발 했습니다. 그렇게 사라진 인원이 십만이 넘는 다는 분석입니다.”
“끊지 말고 계속.”
눈을 감고 있던 밀리오르 황제의 이마에는 엷은 골이 새겨졌다.
“적은 인원들이 아니었기에 상세히 조사를 해 본 결과 북부인들로 구성된 부대가 후방을 교란하면서 남 로셀린의 백성들을 구해 갔다고 합니다. 부대는 비하넨 요새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북 로셀린의 후방부대마저 괴멸시켜 전쟁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으며, 매의 군단 급습 때도 함께 했다는 보고입니다. 이후에 그들이 남 로셀린에 합류 했었다면 아직도 합병을 못하고 시일이 더 걸렸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큭큭큭큭.”
밀리오르 황제의 굳어졌던 얼굴에서 싸늘한 웃음이 번져 나왔다. 슈엥 공작은 황제의 모습을 보며 잔뜩 긴장을 했다.
“그럼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알겠지? 모른다고는 하지 말아주게, 슈엥 공작.”
밀리오르 황제의 눈이 떠졌다. 차가운 눈. 슈엥 공작은 숨을 가다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흔적이 레간쟈 산맥으로 이어졌습니다.”
“레간쟈라…….”
차가운 눈을 하고 있는 밀리오르 황제는 천천히 공작의 말을 음미하며 되뇌었다. 그때 슈엥 공작이 두루마리 밑 부분을 보고 한 가지를 더 첨가했다.
“그 해에 레간쟈 산맥에 골드 드래곤이 등장을 했었지요. 이와 관련된 다른 정보로는 드워프들의 집단 이동의 목적지 또한 역시 레간쟈 산맥이고, 이번…… 남 로셀린 왕가의 잔당들의 흔적이 끊어진 곳도 레간쟈 산맥 남부 해안 쪽이라는 것입니다.”
밀리오르 황제의 왼쪽 입 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북부용병들이 증발된 일도 확인 해 보도록. 무언가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슈엥 공작은 밀리오르 황제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올리고 빠른 속도로 대전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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