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7
강철의 열제 17화
“자, 물건 다 실었는가?”
“그렇네. 매번 고맙네, 헤리슨.”
“뭘, 나도 다 돈 받고 하는 일 아닌가. 그나저나 조심하게. 요즘 뒤숭숭하다고.”
“음.”
헤리슨의 걱정에 베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동안 거래를 해 왔던 칼쑤만이 병사들과 함께 숲에서 시체로 변해서 한동안 시끄러웠던 것이다. 거기에 들려오는 소문에 하이안국 수도에서 철이 비싸지는 것이, 또 제국 간의 대리전에 물자와 병력을 각출 당하는 모양이었다.
“젠장. 이놈의 나라.”
헤리슨의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항상 떠드는 것은 구천 년을 이어온 자랑스러운 하이안이라는 것이었지만, 서민들의 눈에는 삼대 제국들의 눈치만을 보며 백성들의 피땀을 이리저리 뿌리고 또 젊은이들을 남의 전쟁 속에 파병이라는 목적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흘린 피로 하이안의 미래가 보이느냐? 그것은 아니었다. 그저 힘에 휘둘려 또 귀족들의 이익만을 위해 팔려가는 것이었다. 헤리슨은 또다시 청년들을 긁어모으기 위해 혈안이 될 귀족들의 꼴이 벌써부터 보이는 듯했다.
“헤리슨, 자네도 조심하게.”
“뭐 나 같은 놈까지 끌고 가겠나? 자네나 조심하게. 알빈 남작이 상인들이랑 모여서 꿍꿍이를 짜는 것 같다고 소문이 벌써 퍼졌네.”
“그럼 우린 이만 떠나겠네.”
베론이 걱정하는 헤리슨에게 웃어주며 수레의 말에 채찍질을 가했다. 두 대의 수레가 그렇게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칼쑤만보다 더한 자식!”
베론은 도시를 빠져나와 숲으로 들어가자마자 거친 욕설을 뱉어냈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말야.”
다룬이 양어깨를 으쓱이자 베론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칼쑤만 대신 다른 수문장을 회유하는 것에 돈이 전보다 배나 가까이 들었던 것이다.
“어서 돌아가기나 하자구.”
덜커덩 덜커덩.
둘은 두 대의 수레를 끌고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뒤쪽에는 웅삼이 아주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잠을 청하고 있었다.
“베론 멈춰.”
수레를 몰기 시작한 지 두어 시간이 흐를 때쯤, 수레 뒤쪽에서 자고만 있는 줄 알았던 웅삼에게서 싸늘한 기운이 묻어 나왔다.
“아니 왜?”
“쉿!”
갑자기 사위가 조용해졌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숲인데도 귀뚜라미 한 마리 울지를 않고 있었다.
그때서야 베론과 다론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들이 보아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조용히 수레에서 내려와 바닥에 잠시 귀를 대고 있는 웅삼의 모습에 두 사람은 숨을 죽이고 쳐다보고 있었다.
“제길.”
“무슨 일입니까?”
“수레 포기합시다.”
“네?”
갑자기 욕설을 뱉으며 말하는 웅삼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답 대신 웅삼은 수레의 뒤로 돌아가더니 자신의 짐과 장검을 꺼내 들었다.
“각자 무기와 개인 짐만 들고 따라오시오.”
“아니 왜 그러는지…….”
“빌어먹을. 난 당신들 지키라는 명을 받았어. 일단 닥치고 내 말에 좀 따라주면, 오크가 달려와서 엉덩이까며 사랑한다고 하기라도 하나?”
“…….”
짧은 기간 동안 배운 화려한 욕들이 웅삼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짐과 활을 챙겨들고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숲을 가르며 선두에서 달리던 웅삼의 신형이 갑자기 멈추어졌다. 자연스럽게 베론과 다룬 두 사람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엎드려.”
낮은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주의를 주자 군소리 없이 바닥에 넙죽 엎어졌다. 그렇게 숨을 죽이고 있자 멀리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수레까지 버리고 갈 줄이야.”
“시끄러. 떠들지 말고 주변 수색이나 더해! 멀리 가진 못 했을 거야.”
“젠장맞을. 이게 뭔 짓인지…….”
베론과 다룬은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들이 아직까지 수레를 몰고 있었다면 꼼짝없이 잡혔을 것이었다.
저벅 저벅.
“어이! 우리는 이쪽으로 갈게!”
“그래, 우리는 이쪽을 살펴보지!”
그들이 숨죽이고 걸음을 옮겨가는 곳에는 웅삼 일행이 숨어 있었다. 풀숲을 뒤지는 그들의 행동은 어설펐으나, 문제는 그들이 오고 있는 방향이 숨어있는 일행들의 정면이라는 것이다.
‘어쩌지?’
‘쉿.’
“아 보이는 게 있어야지.”
“귀찮다.”
점점 병사들의 걸음은 가까워지고 있었고, 베론과 다룬의 심장에서 울리는 고동소리는 그들의 귓가에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스윽.
“…….”
웅삼의 손이 검에 닿자 베론과 다룬은 숨을 죽이며 바라보았다. 웅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아 만사가 귀찮네.”
“어여 대충 하고 돌아가자.”
형식적인 수색을 하던 두 병사가 그들의 바로 앞에까지 왔다가 투덜거리며 멈추었다.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휴.’
‘다행이군.’
등을 돌려 걸어가는 그들을 보며 베론과 다룬은 안도감을 느꼈다. 이렇게 조금 더 숨어 있다가 움직이면 문제가 없을 듯했다.
슈칵! 퍼억!
“헙!”
안도하던 베론의 입에서 짧은 바람 소리가 흘렀다. 웅크려 있던 웅삼의 검이 어둠을 갈랐기 때문이었다.
한 병사의 목에서는 피가 뿜어졌고 나머지 한 명은 기절했는지 천천히 주저앉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순간 피 냄새가 확 번져나갔지만, 웅삼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왜?”
“조용히 이동합시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웅삼은 설명 대신 시체를 한쪽에 숨기고 기절만 시킨 한 명을 둘러업고 신속히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헉, 허억. 좀…… 천천히 가지요!”
“조금 더.”
“헉헉!”
한 명을 들쳐 업고도 숨 하나 차지 않고 달리는 계웅삼의 모습을 보며 베론과 다룬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그렇게 한쪽 숲을 달리던 웅삼이 약간 트여진 공터에 도착하자 들쳐 업었던 병사를 내려놓았다.
찰싹.
찰싹 찰싹.
“으으음.”
병사는 뺨을 두들기는 충격에 신음 소리를 내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헙!”
“쉬이~ 알아서 조용히 할래, 아니면 조용히 할 때까지 칼로 찔러줄까?”
“…….”
웅삼의 친절함이 담긴 말에 병사는 호의적으로 입을 다물어 주었다. 물론 그의 눈앞에 겨누어져 있던 장도도 한 수 거들었지만 말이다.
“자, 친구. 묻는 질문에 성실히 답하면 참 좋겠지? 여기에 피도 안 묻히게 될 것이고, 집에 가서 아리따운 마누라나 아이들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독신인데요.”
“…….”
웅삼의 대화에 벌써부터 진실로 응하는 병사였다.
그리고 얼마 후,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정직 하게 대답하는 병사를 통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동안 토벌대가 들어오지 않은 이유는 영주들의 일종의 업무태만이기도 했고 또 이곳의 몬스터로 인한 피해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병력을 차출하라는 국가의 명령에, 알빈 남작은 그동안 뇌물을 받고 명목상으로만 올려 두었던 병사 수와 허구로 만들어진 병력의 유지비용 등이 모두 탄로 날 지경이 되자 상단의 뇌물로 만들어낸 용병대와 자신의 사병을 이끌고 나선 것이다.
“흐음, 그런데 왜 우리를 습격한 것이지?”
“화전민 마을의 수색이 용이하지 않고, 또 화전민들이 소통하는 길은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첩보를 받았기 때문에 병력을 나누어 추격을 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음, 좋아. 마지막으로 왜 이리 잘 알까?”
“헤헤, 이거 알려주고 다른 화전민 마을 사람들한테 돈을 받았었거든요.”
“…….”
태연하게 맑은 미소까지 짓는 그 병사의 행동에 웅삼은 하마터면 검으로 찌를 뻔했다. 알아낼 것은 모두 알아낸 웅삼은 빨리 숙영지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룬, 잠시만 병사 좀 맡아줘.”
“예.”
웅삼이 다룬에게 부탁을 하고 왼쪽 수풀 속으로 걸어갔다. 소변을 보러 갔던 것인지 왠지 편한 얼굴로 되돌아온 웅삼이 도를 집어넣으며 병사에게 다가갔다.
“좋아. 그럼 나도 약속을 지켜야지?”
“넵!”
“웅삼님, 정말 놔 주실 겁니까?”
베론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질문을 했다. 어쩔 수 없지만, 이 병사를 놓아 준다면 자신들은 다시 추격을 받게 될 것이 뻔한 사실이기에 베론과 다룬은 불안감에 싸인 눈으로 웅삼을 바라보았다.
“사, 살려 주세요. 저에겐 여우 같은…….”
“독신이라며.”
“애인이 있다고요.”
천연덕스럽기까지 한 병사의 말에 웅삼이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며 입을 열었다.
“흐음, 좋아. 대 가우리의 무장은 거짓 약속을 안한다. 풀어주지. 단! 우리 뒤쪽으로 가면 좀 불안하니까 내가 소변을 보러 갔던 방향으로 숫자 천을 셀 때까지 열심히 달려가다가 복귀할 것.”
“옙! 걱정 마십시오.”
“괜찮을까요?”
“이 병사가 지금까지 거짓을 말한 것으로 보입니까?”
“걱정 마십시오. 전 약속은 지킵니다요!”
다룬의 걱정 섞인 말에 웅삼이 병사를 비호 하자, 병사도 마치 맹세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다룬과 베론은 웅삼의 결정에 따라야만 했다.
“좋아. 그럼 전속력으로 달린다. 알았나?”
“예, 감사합니다요.”
“좋아. 전속력으로 뛰엇!”
후다다닥.
웅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는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나갔고, 다룬과 베론은 아쉽지만 다시 도주할 차비를 갖추었다. 그런데 그때!
“으아아아아~”
털썩.
“……?”
“무슨?”
그때 수풀 속으로 사라졌던 병사의 짧은 비명이 튀어나왔고,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달려간 베론과 다룬은 순간 멈추어 섰다. 수풀 뒤에는 낭떠러지가 있었고, 달려나갔던 병사는 그 밑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이런~! 조심 좀 하지. 뭐 난 약속을 지켰으니 가 볼까나?”
“…….”
“…….”
능청스럽게 말한 웅삼이 짐을 챙기는 것을 본 베론과 다룬이 할 말을 잊고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들의 뇌리에는 동시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구라쟁이.’
점점 더 사람들의 믿음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웅삼의 행각이었다. 그러나 천벌인지 그들의 편안한 도피행의 끝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헛! 피노잖아!”
“이 친구는 이쪽이 아니잖아!”
“제기랄 죽었어. 어서 이 주변을 수색해!”
밑으로 지나가던 병사들의 외침소리에 웅삼이 어색하게 웃었다.
“거참. 하늘은 왜 착한 자에게 시련을 주실까 몰라.”
“…….”
이 상황에서도 태연한 웅삼의 모습에 베론이 목까지 올라왔던 말을 억지로 삼켰다.
‘당신 때문이잖아!’
다룬도 마찬가지인 표정이었다.
“거기 뭐야!”
슉!
퍼석!
샛길이 있었는지 미쳐 자리를 뜨기 전에 병사들이 그들을 먼저 본 것이다. 그러나 웅삼이 바닥에 있던 돌멩이를 날리자 더 이상의 말을 뱉어내지 못한 채 옆으로 허물어졌다.
“여기다!”
“젠장! 세바스찬 머리가 박살 났어!”
차아앙!
스스스슥.
웅삼의 도집에서 맑은 쇳소리를 내며 검이 뽑혀져 나왔다. 그리고 수풀 속을 헤치며 달려나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비호와도 같았다.
“헉! 조심해!”
쯔칵!
“끄흐으!”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