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705
304화 누울 자격이 있다
빈의 도끼가 기오르그의 머리통을 가르는 순간 무형의 파장이 넓게 퍼져나갔다.
이어서 짙은 보랏빛이 기오르그에게서 마치 분수처럼 솟구쳐 오르더니 빈과 부루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어?”
그 순간이었다.
그어어어!
거어!
기오르그가 만들어내었던 언데드들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죽은 자는 죽은 자가 되었다.
이어서 사방을 장악하고 있던 기운이 점점 옅어져 갔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군인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 이긴 거야?”
“정말?”
“저거 그놈 맞지 않아?”
그들의 시선 끝에 도끼를 들고 포효하는 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 맞는 거 같은데?”
그때 빈이 군인들을 향해 다시 한번 외쳤다.
“이겼다아아아아!”
빈의 외침만 들려왔다. 모두가 그런 빈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때 다시 빈이 외쳤다.
“이겼어어어! 우리가 이겼다고오오오!”
와아아아아아!
빈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함성이 대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함성을 뒤로하고 물러가는 마족병들과 제어가 풀려 이리저리 달리는 마물들의 모습이 비쳤다.
와아아아!
“이겼다고?”
한쪽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양현재 대통령이 울려오는 목소리에 이게 진짜인가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때 앞에서 기동대원이 바이크를 달리며 마치 전령이라도 되는 듯 사방팔방 외쳤다.
“이겼다아아!”
“이겼어?”
“이겼대요!”
양 대통령이 옆을 보며 멍하니 묻자 확인시켜주듯 소리쳤다.
* * *
“뭐, 뭐지?”
무너진 방벽에서 버티고 버티던 미군들이 멍한 표정으로 마족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준비된 방어선은 전부 무너졌다.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마족과 마물들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주 방위군들까지 동원되어 물러서는 병력과 소환자 강림자들이 그나마 큰 덩어리라도 막기 위해 발악 중이었다.
그러나 막으면서도 절망 속에 빠져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이 막지 못하는 공간으로 마족과 마물들이 퍼져나가고 있었으니까.
마치 강물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를 그저 몇몇 손만으로 막아 보겠다며 버티고 있는 꼴 같아서 말이다.
어차피 전부 물에 잠기는 건데 말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나마 그런 생각도 사치였다.
바로 눈앞에서 동료의 몸뚱이가 잘리고 터지고…….
이제는 내 차례구나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족들이 부르르 떨더니 마치 모기약 먹은 모기마냥 비척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부는 뒤돌아 뛰는 모습도 보였다.
그 와중에 일부는 자중지란이 벌어진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뭔지 모르고 그런 적들을 향해 다행이다 싶어 대 마물용 총을 쏘고 무너진 방벽을 조금이라도 보수했다.
그런데 이제는 일부가 아니라 모든 마족이 와르르 뒤돌아 몰려 가기 시작했다.
함정인가 싶기도 했지만, 이내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적들은 진짜로 퇴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빠, 빨리 보고부터 올려!”
* * *
닉 레너드 대통령이 초조한 얼굴로 요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됐나?”
“곧 연결됩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동아시아 일대의 모든 위성이 사라졌다.
그래서 러시아 쪽에 요청해서 주변의 위성을 이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여, 연결되었습니다!”
그때 영상이 연결되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니터에 보이는 영상에 다들 긴장했다.
“양 대통령은?”
모니터에 나타난 얼굴은 양현재 대통령이 아니었다.
잔뜩 긴장한 모습의 젊은 병사였다.
[남은 수방사 병력을 이끌고 저, 전선으로 나가셨습니다.]
“왓 더 빠…….”
순간 레너드 대통령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욕설이 튀어나오다 말았다.
일국의 대통령이 전선으로 나갔다는 건 이미 끝난 전쟁이라는 거다.
“그, 그럼 전쟁은…….”
[그게 아직은……. 어? 어어?]
그때 모니터에서 병사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갑자기 뒤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는 것이 그대로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이겼다아아!]
그때 뒤쪽에서 요원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레너드 대통령에게 모니터를 가리켰다.
“써! 지금…….”
요원이 가리킨 모니터에는 다시 연결된 전장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래알처럼 물러가고 있는 것들은 분명 마족들로 보였다.
그 아래로 확대되는 영상.
마치 캠프파이어를 하듯 누군가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무언가가 쓰러져 있고 그 위에 발을 올려놓고 도끼를 들고 함성을 지르는 이와 그 옆에서 마찬가지로 서 있는 독특한 체구의 사내.
을지부루와 고빈이었다.
[기오르그 꼴통을 부쉈답니다!]
그때 상대편 영상에서 젊은 병사가 함성을 지르다가 통화를 하더니 외쳤다.
“이예쓰!”
“우리쪽 전선의 적들도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에!”
“오 마이 갓!”
승리선언에 사방에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 승리선언은 세계로 점점 퍼져나갔다.
* * *
“진짜로 이겼네.”
“이걸 이겨?”
서준모 경무관과 최후배 경정이 풀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진이 다빠진 표정들이었다.
“으하하하! 목숨까지 모두 다 내놓고 가라!”
그 와중에 임꺽정과 그 수하들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멀어지는 적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판도라 멤버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 앉아있던 서준모 경무관이 벌떡 일어서며 그녀들이 달리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어? 선배님! 같이가요!”
최후배 경정이 서 경무관 뒤를 따라 달렸다.
기쁨에 환호를 터트리는 것도 잠깐이었다.
“어?”
갑자기 사방으로 푸른빛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푸른빛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마지막 이 반전을 만들어 낸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몸 주변에서 아지랑이처럼 푸른빛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 이거이 뭔…….”
가장 당황한 것은 이 상황에서 즐거워 해야 할 을지부루였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꿈을 꾸었구나.”
고진천이 퉁명스럽게 대꾸하면서도 한 쪽 입꼬릴 올렸다. 그때 연휘가람이 곁으로 다가와 부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만약 제가 이걸 기억하고 있으면 말씀 드리죠.”
“아직도 이게 니꿈이라 생각하느냐?”
“허허허, 이런 죄송해서 어떻게 합니까. 제 마법 중에 꿈을 이미지로 형상화 해서 수정구에 담는 게 있는데 꿈에서 깨면 보여드리지요.”
리셀까지 웃으며 내려왔다.
“이거이 꿈이 아니면 됴갔습네다.”
그때 을지우루가 멀거니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바이!”
을지수호가 어찌나 열심히 싸웠는지 피를 뒤집어 쓴 채로 나타나 부루에게 달려갔다.
부루는 그런 수호를 얼싸안아주었다.
“고생했다야.”
“아바이!”
“기래. 기래. 울디마 야. 다 큰 녀석이 말이디.”
부루는 그런 수호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이미 다 커서 자신과도 비슷한 덩치였지만,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등을 보듬어 주었다.
“어마이랑 동생들 잘 있디?”
“예.”
“기래. 끝까지 지켜주디 못해 미안하다.”
“아임네다! 아이에요!”
“어마이에게 내래 미안하다 꼭 전해라.”
“알갔습네다!”
그렇게 수호의 등을 두들겨준 부루가 천천히 고진천과 일행들을 향해 걸음을 옮겨 나갔다.
“간만에 함께 해서리…… 행복했었습네다.”
“그래…….”
진천이 부루를 향해 다가갔다. 휘가람도 우루도 웅삼과 삼인방들도 그를 마주하며 다가갔다.
리셀과 대무덕 역시 천천히 팔을 벌리며 나아갔다.
모두가 만나 얼싸안았다.
마치 럭비선수들이 스크럼을 짜듯. 뭉치고 뭉쳤다.
그 가운데에 부루가 있었다.
부루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마치 일부러 깜빡이려 하지 않는 것처럼.
힘을 주었다.
그 퉁방울 만한 눈에 물기가 맺혔다. 조금이라도 깜빡이기라도 하면 눈물이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어? 우는 거요?”
그때 응삼이 부루를 보며 놀리듯 목소릴 높였다.
“다, 닥치라! 울긴 누가 운다 기러네!”
“어? 진짜네?”
“어디가서 을지성 쓴다 하디 말라!”
순간 다들 부루를 보며 놀리듯 떠들어대었다. 그들의 웃음소리에 결국 부루는 눈을 질끈 감았다.
힘겹게 매달려 있던 눈물이 결국 뚝하니 떨어졌다.
그리고 참아내던 인내도 끊어졌다.
“어허어어엉!”
부루의 눈물이 터져나왔다.
서러움.
그리움.
그리고 반가움.
모든 감정이 뒤섞인 울음이었다.
그런 부루를 그들이 둘러안고 도닥여 주었다.
“꼴사납게 우는거 아니다.”
진천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허엉!”
우루는 함께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그들은 부루를 가운데 두고 더욱 뭉쳤다.
마치 밖에서 보지 못하게.
마음껏 울라는 듯.
서럽게 쌓인 울음이 멈추지 않고 계속 터져나왔다. 그동안 쌓인 것을 모두 털어내듯이.
울고 울었다.
“이제 꿈이 깨려나 보다.”
그때 부루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푸른빛이 더욱 진하게 퍼져 나갔다. 부루가 정신차리듯 그들을 돌아보았다.
“아…….”
“그만 울어라. 흉하다.”
“저 콧물 늘어지는 거 봐.”
사람들이 흐려지고 있었다. 푸른 빛이 먼지처럼 휘날리며 그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
부루가 가지 말라는 듯 그들을 잡았다.
그 손을 진천이 단단히 잡아줬다. 하지만, 그 단단했던 손길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물줄기 같았다.
아무리 단단히 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가는 물줄기.
그 뒤로 푸른 안개처럼 사라져 가는 가우리의 병사들이 보였다.
모두가 흡족히 웃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가지마아아아!”
우는 건 부루 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진천이 그 부름에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세인과 송가은 작가.
둘은 미친사람들처럼 달려와 진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터억하니 아직 그 형상이 남아 있던 진천에게 둘이 매달렸다.
“가지마요오오!”
“어어엉!”
둘은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것처럼 울고 또 울었다. 그때 푸른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늘로 그 빛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모두가 하늘로 그 빛을 바라보았다. 누구는 신기함으로, 누구는 벅찬 가슴으로…….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서 바라보았다.
그렇게 빛이 사라지고 우두커니 서서 어깨를 들썩이는 부루에게 고빈이 다가왔다.
“아저씨. 쪽팔려요.”
“으헝…….”
“지금은 이겼으니까. 조금 쉽시다.”
빈이 그렇게 말을 하자 부루는 두꺼운 팔뚝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사방이 패이고 터져나간 대지의 흔적이 이 전쟁이 치열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처참한 흔적 위에 살아남은 이들이 부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부루가 발걸음을 옮기며 외쳤다.
“와 서 있는 거간! 전쟁 끝났으면 자빠져 쉬어야디!”
부루의 외침에 모두가 함께 환호성을 터트리며 그대로 드러 누웠다.
잠깐이지만, 다들 이렇게 승리를 음미하고 싶었다.
이들은 그럴 자격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