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71
강철의 열제 171화
그날 저녁에는 유니아스 공주의 쾌차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만찬을 함께 하기로 ㅤㅎㅔㅆ다.
알세인 왕과 유니아스 공주가 만찬장에 들어섰다. 그때 진천의 옆자리에 있던 을지가 그녀를 보고 손을 흔들며 아는 체를 했다.
유니아스 공주도 을지에게 눈웃음으로 아는 체를 해 주고 자리를 잡았다.
“오늘 저녁은 마음껏 들도록.”
진천이 짧은 말과 함께 만찬을 시작하자 알세인 왕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열후께서는…….”
분명 열제 내외가 함께 참석 한다고 하였었기에 알세인 왕의 의문은 당연했다. 그러나 질문이 나오자마자 진천의 얼굴은 눈에 띠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알세인 왕과 유니아스 공주는 동시에 안 좋은 일이 있다 판단했다. 그로자 유니아스 공주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화제를 재빨리 돌렸다.
“을지 공주님이 참 귀여우시네요.”
“그렇습니다. 열제 폐하를 꼭 빼닮았습니다. 하하하.”
둘의 말이 튀어나가는 순간 진천의 주변에 있던 근위무장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을지는…… 다.”
“네?”
진천이 무언가를 말 했는데, 그 말이 잘 안 들렸던 알세인 왕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진천이 먹던 고기를 내려놓으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대답 해 주었다.
“을지는 내 열후다.”
“…….”
“…….”
그날 만찬이 끝날 때까지 알세인 왕자와 유니아스 공주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충격적인 밤이 지나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례를 실시하던 중 하일론이 한 가지 소식을 들고 들어왔다. 하일론이 들고 온 서신을 살피는 몽류화의 안색이 눈에 띠게 변했다.
“무슨 일인가?”
진천의 물음에 류화는 서신을 접으며 대답했다.
“하이안 왕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베론에게서 온 연락이온데…… 신성제국과 연방제국에서 이 레간쟈 산맥에 이목을 집중 하고 있다 합니다. 이 서신도 레간쟈 산맥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차단되어서 겨우 보낸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더 안 좋은 것은…….”
류화는 말끝을 흐리며 알세인 왕자와 유니아스 공주를 바라보았다.
“말하도록.”
진천이 류화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류화가 마른 입술을 적시며 보고를 이었다.
“남 로셀린 왕국의 알세인 전하와 유니아스 공주님을 비롯한 난민들이 이곳에 숨어들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더 알아봐야겠지만 조만간 하이안 왕국에서 대규모 탐색 부대를 보낼 예정이라 합니다.”
“그런!”
류화의 보고가 끝이 나자 알세인 왕과 유니아스 공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들 때문에 가우리도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판단 한 것이다.
“다른 건.”
“없습니다.”
진천은 동요하는 두 사람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알려질 일이었다. 괘념치 말도록.”
그리고는 태연하게 조례를 마쳤다.
고진천의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사실 알세인 왕과 남 로셀린의 백성들이 가우리에 도착 한 것은 일주일 전. 거기에 마지막으로 항구를 떠난 것은 겨우 한 달 전이다.
그런데 벌써 일이 이정도로 진행 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탓보다는 이전의 종적이 점차 드러나게 된 것이 정확했다.
그러나 이들의 종적에 대해 잘 모르는 알세인 왕과 유니아스 공주는 가우리에 또 다른 짐을 지워준 느낌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우리 입장에서는 언젠가 알려야 할 일이었다. 단지 그 시기가 조금 빠른 것뿐이었다.
제53장 이어지는 가우리의 혼
유니아스 공주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나이 차가 많은 문제 정도가 아니잖아…….”
유니아스 공주의 입에서 허탈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고진천의 열후라는 존재에게 질투와 부러움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 열후의 실체(?)를 본 순간 모든 것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며 허망해졌다. 질투는커녕 신기하기만 했다.
“언니, 뭐해?”
“예, 아…… 응.”
함께 놀러 나왔던 유니아스 공주가 혼자서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모습이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어느새 유니아스가 앉아 있는 곳까지 달려와서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대답을 어찌 해야 할까 고민했던 유니아스 공주는 그저 평소대로 대답을 했다. 약간의 심술일 지도 몰랐다.
유니아스는 눈앞에서 열심히 조잘대는 을지를 보며 주변인들에게서 모았던 자료를 머릿속에 늘어놓고 분석에 들어갔다.
취미 – 활쏘기.
취미라지만 처음 을지와의 만남을 생각해보면 취미의 차원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아마도 활과 화살을 주고 산 속에 던져놔도 사냥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실력일게다. 물론 음식솜씨 역시 확인했다.
어디선가 잡아온 토끼의 가죽을 날름 벗겨내고는 나뭇가지를 모아서 능숙하게 바비큐를 굽는 모습. 거기에 호수에서 잡아 올린 생선을 단도 하나로 순식간에 회를 쳐버리는 모습.
어찌 보면 을지의 취미는 수렵이라는 단어에 더 가깝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사실 여덟 살의 여자 아이라기에는 조금은 과한 면이 있었다.
그것도 일국의 열후로서는 말이다.
계웅삼의 증언으로는 이게 다 을지형제의 만행이라고 열변을 토했지만, 정작 회치는 방법은 웅삼으로부터 배웠다는 증언을 본인 입에서 들었다.
싫어하는 것 – 허공 날기 놀이와 비행소녀.
이 놀이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유니아스 공주로서는 의문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저 놀이는 오직 열제인 고진천만이 해주었던 놀이라고 했다. 왠지 진천과 을지만의 비밀인 것 같아 심술이 났다. 그래서 다짐했다. 자신도 해달라고 하기로.
좋아하는 것 – 술…….
여덟 살짜리 아이가 좋아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식품이라 생각하는 유니아스 공주였다.
듣기에는 을지우루로부터 완벽한 주도를 배워 가우리 혼례예식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라고까지 들었다.
새로운 예식형태를 만들 정도라는 얘기에 유니아스 공주는 을지를 다시보기 시작했다.
‘천재일지도 몰라…….’
무서워하는 것 – 고진천.
이 부분에서 유니아스 공주는 아이는 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유니아스 공주는 을지가 말 안들을 때 엉덩이를 까고 진천에게 볼기를 맞았다는 사실은 당연히 몰랐다. 단지 진천이 의외로 교육에 엄격 하겠거니 하고 생각 해버린 것이다.
가장 하고 싶은 것 – 애 만들기.
이 대목에서 유니아스 공주는 진천의 사상을 의심하기까지 했었다.
물론 대무덕이 열제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는 것에서 을지가 멋모르고 이상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들었기에, 진천의 사상을 의심하는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니아스 공주는 자신의 눈앞에 을지가 다가와 있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리와, 머리 땋아 줄게.”
“응!”
의외로 이런 것도 좋아 한다.
문제는 이쁘게 땋아주면 진천이 아니라 연휘가람에게 달려가서 자랑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을지도 진천을 좋아 한다고 했다.
다만 머리를 땋거나 했을 때 진천에게 가서 물어보면 땋거나 안 땋거나 대답이 ‘땋군.’ 내지는 ‘안 땋군.’처럼 한결 같기 때문에 재미없다는 것이었다.
그에 반에 연휘가람은 말을 잘 받아 주기에 을지는 그를 더 선호했다.
“을지야.”
“응.”
유니아스 공주가 머리를 땋는 동안에 을지는 눈을 감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유니아스 공주가 을지를 부르자 얌전히 앉은 채로 대답만 했다.
“이, 언니가…….”
“응.”
“열제 폐하랑 같이 살고 싶다고 하면 허락해 줄거니?”
유니아스 공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천히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다행이도 을지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 ‘응.’ 한마디였다.
분명 전에 진천이 자신과 혼인을 하려면 열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었고, 그녀는 을지에게 단번에 허가를 받아낸 것 아닌가!
“킥.”
“언니, 왜 웃어?”
“아니야.”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한 유니아스 공주였다.
* * *
알세인 왕은 바이칼 후작과 베르스 남작을 앞에 두고 논의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가우리에 짐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논지였다.
“사실 남아있는 병력이라고는 동부군의 잔존 병력 이천 여명과 알트렝 요새의 잔존 병력 천여 명이 다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일반 백성들일뿐입니다.”
“음.”
바이칼 후작의 보고에 알세인 왕은 생각에 깊이 빠졌다. 무언가 계기가 필요 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우리 군에게 의탁을 해 보고 싶었다.
가우리군과 같은 강병이 어디 있는가!
문제는 눈앞의 바이칼 후작이었다.
그 역시 전투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명장이었다. 그런 사람 앞에서 타국에게 자기 나라 병사들의 조련을 맡긴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하에게 할 도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알세인 왕이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바이칼 후작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전하, 병사들의 조련을 가우리 군에 의탁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 합니다만.”
“후작님!”
바이칼 후작의 말에 베르스 남작은 깜짝 놀랐다.
알세인 왕 역시 놀랐으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 하고 후작을 바라보았다.
침착해 보이는 알세인 왕의 모습을 본 바이칼 후작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가우리 군에 병사들의 조련을 의탁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째로 지금 우리 동부군 병사들의 가슴 한 구석에 있는 패배의식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이칼 후작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긍지 높던 동부군은 계속된 전투로 인하여 유명무실하게 되었고, 또 그 상황에서 결국 이렇게 왕을 따라 망명까지 왔다. 지금 그들에게는 자신감이 절대적으로 필요 했고, 가우리 군은 그런 면에서 최적의 상대였다.
“계속 해보시오, 후작.”
알세인 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기다리자 바이칼 후작은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번째는 지금 우리는 가우리와 한 배를 탄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대소신료들과의 회의 중에 들은 소식, 기억 하시지요?”
잊을 리가 없다.
알세인 왕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바이칼 후작은 그런 알세인 왕을 이해 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계속해 나갔다.
“만약에 가우리에 적이 침략해 온다면 우리도 작은 힘이나마 도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휘권의 단일화와 훈련의 동일화는 절실히 필요합니다. 서로 각기 다른 훈련을 받은 병사들을 섞어 놓는다면 그 효율이 높겠습니까?”
“낮을 수밖에 없겠지. 아무래도 같은 훈련을 통해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오.”
“맞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입장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빚졌습니다. 이번 기회에 약간이라도 갚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우리 군을 가우리 군처럼 만들어 낼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럴 바에야 그 훈련방법을 배워오게 하여 차후 우리의 훈련에도 도입내지는 장점을 첨가할 수 있게 하는 게 실리적입니다.”
바이칼 후작의 말이 끝나자 알세인 왕은 흐뭇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이자 허락의 표시였다. 계획이 세워졌으면 달려야 한다.
“바이칼 후작의 뜻대로 하게. 그리고 난 열제 폐하께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네.”
“좋으신 생각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중에 로셀린을 되찾는데 초석이 될 것입니다.”
믿음직한 노장의 말에 알세인 왕은 마음을 굳게 다잡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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