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75
강철의 열제 175화
3.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고조 맞기 전에 비기라우.”
“헛, 짤퉁하게 생긴 거이 건방지구만 기래.”
“모이가 어드래? 지금 짤퉁이랬네?”
“와? 뭐 불만있…….”
퍼억!
쿠당당탕!
미처 말을 잇지 못하고 사내아이는 골목을 뒹굴었다. 뒤쪽에서 동정 섞인 말이 쏟아졌다.
“고조 그 말은 하디 말라고 내가 이르지않간. 짤퉁소리 들으믄…….”
퍼퍽!
쿵!
“헙.”
괜한 동정심에 충고하던 아이까지 눕자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이사 온 쌍둥이들을 교육시키겠다던 원대한 꿈은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들의 앞에 자신들보다 머리하나는 작은 두 아이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키가 작다고 깔보던 아이들은 다들 여기저기 깨지고 부어 있었다.
“고조 다른 거이 봐주는데 함부로 키 가지구 놀리믄 듀기가써. 알간?”
“네…… 네!!”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는 외가를 따라다닐 때마다 늘 있는 일이었다. 역시 삼 일 만에 우루와 부루는 동네를 평정했다.
을지무건이 신라와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잡혀가자 우루와 부루는 외가에 맡겨졌다.
하지만 아무리 서자라고 해도 반역집안이니 무사할 리 없었다. 결국 여기저기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런 그들 형제를 한 남자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들.”
우루와 부루가 뒤를 돌아보았다. 키가 크고 두건으로 머리를 싸맨 남자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멉네까?”
“무술을 배우지 않겠느냐?”
의외의 제안.
“고조 할줄 압네다. 어릴 때 배웠시요.”
부루의 대답에 사내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안다. 너희들의 몸놀림을 보면 그 정도는 알 수 있지. 더 배우지 않겠냐는 말이다.”
“고조 아바이를 어케 믿습네까?”
우루의 말에 사내는 등에서 막대를 꺼냈다.
“이게 뭐 같으냐?”
“고조 굴렁쇠 굴리는 막대 아닙네까. 누굴 바보로 아십네까?”
“바보 맞군. 이건 활이다.”
사내가 둥근 것을 반대로 휘어서 줄을 걸자 막대는 맥궁이 되었다. 우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자가 시위를 당겼다. 활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티잉.
파삭!
사내가 시위를 놓자 앞쪽의 소나무가지가 부러졌다.
“고거이 멉네까?”
빈 활로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다니.
우루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사내가 이번엔 대부를 꺼내들었다.
휘우우웅!
커다란 도끼날이 허공을 갈랐다. 날에 닿지도 않았는데 주변의 나무에서 잔가지들이 떨어졌다.
“무기에 기를 싣는 방법이다. 배워보겠느냐?”
“물론입네다!! 가르쳐주시라요!!”
“니런. 제가 먼접네다. 절 가르쳐 주시라요!!”
쌍둥이를 바라보는 사내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내는 우루에게 도끼를, 부루에게 활을 들려주었다.
“둘 다 내일 아침에 뒷산으로 그걸 가지고 와라. 손에 잘 익혀 두어야한다.”
우루와 부루는 입이 귀에 걸린 채 집으로 향했다.
휘우우웅.
파사사삭.
비록 날이 없는 도끼지만 우루의 도끼는 주변 나뭇가지들을 초토화 시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루는 형용할 수 없는 벅찬 느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니기미. 되끼가 더 됴쿠만 기래. 멀리서 비겁하게 쏘는 활보다 나은 거 아니네.’
부루의 눈이 초식을 외우는 우루의 동작을 낱낱이 쫓고 있었다.
피잉.
팅팅팅.
활을 떠난 화살이 소나무 가지 세 개를 부러뜨리면서 날아갔다.
웬만한 어른도 못 당길 각궁이 부루의 손에 들려있었다. 가르치는 사내조차 꼬마의 완력에 고개를 저었다.
“자, 이번엔 이걸 쏴봐라.”
사내가 통아에 편전을 재고 시위를 당겼다.
투웅!
투파파파팍.
눈에 보이지도 않는 화살이 날아가자 앞쪽의 나뭇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걸 지켜보는 우루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니기미. 장난 아니구만 기래. 이거이 드럽게 크기만 한 되끼보다 더 쎈 거 아니네. 활이 더 됴은거 가튼데.’
팅.
“아욱!”
외마디 비명이 부루의 입에서 나왔다. 편전을 쏘는 건 아직 무리인 것 같았다.
“앞으로 열흘간 다녀올 데가 있으니 각자 연습하도록 해라. 그리고 자기 병기가 아니더라도 다룰 줄은 알아야 하니…….”
사내가 대부와 활을 하나씩 더 꺼내서 주었다.
“열흘 후에 평가해보겠다. 게으름피우면 다신 안 가르쳐줄 게야.”
우루와 부루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열흘 뒤.
“헛참.”
사내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가 우루에게 도끼를, 부루에게 활을 들려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둘의 소질이 부루가 도끼에, 우루가 활임을 알고 있었고 둘이 경쟁심리가 강함을 파악한데서 서로 병기를 바꾸어서 가르쳐준 것이다.
그리고는 열흘을 지켜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니런. 니가 왜 되끼를 휘두르고 지랄이네?”
“모이야? 기럼 활은 언제 연습했네?”
밤마다 몰래 상대의 병기를 수련했던 우루와 부루는 둘 다 허탈함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열흘 만에 통아로 편전쏘는 법을 터득한 우루나 초식을 모두 외워서 응용편을 구사하는 부루나 상대를 눌렀다는 기쁨에 한껏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각자 오히려 원래 배운 무기는 떨어지게 되니 이겼다고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밤새가면서 열심히 수련한 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게 사내가 원래 노렸던 것이었다.
“자자, 할 수 없겠다. 그럼 이제 우루가 활을 수련하고 부루가 도끼를 수련해라. 됐지?”
사내가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두 형제는 서로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두고보라우. 내래 기어이 이 되끼로 네놈 코를 납작하게 해주가써. 알간.”
“어림없는 소리 말라우. 편전도 못 쐈으면서 뭔 말이 많네. 찌그러지라우.”
형제의 다툼을 보는 사내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생각보다 거물이 될 수도 있겠군. 소질이 있어.’
결국 우루와 부루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두 병장기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4. 결성! 최고의 팀
“근위장님, 교관 후보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래, 알았다.”
근위무장인 대무덕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앞쪽의 연병장에서 훈련하던 근위병들의 동작이 순식간에 멈추어졌다.
“계속해라. 다녀오겠다.”
“충!”
우렁찬 기합소리는 그들이 정예임을 알려주었다. 대무덕은 뒤쪽의 별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열제 가문의 왕자 중 한 명인 고진천의 여섯 살 생일이었다. 다른 왕자들은 여섯 살 생일부터 정치와 학문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서자인 고진천에게는 무예수련의 명이 떨어졌다.
다른 적손 왕자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별궁의 수련장에는 네 명의 장수가 시립해 있었다.
“관직과 이름을 대도록.”
“예, 철기대의 부장 걸대현입니다. 기마술이 전공입니다.”
“저는 창수대 교관 몽몽결입니다. 창술을 가르칠 겁니다.”
“저는 궁병입네다. 관직은 업시요. 을지우루라고 합네다.”
“부월수고 을지부룹네다. 그냥 병삽네다.”
“……?”
일반사병이 있다니.
대무덕은 의아한 눈초리로 우루와 부루를 바라보았다. 곁에 있던 장수가 고개를 숙이며 설명했다.
“이 두 병사의 무위가 뛰어나서 천거되었습니다.”
무위가 뛰어나다라.
대무덕은 우루와 부루를 찬찬히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무덕은 귀족이긴 했지만 외모나 신분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성품이었다. 그의 눈은 무관답게 둘의 실력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대도와 검은 내가 직접 지도하겠다.”
“예, 근위장님.”
“어느 정도 됐군. 가서 왕자님을 모셔와라.”
“그럴 필요 없다.”
문 쪽에서 들리는 꼬마의 목소리는 기품이 서려 있었다. 대무덕과 무장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날 가르쳐준다니 고맙군. 다들 잘 부탁하오.”
“예,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꼬마의 행동거지에는 위엄이 넘쳤다.
그 뒤를 조금 체격이 작은 아이가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헌데 뒤의 아이는…… 혹시 연개소문 장군 댁의……?”
무덕의 질문에 꼬마가 빙긋이 웃었다.
“내 친우이니 함께 배웠으면 하는데. 상관없겠지, 근위장?”
“아, 예. 뜻대로 하시옵소서.”
고진천의 뒤쪽에 있던 아이가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숙였다.
“연휘가람이라 하옵니다. 스승님으로 모시겠으니 부족하지만 많은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깍듯한 말투. 공손한 행동. 무장들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자, 오늘부터라면서. 나가자고.”
고진천이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 뒤를 미소를 머금은 연휘가람과 아주 당황한 채 뛰어가는 우루와 부루가 따라갔다.
# 176